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평생을 살면서 참 많이 변하는 것 같다.
어려서는 누가 옆에 자는 것이 싫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누군가와 이불을 같이 덮고 자는게 싫었던 것.
시골집 방이 몇개 안되고 식구는 많고 할 때 내 소원은 혼자 자는 것이었다.
엄마와 아버지 동생들과 함께 자야 하는 그것이 정말 싫었다.
중학교에 들어 가면서 아버지께서 됫박만한 작은 방을 만들어 주셔서
그 때부터 내 방을 썼고 나는 누구와 같이 이불을 못 덮었었다.
친구들과 여행을 가서도 내 몫의 이불이 없으면
겉옷을 덮고 자더라도 남과 이불을 못 덮었다.
물론 오랫만에 집에 가도 엄마와도 같이 자는 것을 못했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남편과 같이 자는 것
그것도 이불을 같이 덮고 자는 것은 괜찮았다.
코를 골아도 괜찮고 내게 다리를 얹어 놓아도 괜찮았다.
남편을 참 좋아하고 잠잘 때 남편이 옆에 있는 것이 좋았다.
하지만 남편은 나만큼은 좋아하지 않았다.
언제부터인가 벽을 보고 자는 남편의 등을 껴안고 자는게
어쩐지 외면당하는 것 같고
또 잠자는 시간 스타일이 맞지를 않아 신경 쓰는 것도
하기 싫어졌다.
나는 저녁만 먹으면 자는 스타일이고 남편은 새벽 1시 두시가 잠자는 시간이다.
나는 잠을 자면서도 남편이 언제 자러 들어 오나
늘 기다렸다.
그렇게 내가 서너번을 깨어 확인을 해야 그 때나 들어 오는 남편
열번은 참다가 기어이 한마디 한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 그렇게 늦게까지 있으면 어떡해요>
어느날 생각해 보니 그것이 남편에게 구속이겠다 싶었다.
잠이 오지 않아서 못 자는 걸 어쩌랴 싶고
만약 남편이 내게 왜그리 일찍 자냐고 잔소리를 한다면
나는 얼마나 부담이겠는가
그래서 남편 옆에서 잠자기 좋아하는 내 스스로 이불을 싸 가지고
이층 방으로 올라 왔다.
그것이 두어달쯤 되었다.
남편을 위해서 한 일이지만 내 스스로에게 더 좋은 일인 것 같다.
잠자다가 여러번 깨지 않아서 좋고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고
아무때나 깨어 불을 켜고 아무것이나 해도 되어 좋았다.
그런데 어느날 보니 눈에 실피줄이 터져서 왼쪽 눈이 빨갛게 되었다.
만나는 사람마다 나에게
<남편 좀 그만 부려 먹어 이제 나이를 생각해야지 .......>
하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남편 얼굴을 제대로 쳐다 보지 않은지
한참 되었다.
그래도 같이 잘적에는 어쩔 수 없이도 쳐다 보았는데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요즘 남편은 고되게 일도 많이 했다.
몇 천평 되는 밭들에 일주일이 멀다 하고 커 가는 풀을 베느라
만날 예초기를 들고 살아야 한다.
특히나 올해는 비가 많이 오니 풀들이 더 잘 자라서
정말 남편은 쉴 새가 없었다.
그렇게 남편을 염려하던 차에 서울의 백암 님에게 연락이 왔다.
양양 속초쪽으로 취재도 할겸 여행을 가시는데 함께 동행하지 않겠느냐 하는 것이었다.
더구나 옛직장 후배께서 방이 두개 있는 숙소도 마련해 주시고
맛있는 회도 대접해 주겠다고 하셨단다.
숙소는 백암님의 옛직장연수원
창에서 바로 바다가 보인다.
몇 달만 보지 않으면 보고픈 바다로의 여행
백암 님과 형님은 원대리 자작나무숲을 취재하고 오시느라 늦고
우리는 꿀이며 감자택배를 보내느라 늦어서 다 저녁 때에야 만났다.
바다는 언제나 그 자리에 그 모습임에도 언제나 그리운 건 어인일인지 모르겠다.
나는 바다를 열일곱살에 처음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고향 같은 느낌이고 바다에서 나오는 것은 무엇이든 다 맛있고 좋아한다.
숙소에서 1.3키로 떨어져 있는 물치회센터까지
세 남자와 나 저물어져 가는 바닷길을 걸었다.
가끔 철 지난 바닷가에 나와 노는 사람들
그리고 해가 저물었음에도 여전히 바닷가를 서성이는 물새들~
백암 님 후배께서 큰형님을 위해 미리 예약해 놓은 식당
앉아서 먹기만 하면 되었다.
