김창흡(金昌翕, 1653∼1722)
조선의 유학자, 시인. 본관은 안동, 자는 자익(子益), 호는 삼연(三淵), 시호는 문강(文康)이다. 김상헌의 증손자이며, 김수항의 셋째 아들이다. 둘째 형인 농암 김창협과 함께 농연[1]으로 불리기도 한다. 평생 조정에 출사하지 않고 은거한 처사이며, 깊은 학문을 바탕으로 당대 시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이끌었으며 조선 후기 최고의 시인으로 평가 받는다.[2] 출사하지는 않았지만 가문이 가문이니만큼 노론의 핵심 인물 중 하나였다.
白雲洞 慕賢碑(백운동 모현비)
農巖 金先生 諱 昌協 安東人 (농암 김선생 휘 창협 안동인, 文簡公 1651~1708)
三淵 金先生 諱 昌翕 安東人 (삼연 김선생 휘 창흡 안동인, 文康公 1653~1722)
歸樂堂李先生 諱 晩成 牛峯人 (귀락당이선생 휘 만성 우봉인, 忠肅公 1659~1722)
直齋 李先生 諱 箕洪 全州人 (직재 이선생 휘 기홍 전주인, 1641~1708)
백운동 모현비 이전안내
왼편의 백운동 모현비(白雲洞 慕賢碑)는
조선 후기 대유학자 삼연 김창흡(三淵 金昌翕)선생이 서면 감와리(백운동)에 은거할 때
인근 유생들을 모아 강학에 힘쓴 학덕을 기리고자 그 후학들이 백운단을 설치,
김창흡(金昌翕) 선생 등 사현(四賢)을 배향 봉사하다가
일제 탄압으로 제향이 끊긴 것이 안타까워 광복후 옛 단(壇)터에 추모의 뜻으로 세운 것인데
효율적 관리를 위하여 이곳에 옮겨 놓았다.
1999년 12월 일
서면 박사마을 관리위원회 백운회
藝苑十趣(예원십취)
김창흡(1653∼1722)
崖寺歲暮 風霰交山 夜寒僧眠 孤坐讀書 애사세모 풍산교산 야한승면 고좌독서
春秋暇日 登高遠眺 形神散朗 詩思湧發 춘추가일 등고원조 형신산랑 시사용발
掩門花落 卷簾鳥啼 酒瓮乍開 詩句初圓 엄문화락 권렴조제 주옹사개 시구초원
曲水流觴 冠童畢會 一飮一詠 不覺聯篇 곡수유상 관동필회 일음일영 불각연편
良夜肅淸 朗月入軒 擊扇誦文 聲氣遒暢 양야숙청 낭월입헌 격선송문 성기주창
經歷山川 馬頓僕怠 據鞍行吟 有作成囊 경력산천 마돈복태 거안행음 유작성낭
入山讀書 課滿歸家 心充氣溢 下筆如神 입산독서 과만귀가 심충기일 하필여신
良友遠阻 忽然相値 細問所業 勸誦新作 양우원조 홀연상치 세문소업 권송신작
奇文僻書 聞在交友 送奴乞來 急解包裹 기문벽서 문재교우 송노걸래 급해포과
分林隔川 佳友對居 釀酒報熟 寄詩佇和 분림격천 가우대거 양주보숙 기시저화
1.벼랑 위 절에서 한 해가 저무는 때 눈보라는 온 산에 섞어 치고, 밤은 찬데 스님은 잠이 들어 혼자 앉아 책을 읽을 때.
2.봄가을 한가한 날 높은 산에 올라 멀리 보니, 몸과 마음이 가뿐하여 시상이 솟구쳐오를 때.
3.꽃 지는 시절 문을 닫아거니 주렴 밖에선 새가 울고, 술동이를 새로 열자 시구조차 마음에 꼭 맞을 때.
4.굽이치는 물 위로 술잔을 띄워놓고 어른 젊은이 할 것 없이 한자리에 다 모여서, 술 한 잔에 시 한 수로 어느새 책 한 권을 이뤘을 때.
5.좋은 밤은 맑고도 고요한데 밝은 달이 마루로 들고, 부채를 치며 글을 외우니 소리 기운이 유창할 때.
6.산천을 두루 돌아 말도 종도 지쳤지만, 안장에 걸터앉아 길 가며 읊은 것이 작품되어 주머니에 가득할 때.
7.산에 들어가 책을 읽다 목표를 채워 집에 오니, 마음이 충만하고 기운이 철철 넘쳐 붓을 내달림에 신명이 든 듯할 때.
8.멀리 있는 좋은 벗을 갑작스레 맞딱드려, 그간의 공부를 하나 하나 물어보고 요새 지은 새 작품을 외워보라 권할 때.
9.기이한 글과 희한한 책이 벗의 집에 있다는 말을 듣고, 종을 보내 빌려오게 해서 허둥지둥 포장을 끄를 때.
10.숲과 시내 건너편에 살고 있는 좋은 벗이 새로 빚은 술이 익었다고 알려오며, 시를 부쳐 나에게 화답하기를 청할 때.
< 김창흡의 예원의 열 가지 즐거움에서 >
첫댓글 이런 유적지들은 나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모르는곳이네요.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