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전남 작은 하천 서식 멸종위기종, 고흥반도 중심 동·서에 유전적 분리
소하천 정비사업으로 위기 놓여, "수백만년 진화한 청정 개울 좀 놔두세요"
» 좀수수치. 수수미꾸리와 비슷하지만 더 작은 한반도 고유종이다. 사진=전형배
저는 물고기를 연구하는 생물학도입니다. 오늘은 작고 진귀한 물고기 이야기를 들려드릴까 합니다. 그 물고기는 바로 이름도 특이한 ‘좀수수치’(학명 Kichulchoia brevifasciata)입니다.
좀수수치는 지구에서도 한국, 한국에서도 너무도 좁은 장소에서만 작은 숨결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만약 한국에서 좀수수치가 사라진다면 지구상에서 영영 없어지는 셈입니다. 그것만은 어떻게든 막고 싶습니다.
생태학자 최재천 박사님의 ‘알면 사랑한다’는 경구를 저는 참 좋아합니다. 이 글을 통해 좀수수치가 널리 알려져 관심과 애정이 생겨났으면 합니다. 그것으로 좀수수치를 지키는데 작게나마 보탬이 되었으면 합니다.
■ 한반도에서 가장 희귀한 물고기, 좀수수치
좀수수치는 미꾸리를 닮은 수염을 가진 작은 민물고기로 비교적 최근인 1995년에 처음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Kim & Lee, 1995). 좀수수치를 발견하고 이 세상에 발표하신 분들은 몸의 크기가 작기 때문에 ‘작은 수수미꾸리‘라는 의미로 ’좀수수치’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합니다.
좀수수치와 사촌격인 수수미꾸리(학명 Kichulchoia brevifasciata)는 낙동강에서만 서식하는 고유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고유종은 제한된 장소에서만 만날 수 있는 종을 말합니다. 참고로 수수미꾸리는 뺨의 무늬가 수수의 낱알과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 좀수수치와 사촌뻘인 수수미꾸리. 낙동강에만 분포한다. 사진=전형배
아마 이 세상을 다 뒤져 보아도 좀수수치처럼 작은 미꾸리는 찾아볼 수 없을 것입니다. 짐작컨대 좀수수치는 아마도 이 세상에서 가장 희귀한 물고기 중 하나일 것입니다.
적어도 제가 초등학교 시절부터 지금까지 20년 가까이 전국 팔도강산을 누비며 민물고기를 채집해온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좀수수치는 가장 좁은 공간에 살고 있는 종이었습니다. 좀수수치는 전라남도의 고흥반도와 거금도, 그리고 여수의 금오도의 길이가 채 5㎞도 안 되는 작은 하천들 이외에는 전혀 발견되지 않고 있습니다.
■ 좀수수치는 어떻게 살아갈까요?
좀수수치를 주제로 연구를 하고 있는 김은진 박사의 연구를 보면, 좀수수치는 잡식성으로 주로 수서곤충류와 규조류를 즐겨먹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어릴 때는 주로 육질충류라는 유각아메바류를 주로 먹는데, 성장하면서 보다 크기가 큰 먹이인 수서곤충류를 주로 먹습니다(Kim et al., 2011). 마치 사람이 이유식을 먹고 성장하면서 단단하고 큰 음식을 먹는 것처럼 좀수수치도 자라면서 식성이 변한다는 것이지요.
좀수수치는 바닥에 주먹만 한 자갈이 깔려있는 개울의 중상류에 주로 서식합니다. 다 큰 물고기는 모래가 깔린 곳을 별로 선호하지 않습니다. 번식기는 5월부터 7월까지인데, 이때 좀수수치의 뺨에서부터 배에 이르는 부위가 금빛으로 변합니다. 좀수수치의 자연상태에서의 번식행동은 아직까지 그 누구도 관찰한 적이 없습니다.
■ 좀수수치 탐사대작전을 소개합니다
저 역시 좀수수치를 연구하는데 참여했습니다. 동기는 간단했습니다. 동료들과 함께 여전히 미지에 쌓인 좀수수치의 분포지역을 발굴하고 거기서 살아가는 좀수수치의 유전적인 다양성을 연구해보자는 목표였습니다.
» 좀수수치를 채집중인 모습입니다. 좀수수치가 주로 살아가는 자연적인 서식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만약 중장비가 공사를 한다면, 이러한 환경은 무자비하게 파괴되고 맙니다. 사진=김대민.
