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머무는 자리/ 김 유옥
사랑이 머무는 자리에는
웃음과 기쁨과 행복만이 피는 것은 아니다
이따금 눈물과 슬픔과 불행과 함께
아픔과 이별과 미움과 증오와 공허함도 피어난다
내 마음과 같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웃음과 기쁨 속에
진한 울음과 슬픔이 배어있기도 하고
행복한 표정의 내심에는 불행과 아픔의
온갖 상처가 스며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랑이 머문 빈자리는
향기로운 여운만이 감도는 것은 아니다
공허함 속에 불만의 감정이
고개를 슬며시 내밀 수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내 마음과 같지 않기 때문이다
사랑이 머무는 자리에는
사랑 그 자체의 온기만이
고이 맴돌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희망 사항이 간절하면
바람은 이루어진다고 서로 굳게 믿으면서
까만 밤/ 김의숙
까만 밤
달빛 되어 춤을 추었구나
너와 나는
촉촉한 비가
너스레 떨듯이
토닥토닥이며 한풀이하듯이
편안함으로 펼쳐진
공간의 시간 속에
주룩주룩 쏟아내는 빗줄기처럼
그렇게 하염없이 흘려 내놓는다
어둠에 젖은 밤커튼 너머
다정 다감한 맘이
하얀 포말같이 밀려오듯이
그렇게
또
그렇게
까만 밤 위에 수를 놓는다
한 땀 한 땀
검은 비단허공에
차곡차곡 보고픔과 그리움을 정렬한다
나도 모르게
너도 모르게
어찌
너는
모든 공간과 시간을
공존한 것처럼
잠긴 빗장을 풀어내는가
아주 오래전
품어주었던 속삭임처럼
솜사탕 같은 평안을 휘감아 오는가?
어찌
나는
그림자를 품어 안고
행복에 겨워
부끄럼 없이 웃음을
터트리는가?
아
그립고 그리운 사람처럼
아주 먼 시절
견우직녀처럼 애닮 다하나?
까만 밤
너와 나는
미소로 행복을 담아 놓았구나
참으로
있을 수 없는 평안함에 빠져
너와 나는
보이지 않는 달빛이 되었도다
토닥이며 가자 바다로/ 김 의숙
오라가락하는 비는
누굴 그리며
저리 슬퍼하는지
달래주고 싶다
안아주고 싶다
비야
네 눈물이 바스락거리는
내 맘을 적셔주건만
네 눈물이어 설까
젖어드는
마음 가득히
그리움이
일렁이는구나
동그랗게 동그랗게
그려내는 네 모습이
그리움 속의 그리움을
떨구는 듯싶다
달래주고
안아주고
너의 토닥이는
방울들이 내 맘을 토닥여 주는 건 아닌지...
비야
내 그리움
네 그리움 모두 쏟아내
개울이 되고
강이 되고
바다가 되게 뿌려주렴
너도 나도
그리운 이와 바다에서
화사한 미소로
가슴 가득히
마음 다 내놓고
웃어 보자꾸나
비야
오늘은 네가 사랑으로
나를 채워 주는구나
그리운 이가
혹여
너는 아닐까?
내님의 눈물일까
토닥
토닥
ㆍ
ㆍ
ㆍ
양파/ 김재성
도마소리 또닥또닥
부엌에서 반찬 만들다
아내가 눈물 훔친다
옆에 있어도
내가 그리운가
눈물 어린 얼굴로
도마채 나에게 내밀고
된장에 넣을 거라며
잘게 썰어라 한다
또닥또닥
아내가 옆에 있어도
나도 눈물이 난다
도마채 올 때
그리움까지
내게 왔나 보다
망각(忘却)/ 김재성
푸른 하늘을 보고 있으면
당신을 그리게 됩니다
푸른 도화지에
오색 찬란하게 항상 그려 보지만,
엄청난 지우개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지우고 맙니다
점점 시간이 흐르다 보면
푸른 도화지 위에
구름 몇 조각 만이
그려져 있을 테지만
당신을 그리고 싶어도
자꾸 맘속에서
그릴 수 없게 만드는 까닭은
무엇 때문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림을 그릴 수 없는 지금은
그래도
푸른 하늘을 기다립니다.
