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된 세상에 참된 것
시편 12:1~8
그 동안 여러분께서 기도하여 주셔서 이번 미국 집회를 무사히 끝마치고 돌아왔습니다. 그저 감사합니다. 이번에는 뉴욕과 로스앤젤레스를 다녀왔습니다. 정말 감사한 것은 우리 한국 동포들이 어디 가나 신앙 생활을 열심히 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어려움도 많지마는 그런 가운데서도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 애쓰는 것을 볼 때 감격스러움을 금할 길 없었습니다.
아마 여러분께서도 소식을 통해 들으셨으리라 믿습니다마는 뉴욕에 있는 메디슨 스퀘어 가든은 실내 집회 장소로서는 세계에서 제일 큰 곳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소수 민족으로 있는 한국 사람이 며칠씩이나 빌려서 모임을 가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합니다. 뉴욕에 있는 온 교회, 온 성도, 온 교민이 협력을 잘 해서 일해 나가는 것을 보면서 우리 민족이 위대하고 희망이 있는 민족이라는 긍지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오늘 읽은 시편은 세상이 너무 험해지고 어려워질 때에 통탄하는 시입니다. 혹시 이 시편은 사울 정권의 말로에 기록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 당시에 불미스러운 일이 많았던 사실을 이 시편을 읽으면서 느끼게 됩니다. 이것은 비록 그 당시 뿐만 아니라 어느 시대에도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유다서에 이런 말씀을 읽을 수 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저희와 같은 모양으로 간음을 행하며 다른 색을 따라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 이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그 알지 못하는 것을 훼방하는도다 또 저희는 이성 없는 짐승같이 본능으로 아는 그것으로 멸망하느니라 화 있을진저 이 사람들이여, 가인의 길에 행하였으며 삯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갔으며 고라의 패역을 좇아 멸망을 받았도다 저희는 기탄 없이 너희와 함께 먹으니 너의 애찬의 암초요 자기 몸만 기르는 목자요 바람에 불려가는 물 없는 구름이요 죽고 또 죽어 뿌리까지 뽑힌 열매 없는 가을 나무요 자기의 수치의 거품을 뽑는 바다의 거친 물결이요 영원히 예비된 캄캄한 흑암에 돌아갈 유리하는 별들이라‧‧‧‧‧‧ 이 사람들은 원망하는 자며 불만을 토하는 자며 그 정욕대로 행하는 자라 그 입으로 자랑하는 말을 내며 이를 위하여 아첨하느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의 미리 한 말을 기억하라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기를 마지막 때에 자기의 경건치 않은 정욕대로 행하며 기롱하는 자들이 있으리라 하였나니 이 사람들은 당을 짓는 자며 육에 속한 자며 성령은 없는 자니라” 하였습니다.
이것은 타락한 시대상을 말하고 있습니다. 타락한 시대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한 마디로 말해서 거짓말하는 시대입니다.
시인은 말합니다. 본문 1절에 “여호와여, 도우소서 경건한 자가 끊어지며 충실한 자가 인생 중에 없어지도소이다”라고 했습니다.
경건한 자는 하나님의 총애를 받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충실한 자는 사람됨이 믿을 만한 사람을 의미합니다. 악한 시대에는, 타락한 시대에는, 경건한 사람이 절박함을 느낍니다. 타락한 시대는 거짓의 세대입니다. 서로가 속이고 속는 세상입니다. 어디를 가나 가짜입니다. 물건도 가짜, 사람도 가짜입니다. 그러므로 믿을 수 없는 세대입니다. 불신의 세대입니다. 따라서 불안한 세대입니다.
세상에 가장 불행한 것은 서로가 믿지 못하는 일입니다. 남편이 아내를 믿지 못하고, 아내가 남편을 믿지 못하고, 부모가 자녀를 믿지 못하고, 자녀가 부모를 믿지 못하고, 형이 동생을 믿지 못하고, 동생이 형을 믿지 못하고, 사장이 사원을 믿지 못하고, 사원이 사장을 믿지 못하고, 상관이 부하를 믿지 못하고, 부하가 상관을 믿지 못하고, 정부가 국민을 믿지 못하고, 국민이 정부를 믿지 못한다면 이것은 가장 큰 비극입니다.
