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란 말은 흔히 사용된다.
콤플렉스와 같이 이젠 낯선 단어가 아니다
이 책은 어릴때의 트라우마를 주로 다룬다.
누구나 있을 것이다
사실 한국의 가정폭력과 아동학대는
결코 낮은 수준은 아니다. 드러나지 않고 묻힌 사례도 많을거로 본다.
그게 뭔지도 몰랐던 시대가 있었다
이젠 트라우마도 유전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보고 배우며, 성인이 되어 가정을 이룰때 그 가정에서 상당 수가 반복된다
평행이론- 아동학대는 노인학대로 이어진다
일상에서나 드라마에서 흔히 보이는 아동학대
지금도 전세계의 10억의 아동들이 물리적, 정신적인 학대에 시달린다고 한다.
가부장중심의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줄어들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신문과 방송의 지면에서 종종 발견되곤 한다.
그런데 문제는 단순히 아동학대에 그치는 것이 아닌 이것이
노인학대로 악순환이 된다는 것이다.
맹자가 ' 너에게로 나온것은 다시 너에게로 돌아온다' 라고 언급했는데
우리가 아동학대에 관심을 가지고, 감시해야하는 이유는
이후에 펼쳐질 노인학대를 예방하기 위함이다.
안타까운 것은 모두가 가해자이며 피해자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문제없는 사회는 없었다만
그 상처회복을 위해 스스로 해야 할일이 있다
지식과 경험의 단절이 무서운 이유다. 역사란 것도 한 민족의 지식과 경험이다
그걸 막는 순간 치유되지 않은 트라우마란 괴물은 사회에 얼마나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던가!
트라우마의 확대 재생산을 막아야 한다
이하원문
기억하고싶지 않은 부정적인 과거의 일과 감정을
흔히들 '트라우마'라고 말한다.
다시는 상기하고 싶지 않은 잘못이나 실수를 이야기할 때도
트라우마는 호출된다.
그러나, 만약 트라우마로 일상을 영위하기 힘든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을 만난다면 어떨까.
베셀 반 데어 콜크의 <몸은 기억한다-트라우마가 남긴 흔적들>(이하 <몸은 기억한다>로 표기)은
그러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트라우마와 영화 <스즈메의 문단속>
공교롭게도 베셀 반 데어 콜크의 <몸은 기억한다>을 다 읽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영화 <스즈메의 문단속>을 보게 되었다.
영화는 '트라우마'를 이야기하고 있었고, 재미있게도 트라우마에 대한 접근과 해결 방법이
본 저서가 이야기하는 내용들과 상당히 유사했다.
덕분에 영화 관람이 더욱 흥미진진해졌다.
영화는 과거의 일부를 전체 기억의 하나로 통합시키는 방식으로
주인공 스즈메의 트라우마에 접근한다.
과거의 경험을 특별한 무엇으로 인식하는 방식에서 해방된 스즈메는
현재와 미래를 긍적적으로 수용하게 된다.
스즈메가 과거의 상처를 받아들이며 성장해 나가는 이야기는 이 책의 다음 내용으로 압축된다.
정신적 외상을 입은 사람들은 놈과 달리 새로운 경험을 삶에 통합시키지 못하고
그 상황에 갇혀 버려 그때부터 성장이 멈춰 버린다. …
정신적 외상을 입으면 그 트라우마가 바뀌지도 않고 바꿀 수도 없이 계속 이어지는 것처럼
삶의 구조가 형성되며, 새로운 만남이나 경험들은 모두 과거의 기억에 오염되고 만다.
베셀 반 데어 콜크 <몸은 기억한다-트라우마가 남긴 흔적들> 106쪽 일부
스즈메가 과거의 영향에서 현재와 미래를 구해내듯
콜크의 저서는 과거의 지배를 받는 '지금'을 지키는 것에 집중된다.
트라우마를 야기하는 상처와 고통은 상상 이상의 것이다.
끔찍한 고통의 순간이 끊임없이 반복된다는 것은 상상조차 쉽지 않다.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닌 상태, 트라우마를 겪는다는 것은 그런 것이었다.
콜크의 저서에 담긴 것은 그 아픔에 지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투혼'이었다.
영화 <스즈메의 문단속> 한 장면 쇼박스
물론, 저자가 제공하는 트라우마에 대한 상세하고도 성실한 정보는 그저 감탄을 자아낸다.
