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가 빛나는 밤에 (연이말2)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이 곳은 무조건적으로 연예인을 비난하는 곳이 아닌 올바른 비판을 지향하는 카페입니다. |
출처-네이트 판
http://pann.nate.com/talk/312704088
안녕하세요.
저는 올해 29살이고 결혼한지 4년차 아줌마입니다.
제가 이렇게 글을 올리는 이유는 한국에 딱히 맘을 털어놓을 친구가 많치않아
인터넷을 하다가 우연히 알게된 판을 보고 용기내어 아는동생의 아이디를 빌려 글을 쓰게되었습니다.
지금 처한 상황이 제 힘으로는 도저히 풀리지 않아 인생선배 여러분의 도움을 받고자 합니다.
제 소개를 하자면 저는 엄마아빠의 사랑을 독차지하던 평범하고 화목한 집의 외동딸이였습니다.
하지만 제가 고1 올라가던 겨울,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저는 다른집과 똑같이 부모님의 많은 사랑을 받으면서 자라왔습니다.
엄마와 항상 모든것을 같이해도 즐겁기만하였고 자상한아빠도 언제나 제가 기댈수 있는 커다란 나무였습니다. 근데 친구집에서 돌아와보니 항상 마중을 나왔던 엄마가 없었고, 엄마가 항상 메모를 붙여놓았던 냉장고에 "사랑하는 딸랑구 , 엄마 잠깐 친구만나러갔다가 아빠랑 만나서 같이 들어올께 ~큰길에서 전화하면 10초안에 나오기! " 이런 메모가 붙어있어 저는 평상시대로 티비를 보면서 기다렸습니다.
근데 아빠가 집에 도착하실 시간이 되도 엄마에게 전화는 오지 않았습니다. 얼마가 흘렀는지 기억안나지만 제가 잠들었고 전화벨 소리에 잠이 깻습니다. 할머니께서 아무말도 안하시다가 어느병원으로 빨리 오라고만 하셨습니다. 그래서 할머니 어디아파? 라고 되물어봐도 할머니는 마냥 우시기만 하셨습니다.
그래서 어린마음에 아 뭔가 큰일이 났구나 하고 느끼게 되어 병원으로 달려갔을때는 부모님의 싸늘한 시체가 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하늘이 무너져내렸고 아무것도 느낄수 없게되었습니다.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는 장례의 모든 절차가 끝난후 집에 돌아온 저는 엄마아빠의 물건과 채취가 고대로 배인 옷들을 끌어안고 울고.. 냉장고에서 다 쉬어버린 엄마가 해준 반찬이 아까워서 조금씩 먹으면서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그렇게 지내다가 병원에 입원을 하게되였고 할머니께서 입원해 있는동안 엄마아빠의 물건을정리하셨습니다. 어린마음에 할머니에게 그걸 치우면어떡하냐고 울고불고 소리쳤습니다.
이후 저는 할머니 집에 머물게 되었고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했습니다. 하루종일 멍하게 지냈고 울다가 지쳐서 잠드는게 계속이였습니다. 결국 1년여를 그렇게 보내다가 이렇게 살면 나중에 엄마아빠를 못 볼거같아서 미친듯이 공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조금이라도 무언가를 외우거나 공부하지 않으면 온갖 잡생각이 저를 괴롭히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검정고시를 치고 서울에있는 소위 명문대를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너무나도 활발하고 친구도 많았지만.. 엄마아빠의 부재가 저를 한없이 약하고 어두운 아이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입학식에서는 다른 아이들이 부모님과 행복해하는 모습에 고개를 푹 숙이고 눈물만 흘리다 왔습니다. 대학생활도 즐겁지 않았고, 결국 휴학을 하고 이모가 계시는 미국으로 가게되었습니다.
미국에가서도 일부러 바쁘게 지냈습니다. 제가 하던 통번역 공부를 하고 일도 하게 되었습니다.
여전히 공부를 하고 무언가를 계속 배우고 ,정신과에 다니면서 나약한 마음도 서서히 다잡아갔습니다.
