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강제경의 연주곡명을 세진이 말하려던 순간, 연주를 마친 제경이 무
대를 내려가다 혜영을 향해 돌아서서 외쳤다.
"연구발표회, 아줌마도 오는 거야?"
"당연하지. 내가 주최자다."
"음...그럼...오늘..좀 전에도 아직....완벽한 내 피아노를 치지 못했어. 그
러니까..."
그 연주가 완벽하지 못했다니...;;; 그러나 제경은 정말로 쑥쓰러운 듯 얼
굴을 조금 붉힌 얼굴로 눈을 부릅뜨고 혜영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날은 진짜 나의 '피아노'를 칠 거야. 저런 어리숙한 녀석한테 지지
않을 거니까 아줌마가 꼭 봐줘."
혜영 앞에서는 그 나이만큼의 어린 티가 나는 말투. 그녀는 가만히 의아
한 듯 쳐다보다가 따뜻하게 미소지었다.
"그래. 좋아. 대신 그날은 꼭 약속 지켜!"
"당근이지!!"
그러나 곧 밖으로 달려 나가려던 제경이 생각났다는 듯이 다시 되돌아섰
다.
"아줌마는 쥬디를 많이 닮았어. 그 말을 꼭 하고 싶었어. 그리고 한예지!!"
제경의 눈이 장난끼로 반짝였다.
"너, 약속 잊지 마."
"반말하지 말랬지!!!"
제경이 사라지고 난 뒤에도 복도에서 울려오는 웃음소리에 한예지, 파들
파들 떨었다. 정말 만에 하나 잘못하다가는 건방진 나이 어린 후배 녀석
하고 사귀게 될 것 같은 분위기...
강제경, 그 녀석의 너무나 굉장한 연주를 듣고서 불안해진 예지는 제후
에게 다가가 말했다. 아니, 예지는 민제후 그 자체가 너무 불안했다.
"너...정말이지?"
"뭐가?"
제후가 심드렁하게 대꾸한다. 역시 불안감이 현실로 다가오는 느낌...??;
"너 피아노 칠 줄 안댔잖아."
"어, 그거? 당연하쥐!! 보여줄까?"
너무나 당당하게 말하는 민제후..
제후, 정말 자신이 있는 건지 무신경한지 어떤지 동요를 보이는 다른 사
람들과는 달리 평온하다. 이번엔 믿어도 될까?
어쨌든 제후가 피아노 앞에 다가가 자신있게 앉았다. 눈을 감고 잠시 숨
을 고르는 것 하며, 두 손을 이리저리 꺽으면서 손가락을 풀어주는 것 하
며, 폼만은 뭔가 한가닥 제대로 보여 줄 것 같은 자세. 예지는 이번만은
제후가 제대로 할 것 같다는 기대에 가슴이 부풀었다.
드디어 제후가 멋진 포즈를 잡으며 피아노 건반에 두손을 갔다 댔다.
그리고...
-솔솔라라솔솔미~솔솔미미레~~. 솔솔라라솔솔미~솔미레미도~!!!-
매우 빠른 템포로 두손으로 순식간에 쳐내린 곡조...그것은.
제후가 자신있게 들려준 그 곡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유명한 명곡 중의 명곡, 바로 <학교종이 땡땡땡>.....;;;;
고요해진 분위기...
하지만 그런 분위기 속에서도 민제후, 마지막 마무리로 지긋이 감상에
빠진 듯 감은 눈과 마지막 터치와 함께 힘껏 치켜올리는 손의 연출도 잊
지 않았다.
후후후...복잡한 곡만이 명곡은 아니지. 이 얼마나 훌륭한가.
"이...이...
?..."
침묵속에 어딘가에서 이를 가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야, 이 멍청아!!!!!!!"
-뻐억!!-
"아악!!!"
멀리 제후의 머리에 맞고 날아가는 까만색 구두 한짝이 보였다.
"오호호호호홋!!! 역시 내 눈이 틀리지 않았다니까!!"
그런 모습의 제후와 예지를 바라보던 장혜영 여사의 호쾌한 웃음소리가
대강당을 울렸다.