연구 업적이 빼곡히 적힌 이 저서의 학술적 값어치는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보다 더한 값어치는 트라우마에 맞서는 환자들의 용기와
사명감을 갖고 환자들을 대하는 저자의 묵묵한 노력에서 찾아진다.
삶의 고통이 삶의 전체가 되었음에도 제 자신을 지키려 노력하고, 그러한 사람을
여러 방법으로 도우려 하는 사람의 모습은 상당히 감동적이다.
특히, 치료 방법에 대한 저자의 열린 모습은 놀랍기까지 하다.
콜크는 전문가이자 권위자일 것이 분명함에도 자신의 방식만을 고집하지 않는다.
효과가 있는 거의 모든 방법을 시험하고 적용해보고 결과를 탐색하려 한다.
경직되지 않은 그의 자세는
다른 무엇보다 환자들을 돕겠다는 목표에 충실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 유연함과 따뜻함이 이 학술 보고서 성격의 글 전반에 스며있다.
콜크의 <몸은 기억한다>는 트라우마가 아닌 사람을 기억하는 글이었다.
총 5부로 나누어진 이 책은 매우 용의주도하고 면밀하다.
'1부 트라우마의 재발견,
2부 트라우마 상태의 뇌,
3부 아이들의 마음,
4부 트라우마의 흔적,
5부 회복으로 가는 길'로 전개되는 내용은
트라우마가 사람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어떤 작용 기제를 가지고 있는지,
아동과 성인의 트라우마가 어떻게 다양한 장애로 발현하는지,
마지막으로 어떤 치료 방법들이 사용되고 있는지를 세심하게 살핀다.
그 내용에는 저자가 '동의할 수 없는'
트라우마에 대한 학계의 접근 방식에 대한 문제점도 포함된다.
정신건강의학계의 상황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독자로서는
저자의 이야기를 완전히 수용할 수는 없지만, 변화가 쉽지 않다는 것은 어디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은
어쩔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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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고싶지 않은 기억들
저자 콜크는 베트남전 참전 군인의 고통과 마주하면서
트라우마에 접근하게 된다.
그들은 보기에는 아무렇지 않은 일상을 살아가지만
말할 수 없는 고통 속에 있었다.
전쟁 중의 끔찍한 기억들은 그들은 괴롭혔으며,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폭력적인 다른 사람으로 변모하기 일쑤였다.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는 진단을 받았지만,
콜크는 그들의 모습과 이후 다른 여러 트라우마 환자들 사이의 일관성을 발견하게 된다.
트라우마는
마음과 뇌가 인지한 정보를 다루는 방식 자체를 근본적으로 재편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과 생각하는 것을 바꾸어 놓을 뿐만 아니라
생각하는 능력도 변화시킨다.…
베셀 반 데어 콜크 <몸은 기억한다-트라우마가 남긴 흔적들> 57쪽 일부
끔찍한 기억을 가진 사람들은 그 기억을 상기하는 것조차 고통스러워 했다.
그럼에도 일부는 그 기억을 끊임없이 상기시키며
받아들여질 수 없는 과격한 행동을 하기도 했다.
시간이 해결할 것이라는 믿음과 약리학의 눈부신 발전으로
투약은 환자들을 고통에서 해방시켜 준 듯했다.
그러나, 시간이 해결해주지 못하는 문제들이 많았으며,
투약을 끊자 대부분의 증상이 재발되었다.
100년 넘는 세월 동안
심리학과 심리 치료에 관한 모든 교과서가 고통스러운 감정을 이야기하며
그 감정을 해소시키는 방법에 대해 조언해 왔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것처럼 트라우마라는 경험 자체가
말로 하는 표현 자체를 가로막는다.
통찰력과 이해 수준을 아무리 발전시키더라도, 현실감을 잃은 상태에서는
이성적인 사고를 담당하는 뇌가 정서적 뇌와 대화를 나눌 수 없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일을 겪은 사람들이 그 경험의 핵심을 전달하는 것을
얼마나 어려워 하는지 보고 나는 지금도 놀라 때가 있다.
이들은 내면이 경험한 일을 인지하고, 느끼고, 말로 표현하는 것보다 피해자가 한 일,
즉 부당하게 괴롭힘을 당한 이야기나 복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훨씬 더 수월한다고 느낀다.
