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道(중도)
필자 김기원(金基圓)
[개요]
두 극단을 떠나 한편에 치우치지 않는 공명한 길. 불교에서는 유(有)나 공(空)에 치우치지 않는 진실한 도리, 또는 고락의 양편을 떠난 올바른 행법을 중도라고 한다.
[불교의 중도 사상]
불교의 중도사상(majjihimā paṭipadā)은 양극단에 치우치지 않은 바른 길이라는 의미로서 초기불교부터 근본진리의 중요한 특징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사용되었다. 이어 대승ㆍ소승 각 교파에서도 중도야말로 불교적 진리관의 요체라는 의미에서 중도실상(中道實相)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초기불교의 중도는 보통 실천 중도와 이론 중도(理論中道)로 나누어 설명된다. 실천 중도는 녹야원의 처음 설교에서 교진여 등 다섯 사람에게 설해진 내용이며, 구체적으로는 정견(正見)ㆍ정사유(正思惟)ㆍ정정진(正精進)ㆍ정업(正業)ㆍ정어(正語)ㆍ정정(正定)ㆍ정념(正念) 등의 팔정도(正道)로서 설명되었다.
석가모니가 치우친 수행법으로 반대한 것은 고행주의와 쾌락주의의 두 가지였다. 팔정도는 고행이나 낙행(樂行: 쾌락행) 등의 치우침에 떨어지지 않을 뿐 아니라 지혜와 정력(定力)과 자재(自在)와 깨달음(覺)과 열반을 얻는 가장 정당한 방법으로 생각되었다. 《잡아함》 권9, 《중아함》 권29에 동일한 내용이 있다. 과도한 정진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심해탈(心解脫)을 얻지 못한 자기의 마음을 비관한 한 비구가 귀가하여 오욕락(五欲樂)을 수용하고 보시(布施)로 복업(福業)을 닦으려 할 때 세존이 이를 가야금의 비유를 들어 훈계했다. 그리고 능히 시(時)를 분별하고 상(相)을 관찰하여 중(中)을 잡으라고 가르치고 있다. 그 형편을 따라 대의를 세우라는 말이다.
팔정도마다 머리에 정(正)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도 중정(中正)의 뜻을 상징하는 것이다. 이러한 실천 중도 외에 석가모니는 이법중도(理法中道)를 설하여 다시 이론적이고 사상적인 중도관을 제시했다. 석가모니는 유아(有我)와 무아(無我), 죽은 후 생명이 영속되는가 아니면 단멸되는가 등 여러 가지 치우친 견해를 극복하고자 했다. 이밖에도 육체와 마음은 하나인가 둘인가, 또는 일체존재의 본성이 하나인가 여럿인가의 문제도 중요했다. 후자의 경우 모든 존재가 하나인 근본에서 나왔다고 보는 견해는 전변설(轉變說), 많은 다양한 성질을 지닌 존재의 결합이라는 관점은 적취설(積聚說)이라고 불리어졌다.
적취설에서도 중요한 원소를 몇 가지로 보는가에 따라 다양한 견해가 분립되었다. 이런 관점은 당시에 제기되었던 여러 가지 형이상학적 문제들로서 석가모니는 이를 십이연기(十二緣起)에 의한 중도사상으로 극복하고자 했다. 모든 존재는 독립된 개체의 실체가 없고 다만 인연에 의하여 서로 의지하고 서로 바탕이 되는(相依相資) 관계를 맺음으로써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 원리의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게 된다”(此有故彼有)는 원리는 서로의 공간적인 인연을 말한다 할 수 있으며 “이것이 발생하기 때문에 저것이 발생한다”(此起故彼起)는 원리는 서로의 시간적인 인연을 말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모든 존재는 시간적인 면에서 무상(無常)인 것이며 공간적인 면에서 무아(無我)인 것이다.
이 연기의 원리를 구체적으로 설명한 것이 십이인연설이다. 이 십이인연(十二因緣)은 무명(無明)의 인(因)으로 부터, 즉 무명에 의해서 행(行)이 있고 행에 의하여 식(識)이 있고 식에 의해서 명색(名色)이 있고 이 명색에서 육입(六入)ㆍ촉(觸)ㆍ수(受)ㆍ애(愛)ㆍ취(取)ㆍ유(有)ㆍ생(生)을 거쳐 노사우비고뇌(老死憂悲苦惱) 등의 십이인연으로, 모든 존재가 서로 인(因)과 연(緣)이 되어 생성변화하고 윤회한다는 것이다. 석가모니는 예를 들어 일체 존재가 존재하는가 그렇지 않은가의 문제에 관하여 무명이 있는 한 유라고 볼 수 있으나 무명을 멸하면 모든 것이 공하므로 무로 볼 수도 있다는 관점을 제기한다.
실천수행의 입장에서의 중도를 제외한 모든 형이상학적 문제는 십이연기에 의해 응답하며 설명하는 것이다. 석가모니는 이런 문제들에 대해 집착된 관점을 벗어난 중도적 지혜를 통해 열반의 경지를 증득하여 실천적으로 해결하고자 했다. 석가모니의 열반 후 약 500년경에 대승불교를 흥기시킨 용수(龍樹, Nãgãrjuna)는 석가모니의 모든 사상을 중도에 의하여 설명코자 하여 《중론》을 저술했다. 중론에서는 생(生)ㆍ멸(滅)ㆍ단(斷)ㆍ상(常)ㆍ일(一)ㆍ이(異)ㆍ내(來)ㆍ출(出)의 8종의 편견을 벗어난 공(空)의 세계를 중도실상(中道實相)이라고 본다.
만유는 모두 연기의 소산이므로 실체가 없어 집착의 대상이 될 수 없음을 말한다. 이를 팔불중도(八不中道)라고 말한다. 요컨대 중도는 모든 집착이나 분별을 벗어난 무소득(無所得)의 경지를 의미했다. 중도사상은 그 후 천태종ㆍ화엄종에서 이론적으로 더욱 정치해지고 선불교에서 실천적으로 계승되었다.
천태종의 개창자 지의(智顗)는 중도에 바탕한 바른 관점(正觀)이 부처의 안목이라고 말하고(《수습지관좌선법요(修習止觀坐禪法要)》) 이러한 안목을 얻을 때 정과 혜를 고르게 갖추어 불성을 요달할 수 있다고 보았다. 나아가 세간(生死)과 출세간(涅槃)에 집착하지 않고 이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는 것이 참된 중도적 실천이라고 보았다. 세간적 관점을 세제(世諦, 또는 俗諦)라 하고 출세간적 관점을 제일의제(第一義諦, 또는 眞諦)라고 본다면 두 가지를 벗어난 중도적 관점을 바른 안목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런 관점은 화엄을 비롯한 대승 각 교파에 일관되어 있다.
ㅡ 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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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이형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