여러분, 이런 비극이 어디서 왔는지 아십니까? 마귀에게서 온 것입니다. 마귀가 인간을 속인 데에서부터 인간이 타락하고 그 수법을 사람들이 배우게 된 것입니다. 거짓은 언제나 범죄의 길잡이입니다. 악을 행하는 사람도 모두 선을 행한다고 하면서 거짓말하면서 악을 행합니다. 뿐만 아니라 타락한 시대의 사람들은 진리를 듣기 싫어합니다. 진리를 말하기 싫어합니다.
디모데후서 4장에 보면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했습니다.
본문 2절을 보세요. “저희가 이웃에게 각기 거짓을 말함이여 아첨하는 입술과 두 마음으로 말하는도다” 하였습니다.
타락한 시대의 특징 중에 또 다른 하나는 아첨하는 사람이 판을 칩니다. ‘아첨’이란 말의 뜻은 ‘미끄럽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아무런 근거 없이 쉽게 거짓말을 꾸미는 것이 아첨입니다. 실행은 따르지 아니하고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는 것, 그리고 말이 말랑거리는 것, 그러니까 듣기만 좋게 하는 것을 아첨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두 마음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표리가 부동한 생활입니다. 구밀복검이란 말도 있습니다. 입에는 꿀처럼 달게 말을 하지만 뱃속에는 칼을 품고 있다는 말입니다.
스펄전은 “우리가 아첨하고 거짓말하는 사람의 틈에서 사는 것보다는 차라리 사자들 가운데서 사는 것이 낫다”고 말했습니다.
잠언 6장에 보면 “여호와의 미워하시는 것 곧 그 마음에 싫어하시는 것이 육칠 가지니 곧 교만한 눈과 거짓된 혀와 무리한 자의 피를 흘리는 손과 악한 계교를 꾀하는 마음과 빨리 악으로 달려가는 발과 거짓을 말하는 망령된 증인과 및 형제 사이를 이간하는 자니라”(잠 6:16-19) 하였습니다.
어떤 주석가는 이 시편은 말세에 대한 비탄이라고 했습니다. 사실 말세는 거짓말과 아첨의 말이 그 모든 행사의 방법입니다. 심지어 교회에까지 파고듭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 9절 이하의 말씀을 보세요.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을 얻지 못함이니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유혹을 저의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 3절에도 “여호와께서 모든 아첨하는 입술과 자랑하는 혀로 끊으시리니” 했습니다. 거짓말하는 자를 언제까지 그대로 놔 둘 것이 아닙니다. 아첨하는 자의 말을 그냥 내버려 둘 것이 아닙니다. 그 혀를 끊어 버려 거짓말하지 못하게, 아첨하지 못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시대가 어두워지고 절망적인 상황에 이른다 해도 성도는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성도는 머리를 들고 가까워 오는 소망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큰 어두움은 밝은 서광이 비쳐 올 전조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아첨하는 혀를 끊으십니다. 자랑하는 혀를 끊으십니다. 다시 말해서 거짓말이나 아첨을 삶의 수단으로 삼지 못하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배로 하나님을 삼고 부끄러움으로 영광을 삼는 것이 없도록 하실 것입니다.
4절에 “저희가 말하기를 우리의 혀로 이길지라 우리 입술은 우리 것이니 주관할 자 누구리요 함이로다” 하였습니다. 이것은 타락한 사람들이 하는 말입니다. 이것 역시 거짓된 생각입니다. 그들은 실행은 없이 힘으로 모략을 꾸며서 이긴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이길 수 없습니다. 사필귀정입니다. 그렇게 얻은 승리는 승리가 아닙니다. 예수님을 중상 모략한 사람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습니다. 저희가 승리한 것 같았습니다. 악이 선을 이기고, 어두움이 빛을 이기고, 거짓이 진리를 이긴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오래갔습니까? 삼일 만에 예수님이 사망의 권세, 어두움의 권세, 거짓의 권세를 이기시고 다시 사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참된 승리는 언제나 진리 편에 있습니다.