철저한 예비조사를 거쳐 후보지역들을 선정하고 수 년 동안 좀수수치를 찾아 헤맸습니다. 그저 좀수수치를 알고 싶은 호기심이 긴 여정의 원동력이었지요.
그 결과 총 60여 지점에서 좀수수치를 탐색할 수 있었고, 그 중 9개 지점에서 좀수수치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놀랍게도 그중 5개 지점은 지금까지 그 누구도 좀수수치의 존재를 확인하지 못했던 장소였습니다.
새로이 발견된 지역들 중에는 하천의 변형이 진행 중인 곳도 있었습니다. 그 누구도 이곳에 좀수수치가 살고 있는지도 모르는 사이 조금씩 그들의 서식처는 사라져가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채집된 좀수수치의 조직 일부로부터 디엔에이(DNA)를 추출해 유전적 분석을 수행한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고흥반도 중앙을 기점으로 동쪽과 서쪽이 서로 다른 유전적 특성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입니다. 두 그룹은 형태적인 차이가 거의 없었음에도 유전적 차이가 놀라울 만큼 컸고, 추정된 결과에 따르면 이 두 그룹은 약 270만년 전 나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좀수수치의 두 그룹이 이토록 차이가 난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중요한 점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눈으로 보기에 차이가 없어 보일지라도 그들은 실제로 독립적인 진화적 역사를 갖고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이들의 보존을 위한 전략은 두 집단에 달리 수립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좀수수치의 보존을 위한답시고, 동쪽 그룹의 수를 불려 서쪽 그룹에 풀어놓는다면, 오히려 수백만년간 축적된 진화적 역사를 한순간에 붕괴시킬 수도 있습니다.
» 좀수수치의 동쪽 그룹(위)과 서쪽 그룹(아래)의 모습입니다. 저와 동료들의 연구결과 이 두 그룹은 유전적으로 많이 달라도 형태적인 차이는 없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사진=전형배.
이런 연구가 논문으로 발표될 즈음에 한때 멸종위기야생동식물에서 해제되었던 좀수수치는 환경부의 멸종위기야생동식물에 재지정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하지만, 보호대상으로 지정이 되었는데도 좀수수치가 처한 여건은 날이 갈수록 위태로워지고 있습니다.
■ 하천 정비라는 이름으로 위협받는 생명들
그 동안 하천들 끊임없이 인간들의 간섭을 받아왔습니다. 수해방지, 친수공간 조성 등을 목적으로 바닥을 파헤치고 시멘트를 덕지덕지 바르거나 조금 자연을 생각하면 자연석으로 폼을 내는 것이 하천정비의 시작과 끝이었습니다. 다행인 점은 이런 하천정비가 소규모로서 좁은 구간만 손대고 마는 수준이었다는 점입니다.
그러던 중 4대강 정비라는 대규모 국책사업이 시작이 됩니다. 4대강 정비가 한국의 멸종위기어류 대다수에 치명적인 위협을 끼쳤다는 점을 부정할 수 있는 민물고기 전문가가 과연 계실까요?
상식적으로 보더라도 강의 물을 댐을 만들어 가두고 바닥을 파헤치는 사업은 민물고기의 살아갈 공간을 송두리째 뒤엎는 것이니까요. 이처럼 한국의 민물고기들에게 많은 피해를 안겨준 4대강 정비의 광풍은 멸종에 직면한 좀수수치를 비껴 갔습니다.
■ 그럼에도 장담할 수 없는 좀수수치의 앞날
그러나 안심도 잠시였습니다. 고향의 강 정비사업을 비롯한 지자체 단위의 하천정비 사업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구간별로 시차를 두고 진행되어 왔던 기존의 하천정비와 달리 최근의 하천정비는 4대강 정비 방식을 적용하고 있는 것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고성능의 중장비로 하천을 상류부터 하류까지 넓은 구간을 단기간에 정비하는 방식이지요.
안타깝게도 좀수수치가 사는 개울들도 공사 지역으로 선정되었습니다(전라남도방재과, 2013). 이제 좀수수치의 앞날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몇 년 후 사라져버린다고 해도 이젠 이상하지 않을 정도입니다.
좀수수치를 위협하는 요인에는 좀수수치를 ‘아는‘ 일부 사람들도 포함이 됩니다. 그들은 좀수수치의 희귀함에 이끌려 사육하고자 하는 사람들입니다.
