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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같은 법(法)
-성년후견제도-
저는 퇴근을 하면 늘 병든 아내를 보기 위해 병원을 찾아갑니다. 병실 문턱에 서면 습관처럼 환자 보호자와 간병인들에게 인사말을 건네고 침상 위의 환자들을 천천히 둘러봅니다. 뇌졸중, 치매, 지적장애, 당뇨병, 모아모아병 같은 희귀병을 앓고 있는 5명의 환자들이 쾡 한 눈으로 천장을 바라보며 누워있습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다양한 질병에 걸리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뇌졸중, 치매와 지적장애와 같은 질병은 아직까진 완치시킬 수 없는 질병입니다. 이런 종류의 질병에 걸리면 점차 기억을 잃어가게 되고 종국에는 혼자 힘으로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상황에 다다르게 됩니다.
아내가 있는 병실의 보호자와 간병인들이 제가 법무법인에서 일하고 있음을 알고는 치매환자와 정신장애자 등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다양한 법률상담을 해옵니다. 제가 변호사도 아닌데 난감할 때가 많습니다만 간곡한 부탁을 뿌리칠 수는 없어 귀담아 들어줍니다. 보호자와 간병인들이 제게 상담하여온 사례들을 소개합니다.
사례1. A씨는 요사이 걱정이 많습니다. 어머니가 10여 년 전부터 치매를 앓고 계신데 최근에는 아들도 못 알아보신다고 합니다. A씨 내외가 어머니를 잘 돌보고 있지만 부부 모두 식당에서 같이 일하기 때문에 어머니를 병원에 모셨으며 간병인을 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간병비와 병원비 부담이 너무 무거워 어쩔 수 없이 어머니 명의의 집과 땅을 팔아야 할 상황입니다. 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셔서 어머니 명의로 되어 있지만 어머니의 치매가 심하여 본인명의의 인감증명서를 발급받을 수 없는 딱한 형편에 처해 있습니다. 인감증명을 뗄 수 없으니 부동산을 팔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부동산을 팔 수 있는 방법을 제게 물어왔습니다.
사례2. 간병인 C씨의 오빠는 과거에 중소기업을 경영한 사장이었으나 알코올 및 도박중독에 빠져 간단한 소비활동을 제외한 경제활동이 불가능하고 심한 낭비벽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도박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수십억 원에 상당하는 빌딩을 제3자에게 헐값에 매각하기도 하였습니다. C씨는 오빠의 신상을 보호하고 헐값에 매각한 빌딩을 되찾을 수 있는 길을 꼭 알아봐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사례3. 아내의 옆 병실의 간병인이 지적장애3급의 친척 ㄱ씨의 사례를 조심스럽게 꺼냈습니다. 그 동안 ㄱ씨는 나이가 많은 할아버지와 단 둘이 살면서 매달 장애인 연금과 기초생활보장급여를 받았습니다. 장애가 있기 때문에 일상생활을 겨우 꾸려가는 형편이라 금융업무나 간단한 계약조차도 제대로 할 수 없는 곤란한 상황에 처할 때가 자주 발생했다고 합니다. 한 번은 이웃의 꾐에 빠져 휴대전화 개설에 쓰이는 명의를 빌려주었다가 160여만 원을 납부해야 하는 곤란한 상황에 처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ㄱ씨는 금융 업무를 보거나 어떤 계약을 할 때 타인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사례4. 당뇨병을 앓고 있는 한 어르신은 “지난 해 2월 길에 넘어져 왼쪽 어깨 골절로 한 달 동안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보호자가 없는 어르신은 여러 가지 도움을 받지 못해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현재도 깜빡 깜빡 잊어버리는 건망증이 있는데 혹 치매라도 온다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현금·예금·연금관리,부동산 임대·매각 등이 어려워지는데 어떻게 하나 노심초사하고 있습니다. 이 어르신은 자기를 도와줄 사람이 없겠느냐고 제 손을 놓지 않았습니다.
위 사례에 대해 저는 전문 변호사의 자문을 받아 그 내용을 정리했습니다.
