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디에고의 항모 미드웨이 선상에서 - 미국 서부 여행(2)

[순우]

둘쨋날의 여행지 샌디에고 San Diego는 생소한 곳이다. 들어본 적은 있지만, 아무런 감이 없는 곳이다. 인구가 백만이 넘는 도시인만큼 메이저 리그 야구팀이 있을 게 분명한데 그 이름을 들어본 기억조차 없다. 샌디에고로부터 로스앤젤레스로 태평양 연안을 따라 달리는 기차 여행이 여정에 포함되어 있다는 말에 "그거 괜찮은데!"하면서 이번의 여행 프로그램을 선택하도록 거든 적이 있다. 태평양 연안의 바닷가를 기차로 달리는 여정은 여행에 대한 나의 낭만과 향수를 자극했다. 우리의 동해선 열차를 타고 포항으로부터 강릉까지의 해안 철도를 달리게 될 기차 여행과도 같이 말이다.

그런데 이번 여행은 주로 캘리포니아 북부의 샌프란시스코와 미 서부 지역의 여러 국립공원을 탐방하는 것이 주요 여정. 캘리포니아의 남쪽, 몍시코 국경과 연해있는 샌디에고 여행은 단 하루의 시간이 주어졌다. 그도 저녁까지는 LA로 돌아와야만 다음날 샌프라시스코로의 여행이 순탄하다. 또 왕복 이동거리가 400km쯤의 제법 먼길이어서 아침 일찍 길을 떠나야만 했다. 샌디에고의 문화공원이라고 하는 발보아 파크 Balboa Park를 시작으로 해안에 영구 정박되어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는 항공모함 미드웨이호에 올라보고, 시내의 멕시코 민속마을을 둘러본 뒤에 Old Town역에서 기차를 타고 로스앤젤레스로 되돌아오는 것이 이날의 여정이다.

샌디에고 발보아공원의 스페인 풍 건물

LA근교에서 시내를 연하는 고속도로는 14차선에 이르는 넓은 길이다. 아침의 러시아워인지라 오가는 길 양쪽 모두가 차량의 행렬로 가득하다. 우리를 태운 대형버스와 몇몇의 대형 트럭을 제외하고는 도로 위의 거의 모든 차량은 승용차 내지는 적재함이 있는 승용차량이다. 자동차의 나라 미국답게 우리와는 달리 Highway보다 Freeway라고 부른다고 한다. Freeway답게 그 넓은 땅이 모든 곳으로 자유롭게 갈 수 있도록 도로로 촘촘하게 연결돼 있다. 그리고 미국 전역의 모든 도로 통행이 무료라고 한다. 가끔씩 우리나라 브랜드의 승용차가 눈에 띤다. 도로는 세계 모든 브랜드의 차량이 집결한 그야말로 차량의 전시장이나 다름없다.

2시반 반 여를 달려 도착한 곳은 Balboa Park라는 넓은 도시 정원. 스페인 식민지 시절의 건축물과 광장, 스페인 정복자 코르테즈의 이름을 딴 호텔, 극장과 아트 뮤지엄, 자연사박물관 등 둘러볼 것이 한두 곳이 아니다. 구름 한점없이 맑게 갠 파란 하늘과 부드러운 바닷바람, 여유로운 아열대풍의 늘푸른 공원 풍경... 샌디에고는 항상 온화한 지중해성 기후로 날씨가 좋고 아름다워서 미국인들이 가장 살고 싶어하는 도시 중의 하나라고 한다. 오는 길에 짙게 끼었던 안개가 모두 걷히고 나니 하늘이 수정처럼 맑고 푸르다.

주마간산식 둘러보기를 마치고 향한 곳은 근처 해안의 바다 위에 떠있는 항공모함 미드웨이 Midway. 퇴역을 해서 해군 군사박물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2차세계대전 중에 진수된 작은 편에 속하는 항공모함이라고는 하지만 갑판의 길이가 축구장이 세 개의 길이보다도 더 길다. 퇴역 장병들의 자원봉사로 운영되는 이 항모박물관은 순항 당시의 모습 대부분을 그대로 유지한 상태로 전시되고 있다. 갑판 위에 오르면 2차세계대전 전승기념일의 해프닝 전쟁에서 돌아온 해군 수병과 어느 간호사의 키스 모습인 V-J Day Kiss의 커다란 바닷가 잔디공원 위의 동상을 내려다 볼 수 있다.

미드웨이호 박물관 앞에서의 셀카 한 장

미국 자유의 살아있는 상징이라는 미드웨이호 안내 입간판

미드웨이호 선상에서 어느 미해군 장병과 함께

배에 오르기 위해서는 'USS MIDWAY MUSEUM'이라는 큰 간판이 있는 건물을 거쳐야 한다. 그 건물의 왼쪽 한편에는 '41 America's Living Symbol of Freedom'이라는 입간판 하나가 세워져 있다. 뜬금없는 캐치프레이즈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곧 그 의미를 알아챌 수 있었다. 그것은 이 전함이야말로 미국을 찾아온 청교도들과 건국의 아버지 Founding Fathers가 쟁취한 자유, 그리고 그들이 건설한 자유민주 국가를 지키는 힘의 상징이라는 뜻이리라. 자유는 모름지기 강력한 힘에 의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었다.

