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1 - 밥 사는 행복
주성 박형태(무궁화봉사단 회장)
짧지 않은 삶을 살면서 수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았습니다. 가난도 맛보고, 지병으로 장기간 약도 복용해 보았고, 연속된 실패로 세상을 한탄도 해 보았고, 작은 성취도 느끼며 좌충우돌 버텨 왔습니다. 환경에 적응하느라 온갖 체험을 몸으로 부대끼고 전국을 다닐 기회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라면 행운이었습니다.
이순(耳順)을 넘기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민간활동가로 변신해 있었습니다. 2009년 어떤 계기로 시작된 시민운동이 교육, 환경, 복지, 저출산, 청소년과 양성평등, 문화예술, 체육 여러 분야로 넓어져 갔습니다. 거대한 기득권에 부딪치며 이러면 안 된다고
가진 놈들이 다 가지면 안 된다고 조금씩 나누라고 소리 높여 왔습니다.
돌이켜보면 처음 시작부터 만나고 헤어짐을 반복했던 사람들! 모두가 큰 욕심이 없이 왔다 가셨고. 한 분 한 분 소중한 도움이 발판이 되었음을 뒤 늦게 깨닫는 것은 한 참 뒤였습니다. 사람들이 모여 일구어낸 일들이 공익 실적으로 쌓여가며 작은 단체 의 역사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지금도 함께 해 주는 많은 우정(友情)들이 있습니다. 숱한 사람들이 찾아오고, 부탁하고, 이야기하고, 놀다 가는 공간도 생겼습니다. 최첨단 공법의 신형 건물은 아니어도, 80년대 지은 낡은 공간이지만 우리들이 어울려 놀기에 안성맞춤이라고 위안(慰安)을 삼습니다.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실천하고/ 정산 보고하는 일을 수도 없이 해왔습니다. 고생 고생하고도 비참하게 탈락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였습니다. 시기 질투도 많았습니다. 이기심으로 가득한 민간단체 현장에서 공익을 빙자한 이합집산(離合集散)도 지켜보았습니다. 말이 자원봉사지 진심(眞心)은 다른 데 있음도 알게 되었습니다. 주변에서 공익 활동 한다는 명분으로 내로남불이 더 치사하게 진행되는 것도 목격했습니다.
살아가는 방식은 모두 다르지만 쩐(錢)을 쫒는 것만은 같았습니다. ‘아니다 아니다’ 하지만 모두에게 돈이 전부였습니다. 주위를 돌아볼 것도 없이 개인마다 돈을 위한 행진곡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생(生)을 얼마 남겨두지 않으신 우리 엄마도 갈 때마다 받아든 용돈을 만지며 기뻐하십니다. 사람은 즐겁고 신이 나면 하루라도 더 살기 때문입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내 가족조차도 부동산으로 주식으로 한탕하려 생각을 갖고 있으니 누구를 비방할 일도 아닙니다.
사람들은 쩐(錢)에 울고/ 쩐에 목메고/ 돈을 쫒다가 그렇게 그렇게 가는 것입니다. 돈을 향한 애착에 빠져 뒤에서 욕하는 줄도 모르고/ 수전노(守錢奴)로 모은 그 많은 돈을 다 쓰지도 못하고 훌쩍 떠납니다. 베푸는 것이/ 쓰는 것이/ 버는 것인지 아는 데는 이미 죽고 난 뒤입니다. 재산이 아무리 많아도 자신의 주머니에서 나가는 천원이 아까워 미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오백원∙천원 벌어 자신에게는 쓰지 않고 어려운 사람/ 안타까운 일을 보면 덜렁 내주는 이도 있습니다, 내 돈 쓰면 죽는 줄 알고 몸 쓰리 치게 집착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내가 먼저 써버려야 더 마음이 편한 사람도 있습니다.
