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에너지 박동위 기자] 한 주유소 사장이 10년 이상 고용해 왔던 종업원을 내보낼 수밖에 없었던 사연을 들었다.
그동안 두 노부부와 종업원 한명이 운영해왔던 이 주유소는 최근 매출이 급감하자 종업원을 내보내고 두 노부부가 운영해 나가기로 결정한 것이다.
10년 이상 같이 일하며 정이 쌓였고 누구보다 성실하게 일해 믿고 의지하던 종업원이지만 최근 경영악화로 인해 인건비라도 줄이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내보낼 수밖에 없었다는 사연이었다.
두 노부부는 앞으로 밤낮으로 번갈아 가며 쉴틈없이 일해야한다는 현실이 막막하게 느껴진다고 했다.
그렇게 일한다 하더라도 기름값 폭등으로 석유소비량 증가세가 둔화된 데다 매출에서 주유소 운영비와 카드수수료, 전기료 등 각종 공과금, 기타 비용 등을 빼면 남는 것도 별로 없다는 것이 현실이다.
두 노부부가 안타까운 마음에 종업원이 옮길만한 주유소를 직접 수소문해 다녀 새로운 직장을 구할 수 있었다는 것은 다행이었다.
두 노부부는 그동안 주유소를 운영하며 가끔 기부도 하면서 그럭저럭 잘 살아왔다고 했다.
하지만 최근 주유소시장 포화와 경쟁 심화가 한계 상황에 이르면서 주유소 운영에 위기가 봉착하게 된 것이다.
‘주유소 하나만 있으면 3대가 먹고 산다’는 말은 이제 옛말이 됐다.
많은 소비자들이 장기 경제 불황과 고유가로 인해 주유소간의 가격 차이에 민감해지면서 주유소들이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물론 가격경쟁에서 밀리고 바뀐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주유소가 퇴출당하는 것은 시장경제의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문제는 주유소업계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으로 기업형 주유소와의 경쟁에서 뒤쳐진 소형 자영주유소들의 폐·휴업이 급증하고 있다는 것이다.
폐업에 목돈이 들다보니 휴업 후 방치되는 주유소도 갈수록 늘고 있다.
이런 휴업주유소들은 국도변 곳곳에 방치돼 도로변 미관을 해치는 등 국가적인 골칫거리로 까지 되고 있다.
또 휴업주유소들이 불법으로 가맹점 코드를 무허가 석유판매업자에게 양도해 음성적인 지하경제를 양산하고 있다.
기름값 고공행진…싼 주유소를 찾아서
“예전에는 비싸도 집에서 가까운 데서 넣었는데 요즘엔 기름값 한푼이라도 아끼려는 생각에 가장 싼 주유소를 찾게됩니다”
지난해 10월 인천시 중구에 박리다매 구매와 셀프주유기 사용으로 가격파괴를 선언한 초대형 셀프주유소가 등장해 화제가 됐다.
‘오일파크’란 이름의 이 주유소는 주변 주유소들보다 리터당 100원 정도 저렴하게 공급해 많은 소비자들이 몰리며 주변 주유소시장을 급속도로 잠식해 버렸다. 이에 주변 주유소들 역시 무리를 해서라도 기름값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초대형 주유소의 등장으로 전국 최저가로 기름을 공급받게된 소비자들은 함박웃음을 지을 수 있었지만 인근 주유소들은 눈물의 생존경쟁을 시작하게 됐다.
오일파크 주유소를 중심으로 주변 주유소들이 이를 견제하기 위해 가격을 맞추며 경쟁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오일파크 주유소가 가격을 내리면 똑같은 가격으로 맞춰서 내리고 올리면 똑같이 올리는 식이다.
당연히 자본이 부족한 중·소형 주유소들은 버틸 수가 없었고 실제 영업을 중단한 주유소도 속속 생겨났다.
인천 중구 지역 외 4개의 주유소를 더 운영하고 있다는 인근 주유소 사장은 “오일파크 주유소가 들어와 주변 주유소시장을 다 망쳐놨다”라며 “현재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가격을 내려서 판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 사장은 “끝까지 살아남는 주유소가 주변 주유소 상권을 모두 차지할 수 있을 것”이라며 “최근 오일파크 주유소가 가격을 올렸지만 당분간 올리지 않을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오일파크 주유소처럼 그 지역의 가격을 좌지우지하는 주유소를 이른 바 ‘가격 거점 주유소’라 할 수 있다. 가격 거점 주유소들은 주유소간 가격경쟁을 유발해 가격을 낮추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정부가 유가인하 정책의 일환으로 운영하고 있는 알뜰주유소가 바로 이 역할을 담당한다.