소설에 가두는 현실 /김 지현
밤이란 시간은
항상 소리 없이 다가와
소스라치게 놀라게 힘겹게 할 순간이었다
쉽게 끊어질 숨이라 생각지 않았는데
며칠 쉬고 들어선 근무였던 그날 밤
그는 헐떡거리기도 버거울 정도로
숨을 몰아서 쉬고 있었다
이건 임종을 앞둔 풍경
늘 보던 모습이었지만,
늘 낯설기만 한 모습
순간 여자는 돌아본다
저렇게 헐떡거리도록
버겁게 숨을 쉬기 전까지 기도를 하였는가
돌아볼 때의 후회만 앞서던 지난 시간들이 훅, 지나갔다
특히 그날 밤 여자가 전한 이야기
여자의 말을 들은 그도 대처를 참 희한하게 하였다 아무리 코로나19가 염려되었어도 1인실 간호, 간병을 받는 곳에서 보호자에게 위중해요
얼른 오셔요라고 말하지 못할 일이 없는데
그러지 못했다.
시간이 가기 전에 초를 앞다퉈야 했던
보이지 않는 싸움의 순간들을 이기고
다시 보호자에게 여자는 용기 내어 전했다
위중합니다 서둘러 오세요
밤이란 시간은 항상 소리없이 다가와
소스라치게 놀라게 힘겹게 할 순간들이 있다
그렇지만 놀라지 않은 척 의연해야 하는 시간들이 지나고 나면 쏟아지는 눈물...
그날 밤이 그러했다
인생이란 막연하게 다가와 우연하게 기회를 잡아 순간을 인연으로 잘 살아내야 하는데
밤이 또 지나간다
적막한 그 기운을 뚫고 지나가기가 버겁다
아직도 눈물이 마음속에서 맺혀
강을 이루어야 하는
밤이 여자를 슬프게 붙잡는다.
작은 행복의 시간 /김 지현
홀로 조용한 시간이 고독같이 여겨져
같이 지내려고 이곳저곳을 누벼보고
채워지지 않을 그리움에
홀로 조용히 시간 안에 갇혀 있었던
그 어느 날의 태양이 그토록 뜨거웠던가
빨간색이 이글이글 타올라 노란색을 지나쳐
짙은 어두운 보랏빛이 되어간다면
그래 그 시간이라면 이제 열어도 되겠지
그 어느 날 뜨거웠던 태양처럼
그렇게 불태우는 열정 가득한 날이었기를
너, 너의 홀로 지새운 그 그리움 곁에
가을 목수국 /김 현주
가을
볕을
빼앗아간
볕 도둑들을
만났다
여름의
강렬했던
태양빛을 품고,
가을의
찬바람이
송이송이 묻은 열을
식혀주니
볕이 고스란히
담겨
꽃잎의 빛깔이
오묘하게 변했다
겨울의 초입을 알리는
바람이 불고 있다
나무에 수국이
점점 더
가을색으로 바뀐다
바람 타고 꽃무리가
가을 가을 하다
손꼽는 기억으로 / 김 현주
찬바람 들기 전 이맘때 즘이면,
물미(동네 이름) 집 앞마당에서는
식구들이 분주했다
아빠는 방마다 문짝을 떼어내시고,
엄마는 밀가루로 풀을 쑤셨다
빗자루에 마른 수건에 준비가 한창이고
창호지를 가위로 재단했다
오빠는 잦은 심부름으로 엄마의 부름에
연신 대답을 하며 움직였다
나는 외동딸로,
엄마 옆에서 창호지로 나비를 오렸다
사흘 전 헌 책으로 눌러 놓은 코스모스와
들국화 꽃잎, 이파리들을 이리저리 조합했다
들뜬 기분에 콧노래까지 했다.
우리 엄마는 솜씨가 좋았다
엄마의 공예를 보며 감탄했고,
나도 옆에서 따라 했다
"안방 문엔 이 꽃이면 되겠지" "우와~"
창작의 기쁨을 난 어릴 적부터 느꼈다
나보다 두 살 많은 오빠는
아빠 옆에서 창호지를 평평하게 댕겼다
밀가루 풀에 물을 섞어 빗자루로 희석하면서
"온 손이 끈적인다"며 꾀를 부리기 했다
그러면서 오빠는 지청구만 듣는다
나의 남동생은 갈댓잎을 뜯어서
문짝 한가운데 붙이고 내 작품을 망쳐놨다
심지어 더러운 손으로 손자국을 내기도 했다 그래도 우리 엄마 아빠는 "괜찮다 고것도 이쁘다"며 허허실실 웃으셨다
그때 난 동생이 참 성가셨는데 말이다
안방 문에 뒤란 가는 문, 사랑방, 바깥마당 문, 건넌방 문, 대청마루에 문, 거기에 창에 문짝들은 각기 개성 있는 모습으로 변한다
마당에 나란히 세워져 일광욕을 하는 문짝들은 깨끗하고 팽팽하고 튼튼해졌다
해가 서쪽에서 일을 낼 즈음이면,
아침에 제일 먼저 작업한 문짝을
안방에 다시는 아빠
손바닥을 두어 번 탁탁 털어 내신다
"됐다!"