눈이 틀리지 않았다니...그럼 원판 어머니, 역시 정말로 못하는 거 알면
서 그랬단 말이유?
그리고 그때를 같이해서 다른 한쪽에서는 신동민이 세진에게 날카로운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
"다들 네 장단에 발맞추고 있는 거 아냐?"
"무슨 말씀이신지..."
옆으로 다가와 조용하게 말하는 동민의 추궁.. 그러나 세진은 짐짓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는 듯이 생긋 웃었다. 세진의 그 여유로움에 동민의 눈이
더 날카로워졌다.
"다른 애들은 몰라도 난 아직 널 믿지 않아. 이상하게도 네 정중한 말투
가 오히려 사람을 깔아보는 듯한 느낌을 주거든. 내....혼자 느낌일 뿐인
가?"
"그러셨습니까?"
이런 말을 듣고도 웃는다?
순간 동민은 2살이나 어린 소년 앞에서 자기 혼자 긴장하고 있다는 걸
깨닫고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어린 것이 영악하다라는 말...그 뜻을 알
것 같다. 동민이 어깨에 힘을 빼고 주머니에 손을 넣은채 벽에 기댔다.
"모든 것이 처음부터 유도된 일이라고 생각되는데? 저 단순한 녀석 행
동 패턴을 조금이라도 꿰고 있다면... 넌 뭔가 '사고'를 보고 싶었겠지.
물론 나도 네가 처음부터 장혜영과 강제경이라는 인물까지 계산에 넣었다
고 보진 않아. 그들은 뜻밖의 변수였을 테고..."
세진은 아직도 아무 긴장감 없는 얼굴로 엉뚱한 방향을 쳐다보며 생글생
글 웃고 있다.
"하지만 넌 그 변수로 인해 흘러가는 방향이 더 재미있었겠고...그 사건
을 도왔겠지. 그런데 내가 알고 싶은 건 왜 그 타겟이 '민제후'란 녀석에
게 맞춰져 있을까..."
"네, 장혜영씨는 뜻밖의 행운의 패였죠! 덕분의 풀리지 않던 퍼즐이 한
꺼번에 풀렸다고나 할까요? 그래서요?"
"뭐?"
아무 말없이 끝까지 웃기만 할 것 같은 녀석이 갑자기 동민의 말을 잘랐
다.
"그래서 뭐가 어쨌다는 거죠?"
돌아서는 세진의 얼굴이 보였지만 얼굴을 가린 안경이 이젠 붉게 물드는
저녁놀이 반사되어 표정을 볼 수 없었다. 그에게 드리워진 검고 붉은 실
루엣이 강렬하다.
"친구라고 말하고 싶은 건가요? '친구'라... 누굴 말하는 걸까?"
차갑게 말하는 시선...
"자, 심문은 이제 끝내죠. 어설픈 '도둑과 경찰 놀이'가 지겨워졌어요.
증거 불충분입니다."
두손을 피며 생긋 웃는 유세진.
동민은 질렸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내가 못살아 못살아!!!"
그때, 예지의 한탄소리가 들려왔다. 두 손으로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걸어오는 모습을 보니 이젠 포기했다는 듯한 포즈다. 피아노 앞에는 제후
가 무안한지 머리를 극적이며 맨 아래서부터 88개의 건반 하나하나를 세
듯이 눌러보고 있었다.
"난 이제 망했어."
"할 말이 없다.^^;;;"
"그...그래도 연하라니...난 망했다구."
부서진 창 너머로 붉게 물든 노을이 대강당에 스며들었다.
정말 길고 긴 하루였다.
오늘이 토요일이라 그런지 적막한 교정에 교내 방송에서 흘러 나오는 음
악 소리만이 잔잔하게 울려 퍼졌다. 모두의 마음을 너그럽게 해주는 선율
이다.
"러브레터의 'A Winter Story'.... 봄에 듣는 겨울 이야기도 괜찮네."
그리고 멀리서 잔잔하게 들려오던 음악 소리도 더 이상 들려오지 않자
다들 그만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할 때,
그때 어디선가 들려오는 멜로디...