지난 6월에 교회식구들과 회를 먹었었음에도 1년은 굶은 사람처럼
회를 폭풍흡입 했다.
특히 대합이라는 조개가 참 맛있었다.
이 일기를 쓰는 시간 사진을 보니 또 가고 싶다.
매운탕도 어찌나 맛있는지 오랫만에 회며 매운탕등 바다음식의 매력에 푹 빠지고......
저녁에 특별히 무엇을 할 것이 아니고
숙소에 들어가 잠이나 잘 것이니 밥도 천천히 먹고
회센터에서 나와 배도 구경하고 등대까지 걸어 가서 밤바다도 구경하였다.
바다에 비친 건물과 가로등 불빛이 찬란하고
파도소리는 철렁였다.
일전에 남편이 즐겨 보는 < 이제 만나러 갑니다>
하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남편은 이 프로그램을 엄청 즐겨 본다.
지난번 미국여행을 20일 하고서 돌아 온 다음에 가장 먼저 한 일이
이 프로그램을 보는 일이었다.
그런데 거기서 황해도에서 넘어 왔다는 남자분이
조개잡이 길잡이노릇을 했던 사람이랜다.
북한은 조개를 잡는 것도 군이 관장을 하고 군 재산이라고 한다.
그래서 낮에는 못 잡고 밤에 몰래 조개를 잡으러 나가는데
남과 북의 경계 부근에서 보면 남쪽은 전체적으로 환한 빛이 찬란하고
북쪽은 깜깜하다고
그래서 남쪽에서 비춰지는 그 불빛으로 조개를 잡기도 한단다.
그런 찬란한 불빛이 있는 바닷가를 걷자니 그 사람의 말이 생각났다.
다시 1.3키로를 걸어서 숙소로 돌아와 나는 그대로 잠이 들었다.
별로 말이 없는 세 남자와 뭐 할일이 있어야지......
역시나 별로 말이 없는 집에 있는 한 남자 아들이
열두시 넘어서 전화를 했다.
비가 엄청 오는데 집에 뭐 치울게 없느냐는 것
새벽 5시가 안되어 역시 엄마가 전화를 하셨다.
밤새 비가 장대처럼 왔는데 별 피해가 없느냐는 안부전화~
그런데 내가 있는 곳은 감탄할만큼은 아니나 나름 멋진 해가 떠올랐다.
오늘의 동해 해 뜨는 시간은 5시 47분이었다.
해 지는 시간은 저녁 7시 물론 동해 기준이다.
나는 근래에서야 동해와 서해 그리고 남해의 해 뜨고 지는 시간이 다름을 알았다.
가장 빨리 해가 뜨는 곳은 동해 정동진이고
가장 늦게 뜨는 곳은 제주도로 동해와 제주도의 일출과 일몰시간 차이는
무려 15분 차이나 나는 것이었는데 그동안 나는 늘 내가 있는 자리의 해 뜨는 시간이
대한민국 다 같은 줄 알고 살았다.
지난 하지부터 일출과 일몰시간 합쳐 하루에 3분정도씩 해는 짧아지고 있다.
여름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어쩐지 해가 짧아 지는 것이 아쉬움 가득이다.
아침에 일어 나서 일기를 쓰느라고 늦게 방에서 나갔더니
세 남자가 하릴없이 바다를 바라 보며 앉아 있었다.
오늘의 일정이 어떻게 되느냐고 여쭈었더니 아무 계획이 없다고 했다.
이런 저런 갈곳을 정해 보았다.
가까운 설악산을 올라가 볼 것인가
아니면 다른 곳으로 갈 것인가
그 때 큰형님께서 모든 것을 나에게 다 맡기라고 하셨다.
그동안 그렇게 해서 손해 본적이 있느냐고 .......
세 남자가 다 좋다고 동의를 했다.
무언가 책임을 맡는다는 것은 참 부담스러운 일이다.
더구나 오늘 날씨가 별로였다.
아침에 일출을 볼 적만도 괜찮더니 하늘은 사흘 굶은 시어머니상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어제 이곳에 도착한 그로부터 딱 24시간
벌써 15 시간이나 쓴 셈이니 남은 아홉시간은 무엇으로 더 보람지게 보낼 것인가
설악산 케이블은 모두들 몇번씩 갔다 온 경험이 있다.
또 비라도 내리면 그야말로 낭패~
온갖 머리를 굴려 보다가 딱 생각나는 두군데를 생각해 냈다.