롱펠로우가 한 말은 옳습니다. “하나님의 연자맷돌은 비록 천천히 돌아가지만 매우 부드럽게 갑니다” 했습니다. 가만히 보면 악이 우세하고 거짓이 판을 치는 것 같은 인상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두고 보세요. 결국은 진리가 승리합니다. 선이 이깁니다. “우리의 입술은 우리 것이니 우리를 누가 주관하리오” 이것은 인본주의적인 사고 방식입니다. 우리의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사실 모두가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주어진 것을 가지고 바로 사용해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마태복음 12장 28절에 예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판을 받으리니” 하였습니다. 심판을 기억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이렇게 모두가 거짓된 세대에서 누구를 믿을까요?
세상에 믿을 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사람을 믿지 않아야 합니다.
요한복음 2장 24-25절을 같이 읽어보십시다. “예수는 그 몸을 저희에게 의탁치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또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시므로 사람에 대하여 아무의 증거도 받으실 필요가 없음이니라” 했습니다.
여러분, 사람을 믿고, 사람에게 의지하다가 실망할 일이 많습니다. 사람을 의지하지 말아야 합니다. 의지할 이는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믿을 것은 하나님의 말씀밖에는 없습니다.
5-6절을 보십시다. “여호와의 말씀에 가련한 자의 눌림과 궁핍한 자의 탄식을 인하여 내가 이제 일어나 저를 그 원하는 안전지대에 두리라 하시도다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함이여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한 은 같도다” 했습니다.
여기 가련한 자, 궁핍한 자는 물론 성도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 하면 여러 가지 어려움을 당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이것 보세요. 하나님은 언제까지나 그의 자녀들이 억울하게 어려움 당하는 것을 그냥 버려 두시지 아니하십니다.
“가련한 자의 눌림과 궁핍한 자의 탄식을 인하여 내가 이제 일어나 저를 그 원하는 안전지대에 두리라” 하셨습니다. 지금까지 참으시다가 이제 일어나 구원의 역사를 하십니다.
출애굽기 3장에 보면 모세를 불러 말씀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고 그들이 그 간역자로 인하여 부르짖음을 듣고 그 우고를 알고 내가 내려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이르려 하노라” 했습니다.
사실 하나님은 말씀하신 그대로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애굽 왕 바로의 속박에서 건져내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신실합니다. 아무리 세상이 악하고 거짓되다 하여도 하나님의 신실하신 말씀을 믿는 동안 실망하지 아니합니다. 왜요? 하나님의 말씀은 순결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말씀이 다 같은 성격은 아닙니다. 어떤 말씀은 교훈적이요, 어떤 말씀은 위로의 말씀이요, 어떤 말씀은 책망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들 모두는 순결합니다. 예수님 말씀하신 대로 “너희의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요 14:24) 했습니다. 주님은 그 자신을 하나님의 말씀하신 다른 것과 같이 생각하고 계십니다.
요한복음 12장 49절에는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나의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 하였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은 선지자들을 통해서 주셨든지, 예수님 자신을 통해 말씀하셨든지, 사도들을 통해서 하셨든지, 성령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믿고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러므로 그 표현은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마는 질적인 면에 있어서는 똑같습니다.