알뜰주유소가 꼭 해당 지역에서 최저가로 판매하고 있지는 않지만 알뜰주유소가 그 지역의 가격 결정 리더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시장 전체적으로는 유가인하라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있는 것이다.
알뜰주유소가 특정 지역에 생겨나면 주변 주유소들이 곧바로 가격인하를 하는 등 많은 변화가 발생한다. 주변 주유소들이 알뜰주유소를 견제하듯 가격을 맞춰서 내리는 것이다.
주변 주유소들이 단합해 알뜰주유소를 견제하기도 한다. 정부의 알뜰주유소 정책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기름값을 낮추는가 하면 주변 주유소들이 번갈아 가며 가격을 알뜰주유소보다 낮게 책정하기도 한다.
8월 말 기준 전국 알뜰주유소는 개인이 운영하는 자영알뜰주유소(366개), 한국도로공사의 고속도로 알뜰주유소(160개), 농협의 NH알뜰주유소(431개) 등 총 957개에 달하고 있다.
최근엔 정부의 유가인하 정책에 다소 소외를 받아왔던 제주지역에도 알뜰주유소가 생겨나고 있다. 지난 7월 제주 1호점인 평대알뜰주유소가 개점한 것을 시작으로 9월 초 2개소가 추가 개점을 했으며 하반기 내 10개소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전국적으로 전체 주유소 숫자가 줄고 있는 가운데 고유가의 영향으로 오히려 알뜰주유소는 점차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셀프·무폴·마트·복합 주유소의 증가
고유가로 인한 치열한 가격경쟁으로 늘고 있는 것은 알뜰주유소뿐만이 아니다.
소비자들이 보다 저렴한 주유소를 찾게 되면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셀프·무폴·마트·복합 주유소 확대를 들 수 있다.
먼저 ‘셀프주유소’는 지난 2003년 국내 최초로 도입된 이래 10년 만에 1,000개를 돌파했다.
지난 2007년 59개에 불과했던 셀프주유소는 2007년~2012년 연평균 340%라는 높은 증가율을 보이며 지난 6월 기준으로 그 수가 1,279개를 기록했다.
국내에 첫 등장할 당시 운전자가 차에서 내려 직접 주유기를 조작해야 하는 불편 때문에 운전자들의 이용이 뜸했지만 최근 들어 고유가와 소비자들의 인식변화로 각 정유사들도 앞다퉈 셀프주유소 설립이나 변경에 나서고 있는 모습이다.
실제 SK주유소 운영을 관리하는 SK네트웍스의 셀프주유소는 지난 2007년 9개에 불과했으나 2010년 143개, 2011년 216개, 2012년 458개, 올해 8월말 기준 560여개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GS칼텍스의 경우도 지난 2005년부터 본격적으로 셀프주유소 운영을 시작한 이후 2010년 215개, 2011년 300개, 2012년 360개로 증가했고 현재 385개의 셀프주유소를 운영하고 있다.
S-OIL 역시 지난 2011년 87개에서 2012년 142개, 올해 6월말 기준 195개로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현대오일뱅크도 지난 2009년 33개, 2010년 66개, 2011년 111개, 올해 7월말 기준 204개로 급증했다.
정유사 상표를 달지 않고 독자 상표로 운영하는 ‘무폴주유소’도 확장세다.
정유사 마진을 줄여서라도 수익성을 지키기 위해 정유사 폴주유소들이 무폴주유소로 변환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지난해 1월 730개였던 무폴주유소는 올해 1년 만에 55%나 급증해 올해 1월 1,134개로 늘었다. 지난 6월 기준으로는 1,539개로 5개월 만에 405개나 늘어났다.
한동안 중단됐던 ‘대형마트주유소’도 최근 다시 꿈틀되고 있다.
이마트가 경기 용인시 구성점에 2008년 말 국내 최초로 선보인 대형마트주유소는 주변 주유소보다 최대 100원 싸게 판매해 인기를 끌었지만 기존 주유소업계의 반발에 밀려 2010년 이후로는 새로 연 곳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최근 대형마트들은 휴일 의무휴업 등의 영향으로 매출이 급격히 감소하자 소비자를 끌어들이는 집객 효과를 노리고 주유소 건설을 재개하고 있다.
이마트의 경우 전남 순천점 주차장 부지에 주유소 건축공사를 진행 중에 있다. 이마트 순천점 주유소가 완공돼 영업을 시작하면 용인 구성점, 통영점, 포항점, 구미점, 군산점에 이어 이마트가 운영하는 여섯 번째 주유소가 된다.
이마트는 또 안동점과 원주점에도 주유소를 짓기 위해 추진 중에 있다.
롯데마트 역시 주유소 출점을 추가로 시작하고 있다. 용인 수지, 구미, 충주에서도 주유소를 운영하고 있는 롯데마트는 지난 5월 여수점에 주유소를 열고 영업을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롯데마트는 울산점에도 주유소를 건설할 계획이다.
