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킹개요
ㅇ 언 제 : 2024. 6. 26(수)/737차
ㅇ 누 가 : ‘계룡’수요산악회원 36명/40,000원
ㅇ 어 디 : 문경새재(경북 문경시 문경읍 소재)
ㅇ 날 씨 : 맑음
ㅇ 코 스 : (A)이화령 – 조령산 – 신선암봉 – 조곡관 – 주흘관 – 1주차장
(B)조령 3관문 왕복(주흘관-조곡관-조령관, 약 13km/5시간)
트레킹정보
문경새재이야기
문경새재는 백두대간(白頭大幹) 조령산마루를 가르는 고개입니다.
양옆으로 조령산과 주흘산의 호위(護衛)를 받으며, 충북 괴산군 연풍면과 경북 문경시 문경읍을 잇고 있습니다.
예전엔 계립령(鷄立嶺)이 주요 교통로였으나, 태종 13년(1413년)에 새로 길을 냈습니다.
'조령과 죽령의 남쪽'이란 뜻을 내포한 영남(嶺南)과 기호지방(畿湖地方)을 연결하는 대표적 옛길로 명성만큼 유래도 다양합니다.
택리지(擇里志)에도 ‘조선선비의 반이 영남에서 배출되었다’고 할 정도로 수많은 선비와 길손들이 왕래하던 곳이었다죠.
고갯길이 워낙 높아 ‘나는 새도 넘기 힘든 고개’라 불렸는데, 주변에 억새가 많아 ‘억새풀이 우거진 고개’라는 뜻도 지녔습니다.
그 시절 죽령(竹嶺)길은 단양 남한강협곡 때문에 험했고, 우회길인 추풍령(秋風嶺)은 영동 금강협곡 때문에 한산했습니다.
그러나 조령(鳥嶺)길은 험해도 가까웠기에 과거(科擧)보러가는 경상도 선비들에겐 인기였다고 하네요.
죽령을 넘으면 죽죽 미끄러지고, 추풍령을 넘어가면 추풍낙엽처럼 떨어진다는 소문에 비해 문경새재는 넘기만 하면 나는 새처럼 비상한다는 구전(口傳)도 한몫했습니다.
높고 험해 일찍부터 국방요충지로 자리매김했지만, 임진왜란 당시 영남내륙을 지나 밀고 올라오는 왜군을 막아야했던 ‘신립’장군은 어리석게도 이곳 새재를 버리고 충주 달천에 배수진(背水陣)을 칩니다.
결국 크게 패한 뒤 새재에서 적을 막지 못한 걸 후회하며 충북 탄금대(彈琴臺)에서 투신합니다.
전후(戰後) 천혜의 장소에서 대비하지 못했음을 한탄한 ‘유성룡’이 관문 설치를 주장합니다.
선조 30년(1597년) ‘신충원’이 파수관(把守官)으로 임명되어 조령산성이 축조됩니다.
빼어난 자연경관과 유서 깊은 유적이 많이 남아있고, 고갯길에 얽힌 설화와 민요가 많은 것도 사람들이 찾는 이유입니다.
트레킹앨범
문경새재
들꽃이 아름다운 6월도 막바지로 향합니다.
‘호국보훈의 달’이건만, 세상사 참으로 어수선합니다.
답답한 마음을 추슬러 산악회 따라 나섭니다.
선비들의 벼슬길이었다는 문경새재(명승 32호)로 가는 길이게 감회(感懷) 또한 야무집니다.
새재트레킹을 한지도 어느덧 강산이 변할 정도의 세월이 흘렀네요.
턱 괴고 창밖을 바라보며 한참을 멍 때립니다.
모든 게 그립고, 또 그립습니다.
오늘 걸어내야 할 지도를 받아들고 상상하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경사로운 소식을 듣는다는 ‘문경(聞慶)’이기에 왠지 좋은 일이 생길 것도 같습니다.
새재는 영남은 물론 호남선비들까지 장원급제를 꿈꾸며 넘나들던 애환(哀歡)서린 고갯길이었습니다.
한반도 서남쪽 끝 진도(珍島)에서 부르던 ‘진도아리랑’의 사설(辭說) 첫 대목에 등장할 정도로 사연도 많습니다.
오늘 문경새재 트레일(Trail)은 또 어떤 이야기들을 만날까요?
걸음걸음마다 고운 마음과 푸른 세상이 어울린 꽃길이길 기대합니다.
이화령(梨花嶺)
먼 길 달려온 가마가 백두대간 ‘이화령(梨花嶺, 548m)’에 퍼져 산우들을 토해냅니다.