오늘 일과에 대해 만족하신다는 제스처러나
볕 좋은 선선한 바람이 참 고마운 하루였다
앞마당 하늘을 중심으로 열 뼘쯤 되는 곳에
서쪽에 산등성이가 보인다
낮에 열심히 일한 태양은
생색을 확실하게 내고 싶어 보였다
나는 지는 석양이 너무나도 아름다웠던 그날
그 하늘 보며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날 밤 저녁 달빛이 창문을 비췄고,
한 없이 다정했던 우리 아빠는
봉이 김선달 얘기를 들려주셨다.
세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도 물미에 가면,
어릴 적 가을 어느 하루 문풍지를 붙이던
그날을 생각한다
그때 실력으로 지금도 나비를
종종 오리기도 한다.
꿈에라도 / 김 택선
소식 없어 서운하오 무소식은 슬프다오
중요한 날 아니라도 들려주오 소식주오
한순간도 잊음 없이 그리움에 사무치오
시간이란 녀석덕에 그리움은 옅어지오
간만이오 꿈에라도 엄마 보니 좋았다오
기억을 지우는 법 /김 택선
살면서 기억을 지우는 법을
배웠습니다
살면서 살기 위해 기억을
지웠습니다
살면서 너무 아픔이 많아
지웠습니다
살면서 살면서 좋은 기억도
지워집니다
살면서 생긴 지우는 습관이
지워집니다
살면서 돌아보니 달님 별님만
남았습니다
살면서 돌아보니 남을 사람만
남았습니다
살면서 마음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생겼습니다
살면서 살기 위해 인연을 가족을
끊어냈습니다
살면서 지금이 제일 행복하다고
좋답니다
별님이.....
보고 싶다/ 박영미
앙상한 가지에
연둣빛 고운 새순이 피어날 때
내게 살며시 다가와
다정하게 속삭여 주던 새야
채석강에서도 수목원에서도
주문진 호텔에서도
새벽을 스케치하면서도
아름다운 영상을 담을 때마다
아름다운 소식을 보내 준 새야
보고 싶구나
이렇게 파도가 부서지는 밤이면
내 가슴이 너무 아프단다
새야 어디 있니?
내게 아무런 말도 없이
떠나 버린 새야
저 푸른 하늘을
바라보고 사는 건지
아니면 하늘 문이
닫힌 곳에 있는 건지
난 알 수가 없으니
난 어쩌란 말이냐
새야 난 너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구나
네 이름이 뭔지
네가 몇 살 인지
너의 둥지가 어디인지...
다만 넌 내게
아름다운 노래를
불러 줬다는 사실
밖에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거...
어느 날 내게 다가와
고운 친구가 되어 준
새야 보고 싶다
네게 무슨 나쁜 일이
생긴 것은 아닌지...
