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운상가 (世運商街)
1968년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건설된 대한민국 최초의 주상복합 아파트.
세운상가라는 이름은 당시 김현옥 서울특별시장종로3가역,
최남단이 충무로역에 인접하는 약 1km 길이의 초대형 상가군이다
세운상가는 일제시대때 일제가 미군의 폭격시 화재가 번지는 걸 막으려는 목적으로
비워둔 공터 자리에 세워졌다.
이후 한국전쟁이 종전을 맞고 1960년대까지 이 공터에 무질서한 판자촌이 형성되고
전쟁의 여파로 몰려든 여성들이 생계수단을 위해 모이면서 종삼은 사창가의 대명사로
불릴 만큼 거대한 사창가가 되었고,
이후 1966년 세운상가가 착공이 시작되고 1968년 준공될 때까지 남아있다가
김현옥 서울특별시장의 "나비 작전"으로 와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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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화 40년 상징 “세운상가 안녕!”>이라는 제목의 기사에는
세운상가에 깃든 역사와 추억,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1967년 세상에 처음 등장한 세운상가는
‘주상복합’의 효시이자 ‘1970~80년대 없는 것이 없는 만물시장’이었습니다.
가전제품은 물론 기계·의류·잡화 등 식료품을 제외한
거의 모든 소비재를 살 수 있었지요.
‘해적판 레코트’같은 값싼 복제품들이 유통됐고, 비디오가 보급되면서
불법 포르노물도 거래됐습니다. “세운상가에선 인공위성·탱크도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였죠.
![](https://t1.daumcdn.net/cfile/cafe/9945414A5C197AEA20)
신문 기사에서는 “서울 종묘에서 청계천로, 을지로를 거쳐 퇴계로로 이어지는
1㎞ 축을 따라 들어선 8개의 주상복합건물은 1인당 국민소득이 144달러에 불과했던
당시로선 역사적인 사건이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이때문에 지방에서 서울로 나들이온 사람들은
세운상가를 둘러보는 것이 주요 코스였습니다.
국내 전자산업의 태동과 맞물리며 제1도심 상권의 영화를 누린 세운상가는
이후 백화점과 각종 할인점, 인터넷 판매 등의 위세에 밀려 몰락하기 시작합니다.
‘도심 교통난의 주범’ ‘남북 녹지축을 훼손하는 흉물’이라는 비난이 이어지자
서울시는 세운상가를 철거하고 도심 재생사업을 벌이기로 결정합니다.
당초 서울시는 세운상가의 노후 건물들을 전면 철거하고 녹지를 조성하거나
고층으로 재개발하는 안을 추진했습니다.
2009년에는 세운상가 일대에 높이 36층짜리 주상복합 4개 동을 짓겠다는
건축계획안이 서울시 심의를 통과했지만, 문화재위원회 심의에서 부결됩니다.
철거 위기를 맞았던 세운상가는
2011년 박원순 시장 취임 이후 건물 보존으로 방향을 틀게 됩니다.
보존·존치관리구역으로 지정·관리하기로 결정되면서
주민과 함께 상가군 활성화가 시작되죠.
현재 세운상가에는 2020년 4월 완료를 목표로
‘다시·세운 프로젝트’ 2단계 사업(삼풍상가~호텔PJ~인현·진양상가)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99A954465C197B0E20)
서울시는 세운상가 북쪽(세운상가~청계·대림상가)을 ‘창의제조산업 혁신지’로 꾸민
1단계 사업에 이어 세운상가 남쪽 지역을 창작인쇄산업 중심지로 바꾼다는 방침입니다.
2020년에는 대림상가를 넘어 삼풍상가를 지나 퇴계로와 맞닿은 진양상가까지
총 1㎞에 걸친 세운상가군 7개 건축물 전체가 보행길로 연결되는데요,
종묘에서 시작해 세운상가를 거쳐 남산까지 이어지는
서울의 남북 보행축을 완성되게 됩니다.
낡고 어두운 전자상가로 기억되던 세운상가는
미술 갤러리와 각종 예술공방이 들어선 젊은 문화명소로 재탄생하고 있습니다.
세운상가의 역사는 여전히 진행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