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장 서울의 낮
탈것을 추천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본질적 인 특성을, 즉 속도와 신체적인 편안함을 모두 만족시켜야 한다. 우리의 관념상, 그 중 어느 것도 조선 가마의 두드러진 특징이 아니다. 그것을 메고 다니는 가마꾼은 걷는 것보다 조금 더 빠르게 움직이지만, 그 약간의 빠른 속도는 외국인의 경우 다리의 고통을 상쇄하지 못한다.
기계가 암묵적인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내 보기에 그 존재를 정당화 하지 못한 결과, 나는 그것을 당당하게 엉터리라고 치부하고, 가능한 한, 편안함을 위해 예의마저 희생하고, 걷는 것을 선택했다. 내 입장에서 이런 비합리적인 행동은 그 착한 대령에게 처음에는 큰 혼란을 주었다.
그러나 그는 편협한 행동만큼 나의 거부감이 심하다는 것을 느꼈고, 그의 만류가 쓸데없고 나의 결심을 흔들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고 마침내 포기했다. 틀림없이 그는 모든 것이 너무나 이상한 성격에 특이한 성격 하나가 더해진들 달라질 것은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특히 도시를 가로지르는 여행을 걸어서 했다.
이 여행에서 나는 사람들의 호기심 때문에 약간의 짜증이 났다. 움직이는 것이 더 안전하다. 거리의 게으름뱅이들 중 누구도 따라가는 수고를 하면서까지 호기심을 채우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만약 내가 방심한 순간에 멈추면, 나는 즉시 관찰의 중심이 되었다. 군중들은 고의적이라 의심할 만큼 민첩하게 몰려들었다.
마치 사람들이 터를 잡아 기다리고 그 수가 불어나 통행을 방해하고, 악화될 경우, 많은 무고한 시민들이 그들의 의지에 반해 강제로 휩쓸려 장식품으로 전락하는 것 같았다. 이렇게 자청해서 모여든 관중들의 행동에는 일본에서 보여진 의도적 위선조차 없었다. 그들은 나를 노골적으로 쳐다보기 위해 멈췄고, 다른 것을 쳐다보는 척 할 필요는 거의 없었다. 정상적인 조건이라면, 한 가지 측면에서 거리는 걷기에 매우 적합했다.
여행의 으뜸은 걷는 것이다. 마차도 없고, 말도 거의 없어서, 치이지 않도록 사람들을 경계할 필요가 없고, 행인들을 의식하지 않고 거닐며, 전혀 예상치 않게 전체 풍경을 보는 호사스러움에 빠져들 수 있었다. 사실상 보행자를 제외하면 거리에는 가마와 짐 소 뿐이었고, 소의 속도는 사람보다 더 느렸다.
고백하건대, 다른 측면에서 길거리는 그 목적에 실질적으로 적응하지 못했다. 길거리의 외양은 시골길 같았으며 번성할 것 같지 않았다. 시궁창 해자를 제외하면, 길은 단순히 주민의 공간처럼 보였다. 공사한 흔적을 본적도 없다. 건조한 시기에는 충분히 괜찮지만, 비가 오는 날에는 진창이 되고, 사람들은 길 안에서 새로운 길을 스스로 개척했다.
특히 폭설이 내린 후 그 효과는 독특했다.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다행히도, 게으름뱅이들은 그 기회에 집에 머물렀다. 집밖에서의 모험을 한 사람들 중에, 눈 위를 걷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각자 일렬종대로 앞 서 간 사람들의 발자국을 따라간다. 큰길은 당분간, 이리 저리 굽은 좁은 길이 되고, 처음 지나간 사람의 변덕을 반영한 듯한 임의의 구불구불한 길이 평평하고 넓은 새하얀 신천지를 가로지른다.
몇 개의 간선도로는 한 눈에 다 보였고, 상당히 곧았다. 다른 길들은 멋있게 굽었고, 그래서 그 길들을 하나하나 알기 전에는, 새로운 길을 모험할 때, 마지막에 어디로 나올지에 대한개념을 가질 수 없다. 탐사 정신은 나에게 몇 가지 귀중한 지형적 발견을 가져다주었다. 하지만 난 내가 특별히 찾던 지름길을 찾는데 성공하지 못했다는 걸 비밀리에 고백한다.