위 4가지 사례는 모두 ‘성년후견제도’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성년후견제도’는 2013년 7월 1일부터 개정 시행된 민법에 금치산자와 한정치산자 제도를 대체하여 새롭게 도입된 제도입니다. 동법에 의하면 질병·장애·노령·그 밖의 사유로 인한 정신적 제약으로 사무를 처리할 능력이 결여된 사람이거나 현재 정신적 제약이 없는 사람이라도 미래를 대비하여 성년후견인으로 선임된 사람이 피 성년후견인(후견을 받을 사람)의 법률행위를 대리할 수 있도록 하는 길을 열어두고 있습니다.
이러한 후견제도에는 피후견인의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성년후견, 한정후견, 특정후견, 임의후견’의 4가지 단계로 세분화되어 있으며 성년·한정·특정후견은 법원의 선고에 의해서 임의후견은 사적인 계약에 의해서 후견인으로 선임됩니다,
성년후견은 ‘사무를 처리할 능력이 지속적으로 결여된 자’를,
한정후견은 ‘사무를 처리할 그 능력이 부족한 자’를,
특정후견은 ‘정신적 제약으로 일시적으로 또는 특정한 사무에 관하여 후견이 필요한 자’를
대상으로 후견인이 선임되며 임의후견은 ‘치매초기 등 본인의 판단능력이 온전할 때 앞으로 치매‧사고 등 미래를 대비해 자신이 직접 원하는 후견인, 감독관 등과 후견계약을 맺어 대리권과 재산관리권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수정된 민법에서는 법정후견인들의 재산남용·비보호방치 등을 예방하기 위하여 후견인들이 후견을 제대로 하는지 감독하기 위하여 감독법원이 관리하거나 후견 감독인을 선임할 수 있도록 하여 피후견인의 보호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저와 상담한 보호자, 간병인, 노인어르신 등의 상담내용에 대한 사례별 도움말은 다음과 같습니다.
사례 1.
어머니의 보호자이자 아들인 A씨의 경우에는 성년후견제도를 이용하면 됩니다. 치매를 앓고 있는 어머니는 ‘사무를 처리할 능력이 지속적으로 결여된 자’이므로 아들의 ‘성년후견‘개시 청구(배우자, 자녀, 4촌 이내의 친족 등도 신청가능)에 의해 가정법원(가정법원이 설치되어 있지 아니한 지역은 지방법원 및 동 지원)은 ‘성년후견’개시의 선고를 할 수 있습니다. 성년후견인에게 포괄적인 법적 대리권과 취소권이 인정됩니다. 그러나 중요한 법률행위는 법원의 허가를 필요로 합니다. 성년후견개시 심판 문(文)에 법원의 허가를 필요로 하는 사항이 기재되어 있는데, 부동산의 처분이나 담보제공행위, 금전을 빌리는 행위 등은 법원의 허가를 필요로 하는 사항으로 포함되어 있는 것이 실무례입니다. 간혹 치매환자인 부모님을 간병하던 아들이나 딸이 법원으로부터 성년후견선고를 받지 아니하고 검은손으로 변해 다른 형제들 모르게 부모님 소유 부동산을 담보로 큰돈을 대출받거나 자기 소유로 등기이전을 함으로써 다른 형제들의 뒤통수를 쳐서 가족전쟁이 시작되는 경우도 있으니 돈 문제 때문에 형제가 남남으로 돌아서는 일은 없기를 바란다고 조언해 드렸습니다.
