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5.20. 이재은 ver.2
<나의 첫 마라톤 10KM>
(1)
작년 추석, 대학동기 여린이와 만났다. 같은 동네 살던 2살 어린 동생이다. 결혼하고 김포로 오게 되면서 자주 못 만나게 되었다. 명절 때 친정에 가면, 시간을 꼭 내어 만나고 오곤 한다.
“언니 나 요즘 달리기 시작했다.”
“진짜? 신기하네 요즘 나도 조금씩 혼자 달리고 있었거든. ”
어느날부터 갑자기 야식을 신나게 먹기 시작했다. 출산 후 정리 안된 뱃살 그 위에 살들이 더 더해지고 있었다. 더 이상 두고볼 수 없었다. 이건 내 배가 아니야. 내 배일리 없어. 뭐라도 해야해. 매일 운동을 해보자. 원래 내 몸으로, 내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몸으로 돌아가자. 두주먹 불끈 쥐고 다짐했다. 결의에 찬 달리기가 시작되었다.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아파트 옆길로 난 산책로를 따라 10분, 20분 조금씩 시간을 늘려가며 뛰고 있던 차였다.
그때 여린이가 내 얼굴 앞으로 더 다가오며 설레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리고 마라톤도 신청했어 내년 3월 서울 마라톤.”
“뭐 마라톤?!! 오~ 재밌겠는데?! 나도 같이 할까?”
그 자리에서 바로 신청을 했다. 신청하고 나니 <나는 모리셔스의 바닷가를 달린다> (안정은) 책이 생각났다. 제목부터 설레게 하는 이 책을 읽고 가슴이 마구 뛰던 때가 있었다. 저자의 건강한 웃음이 듬뿍 담긴 책 표지에 반했고, 안정은이라는 사람이 멋져 보였다. 모리셔스를 가야할 곳 리스트에 적어두기도 했다. 그래. 까맣게 잊고 있었다. 러너 안정은을, 그녀의 활력있는 웃음을.
(4) 올해 1월 어느 추운 날, 서울 마라톤 그룹 배정을 위한 기록증을 제출하라는 문자가 왔다.
‘이게 뭐지? 아 맞다. 마라톤! 두달 겨우 남았잖아?!’
매일 같이 시간을 늘려가면서 뛰겠다던, 그 당찬 포부와 굳은 결심이 무색하게, 어느새 달리기를 잊고 있었다. 달리기 감각이 그 사이 많이 사라져있었기 때문에, 할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그래도 한번 맘 먹은 건데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5분씩 10분씩 다시 시간을 내었다. 체력도 슬금슬금 떨어졌는지 5분을 내리 달리는 것조차 힘들었다., 일단은 빨리 걷기 정도로 연습을 시작했다. 걷다 뛰다 다시 또 걷다 뛰다가 반복됐다.
(5) 2월 말에 마라톤 그룹 배정 문자를 받았다. 마라톤을 뛰는 날이 다가오고 있다는 게 실감이 났다. 신청을 내 손으로 하긴 했지만, 막연하고 멀게만 느껴졌는데 점점 코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계획대로 라면, 이 때 쯤엔 이미 10키로를 몇 번은 뛴 상태여야 한다. 그런데 그때까지도 제대로 1키로도 뛰어보지 않았다. 하프마라톤도 아니고, 다들 어렵지 않다고 말하는 10키로 구간이긴 하지만, 첫 마라톤인데 괜찮을까? 완주 정도는 할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점점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걱정만 하고 있을수는 없었다. 집 앞 산책로를 왔다갔다하며, 할수 있는한 조금씩 더 달려보았다. 쉬지 않고 달리는 건 쉽지 않았다. 조금 뛰다 걷고, 계속 걷다 겨우 뛰고를 반복했다. 그렇게 조금씩 뛰는 거리를 늘려갔다.