"이건......'A Winter Story'잖아?!"
갑자기 매우 가까이에서 들려오는 심플한 맑은 선율에 모두들 고개를 돌
렸다. 피아노 앞에 앉아있는 한 사람과 서 있는 한 사람이 보였다. 노을
을 등지고 있어 검은 실루엣만 보이는 피아노 앞의 사람은 누구?
"장혜영씨?"
"아니야!"
"그럼..."
예지와 동민이 말도 안된다는 얼굴로 소리쳤다.
"설마...민제후?!!!!"
유세진도 이번만큼은 계획이 어긋난 듯, 무서운 얼굴로 중얼거렸다.
"Absolute Pitch....절대음감..."
...계속
(여러 편을 붙이면 연결이 잘 안되는 것 같은...??; 란이 바보~!
주로 제 정신이 아닐 때 써서 그런지 역시 전폭 수정이 필요할 것 같다.
그러나 나중에 나중에!! 왜? 귀찮으니까.^0^
그리고 유세진이 앞으로 사사건건 제후를 방해할 것 같다. 또 동민이의
여동생도 등장할 것이다. 꼬마 숙녀님이다.^^ 제발 엽기 소녀만은 되지
않길 바라며... 정상적인 인물이 되길....(불가능한 소원을 비는군.켈켈
켈...) 흠, 또 스콜피온과의 매듭도 지어야겠군.
???
--------------------------------------------------------------------------
----
제 목 : [뉴 라이프]38회 -신을 부리는 아이(1)-
<< 뉴 라이프 (New Life) >>
-38- [부제: 신을 부리는 아이(1)]
짹짹짹!!
명랑하기 그지없는 산새 소리.. 아침이 밝았다. 동쪽 하늘이 점차 밝아지
더니 푸른 물빛으로 변하고, 기분 좋은 안개가 적당히 가라앉은 숲은 가
슴을 씻어내리는 시원한 새벽 공기로 가득한 이른 아침..
그 싱그러운 연두빛 초록 속에서 반짝이는 아침 첫 햇살 속에 성전저택
의 고용인들은 너무나 분주하다. 3년만에 귀국한 성전그룹 장문수 명예회
장의 무남독녀 외동딸이자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인 장혜영을 위한 만찬 준
비였다. 마침 오늘이 일요일인지라 가벼운 저녁 만찬이라 하지만 준비할
것이 만만치 않은 것. 모르긴 해도 정·제계의 중요 인사들도 꽤 참석한
다 하니 아마도 어느 정도 규모의 파티가 될 것이다.
김비서가 분주한 아침 풍경을 살피다가 제후를 깨우러 그의 방으로 향했
다. 좀 이른 감이 있었으나 그의 생각엔 오늘같은 날은 아침을 일찍 시작
하는 것이 좋을 듯 싶었다. 앞으로 제후가 성전그룹의 전면에 나서게 되
면 전문 비서가 필요하겠지만 현재로선 그가 학업을 마칠 때까지 김비서
가 제후의 스케줄 관리와 업무 파악을 도와줘야 하기 때문에 챙기는 일이
다. 뭐, 그의 진짜 임무는 제후가 진짜로 회사를 말아먹지 못하게 감시하
는 역할이 더 크긴 하지만...;;;
민제후..
취임식은 없었으나 이젠 명실공히 성전그룹의 총수인 18살의 소년..
아마도 그는 최연소 그룹 회장으로 이름을 남길 것이다. 물론 한동안 그
에 대한 모든 것이 공식적으론 비밀에 붙여지더라도...
-똑똑-
"회장님. 김비섭니다."
...아무 대답이 없다.
아직 안일어나셨나? 하기사 아직 그럴 나이시지...
김비서가 예전의 아침잠이 많던 도련님을 생각하고 다시 노크하며 다시
큰 소리로 외쳤다.
"오늘 친구분들하고 약속이 있으시다면서요. 그리고 어머님도 오셨는데
같이 식사하셔야지요."
그래도 대답이 없다.
'이상하군.'
