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리산
서양식 능지처참 '殺千刀'… 인간은 왜 이리 잔인한가
'아웃사이더' 작가 콜린 윌슨, 선사시대부터 범죄史 훑어
자아실현 욕구좌절 범죄 늘어… 통제 못하면 '히틀러' 출현
"범죄사로 본 인간 본성 성찰"
'인류의 범죄사' 인류의 범죄사|콜린 윌슨 지음|전소영 옮김|알마 1000쪽|4만2000원
이것은 어쩌면 감추고 싶은 역사, 무대 뒤의 잔인한 이야기다. 영국 작가 콜린 윌슨(1931~2013)이 '인류의 범죄사'를 처음 펴낸 것은 1984년. 선사시대부터 현대까지 범죄의 역사를 훑으며 인간 폭력성의 근원을 탐구한 이 역작(力作)이 30년 만에 무려 1000쪽에 이르는 전면 재번역으로 출간됐다. 연쇄살인범의 등장과 신(新) 정치적 테러리즘에 대한 부록이 새로 추가된 까닭도 있지만, 시대를 뛰어넘는 고전은 늘 '지금'의 언어로 다시 번역되어야 한다는 적극적 판단 때문일 것이다.
윌슨은 스물네 살에 썼던 문학비평서 '아웃사이더'로 단숨에 세계적 작가 반열에 올랐다. 이후 거침없는 문장력과 박람강기(博覽强記)의 지력으로 20세기를 대표하는 저술가가 된 그는 항상 "인간은 왜 이토록 잔인한가"라는 근원적 질문에 대답하고 싶어했다.
비록 사진이나 그림 한 장 없지만, 단순한 '19금(禁)'을 넘어, 잔혹을 감당할 굳은 결의를 마친 성인에게도 쉽지 않은 텍스트다. 사타구니부터 어깨까지 산 채로 말뚝에 꿰어 처형했다는 기원전 12세기 아시리아 왕, 수천 번에 걸쳐 조금씩 살을 칼로 발라내는 형벌 '살천도(殺千刀)'를 좋아했던 로마 황제 칼리굴라, 기독교인의 몸에 타르를 발라 살아있는 인간 횃불로 사용했던 네로 황제 시대 로마인 등을 작가는 눈 한 번 깜빡하지 않고 건조하게 묘사한다. 현대 범죄의 도착과 가학의 구체성에 이르면 차마 언어로 옮기기 혐오스러울 정도다.
특정 사례 관찰에서 '현미경'을 서술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면, 시대 경과에 따른 통시적 관점에서는 심리학자 매슬로의 인간 욕구 단계설을 활용한다. 생리적 욕구, 안전의 욕구, 소속감의 욕구, 애정 욕구, 자아실현 욕구 등 다섯 가지 욕구. 범죄 역시 19세기 초까지는 먹고살겠다는 생존형 범죄가 대부분이었고, 이후 시대 변화에 따라 다음 단계의 욕구가 적절한 비율로 화학반응을 일으키며 범죄와 관계를 맺는다. 그리고 20세기 이후에는 자아실현의 욕구와 관련된 범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는 것이다.
네로 황제는 마음이 내킬 때마다 처형을 명령하는 습관에 쉽게 젖어들었다. 완벽하게 자신에게만 몰두했고 방해가 되면 제거했다. 이탈리아 화가 필리피노 리피의 프레스코화‘성 베드로의 순교와 네로 앞에서 마술사 시몬과의 논쟁’(1457~1504). / Getty Images 멀티비츠
비관적이고 절망적인 사례의 독서에 지쳤을 무렵, 작가는 두 가지 희망을 이야기한다. 베토벤과 대니얼 디포의 경우다.
우선 베토벤과 '독선(獨善)'. 베토벤은 자신을 언짢게 한 웨이터에게 수프 접시를 집어던진 적이 있다. 전형적인 독선가의 폭력적 행동이다. 하지만 장기 목표를 이루려면 인내와 자기 규율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이 예술가는 깨닫는다. 이후에는 한 방울의 에너지도 낭비하지 않는 실천의 삶을 살았다는 것. 반면 독선가들은 분노를 폭력으로 분출하면서 에너지를 낭비한다고 했다.
