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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디오 지브리의 첫 번째 사랑 이야기 ‘코쿠리코 언덕에서’가 특별 포스터를 공개했다.
이 영화는 올해 개봉한 일본 영화 중 흥행 수입 1위를 기록했으며, 이를 감사하기 위해 기획 및 각본을 맡은 미야자키 하야오가 특별 포스터를 제작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번에 공개된 포스터는 매일 아침 돌아가신 아버지를 그리며 깃발을 올리는 열여섯 소녀 ‘우미’가 꿈속에서 아버지와 조우하는 장면을 담고 있다.
과거 선원이었던 ‘우미’의 아버지가 살아생전에 탔음직한 웅장하고 낡은 배가 바다 위 안개 속에 보여 지는 가운데, 이제는 다시 만날 수 없는 부녀가 뜨거운 포옹을 나누는 모습은 애틋함을 자아낸다.
또한 ‘우미’ 아버지의 배 옆으로 ‘슌’이 매일 아침 바다 위에서 ‘우미’의 깃발을 바라보며 화답을 보내는 예인선이 나란히 놓여있어 이들 관계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한다.
이번 포스터의 카피는 "우미, 많이 컸구나"로 돌아가신 아버지를 매일 그리워하는 ‘우미’의 바람과 반듯하고 씩씩하게 자란 딸을 대견해하는 아버지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있어 가슴 뭉클한 감동을 전해준다.
한편, 아날로그 감성을 자극하는 ‘코쿠리코 언덕에서’는 지난 달 29일 국내 개봉했다.
한경닷컴 키즈맘뉴스 손은경 기자 ---------------------------------------------------------------------
[김명환의 씨네칵테일]
‘코쿠리코 언덕…'에 가득한, 오래된 모든 것들의 빈티지한 아름다움
일본 지브리 스튜디오의 애니메이션 ‘코쿠리코 언덕에서(コクリコ坂から)’를 보는 90여분 동안 머리보다 눈과 귀가 호강했습니다. 1963년경 일본 요코하마쯤으로 보이는 항구마을을 배경 삼은 이 작품은 낡고 오래된 것들에 바치는 찬가(讚歌)입니다.
옛 건물로부터 생활용품들에 이르기까지, 사라진 것들의 독특한 조형미와 온기(溫氣)를 보여주는 유화 같은 배경 그림들이 전편에 이어집니다. 그 풍경에 입혀진 옛날 생활 소음과 아릿한 정서의 주제음악들을 들으면서 30여년 전 세상으로 잠시 시간여행을 한 듯한 기분을 체험했습니다. 단순한 복고(復古)나 향수(鄕愁)를 넘어, 잘 모르고 있었던 새로운 아름다움의 발견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영상작품을 스토리 위주로만 파악하는 타성으로 접근하면 이 애니메이션도 ‘소년소녀의 순수한 첫사랑을 그린 만화영화’정도로만 보일지 모릅니다. 물론, 주인공인 16세 소녀 우미는 학교 선배 슌을 알게 되고 가슴 설레는 첫사랑의 감정을 서로 나누기는 합니다. 그러나 그 러브 스토리란 이렇다 할 기복도 없이, 단순 평범하다 못해 밋밋하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둘이 차츰 서로에게 끌리게 되던 어느 날, 남학생 슌은 놀라운 사실을 알게됩니다. 여학생 우미가 간직하고 있는 실종된 아빠의 젊은날 사진과 자기 친아버지의 사진이 똑같은 것 아닙니까. ‘그러면 둘은 친남매일까, 이건 또 무슨 막장 드라마인가’라고 관객이 고개를 갸우뚱하는 것도 잠시입니다. 이 괴로운 상황은 해소가 되고 소년 소녀는 열심히 예쁘게 사랑하기로 합니다. 이야기는 그걸로 끝입니다.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의 아들인 미야자키 고로가 감독을 맡은 이 애니메이션은 순정만화 같은 사랑이야기에 많은 무게를 싣지 않습니다. ‘코쿠리코 언덕에서’가 가장 공들여 표현하고 있는 건 ‘옛날 것들’의 아름다움에 관한 회상과 흘러간 시절에 대한 진한 그리움입니다.
