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전放電 유감
김이경 essaypia@hanmail.net
원미산은 붉었다. 몸에서 진달래 꽃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았다. 감탄사는 저절로 나오는데 마음은 불편했다. 통화 버튼을 몇 번이나 다시 눌렀지만 “전화기가 꺼져 있어 ….”라는 기계음만 들렸다.
선은 몇 달 전까지도 자기 차로 다녔다. 그런데 최근에 연속된 자잘한 사고 후, 가족들의 성화에 차를 처분했다. 나도 언제쯤 운전을 그만둘지 생각하는 참이라 공감이 갔다. 그런데 퇴직 후 대중교통에 익숙해진 나와 달리 그는 대중교통에 영 서툴렀다. 마침 현이 같은 노선의 지하철을 탈 것이라 부탁했다. 몇 번 전화가 오가고, 선은 현이 탄 차를 대곡역에서 타기로 찰떡같이 약속했다고 했다.
내가 모임을 주관하는 터라 조금 일찍 나섰다. 선에게서 전화가 온 것은 부천에 거의 닿았을 때였다. 택시를 타도 대곡역 약속에 늦을 것 같으니 혼자 알아서 찾아오겠다고 했다. 현에게 그냥 가라고 했다지만, 나라도 현에게 대곡역에서 내려 기다려달라고 했어야 했다. 선이 치매 노인도 아니고, 설마 못 찾아오랴 싶기도 했지만, 약속 시간에 늦은 것이 짜증이 나기도 했다. ‘부천종합운동장역 2번 출구’라고 몇 번을 확인했다. 그리 많이 늦지는 않을 것 같았다.
버스로 온 사람도 2번 출구에서 만났다. 조금 기다리자며 전화했다.
“지금 가좌역이에요.”
“예? 무슨, 가좌역?”
서해선에 가좌역이 있었나 잠시 멍했을 때, 전화기에서 새된 소리가 들렸다.
“이걸 어째? 잘못 탔어요.”
몇 번이나 ‘서해선 부천종합운동장역’이라고 했건만 ‘경의 중앙선’을 타버린 것이었다. 심란했다. 그때 옆 사람이 다음 역에서 내려 2호선을 타고 또 7호선을 바꿔타라고 가르쳐줬다고 했다. 자가용으로 온 사람은 이미 진달래동산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40여 분 늦을 것 같았지만 2번 출구에서는 직진만 하면 된다. 서로 전화하기로 했다.
진달래꽃에 묻힌 사람들은 빨간 숨을 내쉬는 것 같았다. 그런데 나는 꽃밭에 한쪽 발을 딛고 한쪽 발은 내내 지하철역으로 향해 있었다. 지난해 원미산에 와봤던 것이 다행이었다. 시간을 계산해 보고 전화했다. 그런데 “전화기가 꺼져 있어….” 기계음이 들렸다. 머리카락이 곤두서는 느낌이 그런 것일까? 다시 해봤지만, 기계음만 신경을 더욱 날카롭게 했다.
‘전화기 충전도 안 한 거야?’
애꿎은 통화 버튼만 자꾸 눌러대도 꺼진 전화기가 켜지는 일은 없었다. 일행은 모두 산 중턱에서 한창 꽃물이 들어있었다. 누구라도 내려가기엔 무리였다. 휴대폰 하나 꺼지니 서로 다른 세상에 사는 것 같았다. 그렇게 선은 꽃 나들이에서 제외되었다.
꽃구경을 마치고는 작은 출판기념회가 있다. 춘 님의 두 번째 출간을 축하하는 자리다. 장소는 총무가 단톡방에 올려놨지만, 당연히 같이 갈 생각에 나도 자세히 보지 않았다. 선이 그걸 유심히 보았을 리가 없었다. 봤어도 처음 듣는 식당 이름을 기억할까? 이미 지하철역에 도착했을 시간에서도 한참이 지났다. 별수 없이 돌아갔을지도 몰랐다. 아니 돌아갔을 것이다. 다들 낯선 곳이고 다음 행사장으로 가기 바빴다.
약식으로 하는 출판기념회지만 소홀히 할 수 없는 행사다. 예약한 식당에서 플래카드를 걸고 케이크에 불을 켜고, 기념패와 꽃다발 전달도 하고, 사인회도 했다. 코스로 나온 요리도 먹었다. 마지막으로 식사용인 짜장면을 시킬 때, 다음 일정이 있는 두 사람이 먼저 일어섰다. 행사는 다 마쳤으니 그 뒤로는 시간 여유 있는 사람들만 남는 게 예사다. 그때 전화가 왔다. 모르는 번호였다.
“선의 남편입니다. 지금 2번 출구에 있다고 전해달라고 하네요.”
머리를 둔기로 맞은 것 같았다. 겸과 현이 음식을 먹다 말고 뛰어나갔다. 내려와서 지하철 출구 쪽으로 가봤어야 했다.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버렸으니 돌아갔으리라 생각할 수 있지만, 한 번은 가봐야 했다. 생각할수록 내려오는 길에 2번 출구를 가보지 못한 것은 치명적인 실수였다. 길이 낯설고 다들 지쳐있었다는 것은 핑계로는 모자랐다. 잠시 후 들어온 선은 지치고 후줄근해 보였다. 실컷 멋 내고 온다던 사람이었는데….
우린 왜 모두 약속이나 한 듯 그가 돌아갔으리라고 생각했을까. 휴대폰이 불통이면 만날 방법이 아예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어쩌면 요즘 사람들의 사고방식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방식에 나도,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젖어버린 것은 아닐까. 휴대폰 하나로 세상이 나뉘는 것은 아닌데. 그리 쉽게 포기해선 안 되는 것인데. 방전放電된 것은 선의 휴대폰이 아니라 우리들 마음의 축전지가 아니었을까.
지친 선의 모습을 보며 미안하다는 말도 나오지 않았다. 나라면 어땠을까? 약속 시간에 늦은 것도, 열차를 잘못 탄 것도, 휴대폰 관리를 잘못한 것도 다 자기 잘못이다. 누굴 원망할 일이 하나도 없다. 그렇지만 나였으면 내 잘못을 생각하기보다 우선 짜증 나고 속상해서 그냥 돌아갔을 것이다. 그것도 잔뜩 속상해하면서. 잘못은 잘못이고 속상한 건 속상한 일 아닌가.
그런 나를 나무라기라도 하듯 선은 모임의 파장에 찾아왔다. 아침 일찍부터 네 시간이 넘게 익숙하지도 않은 지하철에서 헤매며, 얼마나 마음고생했을까? 지하철을 몇 번이나 바꿔타는 것도 우리 나이엔 힘들다. 그렇게 힘들게 지하철을 바꿔타면서 기어이 2번 출구를 찾아왔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얼마나 야속하고 막막했을까. 점심시간도 겨웠는데 배는 또 얼마나 고팠을까.
그런데도 유일하게 번호를 기억하는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마침내 그 자리까지 찾아온 선이 개선장군 같았다.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으러 간 것이 아니라 한 마리의 양이 아흔아홉 마리 양을 찾아온 것이었다.
우리가 고작 진달래를 보고 있을 때 선은 무엇을 보았을까.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는 길을 보지 않았을까.
계간수필 2024년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