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치는 이웃 동네에까지 소문날 만큼 잘 치렀다. 제일 신이 난 사람은 밖에서 들어온 아들 세일이었다. 세일의 나이도 어느새 열네 살이 되었다. 몸이 부실해 질룩질룩 걸으며 온 동네에 잔치를 알리고, 새로 형수가 들어오는 것을 자랑하고 다녔다.
세일은 몸만 그런 게 아니라 머릿속의 생각도 몸처럼 자라지 못해 일고여덟 살 먹은 아이들 같았다. 아직 어린 것을 사람들은 여전히 벌레 대하듯 놀리고 무시했다. 차무집 어른이나 세우 앞에서만 그러지 않았다.
차무집 어른은 예전에 아내 때문에 마음속으로 크게 다짐한 일 한 가지가 있었다. 삼십 년 전 단오 때였다. 나라가 다른 나라에 먹혀 백성이 수모를 당하는 건 힘이 없기 때문이다. 한 집안도 마찬가지다. 집이 가난하고 힘이 없으면 식구들이 밖에 나가 무시당한다. 왜포수건 검사를 할 때도 읍내에 제법 사는 집 여자들은 보따리도 뒤지지 않고 몸도 뒤지지 않았다. 아내가 지목당하여 봉변을 당한 것도 그게 다 힘이 없어서였다. 꼭 일본사람들에게뿐 아니라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누구에게든 그런 무시와 봉변을 당하지 않게 집안과 내가 힘을 가져야 한다.
누구에게 말은 하지 않아도 그런 다짐으로 더 열심히 일을 했다. 아내에게조차 말하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데 요즘 들어 세일이 커가는 것을 볼 때마다 예전의 다짐들이 자꾸 새롭게 생각되었다. 저것은 또 어떻게 한세상을 살아가야 하나. 어떻게 살아야 남에게 누가 되지 않고 또 놀림당하지 않고 살아가나.
차무집 어른은 아들의 잔치를 끝내고 마을 안쪽에 있는 아내의 산소에 갔다. 전날 아들과 며느리가 먼저 인사를 다녀왔다. 그때에도 세일이 따라갔다 왔다. 집에 처음 들어올 때부터 형을 잘 따랐고, 세우도 친동기처럼 세일을 귀애했다.
“자, 큰어미한테 절을 해라.”
“어제 형아하고 와서도 했어요.”
“그래도 또 해라. 그래야 큰어미가 너 이쁘다고 하지.”
세일이 절을 하는 동안 차무집 주인도 아내에게 마음속으로 인사했다.
‘어제 왔으니 임자도 봤겠지만, 세우는 짝을 지었네. 납돌에서 온 글을 아는 며느리인데 곱기가 꼭 예전 당신 같다네. 그리고 여기 또 하나 있는 거, 이 아들도 나중에 어떻게든 짝을 잘 짓게 당신이 도와주게. 이 아이야말로 앞으로 사는 게 힘든 아이인데 당신이 일찍 가서 맡은 아들이니까 당신이 꼭 도와주어야 하네.’
“자, 좀 쉬었다가 내려가자.”
차무집 어른은 산소 가에 앉아 쌈지를 열어 담배를 비벼 재웠다. 그리고 버릇처럼 조끼 주머니에서 손때가 묻어 조약돌같이 반짝이는 쇠이빨을 꺼내 엄지손가락과 두 번째 손가락 사이에 넣어 주물렀다. 그건 외뿔소가 젖니갈이를 할 때 구유에서 주운 것이었다. 구유에서 주운 쇠이빨이 재물복이 있다고 해서 버리지 않고 곡간 쌀독에 넣어 보관해오던 것이 어느날 어른의 조끼 주머니에 부적처럼 들어앉았다.
“헤헤, 아버지는 그거 없으면 심심하쥬?”
“그래. 세일이, 니 이게 뭔지 아나?”
“알쥬. 쇠이빨이쥬.”
“맞다. 그런데 이게 누구 이빨인지 아나?”
“큰어머이 소 이빨이쥬. 헤헤.”
“그래. 이게 그냥 쇠이빨이 아니라 니 큰어미 소 이빨이다. 지금 집에 있는 소가 영락없이 니 큰어미 목숨이라. 전에 쇠뿔이 빠지는거 우리 세일이도 봤더냐?”
“봤쥬. 지하고 형아가 마당에 있을 때 그랬쥬.”
“그것도 오른쪽 거제. 니 큰어미 머리에 보면 말이다. 오른쪽에 헌데 자리가 있어서 머리숱이 한 옴큼 빠졌제. 이다음에 다시 나면 기운 센 소가 되고 싶다고 말해쌓더니 정말 소로 목숨을 이은게야.”
“그럼 여기 산소에 있는 큰어머이는요?”
“그건 죽어서 몸이 온 거지. 목숨은 집에 있는 소로 가고.”
생각하면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나이를 먹으며 더욱 병약해진 아내는 평소에도 죽어서 힘센 소로 태어나는 것이 소원이라고 했다. 그 소원을 풀기라도 하듯 남편이 외양간에서 송아지를 받는 동안 숨을 넘겼다. 나갈 때는 멀쩡했는데, 들어와보니 무슨 애를 쓰느라 그랬는지 손톱을 물고 있었다. 아마도 밖에서 소 발굽을 까주는 동안 그랬던 모양이었다.
