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이야기]
정부 인체감응솔루션 연구단장
유범재 박사
200명의 로봇 박사 모였다, 한국형 아바타 만든다
/조선일보 : 2012.10.20.
아바타(avatar)는 자신의 분신을 뜻한다. 2009년 개봉한 영화 '아바타'에서 하반신 마비자였던 주인공 제이크는 자신의 의식을 불어넣은 아바타를 통해 마음껏 뛰고 달린다. 판도라 행성 '나비족'의 여전사를 만나 사랑을 하고 지구에서 온 악덕 기업과 싸움도 벌인다. 영화를 봤을 땐 뜬구름 나라 이야기처럼 느껴지지만 이를 현실화하려는 과학자가 있다. 불과 20년 전만 해도 화상통화를 할 수 있을지 누가 알았겠느냐는 심정으로 만났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유범재(49) 박사는 교육과학기술부가 지원하는 실감교류인체감응솔루션 연구단장이다. KIST와 한국과학기술원(KAIST), 한국전자통신연구원 등에서 차출된 200명의 과학 수재를 이끌고 글로벌 프론티어 사업의 일환으로 한국형 아바타 기술을 개발하는 게 그의 임무다. 똑똑한 외모와 달리 말솜씨는 어눌했다.
―영화 아바타가 정말 현실화되는 겁니까?
"영화를 보면 한 사람이 장치 안에 들어가지요. 그리고 복제된 아바타가 있습니다. 둘 사이엔 연결된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무선통신을 통해 아바타와 장치가 연결되고 인간 생각을 무선으로 전달받은 아바타가 그대로 동작해준다면 개발은 불가능한 게 아니지요."
―아바타도 감정을 가질 수 있습니까.
"아바타는 자신의 감정을 갖는 게 아니라 뒤에 있는 사람의 감정을 가지는 것이겠지요."
―영화에는 아바타가 나비족과 사랑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지나친 상상 아닙니까.
"요즘 애인을 안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베개, 멀리 있지만 서로 뽀뽀하는 느낌을 줄 수 있는 장치, 그런 제품이 가끔 신문에 등장합니다. 일본 연구진들이 그런 것을 만들어서 발표해요. 예를 들어, 손이 달린 로봇이 공을 만져요. 공이 말랑말랑해요, 그 말랑말랑한 느낌을 멀리 있는 조종자에게 전달해 줄 수 있거든요, 그것과 똑같은 원리입니다. 물론 실제 사람이 하는 것처럼 리얼하진 않지만 중요한 건 그런 연구가 꾸준히 시도되고 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아바타와 같은 로봇은 언제쯤 출현할까요.
"시점을 장담하긴 어렵고요. 인간처럼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는 로봇 몸체를 만들어야 하고 그 로봇과 인간을 맺어주는 인터페이스(연결장치), 두 분야가 동시에 성공해야 하거든요. 그러나 요즘 과학 발전 속도로 보자면 10~20년 새 확 바뀌잖아요. 그래서 우리도 준비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른 나라 연구를 그냥 지켜볼 수만은 없죠."
―공상 과학 영화에 등장하는 장면이 나중에 현실화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름대로 근거를 갖고 제작하니까요. 2009년도에 '써로게이트'라는 영화가 있었는데 사람을 대신하는 로봇이 등장합니다. 사람들이 자기가 나이 들어 가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서 젊었을 때의 모습을 가진 아바타를 만들어 회사 가서 일도 하고 시장도 보고 그런 일상생활들을 다 하는 거예요. 거기에도 아바타와 사람을 연결시켜주는 인터페이스 장치가 있죠. 그 사람이 의자 위에 앉아서 눈 위에 뭘 써요. 그걸 통해서 그 로봇과 이 사람은 하나가 되는 겁니다. 영화 '매트릭스'에도 비슷한 장면이 있지요."
영화를 현실로 만든다 페이스북 같은 가상공간에서 서로 만나 손잡고 대화하는 느낌을 부여하는 게 인체감응솔루션 여기에 로봇 제조 기술이 합쳐지면 바로 아바타가 만들어지는 거죠
―인체감응솔루션은 무슨 뜻입니까.