이런 것들에 대한 이의는 그 길이 누군가의 뒷마당으로 끝날 것이 확실하다는 사실 이었다. 그곳으로부터의 탈출은 수치스럽게도 도로 돌아 나오지 못하고, 돌담을 넘어 다른 조용한 뜰로 내려가는 것이었다. 목적지에 도달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방향에는 거의 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넓은 시야를 유지하는 것이다. 서울에 대한 지식은 이 본능을 습관으로 만들 뿐이다.
겨울의 맑은 날 - 겨울의 절반 정도는 날이 맑다 -, 넓은 도시의 거리 어느 곳에서나 보이는 풍경이 가장 아름답다. 집들은 너무 낮고, 산은 너무 높아서, 길을 지날 때 양 쪽에 지붕 위로 우뚝 솟아 있는 봉우리가 보인다.
좁은 골목길에서도 앞과 뒤의 끝자락을 가로막는다. 그것들은 눈부시게 하얀 눈으로 덮인 채,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선명하게 눈에 띄며, 그 너머에서 불어온 북풍이 상쾌하게 도시를 뒤덮고 있다. 추위에도 불구하고, 서울에서는 매우 좋은 바람이다. 거대한 연을 날리는 바람이기 때문이다. 여기 저기 좋은 위치에 모여 하늘을 쳐다보고 서 있는 한 무리의 남자들과 소년 들을 만나게 된다.
종종, 그들은 큰길의 바로 한복판에 서 있다. 다른 사람들은 그 지점을 지날 때, 물론 그들을 피해 간다. 이 하늘바라기들을 대낮에 처음 마주 쳤을 때, 그들은 행인들에 신경을 전혀 안 쓰는데 행인들이 오히려 배려했다. 나는 그들이 넋 빠진 듯, 추앙하는 듯 주목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내가 바로 같은 방향을 바라보니, 멀리 파란 하늘을 가로질러 항해하는 직사각형의 종이가보였다.
그러고 나서, 내 시선이 방황하는 동안, 나는 멀리 떨어진 또 다른 것을 보았고, 그것은 도시의 지붕 위를 거대한 흰 새처럼 맴돌았다. 온전히 흰색은 아니고 부분적으로 색이 입혀져 있어, 연이 공중으로 돌면 멀리서 비추는 햇빛에 순간적으로 붉거나 파란색이나 갈색이 돌았다. 때로는 홀로 웅장하게 치솟기도 했고, 때로는 짝을 지어 날기도 했고, 두 연은 마치 성난 두 마리 새들처럼 서로를 맴돌기도 했다.
이것은 연싸움의 징조다. 두 개의 연을 서로 가까이 날린 다음, 각각 연줄을 교차시킨다. 그런 다음, 능숙한 솜씨로 이길 때까지 서로 비비면서 상대방의 줄을 자른다. 끊어진 연은 팔랑거리면서 땅으로 떨어지고 긴장에서 벗어난 승자는 조롱 섞인 승리의 손짓을 하며 공중으로 높이 솟아오른다. 내 연줄은 끊어지지 않고 상대방의 연줄을 끊을 수 있는 방법에는 너무나 많은 기술이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연 주인을 완전히 둘러싸고 입을 벌린 채 하늘을 바라보며 그 어떤 것도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수많은 구경꾼들의 감탄을 자아낸다.
연싸움에 유리한 연의 종류는 구조가 매우 단순하고 장식도 평범하다. 중국과 일본의 여러 가지 연들처럼 흉측한 물건을 만들어 내는 정교한 기이함이 상당히 부족하다. 그것은 직사각형이고 꼬리가 없고, 아주 큰 크기는 결코 아니다. 이것의 유일한 아름다움은 어릿광대나 죄수처럼 알록달록한 색이 대칭인 것에 있다. 하지만 그것은 더 많이 장식된 같은 모양의 연도 있다. 소년들은 그 여가 시간을 독점하는 것을 개의치 않는다. 남자들은 같은 열정으로 참여하며, 연날리기는 나이 들어서도 결코 그만 둘 일이 아니다. 1월은 주로 북풍이 강하게 불기 때문에 연날리기에 아주 좋은 달이다.
이 어른 장난감들과 도시 위의 하늘을 나누는 것은 두 번째 종류의 연이다. 이 연은 겉보기에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진짜 새다. 다른 지역의 독수리처럼, 그것들은 마을의 청소부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은 개들과 이 싫은 의무를 공유하고 있다. 그들은 같은 이름의 인간의 발명품들과 잘 대비되는데, 해질 무렵, 그것들의 움직임 없는 거대한 날개는 웅장한 원을 그리며 회전하고 있다. 아무도 그것들을 괴롭힐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갑자기 들이 닥치기는 하지만, 거리에 거의 내려앉지 않는다. 집들은 너무 낮아서, 지붕 위에도 거의 앉지 않는다.