조그만 항구도시의 오래된 목조건물에 차려진 하숙집 풍경부터가 2011년 관객들에겐 시간 여행이겠지요. 영화 첫머리, 외할머니를 도와 하숙집을 꾸려가는 소녀 '우미'가 뒤주의 쌀을 퍼서 씻고, 통성냥으로 불 붙여 무쇠솥에 밥을 지으며 낫토(일본식 청국장)와 에그 프라이 등으로 아침을 차려냅니다. 그 과정을 그려낸 솜씨부터가 일본 작품 답게 꼼꼼합니다. 화면 뿐이 아닙니다. 집안 복도를 걸어갈 때 걸음걸음마다 미묘하게 삐걱이는 마루 널빤지 소리에서, 학교에서 먹 묻힌 롤러로 등사판(謄寫版)을 밀어 전단을 인쇄하는 소리까지 화면과 정확히 일치하도록 소리를 입혔습니다.
우미의 집과 학교 등 모든 공간의 배경에는 오래된 식탁, 의자, 벽시계, 액자 등 낡았지만 정감있는 물건들이 그득합니다. 이 물건들은 물이 잘 빠져 더 멋진 블루진 같은 빈티지(vintage)한 매력을 보여줍니다.‘코쿠리코…’는 그런 느낌들을 유화처럼 풍부한 터치로 재현하고 있습니다.
30여년전 과거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애니메이션에서 우미나 슌 등 주인공들은 10대들이지만 ‘옛날’과 ‘오래된 것’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미는 아침마다 건물의 국기게양대에 옛날 신호방법대로 바다를 향해 안전 항해를 기원하는 깃발을 올립니다. 한국 전쟁 때 물자운반선의 침몰로 실종된 아버지가 혹시 깃발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희망도 그 깃발에 얹었습니다.
우미와 슌이 옛것을 아끼는 마음은 학교의 낡은 건물 철거 반대 운동을 통해 가장 직접적으로 표출됩니다. 파리의 대학 밀집 지역 이름을 본따 ‘카르티에 라탱’(Quartier Latin)으로 이름지어진 이 유서깊은 건물은 갖가지 학생 동아리들이 이곳 저곳에 둥지를 틀고 있습니다. 건물 내부가 커다란 공동(空洞)처럼 뚫려있는 이 먼지투성이 공간은 자유로운 젊은 영혼들의 서식지이기도 합니다.
애니메이션의 배경인 1963년은 도쿄 올림픽 개막을 한해 앞두고 ‘낡은 것들을 다 부수고 일본을 새롭게 단장하자’는 분위기가 일본 사회에 팽배하던 때였습니다. 극중 우미와 슌은 이런 시대의 분위기에 맞서 “오래됐다고 무조건 바꾸는 건, 과거의 우리 기억을 없애는 것”이라며 ‘아름다운 옛 것’을 지키자고 목청을 높입니다.
‘코쿠리코 언덕에서’의 소년 소녀들이 보듬는 과거의 흔적은 오래된 건물들만이 아닙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출생의 비밀을 찾는 과정에서 십수년전 아버지 세대의 선배들이 동료들의 고통을 내 것으로 안으며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지도 깨닫게 됩니다.
옛 물건들의 빈티지한 매력을 부각시킨 그림들과, 복고풍의 스토리에 포근한 음악이 입혀지며 ‘코쿠리코 언덕에서’의 정서는 극대화됩니다. “석양 속에서 뒤돌아 본다면 /당신은 나를 찾고 있을까요 / 산책길에서 흔들리는 나무들은 /작별의 그림자를 드리웁니다 …” 전편에 걸쳐 반복되는 테시마 아오이(手嶌葵)의 주제가 ‘여름이여 안녕, 코쿠리코 언덕에서’는 맑은 느낌이지만, 한참을 듣다보면 가슴이 찡해집니다.
이 작품에는 대지진 등으로 시련을 겪은 오늘의 일본이 스스로를 다시 추스르기 위해 패전 후 어렵던 시절을 그리움으로 돌아보며려는 뜻도 있는 듯합니다. 그 패전이 우리에게 고통을 안겼던 식민지배의 댓가였음을 상기하고 불편한 느낌을 갖는 관객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애니메이션엔 우리로서도 음미하고 즐길만한 의미있는 알맹이들이 있다고 봅니다.
‘코쿠리코 언덕에서’는 순정만화 같은 하이틴 로맨스에 대한 기대를 채워주지는 않는 듯합니다. 그러나, 골동품 벼룩 시장을 찾아가 숯다리미, 축음기, 라디오 등을 구경하는게 재미있다고 느껴본 사람, 디지틀 시대의 변화가 꼭 발전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해본 사람들에겐 권하고 싶은 작품입니다.
김명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