윌슨은 '감정의 요실금'이라는 표현을 썼다. 반복되면 결국 자기 침식의 과정으로 빠져들고, 적절한 '배출구'를 찾지 못한 탓에 내면은 늪이나 오수 처리장으로 변해버린다. "이것이 바로 알렉산드로스 대왕부터 스탈린⋅히틀러에 이르기까지 역사상 폭력적인 사람들이 결국 '정신병자'로 생을 마감한 이유"라고 윌슨은 설명한다.
또 하나의 희망 사례는 '로빈슨 크루소'를 쓴 대니얼 디포다.
베토벤과 스탈린처럼 구분되는 경우도 있지만, 한 인간 안에도 두 가지 기질이 동시에 있다. 윌슨은 성공과 실패를 거듭한 디포의 파란만장한 인생을 역동적으로 서술한 뒤, 인간 범죄성의 핵심을 간파해낸다. 범죄성과 창의성, 폭력과 지성, 기회주의와 고결성을 모두 갖춘 인물이었다는 것. 마키아벨리처럼 권력을 향해서는 항상 지름길을 찾았지만, 자신의 부정직함을 씁쓸하게나마 솔직하게 드러내는 자질 덕분에 소설가로서 성공했다.
인생 전반의 '기회주의자 사기꾼'과 인생 후반의 '위대한 소설가'. 그리고 이렇게 결론 맺는다. "범죄는 생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잘못된 방식이다. 설혹 부정직한 방법으로 눈앞의 목표를 달성하더라도, 장기적으로는 자기 파괴라는 대가를 치르게 된다." 원제: A Criminal History of Mankind.
[펌] / 출처; 프리미엄조선 / 어수웅(조선일보 블로그문화부 차장) / 2015.11.07 03:06
은목서
미국의 바다, 중국의 바다
스페인과 전쟁해 태평양 장악 후 美, 신흥국에서 제국으로 발돋움
떠오르는 中은 "태평양 나눠 갖자"
정치 스페인, 경제 미국에 기댔던 쿠바, 갈팡질팡하다 최빈국 전락… 미⋅중 사이에 끼인 한국에 경종
1898년 4월에 터진 미국과 스페인의 전쟁은 언론이 부추겼다. 그해 2월 쿠바 아바나항구에 정박 중인 미국 군함이 의문의 폭발사고로 침몰했다. 255명의 미군 수병이 사망한 원인 모를 참사였다.
그러나 퓰리처나 허스트 같은 미국 언론인들은 쿠바를 지배하고 있던 스페인의 소행이라고 단정했다. '암살자!'라는 제목을 신문 전면에 매번 큼지막하게 걸었다. 선전포고를 부추기는 노골적인 선동이었다. 미국 의회는 결국 70일 만에 스페인을 상대로 전쟁을 결정했다.
미국⋅스페인 전쟁은 미국이 카리브해와 태평양을 장악하는 결정적 기회를 제공했다. 미국은 쿠바와 필리핀, 괌 같은 주요 거점에서 스페인을 몰아냈다. 이 전쟁에는 남북전쟁에서 서로 적(敵)으로 싸웠던 미국인들의 아들 세대가 참전했다. 아들들이 손을 잡고 '비겁한 암살자'를 징벌하는 '정의로운 싸움'에서 승리하자 당시 막 신흥국으로 떠오르던 미국의 국가 에너지는 최고조에 달했다. 미국식 제국주의가 전 세계에 날개를 활짝 펼치게 된 것이다.
110년이 흐른 뒤 이번엔 중국이 태평양 귀퉁이에 발을 넣기 시작했다. 남중국해 암초 7곳에 중국제 인공섬이 만들어졌다. 3000m짜리 활주로 2곳 외에 헬기장, 5~6층 빌딩도 들어섰다. 레이더⋅대공포를 설치할 움직임도 있는 모양이다.
이곳은 2차 세계대전 때는 일본이 잠시 점거했던 바다다. 하지만 지난 70년은 아무도 도전하지 못했던 미국의 안마당이나 다름없었다. 미국의 전략가들은 남중국해를 '아시아의 지중해'라고 부른다. 자원⋅상품 이동 등 경제의 젖줄이어서 애지중지할 수밖에 없는 바다라는 말이다.
반면 중국으로서는 이곳이 태평양으로 나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이다. 중국의 북쪽은 한국⋅일본⋅대만이 겹겹이 가로막고 있다. 중국 전투기나 함정이 태평양으로 나갈 때 사전 허가를 받거나 실시간 감시를 받을 수밖에 없다. 남중국해에 거점을 마련하면 태평양 루트가 확보되는 전략 요충지인 것이다.
