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觀相)”
“관상”이 개봉관에서 상영되고 있습니다.
사주(四柱)라는 것은 네 개의 기둥입니다. 그 사람의 운명을 지탱하는 네 개의 기둥이지요!
태어난 년(年),월(月),일(日),시(時)를 의미합니다. 어떻게 이것이 사람의 운명의 기둥이 될까요?
여기는 천문학적, 물리학적 상식이 약간 필요합니다.
지구는 하루 한번 지축을 기준으로 팽이처럼 빙글빙글 돕니다. 바로 자전(自轉)이라고 하지요!
그리고 일 년에 한 바퀴 태양을 중심으로 크게 한 바퀴를 일주하지요! 공전(空轉)이라고 부릅니다!
지구의 자전 속도는 일 초당 약 463m 정도 입니다(463[m/s]) 시속 1,666km의 속도입니다.
제트항공기의 속도가 시속 800km이니, 지구는 매 순간 항공기보다 2배나 빨리 돌고 있습니다!
공전 속도는 그 보다 훨씬 빨라서 일초당 약 30km 정도를 이동합니다. 눈을감고 상상 해봅니다!
지구는 초당 463m를 회전하면서 초당 30km의 가공할 속도로 매 순간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구의 주변에 있는 우주공간의 별들은 어떨까요!
지구를 기준으로 볼 때는 별자리들은 그 자리에 그대로 고정되어 있습니다.
우리에게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마다 보이는 별자리들이 달라지는 이유이지요!
그 별들에서는 별빛이 나옵니다. 별빛은 일종의 전자기파(電磁氣波) 에너지입니다.
어떤 사람이 태어난 년,월,일,시,에 그 어머니가 우주공간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가 하는 공간적인
위치좌표에 따라서 태아의 온몸으로 쏟아지는 전자기파의 종류가 달라집니다.
출생 시 모태의 자궁에서 지구로 나오는 그 섬세하고 예민한 순간에 온몸에 쐬게 되는 전자기파의
종류에 따라서 그 아기의 성향과 기질의 큰 형태가 정해집니다.
그리고 그러한 성향과 기질을 가진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삶을 살아가면서 연령대별로 대부분
이러한 삶의 궤적을 그리면서 살아가더라는 통계를 만든 것이 바로 사주명리학입니다.
오랜 경험적 통계학이지요! 그래서 정통 사주학은 그 사람의 운명의 큰 흐름을 보여줍니다.
서양의 타로점이나 출생 별자리, 동양의 점성학… 등등이 모두 이러한 원리에서 기인한 것입니다.
사주명리학을 정식으로 공부하는 사람들은 일종의 통계학적 기본 원리를 공부하는 것입니다.
강물의 큰 줄기와 같은 것이 타고난 기질에서 기인한 한 인생의 운명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강물에 아무런 자유의지가 없는 나무토막을 띄워놓으면 강물의 흐름을 타고 흘러가겠지만,
주관적인 자유 의지가 있는 동력선을 띄운다면 강을 거슬러 오를 수도 있고, 강의 지류로 빠져나가
다른 강으로 들어갈 수도 있고, 어디든 자유롭게 흐를 수 있는 바다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
이와 같은 이치로 사람은 자신의 의지로 자신의 운명을 얼마든지 바꿀 수 있음을 안다면 사주나
운명에 너무 연연하지 않을 수 있을 것입니다.
아래는 영화의 내용은 아니지만 사주관상명리학의 부질없음을 깨우쳐주는 내용 입니다.
조선말 오묘한 조선의 사주학을 그대로 이어받은 천재 관상가가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자신이 평생을 공부한 사주의 원리가 실제와 맞는지 검증해보고 싶었습니다.
많은 사람의 사주와 실제 삶을 검증하던 중 어느 마을에서 사주 관상으로는 하루 한 끼 식사도
하지 못하고 곤궁하게 살아갈 사람이 만석 지기 부자로 살고 있는 것을 보고 의문을 품습니다.
깊은 차원의 사주 관상이라는 것은 그 사람의 얼굴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일상생활에서
하는 일거수일투족의 모든 행동을 살피는 것이어서, 관상가는 그 부자의 집에서 숙식 하면서
보름 동안 살폈으나 그 사람이 그렇게 부자로 살 수 있는 이유를 도무지 알 수 없었습니다.
생긴 모습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그 사람의 언행과 습관이기 때문에 그 사람의 생활에서 원인을
찾으려 했으나 그 원인을 찾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부자가 뒷간에 가서
볼일을 보는 것을 살피다가 그 이유를 깨닫게 됩니다. 화장실에 앉아서 큰일을 보던 부자는
자신의 발가락에 붙어있는 밥알 하나를 보았습니다. 그 순간 주저함이 없이 그 밥알을 집어내어
주저없이 입으로 가져가 맛있게 먹습니다. “아이고 이 귀한 양식을 아깝게 버릴 뻔 했네…”
구더기가 들끓는 화장실에 앉아서 자신의 발가락에 붙어있는 밥알을 주저 없이 입으로 가져가서
맛있게 먹는 그 마음, 양식을 아끼는 그 마음과 태도 하나가 그 볼품없는 사주를 가진 사람을
만석 지기 부자로 만들어 주었던 것입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그 마을을 떠나 다시 전국을 떠돌던 관상가는 이번에는 사주 관상으로는
억만 석 부자로 살아갈 사람이 하루 한 끼 식사도 겨우 하면서 곤궁하게 사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이번에도 그 사람 집에서 머물면서 그 사람의 언행을 살피던 관상가는 그 사람이 잠이 들면 발목을
달달달~~떠는 습관을 지닌 것을 알게 됩니다. 자신이 통제하지 못하는 그 습관으로 모든 복을
털어버리고 곤궁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을 알게 된 관상가는 치료해줄 의원을 대기시킨 후 그 사람이
자는 동안 발목을 절단해 버리고 도망을 칩니다.
10년 후 그 마을을 다시 찾은 관상가는 절름발이 억만 석 부자로 사는 그를 다시 만나게 됩니다.
이처럼 삶의 태도와 습관에 의해서 타고난 사주와 전혀 다르게 사는 수 많은 사람을 보고 천재
관상가는 자신이 평생을 공부한 사주 관상명리학을 후학에게 전하지 않고 폐문(閉門)하여 버립니다.
하나의 습관에서 모든 것이 변해버리는 사주 관상명리학의 부질없음을 깨달은 것이지요!
작은 하나의 습관이 그 사람의 운명을 바꿉니다.
사주,관상,명리(命理)에 연연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입니다.
아래는 지금 극장에서 상영하고 있는“관상”의 명대사 명장면으로 영화 전체의 압권인 장면입니다.
천재 관상가 김내경의 아들을 활로 쏘아 죽인 후 수양대군이 독백처럼 내뱉는 말입니다.
“저자는 제 아들이 저렇게 절명할 것을 알았을까! 나는 몰랐는데…”
김내경이 말년에 자신과 나라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꾸어버린 역모를 회상하면서 말합니다.
“나는 바람을 보지 못했어! 시시각각 변하는 파도만 보았지!
정작 파도를 일으키는 것은 바람인데 나는 그 바람을 보지 못하였어…”
비록 김내경은 허구의 인물이지만 이 영화는 시시각각 변하는 파도와 같은 사주 관상명리학보다는
그 파도를 일으키는 근원인 바람과 같은 것이 사람의 의지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재미있는
영화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