베셀 반 데어 콜크 <몸은 기억한다-트라우마가 남긴 흔적들> 100쪽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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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올린 순간 사라지는 '나'
트라우마를 만난 콜크는 트라우마 상태의 뇌를 살펴 본다.
트라우마 환자들은 공감 능력을 담당하는 전두엽의 기능이 현저히 떨어졌으며,
유입 정보와 생존 관계를 파악하는 편도체의 위험 감지 능력에 이상을 보였다.
스트레스 반응을 통제하는
내측 전전두엽 피질과 편도체 사이의 균형이 급격히 깨지면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Post Travmatic Stress Disorder)'가 촉발되었다.
※콜크는 용어 사용에 있어 PTSD 보다 트라우마를 더 선호한다.
미국심리학협회(APA : 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가 발간하는
'정신장애의 진단 및 통계 편람(DSM : 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2013년 5판 발행)에 PTSD는 있지만 트라우마는 없다.
하지만 콜크는 PTSD만으로는 광범위하게 나타나는 트라우마의 질환적 양상을
다 포괄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특히, 다양하게 나타나는 아동의 장애들이
트라우마 기억에 의한 것이라는 확신에 찬 추정을 PTSD로는 설명해내기가 어려워진다.
콜크는 이를 '말과 말에 올라탄 사람'으로 비유한다.
그는 감성과 이성이 서로 반대 개념이 아니라며
감성을 말로, 이성을 말에 올라탄 사람으로 비유한다.
아무리 승마에 능숙한 사람이라도 말이 날뛰면 위험해진다는 것이다.
트라우마는 이성이 영향을 미칠 수 없는 거친 태풍과도 같은 감성의 통제 불가능 상태이다.
…정서적 뇌의 경보음이 계속 울리며 위험에 처했다는 신호를 보내면,
제 아무리 통찰력이 뛰어난 이도 이를 멈추지 못한다.…
베셀 반 데어 콜크 <몸은 기억한다-트라우마가 남긴 흔적들> 125쪽 일부
말이 날뛰는 것처럼 눈으로 보이는 반응조차 보이지 않는 환자는
더 위험하다.
치료의 기회조차 갖지 못한 상태에서
일상을 기계적으로 영위하다 손쓸 수도 없이 급격한 악화 상태에 도달할 수도 있다.
이러한 트라우마가 야기하는 신체의 반응에 콜크는 주목한다.
트라우마 상태에 놓인 환자들은
타인과의 상호 작용을 안전하게 여기는 신경계의 반응에 이상이 생기며
위기에 처해도 방어 기능이 비활성화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게 트라우마 환자들은 현실에 있는 자신을 잊어버린다.
몸의 메세지를 무시하거나 왜곡하면 그 대가로 정말 위험한 것,
실제로 해가 되는 것을 감지할 수 없게 된다.
안전한 것, 자신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알아보지 못하게 되는 것은
함께 치러야 하는 대가다.
자기 조절을 위해서는 자신의 몸과 친밀한 관계가 형성되어야 한다.
이 관계가 형성되지 않으면 약이나 알코올, 끊임없는 재확인,
다른 사람의 소망에 충동적으로 응하는 행동 등 외부적인 조절에 의존해야 한다.
베셀 반 데어 콜크 <몸은 기억한다-트라우마가 남긴 흔적들> 181쪽 일부
위 인용 부분은 트라우마 환자들의 이상 행동을 잘 설명해준다.
충격을 받고 자신의 몸의 감각을 상실한 환자들은
약물과 알콜에 의존하거나 일반적이지 않은 관계를 맺는다.
트라우마 환자들은 타인을 평가하고 의도를 읽는 전전두엽의 거울 뉴런이 활성화되지 않고
눈길만으로도 생존 모드에 돌입하는 원시 영역이 활성화된다.
이들은 감정 인지 불능, 이인증 등에 빠지며 느낌을 말로 표현하지 못하고,
자신에 대한 감각을 상실하면서 보통의 사회적 유대 기능도 현저히 떨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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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 학대의 결과물, '트라우마성 발달 장애'
콜크는 방임과 학대 환경에 놓인 아이들을 주목한다.
애착 형성이 제대로 되지 않는 환경에 장기적으로 노출된 아이들은
자신의 정서를 제대로 인식하지도 다루지도 못했으며
현실과 과거를 분리하지 못했다.