웅얼거리는 잠투정이라도 들릴 줄 알았건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무
반응에 김비서가 '실례합니다'라고 말하며 문을 열고 들어섰다. 익숙한
거실과 방이 눈에 들어오자 김비서는 거실과 제후의 개인 서재를 지나쳐
침실쪽으로 주저없이 걸음을 옮겼다.
"회장...?"
그러나 문을 연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따뜻한 느낌으로 인테리어 된
방안에는 오래전 사람이 나갔다고 말하는 듯 사람의 흔적이나 온기 없이
싸늘했다.
'새벽부터 어딜 가신 거지?'
김비서가 서재까지 돌아보고 어느 곳에도 없는 제후의 행방에 의아해 하
며 거실로 나왔다. 물론 사고가 있기 전이지만, 아침잠이 많기도 하고 신
경이 예민해서 밤 늣도록 잠을 잘 이루지 못했던 제후 도련님.. 그래서
항상 늣도록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힘들어 했던 걸 기억하는 김비서
였다. 체질이 그리했던 것을 게으르다고 장회장에게 여러번 혼줄이 나기
도 했었는데...
"어?"
그가 거실로 나오면서 활짝 열린 테라스 문을 발견하고 그곳으로 다가갔
다. 바람에 펄럭이는 투명한 커튼 뒤로 저택 뒤 정원과 개인 사유지 숲으
로 연결된 계단이 보였다. 그가 하얀 대리석으로 아름답게 꾸며진 계단을
내려가 정원을 지나며 주변을 살폈다. 화려하지 않지만 우아하고 소담하
게 꾸며진 정원의 은은한 꽃향기가 아침을 더욱 싱그럽게 했다.
산책이라도 하고 계신 걸까?
"회장님! 어디 계십니까!!"
그때 어디선가 들려오는 찢어질 듯한 소리!
"삐---이익-!!"
그리고 숲쪽의 나무들이 조금 흔들리는가 싶더니 갑자기 번쩍이는 금빛
물체 둘이 빛살처럼 쏘아져 나타나 김비서를 덮쳐왔다.
-슈아앙!-
"흐악!!"
"비켜!!!!!"
갑자기 나타난 두 금빛 물체는 바로 민제후와 금응!!
그 둘이 숲을 빠져 나오자 예상치 못하게 마주친 김비서를 향해 다급히
소리쳤지만 이미 멈춰서서 피하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
갑작스런 상황에서 김비서는 모두 심하게 다쳐 바닥에 구르는 모습을 떠
올렸다.
'부딪힌다.'
-팟!-
그런데 그때, 민제후의 모습이 순간적으로 사라졌다 싶더니 김비서를 뛰
어 넘어 다음 순간에 그의 뒤에 나타났다. 전속력으로 달리다가 뭔가와
부딪히기 직전, 단 한 번의 도움닫기로 그 장애물을 뛰어 넘다니...
제후는 김비서를 뛰어넘고 바닥을 서너번 데굴데굴 구른 후에야 한쪽 무
릎으로 땅을 짚고 착지했다. 금응도 제후와 거의 동시에 날카로운 소리를
지르며 김비서와 충돌하기 직전, 아슬아슬하게 하늘로 급선회하여 치솟아
올랐다.
"으....."
세상에...
김비서 그가 비록 눈에 띄는 장신은 아니지만 거의 1미터 80에 가까운
키였다. 그런데...
-푸득푸득-
금빛으로 화려하게 빛나는 새끼 매가 날개짓하면 지상 가까이로 내려오
자 제후가 한손으로 이마에 땀에 젖어 늘어진 머리를 쓸어올리며 의미심
장하게 씨익 미소지었다.
"닭.둘.기!! 오늘은 내가 이겼다."
"삑-!! 삑-!!"
새끼 금응이 금빛 머리의 소년의 통쾌한 웃음 소리에 분하다는 듯이 퍼
득퍼득 거렸다.