더구나 하나님의 말씀은 순결합니다. 흙 도가니에 일곱 번이나 단련하여 모든 불순물이 제거된 은과 같이 순결합니다. 다윗이 말한 대로 “주의 말씀은 진리로소이다”한 그대로입니다. 그러므로 이 책에는 악이 섞이지 아니했습니다. 주의 계명들은 정의로우며 올바릅니다. 과오가 없는 순결한 책입니다. 물론 그 말씀을 번역하는 데 있어서 잘못이 있을는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이 말씀 자체에는 아무런 과오가 있을 수 없음을 믿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함이여” 하나님의 말씀에는 어떤 결점도 없습니다. 거짓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그 약속이 틀림이 없습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약속한 것은 하나도 틀림이 없습니다. “그가 말씀하셨으니 그가 행하지 아니하시겠는가?” 주님의 약속을 믿으십시오. 그 약속을 믿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는 평생을 신앙생활 하신 분이 여러분 계십니다. 저는 여러분의 간증을 듣고 싶습니다. 여러분이 평생을 예수 믿고 사시는 동안에 예수님의 약속이 틀린 적이 있었습니까? 그가 약속하신 대로 지키시지 않으신 적이 있으십니까? 절대로 없습니다. 저도 어릴 때부터 신앙 생활을 했는데 아직까지는 하나님의 약속이 잘못된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앞으로도 없을 것을 믿습니다. 예를 들어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이 있습니다. 약속하신 대로 다 이루셨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귀중합니까? 정제된 은과 금과 같은 것입니다. 금이나 은은 귀중한 금속입니다. 은행에서 발행하는 수표나 지폐와 같지 아니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의 상징적인 것이 아니라 바로 귀중한 그 자체인 것입니다.
전에 한국 동란 때입니다. 북한에서 남한으로 피난해 오는데 집에 있던 금붙이들을 가지고 내려오다가 쌀이 떨어져 밥 해 먹을 길이 없어 금가락지 하나 주고 쌀 한 말 바꿔 밥 지어 먹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북한에서 냉면 한 그릇에 30원했는데 백 원짜리 지폐를 한 보따리 가지고 나왔어도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금은 세계 어디서나 통하는 화폐의 기준입니다.
우리가 가정에서 은을 여러 가지 도구에 사용하는 것처럼 우리 일상 생활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하십시다. 은이 상인의 통화인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도 하늘나라에서나 이 땅에서 통용되는 화폐와 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우리는 그와 교통할 수 있으며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도 이 약속과 더불어 우리와 상통하고 있는 것입니다. 더구나 이 말씀이 얼마나 소중합니까?
독일의 어느 여성 신도는 성경을 읽어 내려가다가 특별히 소중하다고 생각되는 구절마다 줄을 긋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아마 여러분 가운데도 그렇게 하시는 분이 많으시리라고 믿습니다. 그런데 그 여성 신도는 말년에 가서는 이 습관을 버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하는 말이 “나는 이제 성경을 읽어 내려가다가 성경 말씀에 줄을 긋는 습관을 버렸습니다. 그럴 필요가 없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성경 말씀 전체가 제게 있어서는 아주 소중한 것이 되었기 때문입니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옳은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순결하고 귀중할 뿐 아니라 영원합니다. 흙 도가니에 단련한 은 같아서 변하지 아니합니다. 역사를 통해서 마귀는 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없애버리려고 문자 그대로 불같은 시험을 하여 왔습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하나님의 말씀의 진가가 드러났습니다. 성경은 변함없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이사야 40:8) 하신 대로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영원한 축복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세상이 거짓되면 거짓될수록 진리이신 하나님과 그의 말씀을 믿으십시다. 이 세상이 악하면 악할수록 선하신 하나님을 의지하십시다. 이 세상이 불순하면 할수록 순결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십시다.
루터는 “하나님께 참된 사람은 사람에게도 참되다”고 하였습니다.칼뱅은 “하나님은 그 행위를 나타내실 때 반드시 말씀에 의해서 나타내신다”고 하였습니다.
“다윗의 시대에도 이처럼 진실된 사람을 찾아보기가 어려웠는데 믿음과 사랑을 찾아보기 힘든 말세가 가까워오는 이 때 어떻게 믿는 사람을 찾아보기가 쉽겠습니까?”(눅 12:32) 그러므로 마지막 때 우리는 마음과 혀를 지켜야 하겠습니다.
혀로는 진리를 말하고 마음에는 거짓이 없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지 못하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악한 마음의 더러운 열매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권세 아래서 겸손하여 복종하지 않으면 뿌리째 뽑히는 심판을 면할 수 없을 것입니다.