그러는 도중 지금의 저희 신랑을 만났습니다. 우연히 병문안을 온 신랑이 병원 앞에서 저를 만났고, 저에게 첫눈에 반했다고 했습니다. 저보다 4살이 많았고 , 처음봤을땐 그저 인상이 좋은 남자구나 라고만 생각했습니다. 남자에게 관심조차 둘 여유없이 살아와서 가까워지기까지 .. 어둡고 우울증환자인..제가 뭐라고..저희 신랑이 정말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신랑에게 마음을 열어갔고 ..파견근무를 나와있던 신랑이 한국으로 들어가는 날이 다가왔습니다. 신랑은 저에게 프로포즈를 하였고 결혼해 같이 한국에 들어가자고 했습니다.
이렇게 어둡고 약한 여자를 늘 따스하게 보듬어주었지만 도저히 한국에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아서
일단 신랑을 먼저 보냈습니다. 먼거리지만 한국으로 돌아간 신랑은 자는 시간을 쪼개 전화와 화상채팅을 해 언제나 저를 웃게해줬습니다. 나중에는 갑자기 화상채팅안으로 신랑의 어머니가 나오셨습니다.
어머니는 처음 보는 저를보고 환하게 웃어주시면서 아들한테 이야기 많이 들었다고 이쁘다면서 직접 보고싶다고 말씁해주셨습니다. 순간 저는 제 머릿속에 지워져있던 단어인 엄마라는 말이 처음보는 아주머니를 보고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설명할수는 없지만 어머니를 보고 저는 한국으로 들어갈 용기를 내었습니다.
아직도 잊지못하는 모습은 공항에 제가 나왔을때 저 멀리서 신랑과 손을 잡고 저를 찾는 어머니의 모습이였습니다. 처음보는 저를 따스하게 안아주셨습니다. 그렇게 저는 신랑의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고 결혼허락을 받았습니다. 아버님도 너무 쾌활하시고 밝고 따뜻한 분이셨습니다. 아들만 둘이라 항상 딸이 있었으면 하셨다고 저를 딸삼을테니 아무것도 걱정하지말고 우리가족안으로 들어오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어떻게 이분들은 처음보는 저를 이렇게 맞아주실까하는 의구심까지 들었습니다.
나중에 어머니께 들었는데 그냥 컴퓨터 화면에서 본 순간 가슴이 짠해지셨고 그냥 저를 보듬어주고싶으셨답니다.. 인연이겠죠.. 그렇게 저는 결혼준비를 하게됬습니다.
신랑의 아버님께서 자수성가하셔서 누릴만큼 누리고 사시고, 어머님도 가족을 너무 사랑하는 평범한 어머니셨습니다. 그런데 신랑남동생..서방님만큼은 뭔가 좀 달랐습니다.
처음 뵙는날 저를 쓰윽 보더니 그냥 자기방으로 올라가더군요.
그래서 그냥 낯을 가리나보다 하고 생각했습니다. 근데 신랑이 서방님을 보는 눈빛이 좀 달라 신경이 쓰였습니다. 부모님집에 정말 많이 놀러갔고 그동안 어머님아버님께 호칭이 엄마아빠로 변했습니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시부모님께서 원하셔서 그렇게 부르다보니 제가 정말 이 집 딸이 된 느낌이였습니다. 그렇게 결혼준비도 하고 , 가족이 되가면서도.. 서방님만큼은 뭔가 달랐습니다.
집에 통 있지도 않고 간혹 있어도 잘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신랑이 다 말해주더군요.
동생이 좀 퉁명스러워도 조금만 이해해달라구요.. 자초지종을 들으니 이해가 됐습니다.
저희 신랑은 학생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해가면서 용돈을 해결하고 장학금을 받으면서 대학을 다니고
지금 일하고 있는 분야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고있습니다. 물론 부모님을 닮아 너무 따뜻하고 유쾌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서방님은 자라면서 매일 칭찬받는 형밑에서 조금씩 상처를 받으면서 자랐던것 같아요.