언론 보도를 검색해보니 중국이 태평양에 처음 관심을 표시한 것은 2006년이었다. 중국 해군 사령관이 당시의 키팅 미 태평양함대 사령관에게 "태평양을 둘로 분할하자"고 제안했다는 일화가 나온다. 이어 2008년 베이징올림픽, 2010년 세계 2위 경제대국 등극을 맛보면서 남중국해는 중국의 6개 '핵심적 이익'중 세 번째로 꼽혔다.
2013년 시진핑 주석이 등장한 뒤 태평양의 등급은 또 한 번 상승한다. 서쪽 대륙으로는 일대일로(一帶一路) 사업을 전개하면서 동쪽으로는 태평양 진출 전략을 추진하는 모양새이다. 시 주석은 2013년 캘리포니아에서 오바마 대통령에게 '새로운 대국(大國)관계'를 제안하며 "넓은 태평양에는 중국과 미국 두 대국을 모두 받아들일 수 있는 충분한 공간이 있다"고 했다. 이런 떠보기에 오바마는 일절 대답하지 않았다. 시 주석은 그 뒤로도 여러 차례 똑같은 뜻을 미국에 전했다.
전략가들은 강대국이 되려면 자기가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는 '앞바다(Midland Sea)'를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로마 제국은 지중해를 지배했고, 영국도 지중해와 대서양을 장악해 '해가 지지 않는 나라'가 됐다. 오스만튀르크 제국은 지중해와 흑해, 구소련은 흑해와 발트해⋅오호츠크해를 자신들만의 앞바다로 삼았다.
강대국 패권이 바뀌면서 바다를 둘러싼 전쟁이 치열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바다 전쟁에서 최대의 희생은 2차대전 때 대서양에서 나왔다. 6년 전쟁에서 3500척 이상의 연합국 선박, 780척 이상의 독일 U-보트가 대서양에 침몰했다. 연합국 측 8만5000명, 독일인 3만 명이 그곳에 수장(水葬)됐다. 참혹한 희생 끝에 영국은 대서양 지배권을 미국에 넘겼다.
얼핏 보면 넓은 바다는 여러 나라가 공유할 수 있는 공간처럼 보인다. 그러나 설탕에 이어 원유와 자동차가 더 많이 바다를 건너면서 바다의 가치는 갈수록 달라졌다. 게다가 바다의 오랜 역사를 보면 결정적 순간에는 합리적 논리나 국제 규범보다는 힘(파워)이 바로 정의(正義)라는 것을 일깨워 주곤 했다.
미국⋅스페인 전쟁 무렵 쿠바는 스페인 지배 아래 있었지만 경제는 미국에 의존하고 있었다. 담배, 설탕 등 쿠바산 수출품 90%가 미국으로 팔려갔고, 쿠바의 수입품 40%는 미국서 들어갔다. 정치는 스페인에, 경제는 미국에 기대고 있었다. 미국과 동맹을 맺고서 경제의 중국 의존도가 점점 높아만 가는 우리의 처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쿠바는 당시 어떤 독립운동도 성공하지 못했다. 국민이 미국파와 스페인파로 분열돼 양쪽 눈치를 보며 스스로 자립할 힘을 키우지 못했다. 쿠바는 스페인에서 독립한 뒤에도 경제적으로는 미국 식민지로 전락했다. 쿠데타와 사회 혼란, 이념 싸움이 이어지면서 100년 세월이 흐른 지금껏 지구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로 남아 있다. 강대국 사이에서 당당하게 홀로서지 못하고 갈팡질팡했던 쿠바의 비극(悲劇)을 되새겨보지 않을 수 없다.
[펌] / 출처; 조선닷컴 / 송희영(조선일보 주필) / 2015.11.07 03:20
칡
빛의 혁명 청색LED
작년의 노벨 물리학상은 1990년대에 청색 LED를 개발해서 ‘LED 조명시대’를 활짝 연 나카무라 슈지 교수 등 일본인 3명에게 돌아갔다.
엘이디(LED)는 발광(發光) 다이오드(light emitting diode)인데, 접합부에 전류가 흐르면 빛을 복사하는 다이오드를 말한다. 재료에 따라서 정해진 파장의 빛을 발한다. 탁상전자 계산기 등의 문자, 숫자 표시 따위에 광범위하게 이용되었다.