거짓 교리는 금도 아니요 은도 아니며 거품과 같은 것입니다. 주님의 복음을 왜곡하는 거짓에 빠지지 맙시다. “먼저 그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복음이 영혼을 위한 것보다 육신을 위한 것처럼 해석되고 있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것은 아주 잘못된 해석입니다. 속지 말아야 합니다.
본문 7절을 보십시다. “여호와여 저희를 지키사 이 세대로부터 영영토록 보존하시리이다” 이 말씀은 이 세상이 있는 한 거기에는 교만하고 사악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며 그들이 비열한 수단으로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괴롭게 하므로” 믿음을 파괴하려고 위협하리라는 것을 어느 정도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이 세대로부터 지키실 것입니다. 요한복음 10장 28-29절에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하셨습니다. 이 세상이 아무리 악하고 거짓되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 위에 굳게 서고 하나님의 품 그 팔 아래 있을 때 아무도 건드리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 말씀 위에 튼튼히 서시기를 바랍니다.
경건한 자가 끊어지지 않게 하소서.
성경 본문 : 시편 12: 1~8(1절) / 찬송 463장-험한 시험 물 속에서
1 여호와여 도우소서 경건한 자가 끊어지며 충실한 자가 인생 중에 없어지도소이다
2 저희가 이웃에게 각기 거짓을 말함이여 아첨하는 입술과 두 마음으로 말하는도다
3 여호와께서 모든 아첨하는 입술과 자랑하는 혀를 끊으시리니
4 저희가 말하기를 우리의 혀로 이길찌라 우리 입술은 우리 것이니 우리를 주관할 자 누구리요 함이로다
5 여호와의 말씀에 가련한 자의 눌림과 궁핍한 자의 탄식을 인하여 내가 이제 일어나 저를 그 원하는 안전 지대에 두리라 하시도다
6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함이여 흙 도가니에 일곱번 단련한 은 같도다
7 여호와여 저희를 지키사 이 세대로부터 영영토록 보존하시리이다
8 비루함이 인생 중에 높아지는 때에 악인이 처처에 횡행하는도다
===================================================================
읽으며 묵상하며 : 경건한 자가 끊어지지 않게 하소서(12:1-8)
오늘 말씀은 다윗이 경건한 자와 충실한 자가 점점 사라져 가고 속이는 자들이 득실거리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하나님께 호소하는 내용입니다. 우리가 본시를 통해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경건한 자들이 세상의 희망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도우심이 급했습니다. 그 이유는 경건한 자들이 끊어질 상황이고, 속이는 자들이 활개를 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경건한 자들은 충실한 자들과 동격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신실히 지키는 자들입니다. 이러한 자들이 끊어질 상황이라는 것은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며, 마치 암흑 같은 세상이 된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이웃에게 겉만 번지르하게 말하고 속은 음흉한 마음을 품고 있는 것은 가증스러운 것이며, 이웃을 죽이는 행동입니다. 그들은 거짓된 말이나 협박의 말을 하며 하나님을 무시하는 말을 서슴치 않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부패하고 타락한 세상가운데서 경건한 자들의 필요를 절감하며 하나님께 도움을 간절히 구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거짓을 말하는 자들을 그 사회에서 완전히 끊어버리시길 원했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 경건한 자들이 끊어지지 않도록 기도해야 하고, 또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가운데 살아감으로 경건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경건한 자가 어두운 세상의 등불입니다. 어두운 세상에서 빛의 역할을 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순결한 말씀대로 경건한 자를 지키십니다.