‘이화월백(梨花月百)’이란 말이 떠오를 정도로 아름다운 고갯마루였으나, 이젠 자동차는 터널을 이용하고 자전거족과 등산꾼들만 찾을 뿐입니다.
준족들이 산행채비에 바쁜데요, 언저리산행(^^)을 신청한 늙은이는 느긋합니다.
거대한 도계비(道界碑)에 눈 맞춤하고, 펼쳐진 산골짜기의 신비스러움에 잠시 취합니다.
조령산 북쪽으로는 월악산, 문수봉, 소백산 등 고봉들이 여전히 근육질의 몸매를 뽐내네요.
이곳은 ‘계룡’수요산악회 산행역사에서 잊을 수 없는 산행지중 하나입니다.
2010년 12월 8일 조령산행(305차) 때 악천후 속에서 노(老)부부가 낙오되어 산악구조대에 구조되는 사태가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고생 끝에 40여명의 회원들은 간신히 완주했으나, 낙오자들의 구조소식은 자정이 지나서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겨울산행임에도 호기롭게(?) “1일 2산(조령산, 주흘산)도 하는데...” 캐쌈서 얕봤던 게 문제였습니다.
날씨를 비롯한 산악정보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뼈저리게 느꼈던 산행이었습니다.
천만다행인 것은 당시 산악대장이던 ‘왕대’님이 낙오자들과 끝까지 함께 했다는 사실입니다.
정확한 판단과 책임감으로 더 큰 사고를 막았습니다.
당시 사투를 벌렸던 ‘왕대’님의 눈물겨운(^^) 산행기록이 카페에 생생하게 남아있습니다.
한숨 끝나면 하소연이 이어지던 밧줄구간들은 이젠 잘 정비되어있겠죠.
감회에 젖은 노인네가 용감하게 전진하는 꾼들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안전산행을 당부하고는 다시 가마에 올라 콧노래 부르며 새재로 향합니다.
[♪~문경새재는 웬 고갠가, 구부야구부야 눈물이로구나~♬]
문경새재길
조선팔도 고갯길의 대명사인 ‘문경새재’로 들어섭니다.
한양으로 향하던 선비들의 부푼 꿈과 백성들의 애환이 버무려진 곳입니다.
1981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후 이듬해 문화재보호구역이 되었습니다.
다양한 식생을 비롯하여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접할 수 있기에 여전히 기대되는 곳입니다.
커다란 ‘문경새재’아리랑비와 ‘옛길기념’보존비가 반깁니다.
문경시에서도 ‘옛길 걷기체험’과 ‘과거길 재현’ 등 다양한 행사를 개최하여 현대인들이 조선시대의 선비문화를 향유할 수 있도록 해준다고 하네요.
문경의 진산이기도 한 주흘산이 아는 척을 합니다.
예부터 나라의 기둥이 되는 영산(靈山)으로 매년 조정에서 제사까지 지냈다죠.
1관문에서 2관문을 거쳐 3관문까지 이어지는 길은 편도만 6.5km나 됩니다.
단순하게 바로 올라갔다가 내려온다고 해도 30여리가 넘는데요, 주변의 볼거리까지 보면서 걷는다면 그 이상을 걸어내야 합니다.
무더위에 해발고도 400m 이상을 올라야하는 트레킹이라 걱정이 되어 전동차를 기웃거렸으나 2관문까지 5,000냥을 달리기에 망설임 없이 포기했습니다.
짜잔~ 본격적인 걸음마를 시작합니다.
주흘관
첫 번째 관문인 ‘주흘관(主屹關)’을 통과합니다.
1관문을 지나 2관문으로 이어지는 길은 나지막한 경사길입니다.
하천 건너에 마련한 문경새재 오픈세트장의 궁궐모습도 힐끗힐끗 보입니다.
인위적인 구조물이라 오늘 코스에서 뺐는데, 내려올 때 함 생각해봐야겠네요.
조산(造山), 지름틀바우, 등룡정(登龍亭), 조령원터[鳥嶺院址], 마당바위, 주막 등을 지납니다.
옛날 나그네 숙소였던 ‘원(院)’터와 교대하는 신구관리들이 관인(官印)을 주고받던 ‘교귀정(交龜亭)‘ 탐방도 하산 길로 미룹니다.
다시 기도굴, 꾸구리바위, 소원성취탑, 산불됴심, 응암폭포, 휴게소를 통과합니다.
옛 기억들이 빠르게 스칩니다.