너의 노래를 다시
들을 수 없다 해도
난 좋아
하지만 내가 보는
저 하늘을
너도 함께 보았으면
좋겠어
그리운 새야~
어릴 적 추억 / 박영미
첫눈 내리던
늦은 추수 때
논에서 벼 타작을 하던
그때가 생각이 나네요
논두렁 앉아 있으면
왜 그리 춥던지요
호호 떨고 있던
우리를 보시고
아버지께서 모닥불을
피워 주셨습니다
나 어릴 때 밤하늘은
유난히도 별이 빛났지요
소 달구지를 타기 전
아버지께서는 풀을 베어
한가득 달구지에 싣고
폭신한 풀숲에 저희를 올려
비포장길의 덜컹 거림에
힘들지 않도록 해주셨습니다
소 달구지에 누워
바라보던 밤하늘은
지금도 잊히지가 않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던 좁은 산길
어디선가 울어대던 부엉이 소리가
왜 그리도 무섭게 들리던지
무서움에 살며시 눈을 감고
돌아오던 늦가을의 밤하늘은
지금도 생각하면 가슴이 떨립니다
멀리서 비치는 불빛 따라
동네 어귀에 다 달으면
부엉이 소리에 떨고 있던 두려움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내 마음에 평온이 찾아들었습니다
늦은 추수 때가 되니
내 곁을 떠난 친정아버지와
오래된 옛 추억을 회상하며
그 그리움 속으로
점점 파고듭니다
그녀는 예뻤다/ 박영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몸
우두커니 보고 섰는데
날 보며 환하게 웃는 모습이라니
내가 다 부끄러워
살며시 눈을 감았는데
실눈 사이를 비집는 푸른 미소
예쁘다
눈이 부셔 더 예쁘다
보석 같은 미소
가을의 푸른 하늘
그녀는 오늘도 예뻤다
향기로운 인연 / 박영서
꽃을 보며
아름답다고
칭찬해 주고 돌아섰는데
아름다워진 것은
내 마음
너를 보고
멋있다고
칭찬해 주고 돌아섰는데
멋있어진 것은 내 마음
누군가에게
아름답다 멋있다고
칭찬하는 일은
따뜻해진 마음에
스스로 꽃을 피워내는 일
꽃을 피워내게 하는 일
그 꽃에
그 향기에
서로가 서로에게 물들어 가는 일
사 랑 해 /백 선숙
내게
찾아온 새로운
단어 하나가
나의 마음을
흔들고
나의 인생을
즐겁게 한다
"사 랑 해"
나의 하루를
시작하게 하고
나의 하루를
마무리지게 한다
나 또한
당신에게 살포시
던져본다
" 사 랑 해 "
내가 /백 선숙
내가
작은 별이 되어
당신 마음에
빛이 되었으면
내가
꽃이 되어
당신 마음에
사랑으로 피어났으면
내가
등불이 되어
당신 마음에
길잡이가 되었으면
내가
희망이 되어
당신 삶에
안식처가 되었으면
사랑은 조금 아파도 좋다/석병오
밤새 별들이 놀다 간 창가에
햇살 한 줌 빗금 치며 비추니
싱그러운 내음 코끝에 스미네
애달픈 들꽃 한 송이
홀로 외로이 순백으로 피고 지고
우리의 인생만큼 애처롭다
햇살 가득 내리는 황금빛 들판에
참새 무리들 들녘을 노닐듯
행복은 억지춘향이 아니라
순응하는 만큼 누리는 것임을.
빛 그림자에 쉬고 있던 꽃잎도
어느새 깨어나 밀어를 속삭이고
사랑은 꽃이 되기 위해
조금 아파도 좋다
가을 하늘 뭉게구름 피어나면
내 마음 그리움 담아
그대 영롱한 두 눈에 사랑 한 점 머물까
깊어가는 풍경/석병오
새벽 창틈으로 스며드는 냉기
세월의 흐름을 속일 수도 잡을
수도 없는가 보다
등줄기를 타고 내리는 서늘함
몸은 점점 움츠려 들고
허허로울 만큼 휭 한
찬 서리가 마음을 타고 내려
계절의 숨결에 이삭을 줍고
그리움에 단풍잎 쌓인 오솔길
살포시 미소 머금고 즐길.
잔잔한 호수에 낙엽 몇 잎 떠있고
갈대밭 은빛 날개 머리 풀어
한들한들 너울 춤추고
점점 깊어가는 풍경 속에
시간은 세월이 되어 익고
빨갛게 멍울진 마음에도
홍시처럼 가을 풍경이 익어가네
시간/ 안상열
새댁이
할머니 되는 시간은
딸아들이 성장해
손주를 볼 그만큼의 시간
말은 그렇지
그 바쁜 시간은 꿈결같이 흘렀다
집도 없이 결혼하여
집 한 채를 장만하는 시간
새벽에 출근하여
은퇴나이까지 속절없이 흘렀다
직업 없이 전전
새벽에 신문 돌리기부터
이것저것 해
요란 떨던 시간
지나 보면
황금의 시간은 갔고
남은 것은
이게 보석인지 희토류인지
땅 위에 살지만
시간은 하늘만 안다.