유아기와 아동기에 걸친 학대와 방임은 다양한 장애 양상으로 나타났다.
콜크는 미국 공중 보건의 최대 문제를 '아동 학대'로 진단하며,
현실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음을 냉철하게 비판한다.
콜크는 아동들의 다양한 장애가
사실상 아동 학대에 근거하여 연결됨을 주지시킨다.
그는 범발적인 조절 장애들과 주의·집중력 문제, 상호 교류의 문제 등이 포괄하여
'트라우마성 발달 장애'라는 통합 명칭을 제안하지만
DSM-5에 실리는 것을 거부 당한다.
콜크는 정신의학계가 병의 바탕을 무시하고 드러난 현상만으로 '진단명'을 선택한다며
답답함을 감추지 않는다.
어떤 것이 더 좋은 선택인지 필자는 사실 잘 알 수가 없다.
다만 콜크의 풍부한 임상은 아동기의 트라우마가
다양한 장애의 바탕이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만, 아동들의 수많은 장애의 근원에 학대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모든 부모를 잠재적 학대자로 치부할 가능성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러한 우려는
아동 학대로 고통 받는 아동들을 생각한다면 매우 작은 문제일 뿐이다.
아동들의 모든 장애의 근원에 학대가 존재하지는 않지만,
많은 장애의 근원에 학대가 존재할 것이라는 것은 확신에 가까운 판단일 것이다.
왜 먹기를 거부하는지, 왜 그토록 많이 먹는지, 왜 그렇게 분노하는지,
왜 그리 집중하지 못하는지, 왜 이리 극심한 우울을 보이는지 등
양상은 다양해도 콜크의 말처럼 하나의 근원으로 대부분의 문제가 모아질 수도 있다.
특히 콜크는 아동기의 근친 성폭력이 미치는 장기적인 영향을 주의깊게 살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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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치료는 증상뿐 아니라 원인도 고려해야만 할 것이다.
아동기의 트라우마가 성인이 되어서도 영향을 미치며,
어떤 트라우마는 '억압된 기억'이 되어 기억을 제대로 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2013년에 발간된 DSM-5에 '직관적인 판단'이라는 견해로
콜크의 제안은 거부 당했지만,
저서에 나타난 풍부한 사례와 저자의 열정으로 짐작하건대, 언젠가는 반영되지 않을까 싶다.
수많은 아동 학대 피해자들처럼 메릴린도 생명력과 살아가려는 의지,
자신의 삶을 스스로 소유하겠다는 의지와 트라우마를 완전히 없애려 함을 증명해 보였다.
나는 트라우마 치료가 효과를 나타낼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환자가 살아남기 위해 몰두했던 노력을 경외하는 것뿐이라는 사실을 조금씩 깨달았다.
그 노력이 환자들로 하여금 학대의 기억으로부터 견디게 해주고,
회복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영혼까지 고통받는 그 숱한 밤들을 견디게 한다.
베셀 반 데어 콜크 <몸은 기억한다-트라우마가 남긴 흔적들> 246쪽 일부
환자와 증상에 따르는 다양한 치료의 방식들
5부에 이르러 콜크는 트라우마 치료를 위한 실로 다양한 방법들을 제시한다.
그는 해보지 않은 것이 없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여러 방법을 치료에 도입한다.
변연계 치료, 마음 챙김, 기억의 통합, 인지행동 치료, 탈민감화, 마약 이용, 약물 치료,
언어 치료, 그림·음악 치료, 안구운동 민감소실 및 재처리 요법
(EDMR : Eye Movement Desensitization and Reprocessing),
요가, 뉴로피드백, 연극 치료 등 콜크는 트라우마 치료를 위해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고
환자에게 가장 적절한 방법을 찾아주려 한다.
이중 가장 관심을 끌었던 것은 'EDMR'이었다.
EDMR은 특별한 기술도 장비도 필요없는 매우 간단하고 쉬운 방법이었다.
트라우마 상황의 기억을 떠올리며 앞에 있는 치료자의 손가락과 지시를 따르는 시간동안
고통스러운 과거의 기억이 전체 기억으로 통합되었다.
콜크 역시 간단하지만 효과적인 EDMR의 결과에 고무된다.
그는 EDMR의 방식이 렘 수면 상태와 흡사하며
꿈꾸는 것은 뇌가 하루의 일을 연상하고 연결·통합하는 행위임을 주지한다.