외로움만 켜켜이 쌓였던 추억창고를 뛰쳐나와선 금방 그리움으로 변하는데요, 아름답지 않은 풍경이 없듯 그립지 않은 추억도 없습니다.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에도 끼어들고 싶고, 살랑거리는 바람에 몸을 싣고도 싶습니다.
오가는 전동차가 자꾸 부럽지만, 부러우면 지는 거라면서 도가니를 재촉합니다.
조곡관
두 번째 관문인 ‘조곡관(鳥谷關)’입니다.
선조 27년(1594년)에 축성했다는데, 중성(中城)으로도 불립니다.
예전에 펄럭이던 성벽 깃발들은 보이질 않네요.
초여름 파란 하늘에 펼쳐진 멋진 구름들이 새 깃털처럼 보입니다.
약수터 소나무 숲엔 유산객들이 쉬고 있는 모습이 참 한가롭게 보이네요.
계획상 이곳에서 내려가려 했었는데, 본진이 조령산을 완주한다니 3관문까지 다녀올 작정입니다.
2관문에서 조곡계곡을 따라 10여리쯤 더 올라가야합니다.
길은 비교적 한산한데요, 사람이 붐비지 않아 조용하게 걷기에 좋습니다.
산행안내판을 볼 때마다 옛 생각에 잠시 멈칫댑니다.
한양 가던 선비와 상인들이 한 잔의 술로 여독을 풀고 정분을 나누던 주막도 보입니다.
서서히 해발고도를 높여서인지 무릎에서의 신음소리는 아직 들리지 않습니다.
구불구불하게 이어지는 길가로 바위굴전설, 주막, 이진터[二陣址]가 나타납니다.
새삼 ‘유성룡’의 징비록(懲毖錄)을 떠올리며, 유비무환(有備無患)을 걱정합니다.
어느 정치인의 말처럼 “쎄쎄~”만 찾다가는 자칫 나라를 잃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동화원(東華院) 휴게소를 지나니 3관문이 보입니다.
조령관
드디어 새재정상에 자리한 세 번째 관문인 ‘조령관(鳥嶺關, 642m)’과 눈인사를 나눕니다.
70년대 문화재보수 때 복원했다지만, 또 공사를 하고 있네요.
새재를 지키는 포졸들이 금방이라도 달려 나와 길손의 괴나리봇짐을 열어볼 것만 같습니다.
사방은 급경사인데, 산정은 비교적 평탄합니다.
원(院)과 진(鎭)터를 비롯하여 군창(軍倉)터가 있던 곳입니다.
3관문을 넘어서면 충북 괴산군 연풍새재 옛길로 이어집니다.
여전한 모습에 반가운데요, 옛 선비들의 흔적을 많이 재현해 놓았습니다.
함께 산행하며 멋진 추억을 남겼던, 그때 그 산우들이 그립습니다.
땀깨나 흘렸더니 막걸리 생각이 간절합니다.
마침 고풍서린 휴게소에서 옛 음악을 흘리며 유혹합니다.
방앗간을 본 참새보다 더 빠른 속도로 들어가 외칩니다.
“이리 오니라~!” ㅋ
입신양명(立身揚名)을 꿈꾸며, 한양으로 과거보러 가기위해 새재를 넘던 이들이 지친 발걸음을 멈춰 하룻밤 묵어가던 곳입니다.
시원한 막걸리와 함께 열무국수 한 그릇을 게 눈 감추듯 해치웁니다.
“꺼억~!”
트림 한 번에 근심걱정 몽땅 사라집니다.
혼자라서 아쉽지만, 행복하네요. ㅎ
금의환향(錦衣還鄕)
충청도에 발만 걸쳐보고는 다시 ‘조령’천 따라 경상도로 내려가야 합니다.
내려갈 땐 '금의환향'길을 택했습니다.
숲속에 움츠리고 있는 책 바위에는 선비들의 간절함이 배어있는 듯합니다.
6월의 문경새재는 풍경에 진심입니다.
시선이 가는 곳마다, 발걸음 닿는 곳마다 무수한 질감의 초록들이 경쟁이라도 하듯 뽐냅니다.
절로 경탄을 자아내게 만듭니다.
모든 욕심 내려놓으니, 가진 게 없는 빈털터리여도 속상하지 않습니다.
산불을 막기 위해 세워진 한글표석 ‘산불됴심비(지방문화재자료 226호)’도 눈길을 끄네요.
[목련이 지는 것을 슬퍼하지 말자.
피었다지는 것이 목련뿐이랴.