"회...장님...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계속
(늣었습니다.??; 하지만 저도 괴로운 사정이... 기다리시는 독자보다 글
등록 못하는 작가가 더 피가 마릅니다. 죄송합니다.^^;;;;
아! 그리고 저번 회와 이야기가 갑자기 바뀐 것 같죠?^^ 오늘 또 이 곳에
서 끊었지만 지난 번 그 장면 이후의 장면은 지난 일을 생각하는 장면으
로 처리해서 다음회에 보여 드릴려고 합니다. 전체적으로는 자연스러운
진행이 될 겁니다.;;;;
'신을 부리는 아이'라는 부제는 앞으로 등장하게 될 '신동희'라는 캐릭터
를 위해서 붙여봤습니다.
...이번회는 또 많이 짧네요. 우...
그럼 다음 회를 위하여 이만...사사샥~ ( --)/
--------------------------------------------------------------------------
----
제 목 : [뉴 라이프]39회 -신을 부리는 아이(2)-
<< 뉴 라이프 (New Life) >>
-39- [부제: 신을 부리는 아이(2)]
김비서의 화가 난 듯 떨리는 나직한 목소리에 그제서야 제후가 시선을
돌렸다.
"아! 김비서. 여긴 왠 일이야?"
"왠.일.이라니요!!!"
지금 누구 덕분에 죽을 뻔 했는데!!
김비서가 미간을 찌푸리며 한마디 한마디를 강조해서 말했다. 예전의 제
후 도련님은 너무 예민하고 마음이 여려서 문제였는데 지금은... 좋게 말
하면 대범하고 자신감이 넘치는 거고, 나쁘게 말하면 둔하고 단순해졌다
고 하겠다. 게다가 얼마 전 약물과다복용으로 죽을 뻔했던 그 사고 이후,
여러곳에서 순간적으로 나타나는 민제후라는 소년의 놀라운 능력과 날카
로운 눈은 그를 얼어붙게 만들기 충분했다. 지금같은 경우처럼.
물론....그것이 나쁜 변화라고 할 수는 없지만...
"...됐습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입니까?"
김비서가 속으로 한숨을 쉬며 말했다. 옛날 항상 주눅들어 쳐져 있던 무
표정한 민제후의 얼굴과 지금의 활기과다분비인 민제후의 얼굴이 겹쳐지
며 자꾸 비교가 되었다.
제후가 가볍게 차려입은 옷을 대강 털며 말했다.
"아침운동."
"네?"
운동? 아침에 잘 일어나지도 못하던 소년이 이른 새벽부터 운동이라
니... 그러나 이마에 흘린 땀방울을 보아 정말 꽤 오래전에 일어났던 것
같다. 그런데 어째서 그동안 그가 새벽에 일어나 뛰어 다니는 걸 아무도
몰랐던 걸까? 그 말은 즉, 아침에 일하는 고용인들 어느 누구보다 먼저
일어나 운동을 마치고 돌아왔다는 소리?!
"김비서도 내 나이 되면 알겠지만 노인네는 새벽잠이 없는 법이라네. 후
후후..."
회장님 나이가 될 리가 없죠. 제 나이는 이미 회장님 나이의 거의 2배
입니다. ??;
"새벽에 눈 떠서 둘기 녀석이랑 한바퀴 뛰고 오면 몸이 날아갈 것 처럼
가벼워진다고."
그럼 매일 새벽 그렇게 뛰어다닌단 말입니까!!
김비서가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날짐승하고 달리기가 가능하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안돼나?"
"안돼죠!!"
김비서가 상식적으로 단호히 안된다고 말하자 닭둘기라고 불리는 금빛
새끼 매가 퍼득퍼득 날아와 제후의 어깨 위로 내려 앉았다. 그리고 제후
와 둘기, 그 둘이 똑같은 표정으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그런데 이겼는걸?"
"..........."
할 말이 없어진다.
"처음엔 완벽하게 지기만 했는데 이제는 간발의 차이이긴 하지만 거의
열의 일곱은 이기지. 흐흐흐흐... 벌칙도 압권이라네."
제후가 오늘의 승리를 만끽함인지 예쓰라고 외치며 주먹을 아래로 힘껏
내리쥐면서 기묘하게 기뻐했다.
