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111곳 천주교 성지순례 나선 83세 도보 여행가
2005년부터 그 동안 3만㎞ 걸어…"4만km 채우고 책 낼 것"
"네, 남상범입니다. 남! 상! 범!"
휴대전화 너머로 들리는 도보여행가 남상범(83) 씨의 우렁찬 목소리에 고막이 아팠다.
귀가 잘 안 들리는 노인들이 답답해 고함치듯 말하는 게 아니라 단전에서 올라오는 원래 목소리였다.
부산시 금정구 오륜대 한국순교자 박물관 앞에서 만난 남씨의 얼굴에 굵은 땀방울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검게 그을린 두 종아리는 씨름선수의 종아리처럼 두껍고 단단했다.
남씨는 '우리 땅을 열 번 걷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2005년부터 매년 한두 차례씩 대한민국을 누비는 '괴짜'다.
이번 도보여행은 목표를 이미 넘어선 13번째다.
그 동안 걸은 거리는 대략 3만㎞가 넘는다.
세례명이 '사도 요한'인 남씨의 목표는 올해 전국의 천주교 성지 111곳을 걸어서 완주하는 것이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2010년에 국내 천주교 성지 111곳을 담은 소책자 '한국 천주교 성지순례'을 펴냈는데 걸어서 모두 순례한 사람은 아직 없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가 남씨에게 발행한 '도보 성지순례 입증서'에 따르면 전체 구간은 모두 3천157㎞다.
남씨는 순례를 시작해 서울과 경기도에 이어 충청도와 전라도를 거쳐 목표의 절반 정도를 달성했다.
"괴테가 파우스트를 집필하기 전에 이탈리아를 도보로 여행하며 마음을 다잡았다고 하더군요.
저는 대한민국을 더 잘 이해하고 모두와 하나가 되려고 걷습니다."
한때 서울대 의대에 다녔던 남씨는 의사의 길이 아닌 사업가의 길을 걸었다.
1992년 건강검진에서 직장 전체에 궤양이 있어 암으로 변할 위험이 크다는 통보를 받자 사업을 정리하고 전국의 산을 누볐다.
2005년 건강검진 결과 궤양이 모두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본격적인 보도여행에 나섰다.
당시 병원에서 측정한 그의 신체나이는 30대 중반이었다.
지난 10년 동안 감기 한 번 걸린 적이 없을 정도로 건강하다.
도보여행은 보통 6개월 정도 계속되는데 하루 40∼50㎞씩 걷는다.
섬은 물론 도로, 산길, 인도, 시골길, 해안선 등 길이 있는 곳이라면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그 동안 전국 곳곳에서 만나 친구가 된 사람이 1천명이 넘는다.
남씨는 단순히 걷는 데 만족하는 게 아니라 모교와 그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연결해주는 징검다리 역할도 하고 있다.
그는 서울의대 교수들의 이름을 동생처럼 편하게 부른다.
도보여행을 마치는 날이면 서울의대에서 환영식도 열어준다.
그의 명함에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홍보대사'라고 적혀 있다.
제대로 된 진료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서울대 병원에서 진료를 받도록 도와준다.
인연이 된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여건이 되면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위한 기금을 쾌척하기도 한다.
남씨는 "건강이 허락되면 앞으로 1∼2년 정도 더 걸어 누적거리 4만㎞를 달성하고 책도 출간할 계획"이라며 "젊은 시절에 동경했던 괴테가 걸었던 이탈리아에서 보도여행을 하고 싶고 북녘 땅도 밟는 게 소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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