기쁨으로 피어나 눈물로 지는 것이 어디 목련뿐이랴.
한낱 목련이 진들 무에 그리 슬프랴] (‘박용주’/목련이 진들)
삶의 무게로 등이 휠 때마다 곱씹었던 시구(詩句)입니다.
지난 선거에서 낙선(落選)한 사람이 읊조려 빛이 바랬다지만(^^), 옛날 과거에 낙방한 선비들의 마음도 이렇지 않았을까요?
황망하게 이승의 끈을 놓아버린 정다웠던 이들까지 생각납니다.
교귀정(交龜亭)
옛 현감들의 임무교대 장소였다는 ‘교귀정(交龜亭)’에도 올라봅니다.
고갯길 절반쯤 되는 곳으로 계곡과 마주보는 구릉(丘陵)에 세워진 정자인데요, 금강소나무 숲에서 끊임없이 시원한 약수가 흘러나오는 것도 특이합니다.
산자락의 무게를 씻어내며 흐르는 용추폭포의 맑은 물소리도 명소(名所)로의 등극에 일조했겠죠.
단청 없는 고색창연한 자태에서 소박하게 늙어가는 여인네의 지조가 느껴집니다.
문경경치 1위에 올랐다는데, 어쩜 떡하니 서있는 저 소나무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쌓인 돌담은 지난 세월이 남긴 질곡(桎梏)의 흔적 같습니다.
등 굽은 소나무를 보노라니, 문득 내가 감당해야할 십자가가 연상됩니다.
[♪~너를 보내는 들판에 마른 바람이 슬프고, 내가 돌아선 하늘엔 살빛 낮달이 슬퍼라.
오래도록 잊었던 눈물이 솟고, 등이 휠 것 같은 삶의 무게여
가거라 사람아 세월을 따라, 모두가 걸어가는 쓸쓸한 그 길로
이젠 그 누가 있어, 이 외로움 견디며 살까
이젠 그 누가 있어, 이 가슴 지키며 살까
아 저 하늘의 구름이나 될까, 너 있는 그 먼 땅을 찾아 나설까
사람아 사람아 내 하나의 사람아, 이 늦은 참회를 너는 아는지~♫] (‘임희숙’/내 하나의 사람은 가고)
아무도 없는 정자에 올라 음정박자 무시한 채 바락바락 불러봅니다. ㅎ
용(龍)이 오른 곳이라 전해지는 ‘용추(龍湫)’폭포는 그 깊이를 헤아릴 수가 없다죠.
정자와 주막 터, 성황당 등이 있어 다양한 역사와 문화의 흔적을 음미할 수 있어 좋습니다.
세족시설에서 발 꼬랑내 씻어내고는 못 본 척 오픈세트장을 지나칩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맨발로 걷는 모습들이 부럽습니다.
주흘관
급제한 선비들이 의기양양 걸었을 문경새재는 조선시대 옛길을 대표합니다.
이길 외에도 추풍령과 죽령고개가 있었지만, ‘추풍낙엽처럼 떨어질까?(추풍령)’ 또는 ‘대나무처럼 미끄러질까?(죽령)’를 염려하여 이곳 새재를 택했다죠.
요즘 초여름 더위가 광기를 부리는데, 산속 나무들이 그늘을 만들어줘 고맙네요.
풍경들 덕분에 돌아 내려오는 길도 지루하지 않습니다.
다시 ‘주흘관(主屹關)’을 통과합니다.
숙종 34년(1708년)에 설치된 문인데요, 그래도 옛 모습이 잘 보존되어있습니다.
주흘관에서 바라본 문경새재와 성벽을 둘러싼 험준한 산세가 천혜의 요새 같습니다.
수천의 병사들이 머물러도 좁지 않을 것 같은 넓은 잔디밭을 가르는 웅장한 성벽모습은 여전하네요.
문경새재를 걸으면 건강이 보인다는 말이 있습니다.
푸릇푸릇한 자연경관이 싱그럽고 상쾌한 기분을 일깨워 걷기에 아주 좋습니다.
펼쳐진 녹음사이로 우뚝 선 주흘관 성벽이 참 예쁩니다.
공기와 나무, 그리고 물소리까지 다 시원하고 좋습니다.
간만에 상쾌한 걸음마였습니다.
옛날 일곱 선녀가 구름을 타고와 목욕을 했다는 ‘여궁(女穹)’폭포 이정표 앞에서 망설여보지만, 혼자라서 쉽게 포기합니다.