가을을 앓는 그대/ 안상열
애초에 푸르렀다 황금빛
기다려 환호했다
마음은 변신의 천재라지만
예기선 눈물 흘리네
황금빛바래고 벌레 먹은 낙엽에
상처를 입네
천지 운행이 숨 가쁜 줄 알아도
가슴엔 믿지 못하니 서러운 거다
애초에 덤덤할 것을
찬탄의 꼭대기에 내려오는 길
험난하여라
만추의 고독 /오 달자
은행잎들이 노랗게 익어
계절의 깊이를 말합니다
맑은 달빛 아래로 흐르는 바람은
옷깃을 여미게 합니다
계절이 깊어가는 만큼
영혼도 깊어가야 하는데
마음만 늙어가는 것이
슬픔으로 다가옵니다
단풍처럼 곱게 물들었다
져야 하는데
물들지도 못하고 떨어지는
낙엽인 듯 아쉬움만 가득합니다
희망을 꿈꾼다 / 오 달자
내게 한 가지 큰 꿈이 있다
지금은 비록 초라하고 작다
세상에 보여주고 싶기도 하다
곧 어둠에서 살포시 비집고
나와서 밝은 곳으로 둥지를
바꾸어 작은 쉼터도 만들고
나만의 세계로 개척하고
진화해서 행복한 보금자리
꿈꾸어 아름다운 세상 추구하자
노력한 대가에 만족감 얻어내고
성숙한 삶을 오래도록 살아보자
그동안 참아온 시간 들 감사하고
엄마에 대한 깊은 사랑 고맙다고
말해 주고 풋풋하게 살아가련다
옛사랑/ 육영순
사랑은 그리 쉽사리 잊혀지는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잊고 싶다고 잊혀지는 것이 아님을
새삼스레 세월이 아주 많이 흐른
지금에서야 느끼고 있습니다.
너무도 바보처럼.....
가끔, 아주 가끔씩
내 뇌리를 스쳐가는 지난 사랑에
기억을 잊고 싶은 마음에
잠시 잊고 지냈을 뿐
아주 내 마음에서 지운 건 아니라는 사실을
왜 요즘 들어 느끼게 되는 것일까요?
혼자 있다는 외로움에서 일까요?
옛사랑이 이리 그리운 건.....
가끔, 아주 가끔씩
강 건너/ 육영순
강 건너
사시는 님
푸르른 산들과 어우러져
그 속에 잠든 님
강을 사이에 두고
님을 향한 간절한 사랑일 뿐
그 사랑,
님 앞에 펼쳐 보일 수 없음에
이 마음 고이 접어 두었다가
님 앞에 서게 되는 날
펼쳐 보이겠습니다
강 건너
고요히 잠든 님
진정 그립습니다.
미운거울 /이 상헌
계절이 다 가기 전에
가을을 하나 남기고자
낙엽 지는 나무아래
벤치에 앉아 있는
나를 그리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내 얼굴이기에
그릴 수가 없어서
자존심 구기고
거울에게 내 얼굴을 좀
보여 달라고 했더니
늦가을의 정취가
물씬물씬 풍기는 어느 날
세월의 흔적이 자글자글한
생면부지의 노인 한 사람을 데려와서
내 옷을 입혀 놓고
자꾸 나라고 우깁니다.
난 그만 부화가 치밀어
거울을 내동댕이 치고
다시는 볼 일 없을 거라고
성질을 부렸습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정직도 하더니
거울은 나에게만 거짓말을 합니다.
나만 갖고 왜 그러는지
모르겠습니다.
오늘은 편지를 쓰겠습니다
/이 상헌
오늘은 편지를 쓰겠습니다
우리가 헤어진 날부터
편지를 쓰기 위해 펜을 든
이 순간까지의 간극에 대해서
오늘은 편지를 쓰겠습니다
문 닫힌 방안에 흐르는 정막과
남기고 간 당신의 체취에 대해서
오늘은 편지를 쓰겠습니다
칠흑 같은 밤과 불면의 시간
쌓이는 술병과 한숨
그리고 고독에 대해서
오늘은 편지를 쓰겠습니다
허무맹랑한 자존심과
잘잘못의 부질없슴에 대해서
오늘은 편지를 쓰겠습니다
함께 잠들었던 침대
비워져 있는 당신의 자리에
참회의 눈물자국에 대해서
오늘은 편지를 쓰겠습니다.