발광(發光: luminescence)이란 글자 그대로 빛을 내는 것인데, 물리학에서는 원자 속의 전자가 어떠한 양자(量子; proton)의 상태로부터 다른 양자의 상태로 옮길 때에 두 쪽의 상태의 에너지의 차(差)를 빛으로 하여 복사(輻射)하는 현상을 말한다.
간단히 말해서 LED는 반도체를 이용해서 빛을 만드는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전자가 높은 에너지상태에서 낮은 상태로 바뀌면서 원래 갖고 있던 에너지를 빛으로 내보낸다. 영국의 물리학자 라운드(Henry Round)는 처음으로 이 원리를 규명하여 1909년에 노벨상을 받는 영예를 안았다.
LED가 내는 빛의 색깔은 전자의 에너지의 차이로 결정난다. 에너지 차이가 클 경우에는 파장이 짧은 푸른빛이 나오고 반대로 차이가 작으면 긴 파장의 붉은 빛이 나온다. 빛의 삼원색(三原色)인 적⋅녹⋅청색(RGB)만 있으면 모든 색의 빛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삼원색의 빛을 합하면 형광등이 내는 흰색 빛도 될 수 있다. 적색LED는 1950년대 말에, 녹색LED는 1960년대 말에 이 세상에 처음으로 나왔다. 이때부터 전 세계의 과학자들은 마지막 남은 최후의 빛의 원천 이른바 ‘청색LED’개발에 다투어 몰입하였다.
이미 말한 바와 같이 LED는 전류에 의해 빛을 내는 다이오드다 내는 빛의 파장은 반도체의 금제대폭(禁制帶幅; forbidden band)에 의해 결정된다. pn 접합에 순(順) 바이어스(bias)를 가하고, p측에서 양공(陽孔)을 가하여 n측에서 전자를 주입하면, 접촉부에서는 원자가전자대(原子價電子帶)에 양공이, 전조대에 전자가 모인다. 이것에 의해 전도전자(傳導電子; conduction electron)가 옮겨져 양공과 재결합이 일어나, 이때 빛을 낸다. 재료로는 갈륨비소(砒素;gallium arsenide) 등을 쓴다. 발광화소(發光畵素; luminous pixel) 등의 표시용이나 레이저에 널리 응용된다.
녹색LED가 나온 지 20여년 후인 1990년대 초 나고야대학의 아카사키와 히로시 교수가 질화갈륨(GaAs)을 이용하여 청색LED를 개발하는데 성공하였다. 거의 동시에 슈지 교수도 질화갈륨으로 청색LED를 만들었다. 이러한 이들의 노력으로 에너지 효율이 높고 수명이 긴 LED조명이 드디어 나오게 되었다. 전력망을 제대로 갖추지 못해서 전등을 이용할 수 없었던 저개발국가의 물경 15억 명의 인구도 이제야 전력이 적게 소모되는 LED 조명 덕분에 삶의 질이 향상 될 것이라고 스웨덴 왕립과학원은 발표했다.
또한 청색 LED의 향상된 형태인 자외선 LED는 개발도상국에서 오염된 식수를 정화하고 파괴된 생태계도 제대로 처음과 같은 자연 상태로 바로 잡을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또 LED로 원하는 대로 다양한 색깔 구현이 가능해 TV 두께가 얇아지고 에너지 효율도 계속해서 향상되고 있다. 우리의 일상 곳곳에서 끊임없이 빛의 혁명이 일어나고 있다.
몇 대에 걸쳐 가업으로 이어받는 면면히 흘러오는 일본의 전통적인 장인정신의 개가이며 이 또한 학계에도 깔려 있는 튼튼한 일본의 기초과학의 저력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앞으로 현재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창조경제의 활성화를 위하여 LED에서 열로 소모되는 전력이 많은 원인을 정확히 탐색하여 합당한 대책을 연구 검토하여야 할 것이다. 기존의 LED보다 발광효율이 5배 이상 되는 백색 LED칩의 개발이 시급한 지경에 와 있다. 이러한 방법을 적용한 초절전 LED 전구를 시급히 개발하여야 할 것이다.