그것들은 나무를 선호하는데, 그 중에서 도시 곳곳에 흩어져 있는 정원에 많은 나무가 있다. 이 나무들이 있는 곳마다 솔개들이 몰려 있고, 해질 무렵에는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새들로 두껍게 덮일 것이다. 나뭇가지는 다른 종류의 솔개, 즉 연들에게도 휴식처 역할을 한다. 이런 종류의 연은 전 주인에 의해 버려진 불운한 연들이다. 정도는 다르지만, 날씨로 인해 무시무시할 정도로 마모된 이 파편들은 지난해 등지 잔해와 나란히 슬프게 매달려 있다.
새들이 가장 좋아하는 장소가 하나 더 있다. 붉은색으로 칠해진 이중 교수대 같은 구조물로 큰길의 바로 앞, 좁은 길의 입구에 세워져 있어 연을 관찰할 수 있는 웅장한 기둥으로 가로대 그림자 위에 걸친 새 그림자는 해 비치는 길 위에 시커멓게 누워 있는 섬뜩하고 유령 같았는데 그 그림자를 보지 않고는 그 아래를 지나간 적이 없다. 본능적으로 몸을 돌려 위를 올려다보면, 솔개가 움직이지 않고 앉아 있는데, 얼핏 보기에 게으른 졸음 속에 잠겨 있는 것 같았지만, 아무것도 깜빡이는 눈을 피해 갈수는 없다.
서울은, 모든 면에서, 단 한 가지를 제외하고, 내가 지금껏 본 도시 중 가장 침울한 도시이며, 그 한 가지 특징에서 가장 밝은 도시다. 보편적으로 우울한 분위기에 대한 이 단 하나의 예외는 복장에 관한 것이다. 하지만 이 예외조차도 본질적으로 피상적이다. 그 옷은 입은 사람의 개성이 잘 묻어나지 않는다.
멀리서는, 얼굴 표정보다 그 인물이 우선 눈에 띄는데, 가까운 곳에서는, 희미하게 파르스름한 흰색 통옷이 겉으로 보기에 쾌활함을 거리에 더해준다. 그러나 더 가까이 다가가면 조용하고 침착한 사람들의 표정이 환상을 깨는 경향이 있다. 이 밝은 것 하나 빼고는, 모든 것이 초 자연스럽게 침울하다.
첫째로 집들은 가장 기본적인 설명을 제외하더라도 창문이 없다. 그 효과로 인해 샛길에서는 극도로 으스스하다. 양쪽으로 긴 벽이 늘어서 있고, 앞쪽에는 작은 시궁창이 있고, 지붕은 기와로 덮여 있다. 그렇게 보이지는 않지만, 그것은 집의 측면이다. 조선의 모든 벽은 집처럼 완전히 지붕으로 덮이기 때문에, 처마 밑의 몇 개의 구멍을 제외하면 벽과 제대로 구분 할 수 없다. 이러한 구멍은 작은 사각 구멍으로 종이를 바른 작은 미닫이가 장착되어 있다. 미닫이 밖에, 철로 만든 격자를 흔하게 볼 수 있다. 외부와 완벽하게 차단되었지만, 긴 줄의 돌 틈새에 문이 있어, 들여다보면 기껏해야 텅 비어 우울한 빈 뜰이 있을 뿐이다.
둘째로 조선인들은 가게 운영을 잘 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가게의 수는 적고, 팔 물건이 부족하다. 그럴 만도 하다. 파는 사람이 사는 사람보다 훨씬 많은 것 같다. 장사는 남성들이 선호하는 직업이 아니며, 여성은 그 지위로 인해 상품구매의 즐거움을 맛본 적이 없다. 가게들에게는 안타깝게도, 사실, 돈을 현명하게 쓰는 것이 여성의 일이 아니다. 분별없이 쓰는 것이 여성의 즐거움이다. 이런 점 때문에 가게는 전혀 매력적인 장소가 될 수 없다. 커다란 유리창은 기본으로 길 쪽으로 집 전체가 열려 있고, 방 하나는 물건을 진열하기 위해 놓여 있다. 그 결과, 겨울의 장사는 추운 일이다.