사례 2
여동생인 c씨가 가정법원에 ‘성년후견’개시 신청을 할 경우 우선적으로 오빠의 인지기능 부족을 소명하여야 하므로 오빠를 병원에 입원(경우에 따라서는 진료기록감정이나 한 번의 통원감정에 의해서도 가능)시켜 오빠가 스스로 재산을 관리할 수 없을 만큼 인지기능이 부족(질병코드가 부여될 정도)하다는 의사의 정신감정을 받아야 합니다. 오빠의 인지기능이 부족하다는 의사의 정신감정이 있으면 오빠는 ‘사무를 처리할 능력이 부족한 자’에 해당되어 법원은 법률적인 문제 등이 수반되는 재산관리(법률행위의 대리권‧동의권 등)는 후견법인이, 신상보호(의료‧개호‧재활‧교육‧주거의 확보 등)는 여동생이 맡아 돌보게 하는 한정후견을 선고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한정후견법인은 오빠를 대신하여 기존재산을 회복하는 소송을 진행할 수 있을 것이나 그 빌딩을 헐값에 매입한 제3자가 선의의 제3자에게 재 매각하였을 때에는 그 빌딩을 다시 찾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문제는 오빠에 대해 한정후견이 개시되면 오빠의 신용카드가 끊기는 등 경제활동을 위한 손발이 꽁꽁 묶이게 되므로 오빠가 자기재산을 다 빼돌린다며 의심하고 악을 쓰는 후폭풍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따라서 한정후견이 개시되면 오빠에게 사회적 제약이 너무 크므로 ‘성년후견’개시 신청을 안 하는 게 좋겠다고 조언해 드렸습니다. 대신에 오빠에게 알코올치료센타에 입소하도록 권유하는 등 본인이 의지를 가지고 현 상황을 극복하여 정상적인 생활인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적극 도와주는 것이 더 바람직해 보인다는 말씀도 아울러 드렸습니다.
사례 3.
ㄱ 씨가 가정법원에 금융 업무를 보거나 계약서류를 작성해야 할 때 도움을 받고 싶다며 ‘성년후견’ 개시신청을 하면 가정법원은 ㄱ 씨는 ‘정신적 제약으로 일시적으로 또는 특정한 사무에 관하여 후견이 필요한 자’에 해당되어 ㄱ 씨에 대한 특정후견심판을 열고 4촌 이내의 가족‧친족, 친구 등을 특정후견인으로 선임할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가정법원이 임의로 정하는 전문후견인(변호사, 법무사, 세무사, 사회복지사 등)을 선임할 수도 있습니다. ㄱ 씨는 특정후견인을 통하여 금융 업무를 보거나 계약서류를 작성할 때에만 보호와 지원을 받을 수 있다고 전해주었습니다.
사례 4.
당뇨병을 앓고 있는 어르신은 본인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을 후견인으로 정해 후견의 범위와 방식을 정하고 어르신과 후견인 사이에 임의후견계약(공증증서)을 체결하고 이를 가정법원에 등기하면, 추후 본인이 치매 등 정신적 제약으로 사무처리 능력이 부족해 졌을 때 미리 정해놓은 방식에 따라 신상보호와 재산관리를 받을 수 있습니다. 문제는 믿을 만한 사람이 있느냐가 관건입니다. 믿을 만한 사람이 없을 경우에는 제3의 사단법인 등을 후견인으로 선정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조언해 드렸습니다.
이상의 4가지 사례에 대해 제 설명을 들은 보호자, 간병인, 노인어르신의 공통적인 추가질문은 “재판 시 비용은 얼마나 드나요?” 그리고 “법정후견인에 대한 보수와 후견사무비용 그리고 후견감독인에 대한 보수가 많이 비싼가요?”였습니다.
재판 시 비용은 일반적인 비용(인지대, 송달비용 등 7-8만 원)과 정신감정 등의 감정비용(입원 시 600만 원, 통원 및 진료기록에 의한 감정 시 30-60만 원)과 변호사 비용입니다. 법원은 절차에 드는 비용을 지출할 자금능력이 없거나 그 비용을 지출하면 생활에 현저한 지장이 있는 사람에 대하여, 그 사람의 신청에 따라 또는 직권으로 절차에 드는 비용 중 일부를 지원할 수 있습니다. 또한 지방자치단체장을 통하여 심판청구(일명 공공후견인제도)를 하면 후견 사무에 발생하는 비용을 지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아울러 대한법률구조 공단은 소득을 기준으로 무료나 저렴한 비용으로 심판 접수 및 재판까지 도움을 드리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특히, 위 사례3의 경우와 같이 발달장애인으로 기초생활보장급여 수급자일 경우에는 보건복지부 산하 한국장애인 개발원의 발달장애인 지원센타에 연락하면 무료(공공후견사업)로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민법상 법정 후견인과 감독인에 대한 보수는 후견인들의 청구에 따라 법원이 피 성년후견인의 재산 상태와 여러 사정을 총체적으로 고려하여 피 성년후견인의 재산 중에서 상당한 액수를 지급할 수 있으며, 성년후견인의 후견사무비용도 피 성년후견인의 재산 중에서 지출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성년후견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변호사와 법무사 등 전문가 후견인들이 보수를 받는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합니다. 법원이 1년 단위로 보수를 후불로 정산하도록 해서 그 사이에 드는 비용을 후견인들이 떠맡게 되고 피후견인 사망 후 재산 상속받은 자녀들이 ‘나 몰라라’하는 경우가 허다하여 성년후견인들이 난감한 처지에 빠지는 사례도 많다고 합니다.