주유소와 커피전문점, 아울렛 매장, 네일아트 등을 결합한 ‘복합주유소’들도 속속 생겨나고 있어 소비자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 있는 경일주유소의 경우 국내 최초로 세탁소를 입점해 주유와 세탁서비스를 동시에 시행하고 있다. 이 주유소는 세탁소를 운영한 이래 매출이 30%가 늘어나는 등 시너지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이는 주유소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면서 주유소들이 생존수단으로 사업다각화를 통한 차별화 전략을 들고 나온데 따른 것이다. 소비자들의 입장에서 다양한 서비스를 누릴 수 있어 긍정적인 변화라는 반응이다.
주유소업계 출혈경쟁, 이대로 괜찮나?
“소비자들이야 기름값이 싸면 좋겠지만 정부가 주유소업계의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주유소시장을 흔들어 버리면서 대책은 마련하지 않는다면 부작용이 끊이지 않을 것입니다”
주유소업계의 치열한 가격경쟁으로 인해 기름값이 실제 리터당 30원가량 낮춰졌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로 인해 경영난으로 문을 닫는 주유소가 속출하는가 하면 수익성이 떨어진 주유소들이 가짜석유를 판매하는 부작용도 발생했다.
한국주유소협회(회장 김문식)가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까지 폐업한 주유소는 185개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106개보다 74.5% 증가했다.
휴업 상태에 있는 주유소 410개를 포함하면 600개 가까이가 영업을 중단한 셈이다. 이는 지난 6월 기준 국내에서 영업 중인 주유소 1만3,145개의 5%에 육박한다.
경영 사정이 나쁘다고 해서 폐업도 쉬운 일이 아니다.
주유소 폐업비용은 주유소 규모에 따라 1~2억원 정도가 소요되는데 수익성이 악화돼 문을 닫는 주유소들이 이런 막대한 비용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 폐업 대신 무작정 방치하는 휴업 주유소가 늘어나고 있는 이유다.
휴업 주유소가 늘어나고 있는 것은 단순히 외관상 문제가 아닌 매립된 유류탱크로 인한 토양오염까지 연결되면서 사회적 문제로 확대될 수 있어 심각성을 더 한다.
특히 폐업할 돈이 없어 방치되는 주유소를 이른 바 ‘한계주유소’라 불리는데 이들 주유소들이 살아남기 위해 마지막으로 선택하는 것이 바로 가짜석유를 판매하는 것이다.
단속에 걸린 주유소 사장들은 “저가 경쟁을 버티지 못해 가짜석유의 유혹에 넘어갔다”고 공공연히 변명을 하고 있다.
직접 가짜석유를 판매하지 않더라도 가짜석유업자에 ‘악이용’ 되는 일도 적지 않다.
가짜석유업자들이 휴업한 주유소를 단기간 운영하면서 가짜석유를 제조·판매하고 적발되기 전에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방식이다.
가격경쟁이 치열한 지역일수록 소비자들이 저렴한 가격의 기름을 구매한다는 혜택을 기대할 수 있지만 그만큼 가짜석유를 구매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주유소업계 일각에서는 정부 차원에서 폐업 비용을 지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휴업에 따른 부작용이 사회문제로 비화될 수 있는 만큼 정부가 나서야 한다는 얘기다.
현재 국내에는 1만3,000개가 넘는 주유소가 영업 중이다. 업계에서는 국내 시장규모를 감안할 때 적정 주유소 수를 8,000개 안팎으로 보고 있다. 5,000개 이상의 주유소가 과잉공급 상태라는 결론이다.
하지만 다른 업종과의 형평성 때문에 현실화되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 때문에 주유소협회에서는 공제조합을 구성해 주유소 폐업자금을 지원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장기 경제 불황과 고유가로 인한 고통은 소비자들만 느끼는 것은 아니다. 민감해진 소비자 틈새에서 주유소업계는 모두에게 상처만 남는 ‘눈물의 생존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이 치열한 전쟁은 결국 소비자에게도 상처를 주는 결과를 낳고 있다.
주유소업계가 에너지공급의 최일선에서 지금까지 해온 역할을 생각하면 앞으로도 그 중요성은 더욱 부각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화석연료를 대체해 새로운 연료가 도입된다 해도 주유소는 미래에도 새로운 연료의 공급처로서의 역할은 변함없을 것이라는 얘기다.
주유소업계가 미래에도 연료공급처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주유소간 과도한 경쟁은 지양하고 공정한 경쟁을 통해 주유소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한편 사업다각화를 통해 새로운 수익원을 창출해나가야하는 등 부단한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첫댓글 기사 참 잘 쓰셨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