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안은 한 때 유교의 길을 걷다 지금은 완전한 남녀평등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제사는 우리 집의 장녀인 누나가 지내고 있다. 그런데 기제사만 지내고 명절 제사는 지내지 않는다고 하여 올 추석부터 명절 제사는 내가 지내기 시작했다. 이걸 알면 또 말이 많은 것임을 분명히 알기에 모두에게 비밀로 하였다.
내가 아는 가문에 관한 진리는 인류를 위한 진리처럼 간단하고 명확하다. 조상님들이 아름다운 전통으로 넘겨준 것은 절대 없애면 안된다. 힘들어서 할 수 없다면 간소하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 누구나 가문을 구하는 효자이자 위대한 조상이 될 수 있다. 인류를 구하는 성자가 되는 일도 마찬가지라서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사람이면 누구나 될 수 있다.
대추, 밤, 사과, 배, 바나나, 무나물, 콩나물, 가지나물, 새우, 떡, 김, 밥, 국, 매실물(술 대신). 이들이 제사를 위해 준비한 음식의 전부이다. 초나 향불 같은 것은 지구온난화를 막는다고 모두 없애버렸다. 유교 문화에 세뇌된 분들이 보면 망한 놈의 집이라고 화를 낼만 하다. 내가 입는 계량 한복을 보고 전통 한복을 고집하는 분들이 그러하듯이...
그러나 양복을 입는 것보다는 계량 한복이라도 입는게 낫지 않은가? 제사를 없애는 것보다는 간단하게라도 지내는게 낫지 않은가?
아내는 너무 쉬운 제사 준비에 룰루랄라 콧노래를 부르며 조상님에게 정성이 부족한 것 같아 조금 더 하겠다고 설치지만 그건 나중에 서울에서 온 가족이 합친 후의 일이라고 선을 긋는다. 서울 부산을 오르내리는 아내에게 병이 찾아올 그 어떤 어리석은 일도 만들고 싶지 않기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