예전에 장애인은 ‘병신’으로 불렸습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 동네에서 치매환자는 ‘보호받아야 할 이웃’이 아니라 ‘미친 늙은이’로 통했습니다. 정신 장애인에 대한 우리사회의 인식이 얼마나 뒤떨어져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입니다. 나이를 먹으면 자연스럽게 인지능력이 떨어지고 기억력이 감퇴합니다. 거동이 불편해져 휠체어도 타게 됩니다. 장애인은 나와 상관없는 타인이나, 우리에게서 동떨어져 있는 집단이 아닙니다. 고령사회에서는 누구나 의사결정능력(정신) 장애인이 될 수 있습니다. 올해로 성년후견제도가 시행된 지 5년을 맞았지만 이용하는 사람들이 1만 5,000여 명 수준으로 많지 않습니다. 성년후견인제도가 무엇인지 조차도 모르는 분들도 허다합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향후 노인인구(2017년 9월 기준 725만 명 중 10%인 치매환자 70만 명)의 증가(2019년 1,799만 명)로 치매환자가 함께 늘어나는 것을 피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치매환자나 정신장애인의 권익보호차원에서 성년후견제도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습니다. 관련통계에 의하면 2018년 상반기에도 성년후견신청건수가 2017년에 비하여 2배 이상 증가하는 속도를 보이고 있으며 임의후견, 특정후견, 성년후견, 한정후견 순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성년후견제도 이용 건수 증가속도에 발맞추어 성년후견에 관한 민법 등이 더욱 보완·발전되어 돌봄이 필요한 치매와 정신장애 노인들에게 따뜻한 어머니 같은 법으로 거듭나야 할 것입니다. 정부는 성년후견제도를 널리 홍보하는 한편 성년후견제도 활성화의 최대 걸림돌인 재판·후견비용문제, 직권후견인제도 도입 문제, 성년후견인 배임 등 권한남용 시 처벌 및 친족후견인의 배임행위에 대한 친족 간의 범죄행위 특례배제(친족상 도례<盜例>) 문제 등 실타래처럼 엉켜있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빠른 시일 내 하나하나 풀어 나가야 합니다. 그렇게 하므로써 노인환자를 간병한다며 그들의 재산을 가로채는 자식·친지·이웃들의 검은 손으로부터 노인환자들을 보호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자신의 자산이나 연금‧사회보장 등을 바탕으로 걱정 없는 노후의 삶을 누리는 풍요로운 사회가 성큼 우리 곁에 다가오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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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사례를 중심으로한 박사장의 성년후견제도에 대한 설명 아주 인상 깊었습니다. 한번에 다 외울수는 없고 따로 저장 해 놓았다가 필요할때 다시 읽어야 겠습니다. 감사 합니다.
용어도 생소한 성년 후견제에 관하여 자상하게 설명해 준, 법률 지식 고맙습니다. 잘 알았습니다.
재산이 있으면 언젠가 문제가 생기게 마련이지요. 위 사례처럼 어려운 법률문제에 봉착하게 되면 난감할 수 밖에 없는 일. 혹시라도 문제가 생기면 '법률구조공단'에 1차적인 도움을 요청하고 대응책을 강구함이 어떨까 싶습니다. 변호사 무료봉사이니 잘 활용할 필요가 있으리라. 박작가님의 자상한 안내로 '성년후견제도'란 것도 알게되었군요. 어려운 분들께 힘이되어주려는 박작가님의 이웃을 사랑하는 깊은 맘에 공감하며 큰 박수를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