다윗은 거짓말이 난무한 세상에서 희망을 찾았습니다. 희망은 하나님께 있었고 경건한 자들에게 있었습니다. 아무리 속이는 자들이 세상을 주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은 더 이상 힘을 쓸 수 없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고통당하는 자들을 안전지대로 옮겨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마련해주신 안전지대는 어떤 세력도 접근할 수 없습니다. 확실한 안전지대는 하나님이 계신 곳입니다. 가련하고 궁핍한 자를 악인의 횡포로부터 구원해 주시겠다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입니다(5절). 여호와의 말씀이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한 은 같다고 한 것은 속이는 자들의 불순한 것과 대조한 것이며,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약속의 말씀대로 경건한 자들을 확실하게 영원히 지키시는 분입니다. 이 사실은 죄악 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큰 위로와 희망을 줍니다. 속이는 자들이 잘 되는 것을 부러워하거나 속상해하지 말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신뢰하시길 바랍니다. 악인들이 많은 세상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승리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일용할 양식
***************************************************************************************************
살며 생각하며 :경건과 신앙생활
성경은 “하나님은 영이 유여하실지라도 오직 하나만을 지으심은 경건한 자손을 얻고 자 하심이다”말씀하신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생활은 하나님 앞에 발견되도록 경건한 신앙과 생활을 이루어야 한다.
경건한 신앙생활이란 단순히 기도하고 성경을 보고 교인이 되는 그런 생활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이 주요 온전케 하신 예수를 닮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이 구하시는 경건은 부모가 자식을 닮듯이 제자가 스승을 닮듯이 하나님을 닮은 자, 하나님이 자비하심처럼 자비하고 하나님이 사랑하심처럼 사랑하며 하나님이 오래 참으심처럼 오래 참으시는 그런 신의 성품을 가진 자를 말한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생명의 역사를 보려고 하나님 앞에 나오지만 여전히 생명을 얻는데 실패하고 넘어지는 것은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을 부인하고 경건한 삶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주님은 육신의 몸으로 오셔서 경건한 삶을 우리게 보이셨으니 자신을 다 비워버리고 종의 형체를 가지신 이가 또한 성령으로 세우심을 얻어서 아버지와 같은 경건을 이루시고 아버지의 모든 아름다운 것을 상속받으시는 비밀을 보이셨다.
그리스도의 경건은 그가 아들 됨을 드러내 주는 증거요 아버지가 구하시는 성품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온전한 형상을 이루는 지체마다 그 속에서 그리스도를 닮는 성품이 나타나고 드러나야 할 것은 이것이 신의 성품이요 하나님의 아들된 자의 열매이기 때문이다.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나쁜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으니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면 성령은 우리 속에서 열매로 증거하시고 열매로 나타내신다.
지금 나는 무슨 열매를 맺고 있는가
성령의 열매는 이러하니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이요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요
육신의 열매는 현저하니 음행과 더러운 것과 분리함이며 이단과 투기와 술취함과 방탕함이다.
지혜 있는 자마다 자기를 보고 살피나니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되 육체에도 영혼에도 유익하고 금세와 내세에도 익하다.
오 주여 !
종으로 하여금 주를 닮는 경건을 온전히 이루게 하옵시고 종과 성도들로 하여금 성령의 열매만을 맺게 하옵소서
이는 종의 간절한 기도 제목입니다.
출처 : 강선희
***************************************************************************************************
질문하며 적용하며
1. 시인이 하나님께 호소하는 사회적인 부패상이 어떠합니까(1~4절)?
2. 연약한 자들을 향한 여호와의 약속이 무엇이며, 시인이 고백하는 여호와의 말씀, 확신하는바가 무엇입니까(5~8절)?
3. 당신이 거짓된 세상에서 경건한 자로 살아가기 위해서 힘써야 할 점은 무엇입니까?
******************************************************************************************************
확신하며 간구하며
주님,
한 주간이 시작되었습니다.
주어진 시간들을 소중히 여기고 육신을 위해 소모적인 사람을 살지 말게 하시고
주님이 원하시는 영에 속한 사람이 되어 거룩하고 경건된 삶을 살게 하소서.
육신적 욕망을 버리게 하시고 신령한 은혜를 사모하며 주님의말씀 안에서
성경보며 기도하며 찬송하며 사랑을 실천하며 자신을 잘 다스리게 하소서.
모든 성도들이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며
하루하루를 가치있고 복되게 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출처: 성경 벌레들 글쓴이: 성경 벌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