그것도 세 남자를 위해 더 좋은 일이며 비가 와도 별 상관이 없었다.
첫번째 장소는 속초의 아바이마을
이 마을은 한국전쟁으로 피난을 왔던 이북사람들이 휴전이 되면서
돌아 가지 못하고 마을을 이루고 살게된 곳이다.
대부분이 이북분들이라 억양이 세다.
30년 전에 외할머니네 산장에서 남편과 일을 할적에
이곳에 외할머니의 친구분이 사셨다.
할머니께서 심부름을 시키면 남편과 내가 갯배를 타고 가서
고기를 사 온다던가 가자미식혜 같은 젖갈을 사 오곤 했는데
할머니 친구분 말투가 참 정겨웠다.
<완>
<밥은 먹언?>
<같다 완>
하는 식이었다.
통역을 하자면 <왔니> <밥은 먹었니><같다 왔니> 이런 뜻이다.
다행히 백암님과 형님은 이곳을 가 본적이 없다고 하셨다.
내가 이곳을 첫번째로 잡은 이유는 남편 때문이었다.
30년전 추억도 추억이지만 <이제 만나러 갑니다>
이 프로그램을 보다 보니 북한에서 넘어 온 사람들이 하나 같이
이불을 뒤집어 쓰고 본 남한 드라마가 있었는데 그것이 가을동화였댄다.
그 이야길 듣더니 남편이 다시보기를 해 가지고 처음부터 그 드라마를 거의 다 보았다.
이곳이야기가 나온다고 남편이 나를 불러 싸서 나도 몇번을 보았다.
드라마에 나오는 장소를 가 본다는 것도 요즘 여행트랜드의 한 형태이니
여기로 결정 한 것은 잘 한 일인 것 같다.
예상데로 남편은 주인공 은서네집을 보더니 무척이나 감격했다.
마치 거기서 은서가 튀어 나올 것만 같은가 보았다.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사진을 찍고 ......
흐믓해 하는 남편을 보니 마음이 흡족하다.
좁은 골목길을 지나 아침을 먹으러 갔다.
예전에 남편과 내가 심부름을 다니던 댁은 이제 없어지고 다른 사람이 맡아서 한다.
이북식 순대국으로 아침을 먹었다.
남편도 남편이지만 백암 님과 형님도 좋아 하셨다.
이북식 순대는 속에 찰밥이 들어 간다.
모듬순대를 하나 시켜서 넷이 나누어 먹었다.
본래 오징어순대가 유명한데 요즘은 동해에 오징어가 귀해서
잘 못 한다고 한다.
아들은 오징어 순대를 좋아해서 한 도시락 샀다.
두 남자와 여행을 오니 좀 심심하다.
말없이 바다를 바라 보다가 사진을 찍게 좀 움직여 보시랬더니
백암 님만 겨우 파도와 잠깐 놀았다.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 백사장에 새 발자국이 무성하여
마치 꽃 같기도 하다.
남편이 모래사장에서 구멍을 하나 찾아 냈는데
누가 사는지는 알아 보지 못했다.
오늘은 내가 기자다.
남자 셋을 세워 두고 사진을 찍는다.
~
아바이 마을 하면 갯배가 유명한 곳이다.
예전에 이곳에 오려면 꼭 이 갯배를 탔다.
30년 전에는 뱃삯이 50원 정도 했는데 그것이 편도요금이었다.
지금은 다리가 놓여서 옛맛은 안 나나
거리가 짧게나마 그 명맥은 유지하고 있어서 일부러 갯배를 타 보았다.
남편은 갯배가 없어졌을까 염려를 하더니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을 보고 무척이나 좋아했다.
지금은 별 소용가치가 없으니 관광용으로 100원을 받는데
그도 네명이니 왕복 1,600원
우리는 괜찮은데 큰 형님은 비싸다고 말씀하셨다.
갯배는 이렇게 끌어야 앞으로 나간다.
아침 든든히 먹고 식전여행지를 떠나 차를 달려 간다.
세 남자분들과 두번째로 간 여행지는 요즘 한창 배추출하가 한창인
강릉왕산면과 정선군 임계면 그리고 평창군 대관령면이 걸쳐 있는 안반데기
고냉지 채소단지이다.
백암 님이 작년부터 이런 고냉지 밭을 사진으로 남기기를 원하셨는데
드디어 오늘 기회가 된 것이다.