(6) 마라톤 10일전, 대회 참가용 번호표, 기념티셔츠가 집으로 왔다. 티셔츠를 입어보니 예뻤다. 벌써 마라톤장에 서 있는 듯 벅찼다. 재밌겠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엄청난 일을 저지른건 아닐까? 설레는 마음과, 여전히 걱정되는 마음이 함께였다. 안 뛴다고 해도 뭐라할 사람은 없지만, 꼭 해보고 싶었던 마라톤이고, 꼭 완주하고 싶었다. 어떻
게든 되겠지. 10키로는 할수 있을거야.
(7) 2024년 3월 17일 오전 8시, 그날이 왔다. 10키로 참가자는 2만명이라고 했다. 출발선이 어딘지도 모른 채, 몸에 번호표를 달고 있는 사람들이 향하는 곳으로 따라갔다. 가다보니 사람들이 어느 자리에 멈춰있었다, 아 여기가 출발선인가 보다 하며 대기하고 있었다. 시작전에 몸을 못 풀었다며 여린이는 다리를 위로차며 준비운동을 했다. 아무생각없던 나도 덩달아 내 자리에서 어깨도 돌리고, 발목을 돌리며 몸을 풀었다. 몇일 전 문자로 ABCD 네 개의 그룹으로 나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ABC는 기록이 있는 사람들, D는 기록이 없는 사람들로 배정받는다고 했다. 나는 D그룹을 배정을 받았었다, 8시가 되고, A그룹부터 출발하기 시작했다. 출발을 했는데도, 우리줄은 여전히 움직임이 없었다. D그룹은 언제 출발하나 속이 타고 있을때쯤, 사람들이 앞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참가자가 많았나보다. 내가 속한 D 그룹이 출발할건 8시 15분이 되어서부터였다.
“잘 다녀오세요~.” 유쾌하고 경쾌한 목소리로, 우리의 출발을 응원하는 사회자에게 손을 흔들었다. 내 번호표에 적힌 이름을 보고 “ 이재은 님 파이팅 ” 외쳐주었다. 그 소리를 들으며 신나게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내 몸이 스타트라인을 통과했다. 생애 첫 마라톤이 시작된거다..
“언니 어떡해. 나 떨린다.”
“나는 벌써부터 힘들라고 해.”
시작한지 1분도 채 되지 않았는데, 벌써 다리에 무리가 오는 것 같았다. 이제 시작인데, 그와 동시에 갑자기 바지가 막 내려가는 걸 느꼈다. 아니다. 바지가 아니었다. 속옷이었다. 바지 주머니에 핸드폰을 넣고 달리기 시작했는데, 핸드폰의 무게로 바지와 속옷이 같이 점점 내려가고 있었다. 핸드폰을 주머니에서 꺼내 손에 잡았다. 잠시 멈춰서서 바지를 치켜올렸다. 다시 달리기 시작하는데, 옆에 여린이가 없었다. 어느새 저만치 멀어져가고 있었다. 여린이도 갑자기 내가 안보여서 당황했는지 두리번 거리며 나를 찾고 있었다. 이름을 부르기에는 거리가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그렇게 혼자만의 레이스가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가볍게 뛰었다. 그러다 이내 곧 숨이 가빠져왔다. 1km도 가지 않아, 걷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쉬지 않고 뛰는게 무리였다. 내 몸이 힘들어하고 있는게 느껴졌다. 걷다보니 내 뒤에서 출발하던 사람들이 나를 지나쳐 갔다. 웨건에 아이둘을 태우고, 웨건을 밀며 달리는 아빠가 보였다. 50대 되는 할아버지의 모습도 보였다.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도 앞에서 뛰고 있었다. 뛰지도 못하고 걷는 내 모습이 민망하기도 했지만, 내 뒤에 나처럼 걷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아무래도 10km를 완주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이왕 시작한 거 즐기며 가자. 단숨에 그렇게 마음 먹어버렸다, 처음 해보는 거니까 잘하지 않아도 되고, 그저 하나의 좋은 경험으로 생각하면 되는거니까.
