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이야기-결혼 45주년을 맞아, 오사카 여정-epilogue
눈에 확 띄는 간판이 하나 있었다.
여정의 마지막 날인 2023년 6월 24일 토요일 오전 11시 반쯤 해서, 오사카 간사이(關西)공항 면세점에서의 일이었다.
그 간판, 곧 이랬다.
‘BURBERRY’
그 간판이 눈에 확 띈 것은, 그 매장과 관련한 슬픈 추억이 있기 때문이었다.
19년 전으로 거슬러 2004년 가을에 아내와 같이 열흘 일정의 서유럽 패키지여행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 가이드가 우리 일행들을 안내해서 런던 공항의 면세점을 들렀었다.
나와 아내도 그 일행들에 끼어 이곳저곳 점포를 둘러보게 되었는데, 아내가 ‘BURBERRY’ 그 매장 앞에 와서는 딴 곳으로 안 가고 딱 붙어 서서 안쪽의 명품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다른 일행들은 부부 동반으로 그 점포 안으로 들어가 가방이나 옷가지들을 구경하고 어떤 이들은 그것을 사기까지 하는데, 아내는 그러지를 못하고 눈요기만 하고 있었다.
아내의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속으로 은근히 걱정이 됐었다.
혹시라도 그곳에서 쇼핑이라도 하겠다고 나서면 어떡할 것인가 하는 그 걱정이었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서, 슬그머니 그 자리에서 도망가고 말았다.
그것은 아내에 대한 불신이었다.
남편인 내 형편을 아는 아내로서 값비싼 그 명품을 살 것도 아니었지만, 혹 사겠다고 하면 좀 무리해서라도 사줘도 될 일이었다.
내 그 졸장부 같은 처신은 아내를 참 많이 슬프게 했다.
두고두고 후회스러운 추억을 내 그때 그렇게 남겨놓고 말았다.
“사고 싶은 거 있으면 돈 걱정 말고 사세요.”
간사이 공항 면세점에서, 내 아내에게 그렇게 마음을 썼다.
“고마워요. 그런데 이젠 면세점에서 살 것이 없어요. 그리고 그 값이면 국내 백화점에서도 얼마든지 살 수 있어요.”
고맙게도, 아내의 응대가 그랬다.
우리가 탄 보잉737 진에어 여객기가 간사이공항 활주로를 미끄러지고 있었다.
동해바다를 날아 이제 곧 인천국제공항에 착륙할 것이었다.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마음속 다짐을 했다.
나를 위해 45년이라는 그 긴긴 세월을 헌신적으로 살아온 아내를 위한 다짐이었다.
곧 이랬다.
‘아내가 하고 싶다하는 대로 다 해줘야지. 그래서 아내로 하여금 후회 없는 인생을 살았다고 기뻐하게 해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