또한 한국이 소립자물리학과 천체물리학에 투자하고 있는 기존 선진국의 전철을 밟지 않고 새로운 원자 모델을 근간으로 하는 미래의 물리학에 입각하여, 기존의 과학을 합리화하는 과학을 ‘미래를 개척하고 창조하는’ 과학으로 재편하여 육성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한국경제의 성장동력이 크게 향상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리고 미래를 창조하는 과학의 범위를 사회과학으로 확대하여 과거 한국의 사회과학이 선진국으로부터 전수받은 낡아 빠진 이데올로기적 허구와 망상에 사로잡혀 문제해결 능력을 상실한 상태에서 빨리 탈피하여야 한다. 그리하여 한국이 당면한 정치사회적인 여러 가지 문제와 장애를 합리적으로 진단하여 해결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국민경제가 양극화로 치닫는 문제를 시급히 해결하고 우리 온 국민의 여망인 경제민주화를 이 땅에 조기에 토착화 하는 커다란 모멘트가 되어야 한다.
[펌] / 출처; 월간 경제풍월 제195호(2015년 11월호) / 나경수(전자정보인협회 회장) / 2015.11.06. 09:34:24
DNA로 암치료 가능?...노벨상 들여다보니
노벨상은 스웨덴 과학자 알프레드 노벨(Alfred Bernhard Nobel, 1833~1896)이 만들었다.
노벨은 거대한 폭발력을 가진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했다가 수많은 인명 피해를 유발하는 바람에 ‘죽음의 상인’이라고도 불렸다. 죄책감을 떨쳐내지 못하던 그는 재산의 90% 이상을 노벨상 제정과 수상에 사용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사후 5년이 지난 1901년부터 물리학, 생리의학, 화학 등 과학 분야와 문학, 평화를 합쳐 5개 분야에서 수상자를 선정하기 시작했다.
올해 노벨상은 10월 5일 생리의학상을 시작으로 6일 물리학상, 7일 화학상, 8일 문학상, 9일 평화상이, 마지막으로 12일에는 경제학상이 결정됐다.
올해 과학 분야 생리의학상은 투유유 중국 전통아카데미 주임교수, 오무라 사토시 일본 기타사토대학교 명예교수, 윌리엄 캠벨 미국 드류대학교 명예연구원 3명이 공동 수상했다.
이들은 저개발국가에서 주로 유행하는 감염성 질환을 퇴치하는 성분을 찾아낸 공로가 인정됐다. 투유유 교수는 말라리아 치료제를, 오무라 사토시 교수와 윌리엄 캠벨 연구원은 사상충증과 림프사상충증 치료제를 개발했다.
말라리아는 주로 모기에 의해 전파되는데 전체 환자 수가 2억 명을 넘고 사망자만 매년 수백 만 명에 달한다.
투유유 교수는 길가에 흔하게 피어나는 개똥쑥에서 아르테미신 성분을 추출해내 중국 남부와 베트남 말라리아 확산을 막았다. 박사학위도 없고 해외유학 경험도 없는데 고대 의학서적 속 전통재료를 연구한 것만으로 노벨상을 받아 세계를 놀라게 했다.
흑파리에 물려서 기생충이 감염되는 사상충증도 피해자 대부분이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중동에 거주한다. 사상충이 눈의 망막으로 침투해 시력을 잃기도 하고 림프사상충이 온몸에 퍼져 팔다리가 붓고 피부가 썩어 들어가기도 한다. 오무라 사토시 교수는 집 근처 흙 속에 사는 스테렙토마이세스 박테리아에서 50여가지 항생제 원료를 얻어냈다.
물리학상은 가지타 다카아키 일본 도쿄대학교 교수와 아서 맥도널드 캐나다 퀸즈대학교 교수가 함께 받았다. 이들은 우주 기본입자라 불리는 중성미자가 질량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중성미자는 타우, 뮤온, 전자 세 가지 종류가 있으며 1㎤공간에 초당 1000억 개가 지나갈 정도로 우주 어느 곳에든 가득 들어차 있다.
가지타 교수는 지하 1㎞ 깊이에 설치된 슈퍼가미오칸데 검출기를 이용해 1998년 중성미자 간의 관계를 밝혀냈다. 지구 대기권 내에서는 중성미자가 뮤온과 전자 두 상태 사이에서 계속 변환을 일으킨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맥도널드 교수는 캐나다 서드버리 관측소에서 중성미자 변환을 확인했다.