10km 마라톤을 준비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마라톤 영상을 여러개 봤다. 이번 마라톤 코스를 미리 설명해주는 영상도 봤는데, 거기에서 10km 는 마라톤으로도 인정해주지 않았다. 그냥 여기에서 여기 왔다갔다 하시면 된다고, 손가락으로 까딱 표현할 정도로 금방 왔다갔다 할수 있는 짧은 거리처럼 말했다. 42.195km 풀 마라톤 하는 사람에게는 별일도 아니었을거다. 달려보니 10km는 꽤 길었다. 분명 꽤 달렸다고 생각했는데, 5km 반환점이 이렇게도 안나오나. 대체 언제쯤 반환점이 나오는건지, 뛰고,또 뛰고, 걷고 또 걸었다. 저 앞에서 웅성웅성 소리가 들렸다. 파이팅화이팅. 반환점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스텝분들의 응원소리였다. 터벅터벅 걷는내게 오아시스가 나타난 기분이었다. 물을 몇모금 마셨다. 갈증해소보다도 5km 반만큼 왔다는 기쁨이 더 컸다. 동시에, 아. 아직 반이 더 남았지. 갈수있을까. 5km 마라톤부터 할걸. 10km부터 시작한건 잘못이었다. 왜그랬을까. 여린이는 지금 어디있을까. 8km까지는 갔을 것 같은데.
(8) 반환점을 돌며 생각했다. 나는 왜 굳이 이렇게 힘든 마라톤을 하고 있는건가. 왜 아침에 잠실까지 와서 제대로 달리지도 못하고 걸어가면서 숨차하면서 이러고 있는가.
(9) 안양에서 태어나 35년을 한곳에서만 살다가, 결혼을 하면서 김포로 왔다. 모든 게 낯설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환경이 바뀌니, 혼란스러웠다. 결혼하고 난생 처음 밥을 해봤다. 전기밥솥이 아니었으면 물양을 어디까지 하는지도 몰랐을 것이다. 어떤 버튼을 눌러야 하는지 몰라서 엄마에게 전화까지 했다. 밥 하는 단순한 것부터도 할 수 없다니, 어쩜 이렇게 다 못할 수가 있을까. 내가 이렇게 쓸모없는 인간이었나. 완전바보. 무능력한 내 자신을 알게되니, 슬펐다. 발가벗겨진 기분이었다. 난 지금까지 뭘 하면서 산 건가
(10) 자책하고 자괴감도 들었지만, 즉각적으로 나아지지 않았다. 잘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만사가 다 귀찮았고 하기 싫었다. 집안일 하고 싶지 않았다. 밥 짓는 것 뿐 아니었다. 청소, 빨래, 반찬만들기 등등 집안일은 끝이 없었다. 청소라는 두글자 단어 속에, 각 방, 주방등 쓸고 닦고 정리하기가 다 포함되어 있었다. 빨래도, 세탁기에서 꺼내기, 널기, 개기, 옷장에 넣어두기까지였다. 혼자 살 때는 엄마가 다 해주셨던 일들이었다. 감사함도 모르고 당연하게 생각한 나, 철딱서니 없는 딸이었다. 매일 한끼 식탁을 차리는 일이 이렇게 손이 많이 가고 시간이 걸리는 일이었나, 엄마는 어떻게 그렇게 빨리하셨을까. 신혼이었을때는 귀찮았고, 아이를 낳고서는 정신이 없어서, 부랴부랴 정신없이 한 기억뿐이다. 왜 여자로 태어났을까. 원망하고, 투정하고, 불평했다. 그게 어느새 10년이다.