"말 그대로 인체가 느끼고 반응하는 솔루션(확장공간)을 개발하는 겁니다. 가령 페이스북도 하나의 가상공간입니다. 거기에 많은 사람이 들어와서 이용하죠. 바로 옆에 있다는 느낌을 주는 건 아니지만 다른 사람하고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주지요. 우리가 연구하는 인체감응 확장공간은 그런 가상공간에 함께 있는 느낌까지 부여해주는 기술입니다. 서울의 아들과 부산의 아버지가 입체TV 같은 장치를 통해 만납니다. 그런데 그냥 얼굴만 보는 게 아니고 그 속에서 서로 손을 잡고 바로 옆에서 이야기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해주는 거예요. 그런 공간을 우리는 인체감응 확장공간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실제 만나는 건 아니잖아요.
"물론 그렇죠, 가상공간에서 만나 서로 욕하거나 만지는 느낌을 주는 것까진 개발이 가능하다는 겁니다. 외국 유학 간 아들이 있습니다. 지금 과학기술은 영상을 통해 대화하는 수준입니다. 하지만 아들 녀석 어깨동무도 해주고 만져 보고 싶겠지요. 그 느낌을 줄 수 있는 기술 개발이 가능합니다. 마찬가지로 가상공간에서 할아버지와 손자가 만나 손잡고 대화도 할 수 있고요. 이런 기술과 로봇 제조 기술이 합쳐지면 바로 아바타가 만들어지는 겁니다."
"1년 내 걷는 로봇 만들라" 2004년 정부서 내려온 특명으로 밤새우며 만들어 낸 마루와 아라 여덟 걸음 떼던 날 잊히지 않아
―2005년 1월 주인을 알아보는 '네트워크' 로봇인 마루와 아라를 최초로 만들었습니다.
"2004년 2월 정부에서 '특명'이 내려왔어요. 1년 내에 걷는 로봇을 만들라는 겁니다. 로봇과 바이오를 정부 역점 사업으로 정했을 무렵이지요. 당시 바퀴로 굴러가는 로봇이라면 몰라도 두 발로 걷는 로봇은 우리 기술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할 때였습니다. 연구원 내 많은 분이 과제를 반납하자고 했지요. 그런데 젊은 연구원들이 '한번 해보자'는 겁니다. 그렇게 팀을 꾸렸습니다."
―그래서요?
"9개월 만에 로봇 몸체와 두뇌에 해당하는 컨트롤 장치를 완성했는데 걷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한 걸음 떼면 중심을 잃고 넘어지는 현상이 2개월 이상 지속됐어요. 매일 밤샘 작업을 했지만 답답했답니다. 어느 날 새벽 2시쯤인가 한 연구원이 '걸어요'라고 소리치더라고요. 실험실로 달려갔더니, 이 녀석이 글쎄 여덟 걸음을 걷는 게 아닙니까. 그 기쁨은 잊을 수 없습니다."
―그 뒤에 어떻게 됐습니까.
"장관에게 보여주기 전에 국장급 간부들 앞에서 시연하기로 했어요. 로봇이 혼자 걸어나와서 인사하고 간단한 동작을 보여준 뒤에 주인 인식기능을 보여주려고 했답니다. 간부들 앞에서 '스타트' 버튼을 눌렀는데, 아 그 녀석이 바로 헛발을 짚더니 꽈당 넘어지는 거예요. 여기저기서 '이게 뭡니까'라는 소리가 나오고, 다들 한심하다는 표정을 짓고 돌아갔습니다. 저와 연구원들은 망연자실한 상태가 됐고요."
―원인이 무엇이었습니까.
"우리가 테스트할 때는 로봇에 겉옷을 입히지 않은 상태에서 실험을 해요. 뼈대만 있는 모습이지요. 그런데 외부 손님 앞에선 로봇의 외관을 다 갖춰야 하잖아요. 거기에서 문제가 생긴 겁니다. 로봇 내부에 컴퓨터가 있습니다. 실험할 땐 껍데기가 없다 보니 열이 자연스럽게 발산됐는데 옷을 입혀 놓으니까 열이 못 빠져나간 거예요. 컴퓨터가 열 받아서 모든 컨트롤러가 오작동했던 겁니다."