화학상은 토머스 린달 영국 프랜시스크릭연구소 명예소장, 폴 모드리치 미국 듀크대학교 교수, 아지즈 산자르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학교 교수 3인이 공동 수상자로 선정됐다.
이들은 일부 손상된 DNA가 스스로를 치료하는 과정을 밝혀낸 덕분에 유전자 차원에서 암을 치료하는 해법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DNA 염기체는 태어날 때부터 일정한 순서로 배열돼 있지만 후천적인 환경에 의해 달라지기도 한다.
독성물질에 노출되거나 가혹한 환경에 거주할 경우 DNA가 손상돼 각종 질병이 생기고 수명이 단축될 수 있다.
린달 소장은 DNA 스스로 잘못된 염기체를 잘라내고 새로운 염기체로 대체하는 현상을 발견했고, 모드리치 교수는 한 쌍으로 이뤄진 DNA가 서로의 염기체 중에서 짝이 맞지 않는 부분을 고치는 현상을 규명했다.
산자르 교수는 자외선으로 손상된 DNA는 염기체뿐만 아니라 뉴클레오티드 성분까지 복구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과학 전체의 거대한 시각에서 수상자들의 연구는 하나의 조그만 성과에 불과하지만 인류에게는 난치병 극복과 우주의 기본구조 규명이라는 커다란 이익을 가져다줬다. 올해도 우리나라는 노벨상을 배출하지 못해 안타까움을 자아냈지만 학문 자체 발전을 위해 그리고 인류를 위해 노력한다면 언젠가 저절로 영예가 주어지지 않을까.
[펌] / 출처; 전자신문 & etnews.com / 임동욱(과학칼럼니스트) / 2015.11.02
16세기에도 물건 쥐는 ‘기계 의수’ 존재했다
사용자의 의지에 따라 물건을 쥘 수 있는 ‘로봇 의수’는 현재 전 세계에서 개발 중이며, 팔이 없는 많은 환자들의 인생에 새로운 희망을 선사하고 있다.
그런데 현대의 첨단기술들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무려 500년 전의 중세 유럽에도 물건을 단단히 쥘 수 있는 의수가 존재했었다면 믿을 수 있을까?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은 4일(현지시간), 팔을 잃고도 특수한 의수를 사용해 전투를 벌였던 중세 신성로마제국의 기사 겸 용병 ‘괴츠 폰 베를리힝엔’(Götz von Berlichingen)의 전설적 이야기를 소개했다.
사진=ⓒ위키피디아
사실 중세에도 많은 사람들이 의수나 의족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의수들은 대부분 갈고리나 막대 형태의 기초적 의수들로, 팔의 기능 중 극히 일부만을 재연할 수 있을 뿐이었다.
반면 괴츠의 의수는 용수철 및 톱니바퀴 등으로 구성된 기계장치를 통해, 각 손가락을 필요에 따라 구부린 뒤 단단히 고정할 수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이 의수는 그 기능이 상당히 정교해 심지어 깃털 펜을 쥐고 글씨를 쓰거나 카드놀이를 하는 것 또한 가능했다고 전해진다.
그가 팔을 잃은 것은 23세였던 1504년 바이에른의 공작 알버트 4세에 고용돼 싸우던 중, 포탄에 피격 당하면서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로 그는 64세의 나이까지 전투를 계속했으며 이후 성주가 돼 당시 기준으로는 상당한 노령인 82세까지 생존했다.
사진=ⓒ위키피디아
괴츠는 공적을 세울 수 있거나 돈을 벌 수 있다면 어느 쪽을 위해서라도 싸우는 용병이었기 때문에 다양한 전투에 참여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로 바이에른 지역의 귀족들 편에서 싸웠지만 하면 독일농민전쟁에서는 농민군 측에 들기도 했었다.
은퇴 이후에 그는 자서전을 집필한 바 있는데 이는 1731년에 뒤늦게 출판됐으며, 작가 요한 볼프강 폰 괴테가 이 이야기를 각색해 희곡을 각색하기도 했다. 이 작품은 괴테의 초기 성공작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그의 강철 의수는 지금도 그가 말년을 보낸 독일 바덴 뷔르템베르크(Baden-Württemberg)주 호른베르크(Hornberg)성에 잘 보관돼 있다.
[펌] / 출처; 서울신문 / 방승언(서울신문 기자) / 2015.11.08. 02:26
구본웅 / 친구의 초상 / 19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