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시원이가
문시원
얘들아 안녕! 우리 이제 한 학기만 더 지내면 졸업이야. 금산간디 중학교에서 보내는 마지막 여름 이라는 게 아직 잘 실감이 안나. 학교에서 보내는 여름이 고작 두 번째지만 몇 번이고 같이 보낸 것 같아. 우리가 학교에 입학 했을 때 8기 언니 오빠들은 태어날 때부터 3학년 인 것 같고 그랬는데 벌써 우리가 3학년 이야. 도보할 때만 해도 지리산 언제가지, 필리핀 언제가지, 졸업 언제하지 했는데 벌써 논문 중간심사까지 끝냈다니. 같이 보낸 시간이 이렇게 많아졌구나 싶어. 얼마나 돼야 안 싸울까 하지만 1학년 때를 생각해 보면 나도 그렇고 너희도 그렇고 다들 많이 큰 것 같아.
3학년이나 되고 한학기가 지나갔는데 우리 뮤지컬 할 때 서로를 너무 안 챙긴다고 한 거, 솔직히 아직까지 잘 안 되는 것 같아. 1학년 때 부터 귀에 딱지 앉을 만큼 많이 들었는데 아직도 이런다니. 2년 동안 안 고쳐진 건데 한번에 고칠 수는 없겠지? 이번 기말에도 논문 해야 한다고, 공연 준비한다고 같이 하는 거에 못 들어간다고 했잖아. 생각 해 보니까 집에서 놀 시간에 기말 준비 하고 학교 와서 공연 준비나 다른 일들 하면 되는데 나도 집에서는 좀 쉬어도 된다고 생각 했어. 그래놓고 소식지 디자인 때문에 바쁘다고, 페미니즘 영상 만들어야 한다고 축만사도 발기단도 에심단도 아무것도 안 들었어 미안. 이제 나 좀 괜찮으니까 다음 학기에는 논문도 열심히 하면서 학교일도 열심히 한번 해 볼게.
나 학기 중후반에 좀 힘들었어. 처음에는 진짜 너무너무 힘들었는데 그 다음 주부터는 기분이 좋지는 않지만 그래도 막 우울하지는 않았어. 그런데 어떤 일을 하려고 하면 너무 버거워서 더 이상 하고싶은 마음이 없었어. 내가 힘들 때 쯤 우리 대부분 힘들었던 것 같아. 신나게 할 마음도 없고, 내가 시간을 낼 의욕도 없어서 서로에게 미루기만 했어.
나는 힘들면 쉬어도 좋다고 생각해. 힘든데 안 쉬면 더더 힘들어질 거야. 하지만 그 때는 다 힘들어서 아무도 학교를 이끌어 나갈 힘이 없었던 것 같아. 지금 너희는 어떨지 모르겠는데 나는 좋아. 그러니까 나한테 와서 힘든 거 말해도 돼. 나는 너희도 힘든데 내가 말하면 고민 할 거리가 늘어나서 버거울까봐 안 말했어. 나 요새 진짜 좋아. 하나도 안 버거워.
우리 각자 힘들어도 말 못할 때 눈치 보지 말고 얘기하자. 이런 얘기 하려고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얘기 하는 시간도 있고, 2주글도 있지만 용기가 없어서 말 못 할 수도, 지금 얘기하고 싶은데 내 차례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할 수도 있잖아.
나는 용기가 없어서 못 말했어. 안 말해서 혼나는 것도 무섭지만 아무래도 힘든데 힘들다는 것에 대해 뭐라고 하는 걸 듣는 게 더 싫어서 안 말했어. 진짜 진짜 힘들 때, 우리한테 말 하면 조금 더 나아지지 않을까? 기숙사나 매점, 놀이터, 교실, 아니면 우리 집에 놀러올래?
10기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