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그간 오랜 기간 도서관에서 돋보기를 쓰고 책을 보느라 망가진 눈을 치료하기 위해 광주에 있는 안과병원을 다녀왔다.
애초 생각하기에는 노안으로 시력이 나빠졌으니 이참에 노안수술을 하면서 망막에 렌즈를 삽입하여 안경을 면하는 동시에 시력회복을 원하였다. 그래서 그 안과병원 옆에 직장이 있는 동생에게 아침 일찍 접수를 해줄 것을 부탁하였더니 아침 08:30경 접수를 해두었으니 10:00경 안과병원에 도착해서 이미 접수자라고 하면 안내를 해줄 거라며 반드시 차를 운전하지 말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라고 신신당부한다.
그 전에 시골에 있는 안과병원에 찿아 갔더니 차를 운전하고 왔다는 이유로 진료를 미루었는데 그 당시 진료를 맡은 의사에게 신뢰가 가지 않아 동생에게 광주시내 유명한 안과병원의 진료 접수를 부탁한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동차를 소유한 후에는 대중교통 이용을 잘 하지 않는 것과 같이 나도 시외버스를 타보지 않은 지가 30년이 넘었기에 광주직행버스를 운행하는 면소재지 터미널까지는 내 승용차를 타고 갔다. 예전 경험으로는 광주에 가는 버스가 5-10분 간격으로 있었기에 그때 생각만 하고 아무 때나 정류장에 나가면 버스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였다.
버스터미널에 갔더니 광주로 출근하는 사람들 차량으로 공용주차장에 빈 공간이 없어 인근의 5일장 주차장으로 주차를 하러 갔다. 그 곳도 장날이라고 주차할 공간이 없어 면 소재지를 두어 바뀌 돌아 간신히 차를 주차한 후 09:10경 버스터미널로 와서 차 시간을 확인하니 09:00 차는 이미 출발하였고, 다음차가 10:00 차란다.
무인기계시스템으로 발권하는 차표를 구매한 후 시간 여유가 있어 인근 커피숍에서 커피를 한잔 한 후 09:50경 터미널로 왔더니 55분쯤 승차를 하는데 미리 구매한 차표를 주머니에서 한참 찾아도 어디다 두었는지 도저히 찾을 수가 없어 급히 새로이 차표를 구매한 후 승차를 하였다.
11:00경 안과병원에 도착하여 먼저 시력검사부터 하는데 얼마 전 시골 안과에서 시력측정시 양쪽 나안시력이 0.2 였었는데 시험 끝난 후 한 달 가량 쉬었더니 시력이 많이 회복되어 0.6과 0.7의 시력이 나온다. 시력 검사 후 검사실에서 여러 가지 검사를 받은 후 의사에게 안내되어 검진을 하는데 내 나이쯤에서는 나쁜 시력이 아니라고 보았는지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라고 묻는다. 듣기에 노안수술을 하면 시력도 회복하고 덤으로 안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는데 노안수술을 받고 싶다고 하였다.
그랬더니 추가로 몇 가지 더 확인을 할 것이 있다고 검사를 더 받으라고 하더니 황반부종 등의 증세가 있으니 그 담당 전문의에게 검진을 추가로 받아 보란다. 추가 검진결과 황반부종과 당뇨합병증으로 안 혈관의 일부가 막혀 새로운 혈관이 생성되는 등 혈관부종 완화 치료 및 신생혈관의 레이져 치료가 필요한데 우선 황반부종을 치료키 위해 그 효능이 인정되는 항암제 치료제의 주사치료를 권유한다.
일반적으로 환자들은 전문가인 의사의 치료권유를 거부하기는 어렵다. 더구나 그 치료비가 수백만 원 하는 것도 아닌 수십만 원 정도의 치료 권유에 이를 거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안과병원 이지만 큰 병원이다 보니 의사를 포함하여 그 관계자들이 30-40명 가량 되는 광주에서는 제일 큰 병원이라는데 이미 시간은 점심시간이 지나 배도 고픈데 그 의사의 입장에서는 내가 오전 마지막 환자인 것 같았다.
예정하지 않은 황반부종에 항암제 주자치료를 받기로 결정한 후 10여분을 기다린 후 양쪽 눈동자에 주사치료를 마치자 마자 간호사와 그 의사는 점심식사를 하러 가려는지 바쁜 기색이 느껴졌다. 간호사의 손에 이끌려 주사치료실을 나오는데 눈동자에 주사를 맞아서 그런지 눈앞이 뽀얗게 보일 뿐 전혀 앞을 볼 수가 없었다. 순간적으로 2-300미터 가량 떨어진 시외버스터미널까지 걸어가서 버스표를 구매하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그때였다. 누군지 “형님 치료 다 끝나셨어요”라고 눈앞에서 말하는데 흐릿하게 사람 형상이 보일 뿐 누구인지 모르겠으나 그 목소리는 내 동생 목소리였다. 순간적으로 너무 반가워서 어떻게 왔냐고 물으니 자기 직장이 그 병원에서 2-300미터 가량 떨어져 있는데 점심식사나 같이 하려고 왔다는 것이었다. 반가운 와중에도 앞이 보이지 않으니 어쩔 수 없이 동생에게 팔을 잡혀 이끄는 대로 치료비를 계산한 후 처방전을 받아 같은 건물에 있는 약국에서 약을 받은 후 2-300미터를 걸어 동생 직장 주차장까지 갔다.