우리가 속초를 떠나 오는데 비가 후두둑 거리고 내리기 시작해서
어쩌면 차에 앉아서 밖에 구경을 못 할 것이다 했는데
다행히 우리가 비를 따돌리고 먼저 내린 비는 그쳐 있었다.
고냉지 채소 단지와 풍력단지는 참 잘 어울린다.
남편과 나는 몇년전에 행복한사람 님댁과 와 본적이 있지만
백암 님과 형님은 처음 이라서 무척 감탄과 감동하셨다.
70만평이라던가
초록 배추의 물결이 끝이 안보였다.
어떤 곳은 뜯어 간 곳도 있고
어떤 곳은 추석을 겨냥 해 한창 자라고 있는 곳도 있다.
저 드문드문 작물이 있는 곳은 고냉지 감자를 하는 곳이다.
온통 초록색이다.
가끔 사람들이 사는 붉은색 지붕이 보색이라 더 아름답다.
우리말의 색 표현은 가히 세계적이라 한다.
초록, 연초록, 쑥색에 가까운 초록, 노란색에 가까운 초록,
그리고 붉은색에 가까운 초록도 있다.
언덕에 앉아 한참을 그 초록세상을 바라 보았다.
언제나 떠나 올까 말까 망설여질 때는 떠나는게 답이다.
이 모습을 못 보고 살았어도 잘 살았겠지만
이 시간을 통해 더 잘사는 해답을 얻었다.
한참 자라는 배추가 꽃처럼 어여쁘다.
초록의 꽃
이 시간을 통해 남편이 좀 쉴 수 있기를 마음으로 바랬다.
조금씩 일을 줄여 가야 할텐데 -
일 욕심 많은 나와 사느라고 얼마나 힘이 들꼬 안된 마음이 들었다.
내년부터는 기필코 일을 좀 줄여 보아야지 다짐을 한다.
무엇을 예비한다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다.
건강할 때 건강을 지키고 일을 잘 할 수 있을 때
더 나은 다음을 위해 일도 줄이고 ......
초록 자연이 내게 그런 이야기를 속삭여 주었다.
아침에 이곳에 비가 많이 왔다는데
가서 볼 것이 있을까 안 오려고 잠깐 생각을 했다가
비가 오면 차에서 풍경만 보고 오지 한것이 참 잘했다.
그 생각은 이 사진들을 찍으면서 바뀌어 오길 정말 잘했다 하는 것이었다.
비가 내리지 않았다면 이런 멋진 광경은
알지도 찍지도 못했을 것이기에 ......
여기까지 왔는데 카페 매상도 좀 올려 주어야지
나는 그런 주의이다.
돈은 잘 쓰자고 버는 것
카페 한쪽에 안반데기 마을의 지난모습이 사진으로 있었다.
이 높은 곳에서도 나의 어린시절과 똑같은 모습의 사람들이 사진 속에 들어 있다.
한껏 멋을 내고 사진을 찍은 사람들
아이들의 설레였던 소풍날도 있고
멋을 한 껏 부린 청년들도 있었다.
그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까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이들이지만 왜 이렇게 친근하게 느껴지는 걸까
돌아 오는 길에 일부러 마을을 돌아 돌아 왔는데 마을들이 너무나 멋졌다.
가을이 무르 익으면 남편과 다시 오자고 약속을 했다.
정선군 임계면에서 이른 저녁을 먹었다.
마이스터 대학을 같이 다닌 지인의 안사람 되시는 분이 이 식당을 하시는데
값도 싸고 맛있어서 다시 찾았다.
두 형님께서 감탄을 하며 드시는데 나는 생각이 딴데 있었다.
사실 아침부터 밥값을 우리가 내려고 벼르었는데 계속 형님들에게 기회를 빼앗겨서
이번에는 절대로 안 빼앗기리라 하고 기회를 보아 부엌으로 갔는데
벌써 주인되시는 지인이 돈을 냈다고 극구 안 받으시는 것이었다.
에구 에구~
돈 못 써서 환장을 한 사람처럼 돈을 들고 애원을 해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러려니 마치 내게는 없는 친오빠들과 여행을 온 듯 싶고
나는 막내여동생이 된 것 같았다.
내가 마음껏 응석을 부려도 다 받아 줄 것만 같은......
24시간 하루가 참 길다.
첫댓글 속초를 여러번 갔지만 저 아바이마을을 가볼 생각을 못했습니다.![ㅎㅎ](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70.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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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반데기로 사진 찍으러 가는 사람들도 많은가 본데..
안반데기는 첨 들어보네요
여행이 일상인 모습
정겹습니다
비가 와서 반영이 들어간 사진
작품이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