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아이였던 시절이 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만화나 소설 속의 주인공들이 이 세계 어딘가에 살고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어른이 되어서도 그렇게 믿는다면 정신이 이상하거나 모자란 사람 취급을 받는다. 아이와 어른 사이에는 도대체 무엇이 있는 것일까?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 가면서 무엇을 잃고 무엇을 얻는 것일까? 우리가 잃어버린 그 순수한 날들은 모두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오펄드림]이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는 이유는, 우리가 한때 살고 있었던, 하지만 지금은 까마득하게 잃어버린 그 세계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여주어야 하는 어려운 연출을 한 사람은, [폴 몬티]를 만든 피터 카타네오 감독이다. 그는 섬머셋 모옴 수상작가인 벤 라이즈의 소설 [포비와 딩언]을 읽고, 오랜 각색 끝애 영화 [오펄드림]을 탄생시켰다. 호주 오펄 광산 지역인 라이트팅 리지를 무대로 한 [포비와 딩언]은 영화 [오펄드림]으로 만들어지면서 호주의 또 다른 광산 지역인 쿠버 패디를 배경으로 촬영되었다. 불모의 척박한 사막지대에서 오펄을 캐는 광부 가족들을 소재로 한 이 작품은, 어른이 되면서 우리가 잃어버려야 했던 그 세계를 다시 되돌려준다.
오펄광산에서 일하는 아버지 렉스(빈스 콜로시모)와 슈퍼마켓에서 파트 타임으로 일하는 어머니 애니(자클린 매켄지)에게는 애쉬몰(크리스찬 바이어스)과 켈리엔(사파이어 보이스) 남매가 있다. 오펄을 캐서 부자가 되겠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아버지 렉스는 불모의 사막지대를 파고 내려간지 1년이 지났지만 아직 큰 소득은 없다. 애쉬몰은 평범한 소년이지만, 딸인 켈리엔은 조금 특별하다. 바깥 외출을 거의 하지 않고 혼자서 창고 안에 자기만의 방을 만들어 지낸다. 켈리엔에게는 두 명의 친구가 있는데 켈리엔은 그들을 포비와 딩언이라고 부른다. 문제는 포비와 딩언은 켈리엔이 만들어낸 상상속의 인물이라는 것이다.
학교에 갈 때도, 슈퍼에 갈 때도, 켈리엔은 가끔 포비와 딩언을 데리고 간다. 식사를 할 때는 반드시 켈리엔의 양쪽에 포비와 딩언이 앉는다. 어머니 애니는 그들을 위해 빈 접시를 놓아 주고 그 위에 맛있는 막대 사탕을 올려놓는다. 이야기의 앞 부분은 켈리엔의 이상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집중한다. 혼자 만의 세계 속에 빠져 있는 켈리엔은 학교 발표회에서도 포비와 딩언을 데리고 무대 위로 나간다. 이상한 아이 취급을 받고 친구들로부터도 멀어진 켈리엔은 그럴수록 오빠 애쉬몰을 의지하며 내면의 세계로 침잠해 들어간다.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전개되는 것은 켈리엔의 곁에서 갑자기 포비와 딩언이 사라질 때부터이다. 켈리엔은 포비와 딩언이 사라져 버렸다면서 한밤중에 가족들을 일으켜 세운다. 모든 곳을 찾아보지만 존재하지 않는 포비와 딩언을 찾을 수는 없다. 켈리엔은 어쩌면 그들이 이웃 광산에 갓을지 모른다고 말한다. 결국 아버지 렉스와 모든 가족들은 밤중에 이웃 광산에 가서 포비와 딩언을 찾아보지만 광산주로부터 도둑 누명을 쓰고 고소당한다. 이웃한 다른 광산주들과 마을 사람들은 모두 렉스를 도둑으로 몬다. 렉스 가족은 도둑 누명을 벗기 위해 애를 쓰지만 어머니는 슈퍼마켓에서 해고당하고, 성난 동네 사람들은 렉스집 마당에 화염병을 던진다.
영화의 1/3에 해당하는 도입부에서 렉스 가족과 켈리엔의 독특한 캐릭터를 설명한다면, 나머지 1/3은 이웃 광산과 사이에서 벌어지는 오해를 다루고 있다. 그리고 맨 마지막 1/3은 도둑 누명을 쓰고 기소된 렉스의 법정씬과 포비와 딩언의 장례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오펄드림]의 핵심은 오펄의 아름답고 영롱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사막 광산지대의 불모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것도 아니다. 켈리엔의 상상세계 속에 존재하는 포비와 딩언이 사람들, 일차적으로는 극중 주변 인물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바로 그들과 같은 시각을 가진 우리 관객들이 인식할 수 있도록 구체성을 확보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런 이야기들은 허공에 뜬 구름을 잡으려는 어리석은 모습으로 비춰지기 쉽다.
켈리엔의 내면 세계 속에 뚜렷이 존재하는 포비와 딩언의 모습을 관객들이 구체적으로 체감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감독의 임무다. 피터 카타네오 감독은 이 어려운 작을 성실하게 수행해 나간다. 처음에는 낯설고 이상하지만 내러티브가 전개되어 가면서 우리도 모르게 서서히 켈리엔의 내면으로 동화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우리가 켈리엔의 아픔을 이해하는 그 순간, 우리는 비로소 잃어버린 우리 자신의 순수했던 어린시절을 되찾게 된다. 물론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이며 진정성이다. 장식적 수사와 연출적 기교로 포비와 딩언을 묘사하려고 했다면 그 진정성은 퇴색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피터 카타네오 감독은 그 흔한 컴퓨터 그래픽도 동원하지 않고 인공적 요소를 가미하지도 않은 채, 포비와 딩언의 존재를 관객들에게 알리는데 성공했다. 마지막 부분에 배치된 포비와 딩언의 장례식은 허무맹랑하게 느껴지지 않고 가슴 뭉클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그 중간 과정에 있는 법정씬은 매우 중요하다. 이웃 광산의 불법침입죄로 기소된 렉스를 변호하기 위해, 한밤중에 렉스가 이웃 광산으로 가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를 설명해가면서 싸늘했던 이웃들의 반응은 점차 안타까움으로 바뀐다. 감성적 영역인 상상세계 속의 인물 포비와 딩언이, 이성적인 법정 공방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구체적 존재로 인식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처음 연기자로 데뷔한 두 아역배우들의 존재감은 이 영화에서 절대적이다. 특히 상상세계 속의 인물 포비와 딩언을 창조한 켈리언 역의 사파이어 보이스는 창백한 피부에 꿈많은 눈동자로 순수의 세계를 연기하고 있다. 하지만 오빠인 애쉬몰 역의 크리스찬 바이어스가 상상 속의 인물에 점차 구체성을 부여하는 역할을 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끝내 포비와 딩언을 볼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