힘이 남아도시는군요. ??;;
"그런데 허리에 찬 그건 뭡니까?"
김비서가 냉정을 유지하려 애쓰며 한손으로 머리를 누른채 제후의 허리
를 가리켰다. 정말 민제후라는 소년의 허리에 뭔가가 매우 위태롭게 매달
려 있는 것이 보였다. 적당히 곧은 아무 나무가지를 어설프게 대충 다듬
은 것 같은 나무 막대기... 몽둥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할 정도의 나무 막대
가 초라한 노끈에 묶여 달랑달랑 매달려 있다.
"아, 이거. 내 검이야. 맨손체조 보다 이걸 들고 휘두르는 게 훨씬 좋다
구. 헤헤~"
웃지 마십쇼!!
헤실헤실 웃으며 말하는 제후의 모습에 김비서가 마음으로 절규했다. 아
무도 거역하지 못했던 태산같은 장문수 회장을 단신으로 맞서고 성전그룹
최고 간부들을 눈빛 한 번, 말 몇 마디로 눌러버렸던 카리스마적인 모습
은 어디다 내버리고 온 것인지...
"으...이런... 한실장에게 말해서 회장님께서 쓰실 만한 목검과 상품의 진
검을 보내드리겠습니다. 그런 건 말씀만 하시면 되는 겁니다. 아시겠습니
까, 회.장.님?"
제발 자신의 위치를 자각 좀 하시란 말입니다!!
그러나 제후는 속으로야 어떻든 겉으로는 냉정한 얼굴로 꼬박꼬박 회장
님 소리를 하는 김비서가 못마땅한 듯 얼굴을 찌푸렸다.
"그런데 김비서. 그 회장님 소리는 좀 빼지. 거슬려. 난 그런거 하겠다고
한 적 없어."
"직속 상관의 명칭을 함부로 할 수는 없습니다."
이제 완전히 평정을 되찾은 김비서가 흩어진 모습을 바로잡고 다시 빈틈
없는 비서로 되돌아갔다. 그러나 제후는 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김비서는 장회장 사람이지 내 사람이 아니야. 스스로도 너무 잘 알면서
그러는군."
".........."
"게다가 난 아직 고등학생이라고. 회장님이라니... 형님 소리보다 더 끔
찍하잖아. 기름끼가 번들거리는 배불뚝이 영감이 된 기분이라니까."
이상한 공식 성립이다.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말하던 제후가 마지막엔 눈을 반짝이며 김비서
를 똑바로 쳐다봤다.
"어쨌든 나한텐 안어울리는 명칭이야."
"그럼 다시 도련님이라고 부르겠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못마땅한 표정.
"말아먹을 테다."
"시도는 좋습니다."
"자신감이 대단하군."
"실력이죠."
한동안 둘의 시선이 무섭게 얽혔다.
"끼룩?"
그 아슬아슬한 분위기를 깨뜨린 것은 두 눈 말똥말똥하게 뜨고 고개를
갸웃둥하며 쳐다보던 둘기였다. 배가 고픈지 밥 먹으러 가도 되냐고 얼굴
을 엄청 부비며 아양을 떨었다. 제후가 그 철없는 새끼 매를 한 번 바라
보고 피식 웃었다.
"아! 그리고 김비서. 앞으로 이 녀석 피 묻히고 다니면 김비서가 알아서
닦아주도록 해. 도데체가 밥 먹구 와서 잘 닦지도 않고 말야, 은근슬적
내 머리에다 문대요. 아무리 아직 새끼라지만."
그 말을 들으며 김비서는 사람 말을 알아듣는 영물이 설마요 라고 생각
하며 자신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금응의 금빛 깃털로 손을 뻗었다. 그런
빛을 가진 새는 본 적이 없어서 신비로워 보이기도 했고, 제후와 같은 금
빛의 존재로서 처음부터 그 소년과 함께 있었던 듯 보이는 광경을 볼 때
마다 여러 가지 궁금증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금응은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손대려 하자 아까같이 애교있던 귀
염성 있던 모습을 버리고 갑자기 맹금으로 변해 날까롭게 비명을 지르며
그에게 달려들었다.