물론 부모님이 신랑과 서방님을 차별한것은 아니라고합니다. 어머님이 그럴수록 유난히 더 서방님을 신경썼다고 합니다. 하지만 서방님 입장에서는 아무리 엄마가 자신한테 잘해줘도 엄마랑 신랑이 살갑게 이야기하는 모습만 봐도 엄마한테 토라졌다고 합니다. 서방님은 고등학교도 사고를 몇번 저질르고 겨우 졸업해 ..대학도 겨우 나오고 일반직장에서 사원으로 근무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가족과 지금까지 겉도는 생활을 한다고 합니다. 얘기를 들으니 서방님이 안쓰럽게 느껴지더군요.. 그래서 제가 간혹 마주칠때 말도 건네고 용돈도 드렸습니다. 말은 안하고 돈만 휙 가져가도 그냥 마음이 쓰였습니다..
이 후 신랑과 저는 결혼을 해 서울에서 부모님께서 얻어주신 50평정도의 아파트에서 살게됬습니다.
저는 부모님과 함께 살기를 원했지만, 부모님의 집이 경기도 쪽이여서 신랑의 직장문제로 분가를 하게되었습니다. 결혼생활 역시 행복했습니다. 친구같고 오빠같은 신랑은 저와 마음이 아주 잘 맞았고
저는 집에서 프리랜서로 일을 하고, 집안일도 즐겁게 하고, 신랑 퇴근시간에 맞춰 장도함께보고 맛있는거 먹고, 잠들기전까지 이야기하며 행복하게 보냈습니다. 1주일에 한번은 제가 졸라서 부모님께가서 즐겁게 지냈습니다. 항상 저희 사는 모습 사진찍어서 보내드리고 문자주고받고, 전화도 자주하고, 같이 여행도 하고 행복하게 지냈습니다.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3개월전 저희 서방님이 결혼할 여자가 있다고 갑자기 부모님께 말하고 ,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는날 저희도 불려왔습니다. 저는 집에들어가자마자 평소와 같이 "엄마~~~딸왔어요!!" 하며 반갑게 엄마에게 안겼습니다. 그런데 아직 안올줄만 알았던 서방님과 결혼할 여자=동서가 화장실에서 손을 씻으며 나오더군요. 갑자기 어색해진 저는 반갑게 인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얼굴이 차갑더군요.
그냥 짤막히 "네"라고 대답한후에 갑자기 저에게 "그런데 그쪽은 어머니라고 안 부르시네요?" 이러더군요.
물론 처음보는 입장에서는 조금 버릇없이 들릴수도 있어 웃으면서"아 죄송해요^^: 제가 버릇이되서.."이러고 어머니도 "아유 우리는 며느리는 다 딸이야" 이러면서 웃으셨습니다.
그렇게 어색한 첫대면이 지나고 몇주뒤 결혼을 진행해가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런데 늦은밤 신랑에게 서방님이 전화를 하더군요. 저에게도 들릴만큼 큰소리로 형수는 결혼할때 뭐해왔냐면서 ..맨몸으로 들어왔으면서 집에해준게 뭐있냐고 소리를 지르더군요.
다짜고짜 이게 무슨소린가 싶어 알아보니 어머니와 동서 어머니가 혼수며, 예단,이런 금전적인 얘기들을 결정하려고 만나셨나봐요.. 물론 어머니는 아직 서방님이 저희만큼 큰집에서 신혼을 시작하기에는 조금 능력이 안되니 서울에 30평짜리 아파트를 사주신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동서의 집은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큰혼수는 부담이 된다고 말했답니다. 그래서 어머님이 결국에는 다른건 생략하고 얘들 예물이랑 소소한 살림만 맡아주시라고 얘기하셨답니다. 결혼식비용,신혼여행 등등 다 부모님께서 해주시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동서가 집평수가 맘에 들지 않았고, 남들 다 받는 명품백 하나조차 받지 못해 서방님에게 제가 결혼할때는 어땠냐고 서방님에게 꼬치꼬치 물었다고 합니다. 서방님은 서방님이 보고싶은데로 보고 제가 맨몸으로 시집왔다고 이런식으로 얘길 했나봅니다. 그러자 동서가 난리가나 서방님께 이런식으로는 결혼못한다고 결혼전부터 이렇게 큰며느리 작은며느리 차별인데 결혼하면 서방님께 유산상속도 뺏길꺼라고 닥달을 한것같습니다. 그래서 술을 마시고 신랑에게 전화를해 따졌습니다.