미국 여행을 계획하면서 미국의 동부 지역을 여행할까, 아니면 서부 지역을 여행할까를 잠깐 고민했다. 내게는 사실 자유 이념의 가치를 정립하고 자유민주국가를 건설한 미국의 본고장이자 기념비적인 역사의 산실인 동부가 더 의미있는 여행지가 아닐까 싶었다. 미국 독립과 자유의 성지인 필라델피아, 최초의 영국인들이 Mayflower호를 타고 도착해서 New England를 건설하기 시작했던 매사추세츠, 기회의 나라 미국으로의 이민 관문이었던 Ellis Island와 미국 최대의 도시 뉴욕, 미국의 여러 문인과 자연주의자들의 체취가 가득한 여러 곳, 그리고 시기적으로 온대의 자연이 만드는 가을의 단풍이 특히나 아름답다는 곳 미국의 동부... 이런 동부가 사실 내 마음을 더 강하게 끌어당겼다. 하지만 동부는 더 멀기도 하고 여럿이 함께하는 가족 여행이니만치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서부로의 여행을 택하게 되었다.

시내 남쪽에 자리한 멕시코민속마을은 멕시코풍의 가옥과 건물에서 멕시코 전통의 각종 토산품과 직물, 골동품 따위를 판매하는 곳이다. 사실 미국의 서남부 지역은 16세기부터 스페인의 정복자들이 먼저 들어와서 300년 가깝게 그들의 식민지를 건설한 곳이다. 하지만 그 대부분의 지역을 동부로부터 서쪽으로의 개척과 함께 북에서 남으로의 영토 확장을 꾀한 미국이 개척, 침략과 전쟁을 통해서 차지했다. 1778년 동부의 13개 주로 출범한 미합중국 The United States of America을 제외한 대부분의 미국 영토는 전쟁을 통해서 빼앗거나 협상 또는 매수를 통하여 확보한 땅이다. 미 북중부 지역의 이른바 Lousiana Territory로 불리던 프랑스의 영토뿐만이 아니라, 캘리포니아와 아리조나, 뉴멕시코, 유타와 네바다 등의 미국 남서부 지역의 대부분은 스페인과 싸위서 빼앗은 땅이다. 미국의 역사는 실로 거대한 땅따먹기의 드라마틱한 역사가 아닐 수 없다. 때문에 이 지역에는 지금도 스페인 혈통의 히스패닉이 많이 살고 있다고 한다. 이 지역 대부분의 지명이 스폐인식 이름을 가지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점심 후 우리가 향한 곳은 태평양연안철도(Pacific Coast Railway)의 열차를 탈 수 있는 샌디에고 Old Town역. 기차는 태평양 해안을 따라 LA를 거쳐 실리콘 밸리가 있는 산호세 가까이까지 연결되는 500여 km의 기차 노선이다. 하지만 우리가 기차를 타는 것은 Old Town역으로부터 북쪽 해안의 약 60km의 거리에 있는 Oceanside역까지 약 1시간 정도의 시간. 기차를 타고는 차창 밖으로 태평양의 너른 바다와 일렁이는 푸른 파도, 굽이치는 해안선의 풍경 따위를 기대했다. 하지만 태평양 쪽에서 부서져 내리는 눈부신 햇빛과 희뿌연 역광으로 인해 기대했던 풍경의 낭만과 정취를 보고 느끼기는 어려웠다. 더구나 차창을 통해 들어오는 따사한 햇살이 졸음을 몰고와 깜빡 잠이든 후 눈을 떴을 때는 기차가 어느새 우리가 내려야 할 Oceanside역에 도착하고 있었다.

태평양연안철도 기차를 탄 샌디에고 Old Town 간판

기차역으로부터 다시 두 시간 여의 버스 여행. 북창동순두부 한식집에서 순두부로 저녁을 들고 새로운 잠자리로 이동. 하루의 낮시간 동안 참으로 먼 거리의 여러 곳을 구경했다. 색다른 풍경과 모습, 하지만 오늘의 일정은 그리 긴 게 아니라고 했다. 내일부터 시작되는 샌프란시스코와 서부 내륙 국립공원으로의 여행은 보다 긴 강행군이 될 거라고도 했다. LA의 북부 근교로 돌아와 어느 퇴역 공군 장교가 경영하고 있다는 Airtel Plaza라는 아담한 호텔에서 오늘의 여장을 풀었다. (2023.10.19.)

[이진사]

직접 여행하는 것이 최고이지만 시간과 여건의 제약으로 때론 이런 간접 여행도 재미있고 매우 유익한 것 같군요. 샌디에고는 가보지 못했지만 샌프란시스코와 LA에 대한 소개에서 옛날 여행을 돌이켜보는 회상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월몽]

8년 전의 여행추억을 꺼집어내는군요. 2015년 5월 소인도 샌디에고에서 많은 걸 보고 느끼고 왔죠. 미드웨이 박물관 방문은 잊혀지지 않아요. 마침 5월이 미국의 현츙월이어서 미국민의 대군사랑을 직접 체험했지요. 정말 배울 점이 많았습니다.

[해암]

오래 전에 미국 여행을 보름 가량 다녔었는데, 그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이 미국 땅의 광활함이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납니다.
샌디에고는 못 가본 곳인데 대신 글로 사진으로 느껴봅니다. 감사, 잘 읽고 있습니다.

[멋진사랑]

나도 십여년전에 미 서부 4개의 케년을
여행했는데 센디에고는 못갔어요

우리나이에는 아릉다운 추억으로
살아가는 나이인바 순우는 좋은
추억을 만들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