"삐야아---악!!!"
"으악!!"
매의 날까로운 부리가 금방이라도 김비서의 눈을 후벼팔듯이 달려들 그
때였다.
-퍽!!-
"야, 임마!! 너 지금 어디라고 성깔을 보이는 거야!!"
김비서는 무섭게 호통치는 제후의 모습에 눈이 크게 치켜떠졌다. 제후가
매몰차게 내려쳤기 때문에 둘기가 바닥으로 어리벙벙한 상태로 떨어져 있
는 것이 보였다.
"삐익-"
처량하게 우는 둘기.
"날 우습게 본 것이 아니라면 다신 내 주변 사람들에게 그딴 짓거리 하
지 마라!! 알았어!!"
"삑-삑-"
새끼 금응이 제후의 호통에 좀전에 달려들던 사나운 맹금이라고 생각되
지 않은 자세로 온순하게 고개를 끄떡이고 있었다. 제후도 제후였다. 아
까까진 같이 장난치고 놀며 친구처럼 사이좋게 지내던 사이였건만 약간
건방지다 싶으니 바로 가차없이 체벌과 함께 싸늘한 목소리로 꾸짖는 것
이 아닌가. 김비서는 예전의 제후 도련님을 생각하지 않더라도 그에 대해
잘 파악할 수가 없었다.
"참! 그리고 이번에 내가 이겼으니 넌 벌칙을 받아야겠지? 흐흐흐"
게다가 다음 순간에 이어진 벌칙으로 그 생각이 더 굳어진다. 둘기의 눈
빛이 비장하게 보인 것은 그의 착각일까? 벌칙은 바로 털뽑기..
날개깃으로 얼굴을 가리는 둘기. 제후가 날개에서 털을 뽑는다고 하니까
떨면서도 가만히 있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조용하기만 하자 둘기가
고개를 살그머니 들었다.
"앗싸!! 지금이다!!"
"빼애액--!!"
그 순간에 맞춰 엉뚱한 위치인 꽁지에서 깃털을 뽑는 민제후...;;;
"내 머리에 그동안 만들어 놓은 땜빵에 대한 보복이니라. 음하하하"
엽기다. ??;;
금응의 눈빛이 다음을 기약하는 듯 투지에 불타는 듯이 보인 것도 정말
그의 착각인지...
도무지 민제후란 소년에 대해 파악이 전혀 안되는 김비서였다.
또각또각
복도에 울리는 여자 하이힐 굽소리가 경쾌하게 울렸다. 그녀가 멈춘 곳
은 저택의 동쪽 홀. 아침 햇살이 홀 안으로 투명한 커튼처럼 나풀거렸다.
그 곳은 오랫동안 인적이 없었던 듯 모든 가구들이 얇은 하얀 천에 덮여
있었다.
-펄럭-
여인이 홀 중앙에 자리잡고 있는 거대한 물체를 덮고 있는 린넨천을 한
번에 벗겨냈다. 그리고 마침내 그 흰천이 벗겨지면서 나타나는 것은...
그 천보다 더 하얗게 보석처럼 반짝이는 그랜드 피아노...
여인의 눈이, 피아니스트로서의 장혜영의 눈이 알 수 없는 의미로 반짝
였다.
"시작이다."
...계속
(제가 아팠습니다.??그래서 연재 차질이 있었네요. 게다가...
벌써 8월이 거의 다 지나고 있군요. '란'이 발등에 불이 떨어졌습니다.
마감이 닥쳐오고 있어요. 덴장!!! ??시간 날때마다, 아니 잠을 줄여서
라도 계속 써내려야 할 형편. 으~ 말일부터는 연참에 연참을 이뤄야 한
다는 계산이군요. 윽!! 심장이 벌렁벌렁거리는 것이...??
게다가 이번 39회는 뒷부분을 많이 수정을 보고 싶고...아니야. 1화부터
다 손봐야 돼. 윽!! 생각해보니 정말로 큰일이잖아?! @.@;;;;
열분들은 좋으시겠네요. 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