저 맨몸으로 온거 절때 아닙니다. 돌아가신 부모님께 집과 건물이 하나 있었고 , 보유하고계신 현금도 제가 성인이 된 후에 상속받았습니다. 친척이 많치않아 현금 3억중에 1억은 저때문에 고생을 많이 하신 할머니 노후자금으로.. 또 1억은 또한 엄마만큼 저를 아껴주신 미국의 이모에게 드렸습니다. 두분다 한사코 안받겠다고 하시는걸 제가 엄마아빠가 분명 이렇게 하길 원하실꺼라고 하며 겨우겨우 드렸습니다.
나머지 1억은 제가 가지고있었구요. 한국에와서도 부모님과 함께 살던 집을 팔지 않았지만 할머니의 설득끝에 한바탕 대성통곡을 하고 팔았습니다. 건물은 크지않은 3층 규모로 세를 주고있습니다.
그래서 결혼할때 시부모님께서 다 사주시겠다는걸 한사코 말려, 신랑과 열심히 돌아다니며 가구,가전제품 등등 모든걸 같이 골르고 ..제가 해갔습니다. 그리고 시부모님께서 예단비는 절때로 안받겠다고 하셔서
어머니께는 평생 저와 함께해달라는 의미에서 반지,귀걸이,목걸이를 다이아몬드로 해드렸고, 너무 검소하신 아버지께는 10년 넘게타신 자동차를 바꿔드렸습니다. 물론 부모님 둘다 너무 놀라셔서 못받는다고 하셨지만 저는 벌써 결제해서 영수증 계약서 다 찢었다고 애교아닌 애교를 부렸네요..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백화점만 가면 어머니아버지 좋아하시겠다 하면서 선물을 사드리곤합니다. 물론 영수증은 저멀리 찢었구요.. 아무튼 이런 실상을 서방님이 여자였다면 관심있어하셔 다 말씀드렸을겁니다. 하지만 서방님은 물론 궁금해하지 않으셨고 제가 맨몸으로 온줄알고있더군요. 그래서 신랑은 서방님께 말도안되는 소리라고 사실대로 말하고 버릇없이 형수를 이렇게 말하냐면서 정말 크게 화를냈습니다. 물론 둘이 잘 해결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부모님께는 알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해결이 되는가보구나하고 조용히 결혼식이 진행됬습니다. 결혼하고 처음가지는 가족모임에서 동서가 활짝 웃으면서 형님 앞으로 저희 정말 자매처럼 지내요 하더군요. 저도 오해가 풀렸으니 좋게보려고해 정말 자매처럼 지내자고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부모님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많이 알려드리고 어머님 , 저, 동서 이렇게 세여자가 재밌게 지내자고 어머니와 기대를 많이 했습니다. 좋게 지낼줄 알았지만 그건 저의 착각이였나봅니다..
서방님과 저희집은 차로 40분쯤 걸리는데 낮에 동서가 저희집에 많이 놀러왔습니다.
그래서 동서가 집에서 살림을해 낮에 혼자지내려니 외롭나보다 생각하고 제가 일하는 시간을 쪼개서, 밥해서 먹고 이야기를 많이 나누면서 친하게 지냈습니다. 그런데 방문이 점점 잦아지고 저도 시간에 맞춰 일을 집에서 해야하는 상황이여서 저는 서재에 동서는 거실에서 티비를 보는 시간이 종종 있었습니다.
