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만 해도 교과서의 시는 당연히 외어야 하는 줄만 알았다. 시를 이루어준 시어의 아름다움도 아름다움이라지만 그저 시를 외우는 동안 알게 모르게 마음속에 떠오르는 그림 한 폭은 그리도 환상적이어서 마음은 온통 무지갯빛으로 타오르곤 하였다. 때때로 미래의 어느 날에 분명하게 만나게 될 아름다운 소녀상도 함께 그려보면서 나름대로의 행복한 시간들을 꿈꾸어 보기에도 충분했다.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서 지그시 눈을 감으며 이육사의 [청포도]를 외어보고 싶지만, 설령 그렇게 외어본다 하더라도 그 시절의 아름다운 꿈, 한 폭의 그림은 영영 살아오지 않는다.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두 손을 함뿍 적셔도 좋으련”만 식탁도 은쟁반도, 더더구나 “하이얀 모시 수건”도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