팔릴 가능성이 가장 적은 물건들은 뒤 쪽 작은 방에 둔다. 이 방에서 작은 유리 창문을 통해 앞에 있는 물건들을 주시한다. 그러나 그러한 사치는 예외이지 규칙이 아니다. 하루 종일 두 종류의 물건을 아랑곳해 충분히 보호하는 것은 보통 가게 주인들에게는 습관이다.
훨씬 넓은 거리는 그런 가게들이 가장 많이 자리 잡은 거리다. 그 이유는 거리가 흔한 만남의 장소가 아니라 단순한 통로여서 눈길을 별로 주지 않기 때문이다. 가장 낮은 급의 가게만이 앞에 놓여 있고, 좀 나은 급의 가게는 품위 있는 은둔생활을 하고 있어 집 안마당 중앙에 있다. 그래서 양반집들이 들어서지 않은 거리의 양쪽은 가게로 채워졌다. 이 풍습은 중국과 일본에서도 흔하다.
거리에는 교통량이 부족하지 않다. 몇몇 거리는 확실히 남자들로 붐빈다. 이렇게 많은 행인들이 무엇 하는 사람들인지 나는 결코 명쾌하게 판단 할 수 없었다. 빈등거리는 것은 확실히 아니다. 그들의 행동으로 보건대, 즐길 것이 있으면 즐기되, 각자가 할 일이 있다고 확신한다. 왜냐하면 주의를 끄는 어떤 것에 대해서도 무한정 멈춰 서서 응시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서민들에게만 적용된다. 간혹 어떤 관리들이 그의 가마를 타고 군중들 사이로 삐져나와, 앞서가고, 에워싸고, 빠른 걸음으로 하인들을 따라오며, 서둘러 지나가는 소리를 내기도 하지만, 가능한 한 바쁜 것처럼 보이는 것은 모든 관리들의 업무의 일부다. 통치자는 항상 그들이 하는 일에 드는 노고를 피통치자들이 상기하기를 좋아한다.
매우 붐비는 곳이 있는데, 대부분 집에서 가깝다. 겨울철에는 불과 물이 업무의 수호신일 수밖에 없다. 불과 물은 업무의 10분의 9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이곳이라면, 탈레스는 자신의 본질을 숭배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지 않았겠고, 자신의 원칙을 주입하는데 성공했을지도 모른다. 황소는 덤불숲에 질식해 끊임없이 시내로 흘러 들어갔고, 나중에 다시 짐 없이 길게 줄지어 떠난다. 짐에 의해 거의 보이지 않게 된 사내들은 높이 솟은 덤불더미 아래서 움직인다.
사람과 짐승 모두 다른 행인들을 무시하며 나아간다. 행인들의 의무는 길을 비켜주는 것이다. 똑같이, 행인들을 신경 쓰지 않는 부류는 무거운 물을 나르는 사람들, 즉 물지게꾼들이다. 어깨를 가로 지르는 물지게의 양쪽 끝에 매달린 두어 개의 통은 그것들이 스스로 운반되기 보다는 물지게꾼들을 재촉하기 위한동력으로 보인다. 우물에서 물동이 끝까지 채운 물은 안전 수위까지 낮추기 위해 충분히 쏟아질 때까지 세차게 흘러내린다, 그래서 그 뒤로 얼음 둔덕의 얼어붙은 길을 남긴다.
물지게꾼들이 물을 긷는 우물들은 도시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물들 중 하나다. 행인들 이동에 지장이 없게 그것들은 길모퉁이 외진 곳에 있어, 큰길가에 있지만 큰 길로부터 벗어나 있다. 그것들은 돌 벽돌로 만들어졌고, 둥그렇게 세워졌고, 그들의 테두리는 주변 땅 위로 이삼피트 정도 위로 솟아올랐다. 끊임없이 오가는 많은 사람들의 눈에 띄게 하기 위해, 큰길보다 약간 돋우어 졌다. 물을 긷는 시간은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
우물들이 너무 깔끔하게 배치되어 있어서 하루 종일 물장수나 여종 등 사람들이 끊임없이 몰려들어 긴 줄을 선다. 그들 주위로 여인이 혼자서 빨래한다. 보통 이 때, 여자의 얼굴을 볼 수 있다. 이 두 가지일 때문에 여종들은 습관적으로 집 밖으로 나가지만, 그 일이 직업인 사람들도 있어, 여종인지는 아무도 알아챌 수 없다.