앞서 말했듯이 트라우마 기억은
변형되지 않은 채 쪼개진 이미지와 감각, 느낌으로 존속한다.
일부러 찾으려 한 것도 아니고 언뜻 보기에는 무관해 보이는
감각과 감정, 이미지, 생각들이 실제 기억과 함께 활성화되어 떠오르게 한다는 점이
내가 생각하는 EDMR의 가장 놀라운 특성이다.
이를 통해 일상적인 경험들, 평범하고 충격적이지 않은 일들을
통합하듯이 오래전에 유입된 정보를 새로운 기억의 꾸러미로 정리할 수 있다.
베셀 반 데어 콜크 <몸은 기억한다-트라우마가 남긴 흔적들> 449쪽 일부
EDMR뿐 아니라 대부분의 치료 방법들은
트라우마 기억을 일반적인 기억의 하나로 통합시키는 것에 집중된다.
트라우마를 특별한 무엇이 아니라 삶 속에 일어나 하나의 사건으로 안정화시키는 것이다.
트라우마 기억은 파편화된 감각과 이미지로 강렬하게 존재하며
마치 당시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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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즈업된 기억'을 전체의 일부로 통합시키기
증세가 심각한 환자들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을 분열시킨다.
흔히들 '다중인격 장애'로 알고 있는 '해리성 정체성 장애'가 그것이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조각난 부분들을 통합시키는 것이며
그것은 트라우마 기억의 통합과 맥을 같이 한다.
해리성 정체성 장애 환자들은
가장 힘든 기억을 가장 약한 부분으로 변화시켜 은폐한다.
그 부분을 해방시켜야 과거의 기억에서 해방되며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게 된다.
과거의 트라우마를 경험의 하나로 받아들여 다른 기억들과 연결시키는 것이
트라우마 치료의 핵심이 된다.
잊는 것이 아니라(사실 잊을 수도 없을 것이다),통합시키는 것이다.
그 과정은 결국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이 될 것이며,
포기하지 않고 맞서는 사람이 트라우마 기억의 힘을 약화시켜 통합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맞서지 못하고 이겨내지 못한다하여 환자를 비난해서는 안된다.
트라우마에 접근하는 데 있어 콜크가 우려하는 문제 중 한 가지는
이겨내지 못하는 것은 나약한 것이라고 치부하는 것이다.
…트라우마의 흔적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치료하는 의사로서 내가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이 사람들에게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그 감각과 감정, 반응을 견디고 순식간에 제압당하지 않도록 돕는 것이다. …
트라우마가 자신의 잘못도 아니고, 자신에게 뭔가 문제가 있어서 생긴 일도 아니며,
그런 일을 당해도 될 만한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도록 해야 한다.
베셀 반 데어 콜크 <몸은 기억한다-트라우마가 남긴 흔적들> 308쪽 일부
필자에게도 끔찍한 고통이 있다. 이겨냈다고 아직도 장담할 수는 없다.
좀 둔해졌을 뿐, 그 기억을 떠올리면 여전히 가슴이 뛰고 아득한 기분이 든다.
만약 그 기억을 구술하게 된다면 눈물을 쏟게 될 것이다.
그 기억을 떨치기 위해 필자가 선택한 방법은 무뎌질 때까지 반복해서 떠올리는 것이었다.
마치 그런 고통이 필자의 탓인 양 반복해서 상기하고 또 상기했다.
잊지 못하는 자신에게 주는 벌이었다. 필자 역시 견디지 못하는 것은 나약한 것이라 생각했다.
이 기억에 지배 당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또 노력했다.
생각하고 또 생각한 것이 통한 것인지, 시간이 기억을 희미하게 만든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이젠 떠올리는 것만으로 몸서리치게 고통스럽지는 않다.
그런 일을 겪은 나 자신이 안스럽고 안타까운 마음이 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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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고 보니 필자가 나약해 그렇게 고통스러웠던 것이 아니며,
필자가 강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견딜 수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조금쯤은 나아진 것은 영화의 한 장면처럼 너무나 생생했던 당시의 기억들,
그때의 장면들과 그때의 소리들을 마냥 거부하지 않고
그저 삶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었다.