그래도 처음엔 소가 아내의 목숨을 이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소가 안주인의 목숨을 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삼 년 전 가을의 일이었다. 볕 좋은 날을 골라 텃밭에 매어놓자 소는 말뚝을 축으로 어지럽게 돌더니 뿔로 땅에 박힌 돌을 파 일구다 문둥이 손가락처럼 맥없이 뿔이 떨어져 나갔다. 금강석으로 유리를 잘라내듯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뿔이 빠지자 소는 저도 놀랐던지 발광을 멈추고 큰 소리로 서너 번 마당을 향해 울었다. 마치 앓던 이라도 빠진 듯 고통과는 거리가 먼 시원스러운 울음이었다. 차무집 어른도 보고 세우도 보고 세일도 함께 그 모습을 보았다.
“소가 뿔이 빠졌다. 우히히......”
세일은 갑자기 한쪽 뿔이 빠져 모양이 이상해진 소가 제 발밑에 떨어져 나간 뿔을 멍청하게 내려다보고 있는 모습이 우스워 낄낄거렸다.
“가만.......”
차무집 어른은 조심스럽게 쇠뿔을 집어 그것을 바라보았다.
“참말로..... 예전에 니 에미 말이 맞는갑다.”
“예?”
“죽어서 소가 되고 싶다고 늘 말하더니......”
거기서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는지, 차무집 어른은 쇠뿔이 빠진 모습에서 아내의 오른쪽 머리에 한 옴큼 머리카락이 빠진 자리를 떠올렸다. 그리고 처음 시집을 왔을 때부터 아내가 유난히 소와 친했던 일들을 떠올렸다. 죽는 날까지 아내만큼 소와 가까이 지낸 사람도 없었다. 함께 미륵소에게 일을 가르칠 때에도 그랬고, 우차집에 팔려간 화둥불 송아지와도 그랬다. 온 동네에 소문이 날 정도로 소가 아내를 따랐다. 팔려간 다음에도 다 자란 소가 단숨에 달려 집으로 왔고, 아내가 달아준 워낭을 목에 걸고 얌전히 제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다 경신년 단옷날 아내가 면소에 끌려가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그 분풀이도 소가 제 목숨을 내놓고 해주었다. 그리고 이 소 역시 아내가 저 세상으로 떠나던 날 천지간에 목숨이 하나 나간 자리에 새 목숨 들어오듯 태어났다.
“세일아. 부엌에 가서 간장 한 종지 달래 오너라.”
간장을 가져온 세일어멈도 뿔이 떨어져 나간 소를 보고 피식 웃었다.
“어머이, 어머이도 우습지?”
“우습기는 뭐가 우습다고 그래?”
놀란 건 세일이 아니라 세일어멈이었다. 손에 받쳐 든 간장이 그릇에 출렁거렸다.
“이걸 푹 고아서 노린내를 빼서 가져오게.”
차무집 어른은 쇠뿔을 세일어멈에게 건넸다.
“맞구멍 뚫어 기름꼬깔 하면 좋겠네요.”
“무슨 소리. 다치지 말고 그대로 내와.”
차무집 어른은 간장을 소머리에 부었다. 뿔이 빠진 자리가 따가운 듯 소가 머리를 흔들었다. 털에 묻은 간장이 방울방울 소매에 튀었다.
"뭐가 아프다고 엄살이누. 살아서도 그만큼 아프면 됐지.”
“아버지, 이게 큰어머이 소래요?”
“그래. 그래서 니 큰어미 죽던 날에 났고......”
“헤헤. 그렇지만 이건 불알이 덜렁덜렁하는 수소잖아요.”
세일의 말에 차무집 어른은 잠시 무언가를 빼앗긴 얼굴이 되었다가 이내 다시 환하게 밝아진 얼굴로 말했다.
“그건 상관없는 일이지. 늘 힘이 없어 힘이 센 게 소원이었으니 암소보다는 수소가 당연하지 않겐? 예전에 느 큰어미를 혈육처럼 따르던 화둥불소도 수소였고.”
뿔이 없으면 모양도 떨어지고 소 값도 떨어진다는데, 그런 건 아무래도 괜찮았다. 소가 뿔로 일하는 것도 아니고, 값이 오르든 내리든 장에 내다 팔 소도 아니었다.
그날 저녁부터 소는 집안에서 칙사 대접을 받았다. 여물깍지도 전보다 보드랍게 썰었고, 평소엔 잘 넣지 않는 알곡도 여물을 끓일 대마다 한 줌씩 넣었다. 쇠죽도 어른이 부엌에 나와 직접 끓일 때가 많았다.
그건 여러 가지로 불편한 일이었다. 세일어멈은 몇 년을 같이 살아도 늘 시아버지처럼 어렵기만 한 남편이 부엌에 나와 손수 쇠죽을 끓이는 게 불편했고, 아들 세우도 이제 와서 갑자기 외양간의 소를 어머니의 분신처럼 여겨야 하는 게 편한 일을 아니었다. 같은 소를 아내의 분신처럼 여기는 것과 어머니의 분신처럼 여기는 것은 또 다른 일이었다.
차무집 어른은 판수할멈을 불러 안택고사를 치렀다. 그것이 맞다면 죽은 아내와 소를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었고, 남은 가족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었다. 판수할멈도 소가 이 집의 안주인은 아니지만 안주인으로부터 이어진 목숨이 맞다고 했다. 소가 안주인이라는 말보다 그 말이 더 사람들을 믿게 했다.
판수할멈은 머리가 근지럽다며 방바닥을 구른 다음 머리카락 몇 가닥 뽑아 들고는 이 집 안주인이 소로 목숨을 바꾸어온 내력에 대해 말했다. 몸이 약해 다시 티어난다면 늘 소로 태어나길 말했던 것과 예전에 눈을 맞추었던 소들의 얘기도 했다. 그건 점괘가 아니더라도 이미 동내 사람들도 다 아는 일이었다. 그래도 다들 처음 듣는 얘기처럼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