부조(扶助)할 수 있고, 건강유지 할 정도의 비용이 있고, 손 주들에게 용돈을 줄 수 있는 여유면 참 좋겠습니다. 남에게 손 벌리지 않고, 밥을 살 수 있는 여유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항상 갖습니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밥을 사면 참 기쁩니다. 밥을 잘 사면 나중에 반드시 그 이상의 즐거움이 오거나 엔돌핀이 돈다고 합니다. 엔돌핀은 다이돌핀이 되어 더 오래 건강하게 살게 해 줄 것이니 말입니다.
나는 자식 둘에게 밥을 자주 사라고 합니다. 둘 다 30대 초반이라 세상에서 자신이 가장 잘나고 똑똑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식이지만 아무리 바른말 좋은 말도 하더라도 잔소리로 치부하기 십상이기에 지나가는 말로 “밥을 잘 사라”는 것이 가장 부담 없는 전달입니다. 밥을 사는 것이 주변을 건강하게 만들어주고 인생을 더 인생답게 사는 방식이라고 애비로서가 아니라 인생 선배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상의 선택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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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2 - 우리 모두가
주성 박형태(울산광역시장애인농구협회장, 무궁화봉사단단장)
오후 5시 우리 농구부 트레이너 'N'에게서 전화가 왔다. “단장님 ‘T’소식을 들었습니까?” 했다. 자네들이 모르는데 내가 어떻게 아느냐 했더니 ‘T’가 3일 전 자살했다는 소식이 왔다고 전했다. 잠시 후 지도 코치 'L'에게서도 연락이 왔다. “박 단장 ‘T’ 가 죽었다는 연락이 왔다”고 했다. 30분 뒤 휠체어주장 'K'에게서도 전화가 왔다. “결국 ‘T’가 죽었다는데 자신은 이미 예상했다”고 한다.
‘T’는 2011년 동료의 추천으로 울산지적장애인농구단에 참여하였다. 당시 27세로 농구를 아주 잘하는 친구였다. 이미 고등학교 때 비장애인 또래들과 제대로 룰을 익힌 친구라 우리 팀에게는 최고의 기량을 겸비한 가드였다. 다만 이 친구는 정신분열증이란 정신병을 앓고 있는 터라 상시 약을 복용해야만 하는 처지였다. 이 친구들이 뛸 때인 2012~2013년 전국장애인체전에서 동메달을 딸 정도로 효자들이었다. 그러다가 4년(2014~2017)간 연락이 두절되었다.
다시 스스로 찾아와서 운동을 하고 싶다고 하여 합류시켰고, 2020년 2월부터는 ‘S’기업 지원으로 장애인의무고용에 취업되어 운동을 하면서 월 120만원 정도의 월급을 받는 혜택을 누리는 등 안정을 취하고 있었다. “단장님 이런 직장은 꿀이지요! 감사합니다” 하고 싱글벙글 이라 장애인 선수들이 복지혜택을 누릴 수 있어 나 역시도 마음이 편했다. 사회적 소외계층들이 누릴 수 있는 혜택은 모두의 행복을 위해서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작년(2021년) 12월 지도 코치 'L'이 ‘T’문제에 대해 애기하면서 ‘T’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 ‘S’기업에 자진 퇴사 하겠다고 연락해 버렸다고 했다. 장애인체육선수로서는 준 실업 선수에 속하는 터라 많은 장애선수들이 선호하는 직장인데 그것을 박차버렸다고 하니 답답했다. 지도 코치는 연락이 안 된다고 하여 올해는 선수등록조차 하지 못했다. 그리고 3개월 뒤 이런 통보가 온 것이다.