도시 한복판에 큰 종이 서 있다. 그것은 극동 종치고도 큰 종으로 두 개의 중요한 교차로가 만나는 곳의 건물 전체를 차지하고 있다. 그 중요성은 그 상황과 규모에 꽤 부합한다. 왜냐하면 그 중요성은 모든 시(市)의 준수 사항, 더 적당하게는 도시에서 지켜야 하는 모든 법(法)을 규제하기 때문이다. 도시는 대종의 엄숙한 소리에 의해 정해진 시간을 발표하기 때문에, 그 규제에 있어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다. 보통, 종은 낮에는 조용하고 밤에만 친다.
거리가 교차하는 이곳은 일종의 광장이 되는데, 광장은 넓이와 중심 위치에서 볼 때 도시에서 가장사람들이 많이 찾는 장소가 된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땔나무시장이 열리기 때문이다. 짐에서 해방되기를 기다리는 황소들은 줄도 안 묶인 채 끈기 있게 서 있다.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의 따듯한 대우와 친숙함은 황소들을 온순하게 만들었다. 그 옆에는 간이 상점이 늘어서 있는데, 그곳에는 소소한 일상용품이나 간단한 사치품이 진열되어 있어, 사람들이 사가거나 호기심을 보인다. 이것들과 나란히 과일 판매대, 혹은 더 적절하게 표현하자면 견과류 판매대가 있다.
왜냐하면, 조선의 과일에 대해 할 말이 없지만, 견과류는 예외적으로 괜찮기 때문이다. 귤, 곶감, 적갈색 사과처럼 생겼고 감자처럼 단단하고 맛이 없는 배, 밤, 호두, 잣 등이 가장 많이 팔리는 종류 중 하나다. 가장 흥미로운 점은 진열대에 과일을 배열하는 체계적인 방식이다. 각각은, 종류에 따라, 작은 무더기로 진열한다. 무더기들이 너무 대칭적이어서 호기심에 그것들을 세어보았다. 그렇게 하면서, 나는 각각의 무더기들이 같은 종류의 과일들과 정확히 같은 수의 낱개들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밤 세 알은 변함없이 한 무더기로 호두 일곱 알은 다른 무더기로 견과류는 크기가 줄어들수록 그 수가 늘어난다. 각각의 무더기는 반푼에 판매된다. 오랫동안 고객을 구애할 운명 이었던 이 작은 무더기들을 미 리 치밀하게 정리한 열성 적 인 노동을 생각하면 애처로울 지경이었다.
도시를 가로지르는 몇 개의 마른 개울이 있다. 봄비가 내리는 계절에는 실제로 약간의 물이 흐르지만, 일 년 중 오랜 기간 동안 많은 수의 개울이 말라 있다. 그러나 그들은 길이 교차하는 곳마다 돌다리로 뻗어 있고 이 다리들은 조선에서 유일하다. 처음에는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조선에서는 물이 흐르는 강은, 어느 길로 가든 어떤 종류의 다리로 유명하거나 그 반대인 경우도 없다.
그러나 이 역설은 두 가지 이유로 설명할 수 있다. 수도의 부와 존엄성이 한 가지 원인이고, 때로는 하천이고 때로는 그렇지 않은 하천은 물이 항상 흐르는 하천이나 항상 말라 있는 하천보다 더 골치 아프다는 사실도 관습의 명백한 부조화를 야기하는 또 다른 이유다. 걸어서 건너는 것은 나룻배보다 더 원시적이고, 긴 다리는 결국 작은 것보다 더 비용이 많이 든다. 비용에 관한 한, 이 돌다리들은 별로 돈이 안 든다. 한번 건설되면, 도움 없이 지속하는 힘이 있다.
그것들은 만들어진 커다란 돌덩어리들로 인해 너무 견고해서, 본래라면 그렇게 되었어야만 하지만, 오랫동안 어떻게든 붕괴되지 않는다. 세월이 흘러 벽돌 사이에 이음새가 벌어졌고, 벽돌이 아래위로 어긋나, 균형이 잡히지 않았지만, 사림의 물결은 옛 날처럼 안전하게 돌다리를 건너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 도시의 소리도 그 도시의 풍경이다. 어느 날, 서울의 간선도로 중 하나 예 생긴 연못과 진흙 구덩이를 헤집고 다녔다. 그렇게 하는 것이 어렵고 그에 따른 속도 저하에도 불구하고, 거리는 평상시처럼 꽤 만원이었고, 특별히 조용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어느 모퉁이를 돌자 건너편 집에서 터져 나온 소음에 완전히 잠겼다. 그 집은 외관상 다른 집들과 마찬 가지로 창문을 낸 구멍이 있는 빈 벽만 거리 쪽에 보였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상당한 대혼란이 일어났다. 그 소음은 거대한 벌떼의 웅성거림과 흡사 했고, 그곳은 대형 벌집을 연상시켰다. "도대체,” 내가 수행원 김씨에게 말했다. ”저 왁자지껄한 소리는 무엇인가요?” 하지만 알고 보니 단지 조선의 학교 였다.