―그 문제는 어떻게 해결했습니까.
"그래서 로봇의 등 부위에 구멍을 뚫고 팬을 달아서 내부 열기를 외부로 빼게 했더니 아무렇지 않은 듯 다시 걷더라고요. 문제점을 해결했다고 보고하니 당시 진대제 장관이 당장 보자고 했습니다. 다행히 진 장관 앞에선 한 번에 성공했습니다. 이후 대통령 앞에서도 시연했고요. 그게 연구 1년 2개월 만인 2005년 3월쯤이었습니다."
―춤추는 로봇도 만들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네, 2008년 10월이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상하체를 함께 움직이는 로봇은 거의 없었어요. 팔만 움직이든가 발만 움직이든가 한 가지 동작만 하는 거지요. 그 정도 로봇으로는 식탁도 못 닦아요. 식탁 닦으려면 팔과 하체가 같이 움직이잖아요. 그래서 사람 동작을 모방하는 기술과 로봇 전신을 제어하는 기술 그 두 개를 묶어 상반신과 하반신이 따로 움직이는 로봇을 만들었지요. 당시 원더걸스의 '텔미'를 췄습니다."
로봇 경쟁, 이제부터 시작이다 美·日이 로봇 강국이지만 우리가 먼저 좋은 아이디어 내서 세상에 없던 것 만들어내면 돼 그것이 바로 나의 사명이자 운명
―로봇 선진국은 어디입니까.
"아직까진 생활형 로봇보다 공장에서 이용하는 산업용 로봇 시장이 훨씬 큽니다. 미국 독일 일본 기업들이 선두이지요. 우리나라는 그다음 그룹이고요. 산업용 로봇 말고 생활밀착형 로봇의 경우엔 일본이 꽤 앞서 있는 편입니다."
―일본이 일찍부터 로봇 산업에 많은 투자를 했던 모양입니다?
"네, 하지만 희망적인 건 아직 대표적으로 제품화된 것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투자는 많이 했는데 의외로 제품이 안 나온 거죠. 가정에서 쓰는 청소로봇이나 학교, 유치원 같은 데서 간단하게 교육용으로 쓰는 로봇 외에는 내놓을 만한 게 없어요. 우리가 좋은 아이디어를 먼저 내놓으면 언제든지 1등을 할 수 있는 분야가 로봇 산업입니다. 하지만 일본은 우리보다 거의 10년 먼저 로봇에 관심을 기울인 터라 인프라 차원에서 한국을 꽤 많이 앞서 있습니다."
―10년 내 로봇산업이 자동차 산업 규모를 추월한다는 연구 보고도 있는데 우리는 언제부터 로봇 산업에 관심을 가졌습니까.
"실제 로봇에 대해 본격적으로 투자를 하기 시작한 게 2004년도부터예요. 정부에서 로봇 산업을 육성한다고 선언한 그때부터 로봇에 관심을 기울인 것입니다."
―로봇은 한 사람이 만드는 게 아니라 여러 분야의 전문가가 모여서 만드는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전기전자, 제어계측, IT분야, 기계 이런 분야들이 다 함께 묶여요. 여기에 바이오까지 더해지지요. 인지과학 바이오, 뇌과학 쪽 이런 원리들이 다 들어와야 한답니다. 로봇의 겉모습만 볼 게 아니고 안쪽을 봐야 합니다. 로봇 하드웨어를 만들고 싶다면 기계과를 전공하면 좋고, 그 안에 들어가는 물체 인식이라던가 하는 인식 알고리즘을 해보고 싶다면 인공지능이나 전기전자 관련 학문을 공부하면 좋고, 로봇 팔다리를 유연하게 움직이게 하고 싶다면 제어계측 전문가가 필요하지요."
―그런데 로봇이 사람의 지능을 넘어서는 날이 올 수 있나요.