어머니/ 이 정숙
붉은 악마들의 응원가 소리 용솟음 치던 그 해
나지막한 장송곡을 불러야 했던 그 해
산산이 부서진 이름을
절절히 초혼해 보아도
끝내 어머니는 돌아오지 않았다
진달래가 피어나던
겨울 끝에서
이승을 뒤로하고 떠난 어미는
세월의 강을 건너고 또 건너도
선명한 그리움 되어 흐른다
부끄러움이었어도
여기 이승에서 부끄러움이 되는
외로움이었어도
여기 이승에서 외로움이 되는
모녀의 연이 더 살갑다
정녕 그리워서
못내 그리워서
겨울 하늘에 눈물로 수를 놓은 날들이
별이 되었다
살을 에는 추위에 얼린 침묵이
색 바랜 노을이 되었다
낙엽/ 이 정숙
나무는
백 가지 색깔로 이별곡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또 다른 서곡의 첫발이었다
해마다 겪어내는 일이건만
한 계절 내내 아프다
하늘 한 자락
햇살 한 움큼
바람 한줄기
빗물 한 방울
한데 섞여
연주되는 작별 인사
나무는
천 가지 소리를 따라 아리아를
부르기 시작했다
또 다른 가을의 음률이었다
해마다 마음자락을 잘라내는 일이건만
한 계절 내내 시리다
너의 하루는 어때/ 장억
별이
눈을 감는다
새벽이다
별이
기상을 한다
아침이다
별이
취침을 한다
저녁이다
별은
잠을 자면서
빛을 바라고
나는 햇볕을
보면서
빛을 발한다
나는 너에게/ 장억
너의 등뒤에서
너를 바라보며
네가 앞으로 앞으로
나가도록
힘껏 밀어줄게
멈추라면
멈추고
밀라면
힘껏 밀게
뒤는 돌아보지 마
앞만 보고
말로만 해
도착할 때까지
힘껏 외쳐
나는 신경 쓰지 말고
그녀들이 웃는다/ 정 경옥
숲에서
그녀들이 웃는다
할미꽃처럼 고개 숙인
인생들이
붉은 단풍을 목에 걸고
목도리도마뱀처럼 웃는다
여기 이뻐
저기 예뻐
와르르 몰려다니며
물 까치처럼 웃어 댄다
지난날을 한숨 쉬며
할미처럼 살았던 세월을
버려 버리니
그녀들,
구절초처럼 활짝 피어났다
하나
둘
셋
찰칵
그녀들이 웃는다
그 예쁜 모습 사진에
담아 두고
흐르는 시간이 아까울까
세상에서 가장 어여쁜
웃음으로 소녀처럼
까르륵 댄다
여길 봐
웃어 봐
하나, 둘, 셋
숲에서
그녀들이 웃는다
그녀들은 꽃을 사랑하였지만
꽃인 나는
그녀들의 웃음에 꽂혔다
완벽한 시인이여!/ 정 경옥
완벽한 시인이여!
당신의 시는 매일매일
얼굴을 바꿔 가며
우리에게 즐거움을 줍니다
그 찰나의 즐거움을 위하여
부끄럽게 옷을 벗습니다
옷을 벗지 아니하면
속살을 보여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는 벗은 몸에 새겨진
상처를 보며 애썼다고
쓰다듬어 줄 것이고
누군가는 흉하다고
흉을 볼지도 모르겠습니다
완벽한 시는
과연 무엇일까요
시인의 겸손은
벗겨지고
문드러지고
부끄러워서 숨어 버릴 때
가장 낮아져서
더 이상 갈 곳이 없어졌을 때
온몸에 문신이 새겨지고
아름다운 타투가 되어
스스로 빛날 것입니다
완벽 하지만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가을연가 /정 영화
내 님아
떠나시려거든 가을에 가소서
나뭇잎 하나, 둘... 떨어지고
파란 하늘 점점 높아져만 가는
살랑살랑 부는 바람에
머리카락 날리고
바스락바스락 나뭇잎 밟아가며
메마른 눈물방울 뚝뚝 떨어뜨리며
기꺼이 보내드리리다
내 님아
오시려거든 가을에 오소서
울긋불긋 단풍잎 한껏 물들이고
하늘 노을빛 수줍음으로 온통 붉히며
빨간 사과 한 잎 깨물며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인이 되어
행복의 시 읊조리며
하루, 이틀... 손가락 꼽아가며
당신 오실 날 기다리고 있으리다
내 님아
가시든지 오시든지 다 괜찮다오
모든 게 준비되어있는 가을 이라오
아무 일도 없이 가는 이 가을이
난 더욱 슬프다오.
첫댓글 총무님, 수고 많으셨어요
별말씀을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