뒤풀이
뒤풀이 장소는 도로가에 있는 ‘새재할매집’입니다.
하나둘씩 무리지어 내려오던 꾼들이 모여들자, 각자의 영웅담에 식당 안이 시끌벅적합니다.
꽤나 힘들어했던 조령산행 팀이 타는 목마름을 해소하기 위해 거침없이 들이킵니다. ㅋ
[처음부터 길은 없었다.
이 길이 맞다싶으면 수천 갈래로 흩어지는 길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길 위에서 방황한 적도 많았다.
막다른 골목에 봉착할 때면 가끔 당황하기도 했다.
살다보니 그랬다.
동쪽인 줄 알았는데 서쪽이었고, 남쪽으로 걸었는데 북쪽이었다.
미궁 속에 빠진 생쥐처럼 출구를 찾기 위해 이리저리 궁리해보지만
길은 보이지 않고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도 했다.
매번 선택의 기로에서 시행착오를 반복하며 살아가는 우리네 인생길
본래 인생에는 정답이 없었다.
지금껏 네가 걸어온 길
그 길이 바로 세상에서 가장 빠른 지름길이다] (‘권수진’/문경생태미로공원에서)
미로처럼 얽혀 스스로를 당황케 만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던 인생길입니다.
잘 가고 있는 줄 알았는데, 막다른 길이기도 했었습니다.
출구 찾아 미로를 헤매면서도, 다시 되새기고 또 걷던 지난 시절이었습니다.
꼬불꼬불한 길을 걸었지만, 내가 걸어온 길에 후회하지 않으렵니다.
뒤풀이가 흥겹습니다.
추억들로 인해 더욱 Healing이 되었던 행복한 걸음이었습니다.
어쩌면 꼬였던 마음도 조금은 편안해졌습니다.
에필로그
요즘 사람들은 메시지(Message)보다 메신저(Messenger)에 관심이 많습니다.
메시지는 메신저에 따라 그 내용과 의미가 달리 전달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메신저가 누구인가에 따라 초점이 모아지기도 합니다.
대개 힘 있는 메신저는 지역이나 단체의 오피니언 리더(Opinion leader)들입니다.
사노라면 어떤 형태이건 소속감이 필요합니다.
타인과 유대감을 형성하려는 근본적 욕구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더불어 살아야하는 요즘엔 더욱 절실합니다.
공통된 관심과 진정성은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줍니다.
메신저의 후광효과는 사회경제적 지위보다도 신뢰, 역량, 매력 등이 영향력을 발휘합니다.
신뢰는 어떤 인간관계에서든 결정적입니다.
그런데요, ‘계룡’수요산악회에는 훌륭한 메신저들로 가득합니다.
오늘도 임원진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행복한 하루를 보냈습니다.
믿음 때문에 험한 길도 꽃길이 됩니다.
점점 산행보다도 사람이 좋아지려 합니다.
이심전심(以心傳心)입니다.
수고하신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목욜(6. 27) 오후에 갯바위가
첫댓글 병원 다니느라 산행기가 쪼까 늦었네요.
행복한 하루였습니다.
305차 산행당시 소인 또한 하마터면 낙오될뻔 했지요. 3관문으로 나와야 되는데 1관문으로 한참을 내려가다 되돌려오다보니 늦어져서 여미지님이 우리집으로 전화하는 소동이 있었답니다 잠시 추억에 젖어봅니다 ㅎㅎ
그랬었군요. ㅎ
벌써 14년 전 이야기네요.
당시 함께 했던 산우들은 간 곳이 없고 혼자서 곱씹었습니다.
조령산을 넘는줄 알았더니 문경새재길이었구먼
생각만 해도 아득했던 그날의 기억이 새롭습니다.
그때 끝까지 남아 산대장 기다렸던 보라매, 여미지는 어딜갔나.
역시 끼꾼의 작품에 찬사를 보냅니다.
다녀온 꾼들에 의하면 아직까지도 산길정비가 덜 되었다고 하더군요.
새재길만 혼자서 걸었습니다.
추억을 더듬으며... ㅎ
군동기생 중대 모임시 문경 새재코스 포함 부부동반으로
일주했던 코스로서 당일 역시 동기생 5부부간 장태산 휴양림
1박 정기모임 관련 불참하여 아쉽지만 덕분에 잘 감상했습니다.
갯바위님 필력은 여전하시네요.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무더위에도 산길은 참 좋았습니다.
휴게소도 몇군데 있어 심심치도 않겠더라구요.
경지에 오른 산악회 뒤풀이에도 감탄했습니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