"지금 단계에선 인공지능이라고 하기에는 좀 그렇고요, 인식 기능에 불과하지요. 미래학자들이 예측하는 건 2030년부터 부분적으로 기계의 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초월하는 그런 것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어요."
―그건 미래학자의 예측이고, 단장님의 예측은?
"제가 봤을 땐 한참 더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어떤 사람을 '똘똘하다'고 말할 때는 이 사람이 누군가를 잘 알아본다고 해서 똘똘하다고 말하진 않잖아요. 어떤 문제를 던지고 그것을 파악하고 해결하고 푸는 과정을 보고 똘똘하다고 말하는 겁니다. 로봇 인공지능이 그 단계까지 가려면 아직 멀었다고 봅니다."
―로봇이 인간을 지배하는 사회가 올까요. 그런 영화가 가끔 있잖아요.
"정말 먼 훗날 있을 법한 이야기입니다. 아바타가 제작되고 난 후에."
―스물여덟에 전기전자공학 박사가 됐습니다. 어릴 적 꿈이 과학자였습니까?
"어릴 적에 로봇 만화가 많았어요. 마징가, 태권브이, 짱가를 보면 뒤에 항상 하얀 가운을 입은 과학자가 한 사람씩 등장하지요. 나도 나중에 저런 사람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지요. 경복고 다닐 때도 주저 없이 자연계를 선택했지요."
―학부에선 제어계측공학을 전공했습니다.
"저희 학번(81) 때가 아주 격변기였어요. 고3 여름방학 때 본고사가 없어졌습니다. 본고사 공부를 막 하고 있는데 갑자기 학력고사만으로 대학에 간다고 발표하는 거예요. 서울대 공대에 입학했고, 2학년 올라가면서 학과 배정을 했습니다. 당시 제어계측과는 서울대에만 있었어요. 전망 좋고 이 학과 가면 로봇을 만든다고 하니 많이 지원했지요. 제어계측과에선 로봇 안에 들어가는 다양한 컨트롤 알고리즘들 그런 것들을 많이 배우죠."
―대학원은 KAIST로 갔는데.
"당시 KAIST는 대전에 있지 않고 서울 홍릉에 있었습니다. 첫 학기 내내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로 가혹하게 실험을 했어요. 학부 때 정립되지 않았던 개념들을 실험을 통해 정립시켜줌으로써 기본기를 끌어올리는 작업이지요. 큰 도움이 됐답니다."
―과학자로서 욕심이 있다면.
"얼마 전만 해도 우리는 미국 일본 등 선진국 기술을 따라가기만 해도 됐는데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어요. 이젠 우리가 아이디어를 내서 세상에 없던 것들을 먼저 만들어내야 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파급 효과가 있는 그런 걸 내 손으로 직접 만들고 싶어요. 어쩌면 지금 연구하는 인체감응솔루션에서 나올 수도 있고요. 지금 애플과 삼성이 한참 다투고 있는데, 침해한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겠지만 그런 시빗거리 자체를 없애는 창의적 아이디어라면 더욱 좋겠지요."
―2019년까지 정부 프로젝트 책임자로 일하려면 어깨가 무거울 텐데.
"남보다 앞서려면 언제든지 실패할 수 있습니다. 운 좋다면 한 번에 성공할 수 있지만 그런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실패 속에서 아웃풋이 나오기 때문에 실패하더라도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도전할 수 있도록 저희 팀을 잘 이끄는 게 제 임무입니다. 옛날엔 결과물에 대한 분석 능력이 중요시됐지만 이젠 창의성이 우선시 되어야지요."
―단장실이 좁습니다. 10㎡(3평) 정도 됩니까.
"본부 건물에 큰 방을 준다고 했는데 연구하기엔 이곳이 편해요. 계속 써오던 방이라서요."
―집에 로봇 제품이 있는지요?
"청소로봇이 하나 있습니다. 2~3년 전 제품들은 구석에 갇히면 빠져나오지 못하는데 최신 제품들은 많이 좋아졌더라고요."
―가전제품 고장 나면 잘 고치겠습니다.
"(웃음) 네. 컴퓨터, TV, 오디오, AV시스템 다 만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