제가 잠시 쉴라고 나오니 동서가 저의 침실에서 나오더군요. 동서가 놀란표정으로 구경했다고 해서 넘어갔습니다. 그런데 안방에 제 옷방이랑 화장실이 있는데. 안방과 연결되 옷방에서 제 가방들이 없어졌습니다. 만약에 다른가방이였다면 동서에게 전화해 사정을 물어보고 타일러 얼마나 갖고싶었으면이라고 넘어가고 선물로 줄 생각이였습니다. 그런데 없어진 가방들은 저희 엄마가 처녀시절부터 소장하고계시다가 저에게 물려주실 생각으로 남겨둔 샤넬백들이였습니다. 가방이 닳을까봐 드레스룸에서 제일 잘보이는 곳에 진열만 해둔게 없어져 저도 정신이 반쯤나가 동서에게 전화를했습니다. 제가 흥분을해 좋게 말 못하고 급한말투로 빨리 갖고오라고 했습니다. 동서가 아무말없이 아 알았어요 하더니 신경질적으로 전화를 끊었구요. 그러던사이 신랑이 오고 제가 정신이 반쯤나가있자 사정을 말했더니 신랑이 서방님에게 전화를 걸어 빨리 제수씨가 가방돌려주면 그냥 넘어가겠다고 장모님유품이라고 타일렀습니다.
그런데 서방님이 알았다며 얘기한 뒤 소식이 없고 또 다시 전화가 와 신랑에게 마구 화를 내더군요.
자기 집사람은 명품이라곤 없는데 형수님만 명품으로 치장을 하고 다닌다고 많으면서 좀 주면 덧나냐고 따지더군요..졸지에 저를 치사한 사람으로 만드네요..
솔직히 저는 소위 명품을 어떻게보면 많이 소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 능력에서 과하다고하는 범위는 절때 아닙니다. 가끔 맘에드는 가방보면 사서 어머니와 함께들고 바꿔들려고 사는것뿐입니다.
그리고 자매가 있으면 얼마든지 선물할 맘도 가지고 있어, 동서에게 제가 아주 깨끗하게맨 가방도 물려주고 제꺼 사면서 구두와 화장품도 종종 선물했습니다.
결국 참다참다 화가난 신랑은 서방님집으로 갔고 3시간이 지난 후에야 왔습니다. 저에게상처가 될까봐 그냥 잘 해결하고왔다고 가방을 돌려줬습니다. 가방은 체인이 한쪽 끊어져있었구요..
속상해도 제편이 되어주는 신랑보고 참았습니다..
글이 너무 길어져 생략하지만 동서는 저의 화장품,악세사리, 옷 등을 종종가져갔고 , 저를 흉보는 말들이 종종 서방님을 통해 전해져왔습니다.
이후 아버지 생신이여서 저는 아침일찍 음식해드릴려고 준비해간 선물이며 들고 신랑과 갔고,
시간이 지나도 서방님부부는 오지 않았습니다.
평소 아버님은 신랑과는 둘도없는 부자지간이지만 자꾸 삐뚤어져가는 서방님을 좋게보시지 않아
자연스레 멀어지게되었다고 합니다. 그래도 아버님은 내심 서방님을 기다리셨구요.
기다리다 저녁이되고 결국 전화를 걸어 신랑이 빨리 오라고 말했습니다.
9시정도였나 서방님 혼자 술에 조금 취하셔서 오셨습니다.
그런데 하시는 말씀이 정말..아직도 기억에 남네요..
술에 힘을 빌어 부모님께 형만 자식이고 저는 자식도 아니냐면서..
온갖 말들로 부모님께 상처를 드렸고..
제가 형편없으니까 집사람도 깔보는거냐고 따졌습니다.
자식보다 처음보는 여자(=글쓴이)가 더 자식같고 애틋해서 그렇게 사랑을 쏟았냐면서
도대체 제 어디가 그렇게 좋아서 맏며느리노릇안하고 딸노릇시키면서 호강을 시키냐구요..
그리고 결국엔 해서는 안될말까지 했습니다..
부모없이 자란 여자가 뭘 배우고 살아왔겠냐구요..미국에서 형만나기전에 무슨일을하고
살았는지 알아는보셨냐구요 하며 따지더군요..
결국 저희 신랑 참다참다 이말에 서방님을 때렸습니다...