궁금증이 나를 조사관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가능하면 매일 일어나는 일인 것처럼 집 한쪽에 있는 대문을 지나 뜰로 들어갔고, 착한 김씨가 뒤따랐다. 하지만 이렇게 조용히 혼자 들어가는 것은 문제가 안 되는데, 열성적인 군중들이 학교를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쳐다보기 위해 내 뒤로 몰려왔다. 사생활은 조선에서 요구 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무단 침입은 무례함이라고 할 수 없다.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이 상황에 적응하지 못했다.
나의 초대받지 않은 방문으로 인해 안에 있는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방해 받지 않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교장은 상관하지 않았다. 그는 예의 바르게 나를 맞아주는 것처럼 그들이 오는 것에 대해 상관하지 않았다. 하지만 최소한의 권리로 나는 반대했다.
나는 그들에게 밖으로 나가라고 명령했고, 김씨와 주인들의 도움으로 그들을 모두 거리로 내몰고, 문에 빗장을 걸었다. 그리고 나는 배움의 문턱, 즉 조선의 모든 집을 둘러싸고 있는 넓은 문틀 위에 앉았다. 내가 지혜의 자리에 들어가지 않은 것은 신을 벗기 귀찮은 탓도 있고, 자리가 꽤 찼기 때문이었다. 이 방은 가로 8피트, 세로 8피트 정도의 보통 크기의 조선식 방이었으며, 중앙을 향하여 8명의 학생과 선생님이 앉아 있었다. 그들은 모든 연령대의 학생들이었고, 상상할 수 있는 혹은 상상할 수 없는 가장 진지해 보이는 남학생들이었다.
그들은 선생님처럼 차분했다. 그들은 모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았고, 돗자리 위에 각각 책 한 권을 펼쳐놓고 있었다. 이 책들은 "천자문"(조선어로 된 한자 입문서)에서부터 진정한 고전과 수많은 역사, 그리고 먼 고대로부터 시작된 신비철학의 해설서인 "역경”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류의 책들이었다. 예상치 못한 나의 출현은 그들 모두를 멈칫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순간적인 들뜸에서 돌아와 그들은 다시 열심히 책을 읽으며, 날아가는 벌떼처럼 다시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소리 내어 읽는 것은 허용된다. 아니, 다른 어떤 방법은 없는 듯했다. 학생들은 노래하듯이 목소리가 올라가기도 하고, 떨어지기도 하는 두 가지 다른 억양으로 자기 자신에게 흥얼거린다.
그 소리는 책을 읽으면서 얻는 정신적 즐거움과 더불어 그들에게 지속적 인 감각적 만족감을 준다. 그들이 학교에서 시작하는 것을 일생 동안 실천한다. 그것은 배움에 이르는 도우미다. 외딴 시골에 사는 늙은 할머니들에게 비유할 수 있다. 우리 모두는 같은 방식으로 시작한다. 비록 구경꾼이 있으면 침묵하도록 배웠지만, 어떤 사람들은 어른이 된 후에도, 여전히 혼자소리 내면서 읽는다.
이런 낭독은 극동에 퍼졌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일본 여관의 특징적인 소리 중 하나다. 사실, 그것 없이는 어떤 여관도 완전해 보이지 않을 것이다. 독서에 열중하는 한 명 이상이 반드시 집에 머물게 되는데, 이 끈기 있는 학생들은 엎드리거나 돗자리 위에 무릎 꿇고 앉아 하루 종일 웅얼거린다. 짜증나는 청취자는 그 단어가 그들이 읽는 것의 실체도 표현한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조선에서는 이 관습이 해가 지나도록 많이 발달되었지만, 사회 전반에 걸쳐 독서는 덜 일반적이다.
일본은 결코 소음이 많은 나라가 아니지만 조선은 그 보다 덜하다. 안마사의 쇠막대기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