동생은 이렇게는 안되겠다며 사무실에 전화로 2시간의 외출을 신고한 후 나를 태우고 시골집까지 와서 그 인근의 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한 후 바쁘게 직장으로 복귀를 하였다. 그 병원에서 애초부터 눈에 항암제 주사를 맞으면 일시적으로 시력을 잃어 상당시간 도우미가 필요하다는 안내를 해 주었으면 그 주사치료를 다음에 받던지 아니면 동생을 불러 안내를 받을 수도 있었을 것인데 그런 안내 없이 눈동자에 주사치료를 받고 보니 순간적으로 휴대폰으로 누구에게 전화를 할 수도 없는 상태가 되어 많이 당황하게 되었던 것이다.
집에 돌아 와 곰곰이 오늘 일을 되짚어 보니 혈육이란 것이 참으로 중요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7년 차이의 동생은 중2때 내가 군에 입대하였고, 부친이 그해 돌아가시면서 나와 그리 깊은 정을 느낄 사이도 없었고, 군 제대 후에는 각기 다른 곳에 정착하여 살다 보니 많아야 1년에 2-3회 만날 뿐이었음에도 아무런 댓가 없이 형제라는 사실만으로 아낌없는 정을 주고 있으니 참으로 고맙고 한편으로는 미안하다.
얼마 전 서울 형님 장례식장에서 오랜만에 오랜 시간 대화를 하면서 동생에게 “나는 너에게 잘 해준 것이 하나도 없는 것 같은데 매번 너에게 많은 신세를 지는 것 같아 형으로서 늘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을 하였더니, 동생은 언제 형님이 제게 무엇을 해주었고, 언제 어떤 도움을 주었다는 등 나는 까마득히 잊고 있는 사실을 들먹이면서 이야기 하는데 옛말에 “때린 사람은 잊어버려도 맞은 사람은 잊지 않고 있다”는 말처럼 별것도 아닌 것을 고맙다며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는 동생에게 새삼 고맙고 미안한 생각뿐이다.
나이 들어가며 새삼 혈육의 정이 소중하다는 것을 느낀다. 한 이불을 덮고 사는 부부도 등을 돌리면 남 보다 못한 사이가 된다는데 형제간에는 같은 부모의 피를 받았다는 이유로 남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닌 그저 형제이기에 서로에게 더 못 주어 애타는 그런 사이인 것 같다.
누님들이 또 전화를 하기 시작한다. 마음 놓고 느긋하게 기다리면 마음을 추스린 후 내가 알아서 전화를 드릴 것인데 아무래도 남자형제보다는 여자 형제들이 더 마음이 느긋하지 못한 것 같다. 누님들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첫댓글 안녕하시오? 봉곡산인님 감사히 잘 봤습니다.
혈육도 중요하지만 자신의눈 더욱 소중히 해야지요.
저도 안과수술을 받은후 지금 눈이 건강하답니다. 감사
감사합니다.
눈시울이 시큰합니다
참으로 정이 많은 동생분이시네요
아무리 크고 유명한 병원이지만
의사나 간호사나 기본이 안되었다는 생각입니다
위험한 상황이 올 수 있음에도
고지를 안해주다니요
읽는 제가 살며시 부아가 살짝쿵
치밀어
올라오려고 하네요
세상을 살다보면 어느정도의 직업적인 대응이 필요할때도 있지만
이를 소홀히 한 경우가 있지요. 이를 새삼 비난하려던 의도는 없었습니다.
저는 단지 생각지도 않은 어려움에 처했을때 뜻밖에 동생이 찿아와
위기를 무난히 넘길 수 있었던 상황을 말하려 했던 것 뿐입니다.
공감에 감사합니다.
저도 눈물길 막혀서 수술후 의료진의 고마움이랄까. 의술이 뛰어남을 느꼈지요
혈육이 좋을때는 좋은데 어떨때는 작은일에도 섭섭할때가 있어요
동생으로 인해 의도치 않은 위기 상황을 무난히 벗어날 수 있었던 경험을
이야기 하고자 했습니다. 어떤 상황하에서도 혈육의 정은 영원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