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다 싱은 1889년 인도 펀자브 주의 람푸르에서 태어난 시크교도 가정에서 자랐다. 그는 장로교 선교사가 세운 기독교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으나 당시에는 기독교에 대한 심한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1905년, 그는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경험하고 기독교로 개종하게 된다. 이후 그는 인도 전역을 돌아다니며 기독교를 전파하는 사도적 삶을 살았다.
선다 싱은 특히 티베트에서 많은 활동을 했다. 그는 티베트의 불교도들에게 기독교를 전파하기 위해 히말라야 산맥을 넘나들며 여행을 했다. 또한, 그는 티베트의 가난한 사람들을 돕고, 인종 차별과 억압에 맞서 싸우는 활동도 했다.
선다 싱은 1929년 히말라야 산맥에서 암살당했다. 그의 나이는 39세였다.선다 싱은 인도에서 가장 잘 알려진 기독교 개종자 중 한 명이다. 그는 그의 강렬한 신앙과 헌신적인 삶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 선다 싱은 다음과 같은 특징으로 유명하다.
기독교 개종자: 선다 싱은 원래 시크교도였으나, 1910년대에 기독교로 개종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용서에 대한 메시지에 감명을 받아 개종을 결심했다고 한다.
인도 썬다싱은 부유한 힌두교 가정에서 태어났다. 대단히 종교적인 여성이었던 그의 어머니는그를 어릴적부터 종교적으로 양육하였으며그 역시 어머니를 사랑하고 따르며 조숙하게 자라왔다. 하지만 그가 14살이 되던 해에 어머니의 죽음을 맞이하자 충격과 절망으로 그는 서서히 변해갔다. 당시에 그가 다니던 학교는 미국 장로교 선교회가 운영하는 기독교 학교였는데그의 친구들 앞에서 성경을 찢고 불태우며 선교사를 추방하기 위해 목표를 세우고 행동하는 등 기독교에 대한 적대감으로 박해를 일삼았다.
힌두교 외에 다른 종교서적은 다 거짓이라 던
그였지그가 따른 종교의 의례와 규율을 모두
수행하여도만족과 평화가 없었고, 자살을
결심하게 되었다. '신이 있다면 제게 올바른 길을
보여주세요그렇지 않으면 저는 자살하겠습니다'
그는 새벽 세시부터 기도를 시작하였고만족을 얻지 못하면 5시 기차가 지나는 철로 위에머리를 얹고 자살하리라 다짐했다.그렇게 한참을 기도하던 그는새벽 4시 30분빛가운데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보았으며말씀하시는 목소리를 들었다.'언제까지 네가 나를 핍박하겠느냐 나는 너를 구원하러 왔다너는 올바른 길을 알고자 기도하면서 왜 그 길을 취하지 않느냐'그 발아래 엎드려있던 그는 어느곳에서도 맛보지 못했던놀라운 평화와 기쁨을 얻게되었고그 후부터 예수를 박해하던 그가예수님을 전하며 박해받는 자로 변화되었다.
그의 나이 35세가 되어 사라질때까지 수십번의 죽음의 위기속에서도 그는 전도를 멈추지 않았
그의 이야기는 많은 기독교인들의 귀감이 되었다.
찬양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는
인도의 선교사 '썬다싱(Sadhu Sundarsingh)'이 작사한 가사와
인도의 민요에서 차용된 선율이 붙여져서
찬송가가 된 곡을 원곡으로 하며
우리나라에서는 복음성가로 처음 불려지기 시작했고 편곡 버전인 '돌아서지 않으리'로도 많이 부르고 있다.
거머리 형벌
1914년 6월 7일, 썬다는 히말라야의 동쪽 산령에 있는 네팔의 일람으로 향하고 있었다. 다음 날인 6월 8일, 썬다는 일람부락에 닿아 사람들에게 네팔어 성경을 읽어주고 있었다. 관리들이 와서 몇 번 하지말라고 경고를 했는데 썬다는 계속해서 전도를 하다가 결국 체포되어 칙칙한 지하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그들은 썬다의 옷을 전부 벗기고 착고를 채워 꼼짝을 못하게 한 후 그의 앞에다 많은 거머리 떼와 뻘 오물을 두고 욕을 하며 나갔다. 얼마 후 거머리 떼는 썬다의 전신으로 기어오르며 피를 빨기 시작했다. 썬다는 두서너 시간 동안 참을 수 없는 고통을 견디다가 온 힘을 다해 찬송과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다. 순간 고통이 멎고 감옥은 천성같이 변하였다. 큰 기쁨 속에서 썬다는 더욱 힘차게 찬송을 불렀다. 그랬더니 이 예상치 못한 광경을 보려고 사람들이 몰려왔다. 썬다는 착고에 채인 채로 그들에게 또다시 전도를 하였다. 관리들은 그토록 큰 고통을 당하면서도 기쁨이 충만하여 찬송하며 전도를 하는 썬다를 보고는 놀라움과 알 수 없는 두려움을 느끼며 다음 날 그를 석방시켜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