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이야기-결혼 45주년을 맞아, 오사카 여정-어린왕자
이 책 한 번 볼까요?
프랑스 소설가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Le Petit Prince) 바로 그 책입니다.
그러기를 ‘어른을 위한 동화’라고들 했습니다.
코끼리를 통째 잡아먹은 보아뱀을 그리면서 꿈 많은 어린 시절을 보냈던 프랑스 비행사가, 정찰 비행 중 사하라사막에 불시착하게 되고, 살길을 찾아 헤매다가 고단을 이기지 못해 잠시 잠들게 되었는데, 그때 어느 남자아이의 가느다란 목소리에 잠을 깹니다.
하는 말이 이랬습니다.
“양 한 마리 만 그려 줘.”
비행사는 그 아이가 원하는 양 한 마리를 그려주면서 친해지고, 그 과정을 통하여 그 아이가 어느 별나라의 어린왕자로서 여러 별나라를 여행하다가 마지막 여행지인 지구까지 오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어린왕자가 여러 별나라 여행을 하면서 겪는 의미 있는 경험담을 엮은 것이 바로 이 책의 줄거리입니다.
어린왕자가 여행해온 별 중 자그마한 어느 별에서는 바오밥 나무 씨앗들이 너무 많이 있었다는 것이고, 이 바오밥 나무는 너무 크게 자라기 때문에 그대로 자라게 하면 그 나무뿌리가 땅에 깊이 박혀 결국 그 별이 산산조각이 날 수밖에 없어, 깊이 자라기 전에 그 뿌리를 열심히 뽑아버렸다는 이야기, 또 어느 별에서는 가시가 네 개 밖에 없으면서도 호랑이의 공격도 이겨 낼 수 있다고 오만을 부리는 장미 한그루가 있었다고 하는데, 비록 심술궂고 허영심이 많기는 하나 아름다운 그 모습에 반해서 늘 물을 주면서 길러왔다는 것이고, 그렇지만 자꾸 투정을 부려대는 것이 귀찮아져서 혼자 내버려두고 떠나와 버렸다는 이야기 등등, 어린왕자는 그때까지 거쳐 온 여러 별나라에서 숱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렇게 이런저런 경험을 하면서 별 나라 여행을 하던 어린왕자가 마지막 희망을 가지고 일곱 번째로 들른 별이 바로 지구였습니다.
여기에서 어린왕자는 크기가 겨우 손가락만한 뱀 한 마리, 꽃잎이 석 장뿐인 보잘것없는 꽃 한 송이를 만난 끝에, 또 여우 한 마리를 만납니다.
그때는 이미 어린왕자는 낯선 곳에의 여행으로 많이 지쳐 있었습니다.
그렇게 지쳐있는 상황에서 만난 여우 한 마리, 그 만남에서 나누는 둘의 대화가 바로 이 책의 압권입니다.
어린왕자가 먼저 여우에게 말을 걸면서 둘의 대화가 시작됩니다.
“여우야, 여우야, 나와 같이 좀 놀아줘, 난 지금 너무 슬퍼.”
어린왕자는 간절한 목소리로 그리 말합니다.
그러나 여우는 냉정합니다.
이리 답을 합니다.
“난, 너와 함께 놀 수 없어. 왜냐하면 아직 너에게 길들여지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어린왕자는 ‘길들인다.’라는 말이 무슨 뜻 인지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 뜻을 가르쳐 달라고 질문하는 어린왕자에게, 여우는 ‘길들이기란 관계를 맺는 것’이라고 간단하게 정의를 한 뒤, 다시 이렇게 자세하게 설명을 덧붙입니다.
“만약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우리는 서로를 필요로 하게 될 거야. 너는 나에게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존재가 되는 거고, 나도 너에게 세상에서 유일한 존재가 되는 거야. 황금빛 머리카락을 가진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나는 황금빛으로 물든 밀밭만 봐도 너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게 될 거고, 또 밀밭사이로 스쳐가는 바람 소리까지 사랑하게 되겠지. 그러나 길들인 나를 책임져야 해!”
그 대목에서 내 가슴에 뜨거운 감동이 물밀듯했습니다.
길들일 생각만 하고, 책임 질 생각은 전혀 하지 않은 채 살아온 지난 세월이 너무나 후회스러웠기 때문입니다.
어린왕자는 여우의 그 말을 듣고는, 갑자기 자신이 매일 물을 주면서 기르다가 혼자 내버려두고 떠나왔던 어느 별나라의 장미 한 송이를 그리워하기 시작합니다.
결국 비행사에게 이와 같은 고백을 하게 됩니다.
“아저씨... 내 장미꽃 말인데요... 나는 그 꽃에게 책임이 있거든요... 그 꽃은 너무 나약하고 또 너무나도 순진하단 말 이예요. 별것도 아닌 네 개의 가시만으로 이 험한 세상 앞에서 자기 몸을 방어하려 한단 말 이예요”
어린왕자는 그 한마디를 남겨놓고 홀연히 그곳을 떠나 자기가 길러온 장미 한그루가 있는 별나라도 되돌아간다는 이야기입니다.
