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찬모 초대전
산과 하늘, 그리고 별 ‘꿈과 희망을 찾아서’
산과 인간은 그가 지금까지 꾸준히 다루어왔던 내용의 연속이다.
새의 이미지도 한동안 추상화된 양상으로 다루어진 바 있다.풀잎을 확대해 일종의 면 구성을 시도한 작품은
미세한 사물 속에서도 우주만상이 존재한다는 범신적 사유의 또 다른 결정체라 할 수 있다.
글 : 오광수(미술평론가)
[2011. 2. 16 - 3. 1 서울아트센터 공평갤러리]
[서울아트센터] 서울시 종로구 공평동 5-1 공평빌딩 T.02-3210-0071
홈페이지로 가기 http://www.seoulartcenter.or.kr
자연은 풍경이라고 할 수 있는 일정한 시점에서 포착한 산야의 정경이 주를 이룬다. 때로는 우리 주변에 있는 산도 대상이 되지만 대부분 히말라야 산록과 산마루를 다룬 것이다. 하얀 설산과 검은 돌산으로 구성된 히말라야와 히말라야로 가는 길에 정신 속에 각인된 정경들이다. 산을 그리는 화가는 적지 않지만 이토록 신비로운 히말라야 산을 중점적으로 그린 화가는 많지 않다. 적어도 우리 주변에는 아직 없다. 그의 히말라야 산의 그림이 경이로운 것은 단순한 감동으로서의 풍경에 있지 않고 자신 속에 체화된 존재로서의 정경이란 점에서이다. 그러니까 그가 그리는 히말라야 산은 단순한 대상으로서보다 어떤 종교적인 감화의 표상으로서의 대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형은 산굽이 하나 돌때마다 바뀌는 설산의 모습에 감동하여 털석 주저앉았다가 가까스로 정신을 수습하고 일어나 삼배를 올리는 것이었다”고 그와 동행한 시인 김홍성은 전하고 있다. 아마도 그러한 기분으로 산을 그렸음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감동적인 장면이 재생될 수 있을까. 때때로 감동은 현실을 벗어난 초아의 세계로 이끈다. 그의 산 그림은 현실의 산이면서도 부단히 산이 아닌 영역에로 이른다. 어쩌면 이 같은 초현실적인 세계는 그의 전 작품을 관류하는 요체인지도 모른다. 꿈의 세계, 의식이 심층 세계로의 초 현실이기보다는 인간과 자연은 본래 서로 대립되고 나누인 것이 아니라 서로 일체되고 침투된다는 범신론적인 자연관의 구현이라고 하는 편이 더욱 적절할 것 같다. 근원으로 돌아가는 감격이 아니곤 이 같은 정경은 나올 수 없을 것이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218793D4D5B2D8C27)
별이 가득하니 사랑이 끝이 없어라
skyfilled with stars showing endlesslove 144.5x64.5 Painting natural pigment on Korean-paper 2011
![](https://t1.daumcdn.net/cfile/cafe/150D76434D5B2C5E20)
빛과 사랑
Light and love(Mt machhapuchare) 72.7x50 Painting natural pigment on Korean-paper 2010
![](https://t1.daumcdn.net/cfile/cafe/130FF1434D5B2C5E1A)
2천3백만광년의 사랑-
Love of two thousand and three hundred light years 72.7x53 Painting natural pigment on Korean-paper 2010
![](https://t1.daumcdn.net/cfile/cafe/160D03434D5B2C5F20)
선의사랑
zen love 71x60.5 Painting natural pigment on Korean-paper 2011
![](https://t1.daumcdn.net/cfile/cafe/190FE6434D5B2C5F1B)
열린사랑
open love 53x41 Painting natural pigment on Korean-paper 2010
![](https://t1.daumcdn.net/cfile/cafe/170A5B434D5B2C6025)
열린사랑
open love 162x70 Painting natural pigment on Korean-paper 2010
그가 발표하는 작품은 대체로 산 그림과 인간상, 그리고 풀잎이나 새의 이미지를 표상한 것으로 나누인다. 산과 인간은 그가 지금까지 꾸준히 다루어왔던 내용의 연속이다. 새의 이미지도 한동안 추상화된 양상으로 다루어진 바 있다. 풀잎을 확대해 일종의 면 구성을 시도한 작품은 미세한 사물 속에서도 우주만상이 존재한다는 범신적 사유의 또 다른 결정체라 할 수 있다. 산은 역시 히말라야 산과 그 산으로 가는 길목의 설산과 돌산이 주를 이룬다. 산들은 대단히 사실적인 묘법으로 구사되지만 동시에 대단히 비현실적인 공기 속에 잠겨든다. 선명하게 나타나는 산의 주름살, 그 강인한 산의 주름은 화면 전체에 강한 바람을 일으키며 지나간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산들과 그 산의 배경이 된 하늘이다. 하늘에는 수많은 별들로 온통 꽃밭을 이룬다. 황홀한 꽃밭에 나비와 벌이 모여들 듯 휘황한 색채의 점들과 예각진 별 모양의 형상들이 마치 나비와 벌이 날아오르듯 나래 짓을 한다. “자다가 소변을 보고 돌아온 형이 옷을 껴입고 다시 밖으로 나갔다. 밤하늘이 황홀하도록 아름다워서 그냥 잘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형은 돌담 저만치에 서서 무엇인가 홀린 사람처럼 밤하늘을 우러르고 있었다”(김홍성)고 한 바로 그 황홀경이 화면에 펼쳐지고 있다. 산의 형상이 주는 현실적인 구체성과 밤하늘의 쏟아지는 별들이 주는 몽환적인 초 현실이 어우러져 거대한 오케스트라를 연주한다고 할까. 이토록 그의 그림은 어떤 논리 위에서 보아서는 안 된다. 그러한 관성에서 본다면 때로 치졸하고 때로 불합리하게 보일지 모른다. 인간이 가장 순후한 경지에 이르면 어떤 기술적인 것도 거추장스러울 때가 있다. 내가 보기엔 강찬모의 그림은 그림을 단순한 노동 외에 그리는 것으로서의 기도의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작업과 생활이 분리되지 않듯이 꿈과 현실이 분리되지 않는 방법의 모색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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