(11) 나는 공부를 잘했다. 대학때부터 국영수 전과목을 과외하면서 학생들 가르치는 일이 어렵지 않았다. 춤도 잘 췄다. 댄스동아리를 하다가, 뮤지컬 극단 안무감독을 하기도 했다. 뮤지컬을 좋아했고, 전문 아카데미를 잠깐 다녔다. 뮤지컬 배우도 할수 있었다. 새로운 곳에 찾아가도 적응을 잘 했다. 여러 곳에서 친구를 사귀는 일이 즐거웠다. 처음 본 사람들과도 유머러스한 이야기를 주도하며 잘 어울렸다. 원하는 학과에 가지 못했지만, 다시 공부를 해서 입할할 정도로 열정적이었다. 오디션에 떨어졌을때도 낙담하지 않고, 다음에 더 좋은 기회가 오려나보다 생각하며 긍정적으로 헤쳐나갔다. 난 이런 나를 좋아했다. 결혼, 육아는 내가 무능력한 것을 증명하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싫었다.
(12) 하지만 정말로 멋진 아내, 괜찮은 엄마가 되고 싶었다. 요리도 뚝딱 만들고, 집도 항상 정돈되어 있고 말끔히 뽀득뽀득 깨끗한 상태로 정리하고, 남편을 돕는 현명한 아내로 항상 웃음 장착하고 있는 그런 모습을 꿈꿨다. 욕심이 많았다. 다하면 좋겠지만, 다할수 없는 것 같다. 8살 7살 연년생 아들둘을 키우는 엄마는, 정신없이 재료를 섞어 간편 김밥을 하고, 널부러진 장난감을 매번 잘 정리할수 없고, 설거지는 쌓여져 있을때가 더 많고, 복식호흡으로 아이들에게 외칠때가 많다. 그만~~~~
(13) 첫째가 8살이 되고 초등학교 1학년을 준비하면서 내가 더 가슴이 설레고 벅찼다. 아이의 새로운 시작을 보며, 나도 다시 한번 제대로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마라톤을 시작으로 새로운 맘을 가지고 싶었다.
(14) 헉헉 가뿐 숨을 내쉬며 겨우 결승선에 들어왔다. 1시간 38분 46초. 미리 도착해 있던 친구와 끌어안았다. 완주를 해냈다며 서로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숨을 고르며 완주 메달을 받았다. 메달을 들고 사진 한장, 마라톤 글자가 써져있는 큰 현수막 앞에서 사진 한 장 , 지나가는 사람에게 부탁해서 둘이 같이 사진 한 장. 꼭 해내야 하는 숙제 같던 내 첫 마라톤은 이렇게 끝이 났다. 완주 메달에는 Finisher ‘완주자’라는 단어가 적혀있었다.
(15) 10km를 달리는 동안, 다시 한번 10km를 뛰어야겠다 생각했다. 처음이니까 서툰게 당연한건데, 다음에 두 번째로 하면 더 잘할수 있을 것 같다. 바지는 달라붙는 바지로 입어야겠고, 핸드폰을 담을 미니 백을 차고 뛰던가, 상의에 주머니가 넉넉한 옷을 입어야겠다는 것을 배웠다. 이번에 한번 해봤으니까. 한번도 안 달려봤다면 몰랐을 것들이다.
(16) 결혼하고 9년이 지났고, 엄마가 된지도 7년이 지났는데, 여전히 내 스스로가 맘에 들지 않았다. 처음이니까 서툰게 당연한건데, 서툰 나를 스스로 보듬어주지못했다. 물도 못맞추던 전기밥솥은 버린지 오래다. 압력밥솥으로 밥은 10분도 채 안걸린다. 물양도 눈대중으로 살짝 기울여서 물을 어느정도 따라버리고, 중간선을 맞추면 된다. 금세 맛있는 밥이 완성된다. 된장찌개도 호박, 두부, 버섯으로 10분이면 완성이다. 멸치볶음도 초간단으로 만들 수 있다.
(17) 예전의 내가 좋아서 그립고, 지금의 나는 못난이 같아서 돌아가고 싶었다. 돌아가고 싶은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를 생각해보니, 지금의 내가 더 좋다. 밥도 할줄 몰랐고, 방청소도 안했고, 엄마의 감사함도 몰랐던 때로 돌아갈순 없다.
(18) 오늘 집안일도, 어제보다는 조금 수월해질거다. 다음 10km 마라톤도 조금더 즐기면서 할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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