손가락만한 뱀의 도움을 받아 죽는 모습으로 말입니다.
이 책은 제가 그동안 세 번을 읽었습니다.
첫 번째는 20대 초반의 젊은이였을 때로 제 자신이 철이 제대로 들지 않아서 그 시기의 시대상도 잘 이해하지 못하면서 70년대를 마지막 보내던 때였습니다. 얼마나 철이 없었느냐 하면 당시 ‘모모는 철부지, 모모는 무지개, 모모는 생을 쫒아가는 시계바늘이다...’라는 노랫말로 시작되는 대학생가수 김만준이 부른 포크송 ‘모모’라는 노래의 주인공 ‘모모’가 바로 어린왕자의 주인공인줄 알고 그 노래를 같이 흥얼대고 했었으니까요.
두 번째는 제가 4년 전 연수원에서 교육을 받는 우리 직원들의 교육과정에 들어 있는 ‘선배와의 대화’시간에서 선배로 나가게 되어 그 후배들과의 대화를 위한 준비를 하던 때였습니다. 이때 대화 자료를 구하기 위해 기억 속을 더듬어 이것저것 살펴보던 중 얼핏 오래전 그 책을 볼 때에는 그 의미를 꿰뚫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한 시대를 풍미하면서 지나쳤던 책이라면 나름대로의 의미가 분명히 있을 것인데 이를 깨우치지 못한 부끄러움이 지워지지 않고 있어서 다시 한 번 읽었습니다. 그래서 슬프고 힘들 때에는 옆에 친구가 있어야 하고, 그 친구를 만들려면 길을 들여야 하며, 길을 들이면 그에 대해 책임을 져줘야 하는 것이구나 하는 어찌 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논리를 가슴에 담았습니다.
세 번째는 바로 엊그제였습니다. 저의 둘째 아들 녀석이 최근 무슨 시험 준비를 하면서 매우 힘들어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이 녀석을 시험의 사슬에 얽매이게 하지 않고 좀 현실적 삶을 되찾게 하고 싶어서 볼만한 책을 좀 사가지고 오라고 심부름을 시켰습니다. 그랬더니 이 녀석이 사가지고 온 것들이 ‘폰더씨의 위대한 하루’등 책 몇 권이었는데 그 중에 한권이 바로 어린 왕자였습니다.
그래서 세 번째로 이 책을 읽게 되는데, 이번에는 이 책의 가장 앞쪽 이야기 이면서도 제가 그동안 발견하지 못했던 또 다른 이 책의 메시지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비행사가 어린왕자의 요구대로 양 한 마리를 그려주면서 구멍이 뽕뽕뽕 뚫린 상자를 그려 줍니다. 그러면서 어린 왕자가 원하는 양은 그 상자 속에 있다는 메시지를 줍니다. 이 구절에서 여태 느끼지 못했던 ‘이해’라는 또 다른 삶의 지혜를 다시 깨우치게 되었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또 여러 차례 반복해서 읽어보면 볼수록 새로운 느낌, 그리고 새로운 감동이 배어 나오는 것이 이 책의 깊은 가치임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이쯤 해서 이 책의 감동을 여러분들에게 전해 주는 것도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서 이 글 한편을 쓴 겁니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어린왕자가 자기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죽어지는 비극적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는데, 이것은 작가 생텍쥐페리가 청소년 시절 잃어버린 동생 프랑수아의 죽음을 모티브로 삼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 책, 다시 한 번 읽어보시고 싶은 생각이 드시지 않습니까?//
18년 전으로 거슬러, 그동안 31년 9개월을 몸담았던 검찰을 ‘명예퇴직’이라는 이름으로 떠나기 직전인 2005년 5월쯤에, 검찰내부 통신망인 ‘e-pros’에 게시한 글의 전문이 그렇다.
퇴직을 앞두고 그동안 함께 근무했던 아끼는 후배들을 위한 선물의 의미로 쓴 글이었다.
그 책을 또 꺼내 들었다.
오사카로 향하는 우리들 비행기가 인천공항 활주로를 미끄러지듯 달려 창공에 올랐다 싶을 때였다.
이미 숱하게 읽어, 주요 문장이 있는 곳을 알리는 포스트잇이 군데군데 덕지덕지 붙어 있는 헌 책이었다.
내게 큰 깨우침을 준 그 책을 다시 한 번 읽고, 자칫 흐트러질 수도 있는 내 인생을 가다듬을 작성에서였다.
책장을 펼치는 순간, 이미 그 책속에서 펼쳐질 갖가지 풍경들이, 내 가슴에 한 소쿠리 감동으로 밀려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