그때 콜코의 이 저서를 읽었다면
고통의 시간을 조금쯤은 단축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콜크의 보고가 주는 가치는 성실하고 풍부한 자료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 책의 가치는 굳이 환자라는 명칭을 가지지 않았더라도
너무나 괴로운 사람들이 고통스러운 기억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구체적으로 적시된다는 데에서 발견된다.
글을 쓰면서도 상기된 기억으로 목덜미가 쭈삣 서는 필자는 저자 콜크의 그 마음을 따라간다.
많은 사람들이 이 긴 책을 다 읽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 기억에서 끝내 벗어나지 못한다 하더라도,
고통 속에서 해방된 잠깐의 시간을 늘려 나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이 독후에 담겨 있다.
너무나 힘들어 억압한 기억을 '몸은 기억한다'.
하지만, 바로 눈앞에서 일어난 일인 것처럼 살아있는 그 기억은 지나간 일이다.
트라우마에 힘겨운 사람들은 몸의 기억마저 거부하기 위해
자기 자신을 현재에서 지우는 일을 지속하게 된다.
그 누군가가 제 몸의 기억을 회피하기 보다는, 제 몸의 현존을 체감하며
트라우마가 아니라 자신이 '지금 여기'에 있다는 것을 꼭 기억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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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콜크가 본저에 인용한 스티븐 코프의 글을 적어본다.
이 글은 트라우마 환자가 아니더라도
과거로부터 이어진 지금의 '나'를 성찰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쪼개지고, 거부당하고, 알지 못하고, 원치 않고 의식의 곳곳 지하 세계로 쫓겨나고 추방당한
우리 자신의 일부, 그 일부를 찾아 떠나는 여정을 '밤바다 여행'이라고 한다. (…)
이 여행의 목표는 우리 자신과 재결합하는 것이다.
놀랄 만큼 고통스럽고 잔혹한 귀향이 될 수도 있다.
이 과정에 돌입하려면, 먼저 '무엇도 내쫓지 않겠다'고 동의해야 한다.
출처 : 평범한 그녀/네이버 포스트
첫댓글 이 책은 방향만 제시할 뿐이다
해법은 구체적으로 제시, 적용되지 않으며
각자에게 있다.
또 해결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래도 자신을 안다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과거의 트라우마에서 자신을 다스릴줄 안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역시 포스팅 된 글이다
전혀 내문제가 아닐수도 있다
사회문제다.
그걸 바라보는 시각을 배울 수 있다고 판단되어
포스팅 한다!
정신의학계에선 상당히 오래전부터
이 문제를 주시하고 있었다.
사회가 어찌 돌아가는지 모른다.
이 문제가 제기된지 오래됐다.
움직이지 않는 사회, 방관하는 사회가 있었다
얼핏 넘어가는 사건이 많다
우리 문화엔 잔인한 부분이 있다.
양반이든 백성이든 여러분들은 대다수 모른다.
인권이나 이념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사회전반에 아동학대가 야기한 문제들이 드러나는 것도 있고
숨겨져 드러나지 않는 것들이 훨씬 더 많으리라 봅니다.
그만큼 세상은 복잡다단해 지고 깊은 성찰이 필요하지만...
이보님이 사업하셨으니 사회 각부문을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다른 경로로 깊이는 아니지만 다양하게 알고 있습니다.
지금도 심해요!
그런데 아이러니는 여성인권단체는 이 문제에 소극적이란 겁니다.
여자가 도망가면 남편이 쫓아다녀요!
이쪽은 늦게 보더란거죠. 대부분 남편 폭력에 집
나온 경우인데 제도 보완이 오히려 늦어요
현장을 모르면 삽질을 한다는게 제 생각입니다.
그뒤 인권단체를 전 높이 안칩니다.
독재와 경찰횡포 있었고 존재해요
그 트라우마 겪은 사람들은 이해해요.
나머지요 이론 책 몇권 보고요! 그건요
선동이나 다름없어요
여기에 정치가 또 끼어들었죠
순수한 민간단체도 시간지나면 권력화된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실예도 있죠.
제가 안좋게 본게 반전단체였어요
이라크 가서 인간방패 한다더니 공습하니까 다 뛰쳐나왔죠
죽으란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럴줄 알았죠.
이념은 실전과 달라요.
그러니 쇼한다고 합니다
안갔어야죠. 도망쳐 나오면 더 망신인데 가는게 더 이상하죠.
갔으면 그 자체가 역량미달광고죠!
조용히 시위하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