물론 아버지도 머리끝까지 화가나셔서 이런 새끼가 내 자식이냐고 언제까지 못난모습밖에 안보여줄꺼냐면서 화를 내셨습니다.어머니는 말없이 제손을 꼭잡고 우셨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미안하다고 펑펑우셨습니다. 지금 저희 집 상황은 최악이네요...서방님은 유산상속을 당장 해달라고..그러면 앞으로 볼일없다고 하면서 부모님마음에 대못을 쳤네요....부모님이 어찌 자식을 버리시겠어요..
힘들어하시는 부모님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너무 아프네요....
제가 처음부터 서방님과 마음을 열고 잘 지낸후에 결혼했더라면 이런일 없었을꺼같고..자꾸 제 책임같은 생각이 듭니다...저는 정말 부모님과 신랑을지키고 싶습니다..물론 저에게 상처를 많이 줬지만 가족이기에 정말 좋은 방향으로 해결하고 싶습니다...하지만 아무 대화도 통하질 않네요...
어떻게 서방님과 동서와 풀어나가야할지 조금이라도 조언을 해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긴글 읽어주신 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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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남의 상처를 약점삼아서 말하는 시동생이나... 거지근성의 동서... 답없네요..ㅠ
첫댓글 끼리끼리만난다고 진짜 서로 다른사람한테 피해안줄라고 최악들끼리만났나보네요 에효
판 볼때마다 열받는일이 이렇게 많구나 싶네요 ㅠㅠ 상처가 깊어서 저렇게까지 삐뚤어진건지..싶기도 하지만 동서는 답이 업네요 그지같은 여자.. 도둑을 옆에 두고 사네요
저게 도둑이지 달리 도둑인가ㅡㅡ
형편되면 가방도 사고 그런거지 형님이 가지고 있으면 자기도 가져야하나? 뭐 저런 거지같은ㅡㅡ
솔직히 친언니 가방도 잘 못들고 가지않나요? 허락받고 가지고 가는게 예의인데 저건 ㅡㅡ 도둑질 아닌가.....
222 이건 도둑질임..... 글쓴님이 너무 착하시네-_-
333333심지어 엄마 유품이라는데-_-명품<넘사벽<엄마유품 인데 개념없는 동서에게는 명품>넘사벽>엄마유품인듯
444 저도 뭐 하나쓸때 계속 고민하고 물어보고 쓰는데 ; 엄마 유품이라는데 체인망가지고 ... 아 마음이 아프네용
완전 드라마같다.. 글쓰신분 상황이나 망나니시동생이런게....
아 진짜 가슴아프다...
헐..저게 뭐에요..헐..
헐..저게 뭐에요..헐..
이래서 여자 잘못들어오면 집안 말아먹는다는 말이 나오는거 같네요; 지금까지야 그 말 들으면 발끈 했는데 지금 상황을 보니 참.. 시동생은 컴플렉스 갖고있던게 거지근성 부인과 만나며 서로 증폭된거같아요 ㅋㅋㅋㅋ 진짜 동서가 답없네 ㅋㅋㅋㅋ
솔직히 이런건 저 동서라는 사람이 좀만 신경써주고 하면 서방님이랑 부모님이랑 형이랑 사이 좋아질텐데 그렇게 못해줄망정 아주 난리만드네
저런 사람이 있다는게....어찌보면 참 신기함...진짜생각이 없고 개념이없는 사람이 의외로 많은듯...
서방되는 사람이 여자를 잘 만났어야 함.
헐.......
도련님 말이었군요 서방님이래서 첨에 뭐지했네요 여튼 안타깝네요ㅜㅜ
서방님이 맞는 표현일꺼에요 아마ㅠㅠ;;;.............아닌가?... 누궁가가 해답을 내려주세요!!ㅠㅠ...
판보면 겁도없이 남의 물건 슥슥 잘 집어가는 사람들에 참 많은듯 ㄷㄷㄷㄷ
참........남동생도 쉣이지만 동서하나 잘 못들여서 더 구렁텅이에 빠지는 느낌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