좀수수치가 사는 곳을 찾아가 좀수수치를 채집하고는 나라의 보호를 받는 종임을 알고도 일말의 양심의 가책없이 집으로 가져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좀수수치에게 우리가 해주어야 하는 행동은 소유욕이라는 왜곡되고 변질된 집착이 아니라 좀수수치에 대해 알아주고 좀수수치에 대해 알아가는 것 아닐까요?
■ 삶터를 지키는 것이 생명을 지키는 것
그 동안 생물을 보존한다고 할 때 그 생물 자체의 수를 늘리는데 집중해왔습니다. 이제는 생물 개체 뿐만이 아니라 그 생물이 살아가는 터전을 보존하는 것으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때입니다. 대규모 하천정비로 인해 물고기들이 살아갈 터전이 사라져가는 와중에 수를 불려서 방류를 하는 것이 어떤 효과가 있을까요?
역설적이지만, 좀수수치를 보존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봅니다. 이들이 사는 개울을 최대한 본래의 모습 그대로 놓아두고 부득이하게 공사를 진행한다면, 좀수수치를 아끼고 애정을 쏟는 전문가로부터 최소한의 자문을 구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좀수수치에 대해 우리가 모르는 사실들을 규명하기 위해 좀수수치를 연구해 나간다면, 좀수수치의 지속적인 보존은 가능할 것이라 믿습니다.
» 교란되지 않은 좀수수치 최대의 서식지. 사진=전형배
자연적인 개울을 인공적인 공간으로 변형시켜서 인간이 얻는 이득은 크지 않습니다. 자연은 이미 태초 이래로 지금까지 검증된 지구상 가장 안전한 시스템입니다.
저와 동료들의 연구에서 적어도 좀수수치는 공통조상으로부터 나뉜 이래로 수 백 만년 동안 살아왔습니다. 고흥과 인근 지역이 본래 삶의 터전이었을 가능성이 높기 떄문에 이 지역은 그만큼 유구한 세월동안 맑고 청정하고 교란이 없었던 보금자리였던 셈이 됩니다.
이러한 멋진 경관을 우리의 생존과 후손의 번영을 위해서라도 그대로 놓아두면 어떨까요.
전형배 영남대 생명과학과 박사과정
첫댓글 우리 고향에서 기름치라 부르는 고기와
비슷하고만요. 잘 지키면 좋겠어요.
귀한 자원이 고갈되지 않도록 잘 관리해서 후손들에게 물려줬으면 좋겠어요..
우리 곁에서 알게 모르게 사라져가는 토종들....
안타까운 마음이 너무 많습니다....
어렸을적에 그 많던 물고기들이.......
그래요.
꺽지, 각시붕어, 빠가사리 등
이름도 정겨운 우리 물고기들,
그리워져요..
깨끗한 곳에서만 서식하는가 보군요.
보기엔 아주 맛나게 생겼습니다.ㅎㅎㅎ
오늘 배가 고프신가요?
전주 오목대 아래 가면 물고기랑 새우에 시래기 넣은 오모가리탕 있는디요 ㅋㅋㅋ
@민들레의꿈 광주도 송정리 종점가면 오모가리탕 합니다. ㅎㅎ
@초록배낭(광주) 아, 그래요?
서울로시집간 친구 입덧할때
여기 데리고가서 오모가리탕 사줬더니
어찌나 맛나게 먹던지..
그 후로 지금도 그 말 해요.
너무 맛나게 잘 먹어서 잊히질 않는다고요..
@민들레의꿈 광주도 그집만 줄서서 번호표 받을걸요ㅎㅎ
더군다나 미꾸라지 튀김을 써비스로 줘버리니ㅎㅎ
전 처음보는 고기네요.
먹기가 아까울정도로 예쁘구요.
좀수수치의 앞날이 걱정됩니다.
저도 처음 접해본답니다.
식용 보다는
관상용으로 잘 보존됐으면 참 좋겠어라~^^
문명...
그 발전 앞에
하나 둘씩...
사라지는 안타까운 자연
가슴 아픕니다.
예전에는 강에 잘 살고
있었는데 이젠
우리에 곁을 떠나가는지
눈에 보기 힘들어 집니다.
종족 보존 잘되어
함께 살아갔으면 하는 생각드네요.
좋은 정보 소식에 감사를
드립니다.
맞는 말씀이세요..^^
저는 각시붕어가 떠오르는군요.
쬐맨한게 귀엽기도 하고
분홍빛 나서 예쁘기도 했던 각시붕어.
대야에 물 떠다 놓고
고무신에 잡아온 각시붕어를 풀어놓고 들여다보면 시간가는 줄 몰랐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