트레이너/코치/주장에 따르면 제법 오래전부터 이런 분위기를 감지했다고 했다. “죽고 싶다/ 죽으려고 손목을 그어도 안 죽 더라/ 장기를 팔고 싶다/ 나는 혼자다/ 이야기할 사람이 없다”란 말을 수없이 했다고 뒤늦게 전했다. 그들은 나에게는 지나가는 말로 ‘T’가 좀 이상하다고 하는 정도 였다. 나는 ‘T’가 그런 고민이 있고/ 그런 외로움이 있었음을 알지 못했다. 선수 관리는 트레이너와 지도 코치가 전담하므로 관여하는 것은 월권(越權)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식 같은 선수라 밤새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지독한 외로움/ 전화할 사람도 없는 그들/ 자신을 이해해 주지 못하는 가족/ 일등만을 위하는 사회가 그가 그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도록 몰고 간 것이다. 한 번쯤 그들을 만나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들어 주지 못한 것이 못내 후회가 된다. 새벽 3시 12층 아파트를 뛰어 내리려고 생각했을지 생각하니 소름이 돋는다. 얼마나 답답하고 잠이 안 왔으면 새벽 1~2시에 카톡으로 잠을 깨웠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저민다. 장례까지 다 치룬 후에 지인을 통해 알게 되는 원통함을 또 어찌 할 텐고!
지적장애인농구단 그들은 건강한 신체의 소유자들이지만 결혼도 쉽지 않다. 친구들의 나이도 어느새 30을 넘기도 어떤 이는 40이 코앞이다. 그래도 사무실에 와서 건강한 누나 동생들을 만나 대화하면서 즐거워하는 그들은 항상 가족이라고 생각한다. 친구들은 몇 단계를 거쳐야 하는 단장인 나에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터놓기가 어려운 환경이었나를 생각해 본다. 그들이 마음 편히 운동하며 안전한 생활을 영위하도록 지원하겠다고 다짐하지만 마음을 다하지 못함을 항상 미안하다. 참으로 답답하고 힘든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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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1 - 마지막 산행
주성 박형태
몹쓸 병 안스럽게 짊어진
엄마의 마지막 산행길
신록의 유월은 푸르다 터 지 더라
소화불량
작은 몸살기
황달로 치대어
온몸 저미는 고통 감내하려
폴피리녹스
오니바이드
가시 찔린 고통 십 사 개월
남은 일주일
옥시코돈
모르핀 도움 받아
예정된 이별의 시간 앞에서
이생의 마지막 큰아들 통화
엄마! 그동안 고생 많았어~
못 고쳐주어 미안해!
그래도 겁먹지 마 엄마!
누구나 가는 그 길
조금 먼저 가 있어 알았제~
우리도 곧 갈 거야!
육십 삼년 다 삼키고
긴 터널 지나니
지나온 사연 단풍 들어
한 잎 두 잎 낙엽 되어 떨어지네
※ 주
1) 2022.6.16.14:00 골방에서 우연히 튼 유튜브에서 엄마를 마지막 보내는 딸
과 가족이 엄마와의 마지막 산행을 영상에 담았고, 엄마의 췌장암 발견 후부 터 서울을 오가며 받은 항암치료 일기, 임종 때 까지를 담은 영상을 보고 남 기는 시(詩)
2) 소방관 아들 부부 / 경찰 딸 또 경찰친구 모여 저녁을 먹으며 젊은 직업인 으로 마주한 부패한 시신(屍身)/익사한 시신 등을 경험하며 나눈 대화 중 삶 의 실전을 통해 표현 함
3) 항암체료제 : 폴피리녹스 / 오니바이드
4) 암 치료자들이 마지막 까지 맞는 마약성 진통제 : 옥시코돈 / 모르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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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2 - 그냥 그렇더라
주성 박형태
살아오면서
가장 연연했던 것이 과거
가장 소망하던 것은 꿈
가장 홀대했던 그것이 현재더라
살아오면서
남 잘되는 것 배 아파했고
내 잘못은 남 탓으로 돌리더니
허송세월 한숨만 맴돌더라
살아오면서
뜨거운 사랑 해보고
오뉴월 풍파風波 다 겪고
절치부심切齒腐心 목메 봐도
그래도 기차는 떠나더라
나 잘 낫 다 까불었고
주머니 두둑하다 어깨 힘 께나 주고
젊다고 거드럼 피더니
더러는 흙으로
더러는 강물로
더러는 바람으로 떠나더라
살아보니
잘난 놈 못난 놈 오십보백보
있는 넘 없는 넘 도긴 개긴이니
옛 일은 모도 새옹지마塞翁之馬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