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남미 여행, 권장할 만한가?
성병조
(여행에서 배우는 인내) 이번 남미여행의 구성원은 18명이다. 아내 친구 부부가 주류를 이루며 초면이 대부분이다. 인천공항에서 첫 여행지인 리우데자네이루로 가는 길은 멀고 험하다. 대구서 인천공항까지 리무진을 이용하면 좋으련만 다수가 원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그러니 공항서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도 길다. 08시 도착, 14:30 출국하면 LA-휴스톤을 거쳐 리우데자네이루에 도착한다. 인천공항에서 대기 시간이 6시간이 넘는다. 리무진을 타면 4시간 정도지만 비행기는 겨우 40분이다. 대한항공 라운지에서 여러 음식을 먹고 독서도 하지만 지루하긴 마찬가지다. 여행이 멀고 길어도 조급하지 않은 인내를 배워야 한다. (인천공항 라운지에서)
(비행기에도 도서실이 있다?) 외국 여행을 해보면 가장 먼 곳이 뉴욕, 프랑크푸르트로 14시간쯤 걸린다. 인내심 없고는 견디기 힘든 거리이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는 이곳들에 견주기조차 힘이 든다. 인천서 LA까지 11시간, LA서 휴스톤까지 4시간, 휴스톤서 리오까지 11시간이 소요되니 할 말을 잊는다. 공항 대기 시간까지 합하면 엄청난 시간이다. 첫 관문을 통과하는 중이다. 우리 시간으로 밤 10시다. 7시간을 날았고, 4시간 정도 남았다. 350명을 태우는 거대한 비행기에서 몸부림이 시작된다. 숙면하기 쉽도록 실내 등을 다 꺼 버린다. 견디기 힘들어 비행기 제일 뒤로 왔더니 넓은 공간이 맘에 든다. 준비한 책을 읽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태평양 상공에서)
(리우에는 영어가 안 보인다?) 어느 지역을 여행하든 바깥 살피기를 즐긴다. 세계 3대 미항이라는 유명세는 물론 찾아가기 어려운 리우에서 어찌 하나라도 놓칠 수 있으랴. 어디까지나 나만의 궁금증이니 객관적 사실은 못된다. 포르투갈에서 독립하고 다른 나라들이 스페인어를 사용하는데 비해 브라질은 포르투갈어를 쓰고 있다. 그러니 소통에 힘이 든다. 더욱 어려운 건 건물이나 상호에서도 영어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는 영어가 범람하고, 일본 중국 등 외국을 여행해 보면 자국어 아래에다 보통 영어를 병기한다. 최소한 뜻은 알 수 있어 덜 답답하다. 그런데 리우 시내를 다니는 동안 영어를 하나도 만나지 못했다. 이곳에 35년 살았다는 한국인 가이드도 내가 물으니 사실을 확인하여도 답변을 하지 못한다. 일시적인 현상은 아닐 텐데 왜 그럴까?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예수상 오르는 길)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를 떠올리면 무엇이 먼저 생각날까. 미항, 삼바 축제, 축구 등이 있겠지만 나는 예수상이 떠오른다. 710미터 바위산 꼭대기에 브라질 독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세운 예수상은 리오 관광의 상징이다. 높이 30미터, 양팔 길이 28미터 예수상은 신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다. 오르는 길이 까다롭다. 먼저 관광열차에 오른다. 바깥 조망이 쉽게 만든 오픈 열차가 20여 분 오른다. 경사와 교행을 위해 서행하지 않을 수 없다. 다음은 에스컬레이트 두 차례, 마지막으로 가파른 계단을 오른다. 예수를 만나는 일이 어디 쉬우랴. 사진 찍는 게 무슨 전쟁터 같다. 시내 전역을 바라보는 예수상이 마치 리우를 지켜주는 수호신처럼 느껴진다.
(리우는 나체 천국인가?) 리우데자네이루에서 느낀 점이 더러 있는데 그중 여성의 옷차림이 요란스럽다. 더위가 주원인이겠지만 우리 상식으로는 이해 어려운 부분이 있다. 공항에서도 예외는 아니며 해변에는 더욱 그렇다. 상의를 통째로 벗은 남성이 허다하고 여성들의 옷차림은 민망할 정도이다. 브래지어로 젖가슴만 가리고 있는 사람이 많다. 하도 궁금하여 가이드에게 물어본다. 날씨가 더워서도 그렇지만 원주민이 벗고 산 버릇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고 한다. 거추장스럽게 여러 옷을 걸치기보다는 간편한 게 일상화되었다고 한다. 앞가슴이 철렁철렁하는 모습은 보통이다. 새까맣게 그은 피부에다 활짝 열어 재친 앞가슴이 시선을 자극한다.
(이과수 폭포의 웅대함) 남미 여행하면서 이과수를 지나칠 수 있으랴. 나이아가라, 빅토리아와 함께 세계 3대 폭포로 꼽힌다. 나이아가라 폭포가 미국과 캐나다를 끼고 있다면 이과수는 브라질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등 3개국과 접해있다. 나이아가라는 두 나라가 비슷하게 점유하고 있어 보이는 모습도 별반 차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과수 폭포의 아르헨티나, 브라질에서 돌아본 모습은 딴판이다. 아르헨은 폭포를 거의 위에서 내려보는 식이라면 브라질은 어렵게 만든 데크를 따라 낙하수 가까이 접근하여 폭포수를 실감 나게 올려볼 수 있다. 폭포 높이는 82m이고 너비는 나이아가라의 4배인 4Km이다. 물보라를 흠뻑 맞는 악마의 목구멍과 전망대도 브라질 쪽에 있어 관광객이 더욱 붐비는 편이다. (이과수 폭포에서)
(아찔한 이과수 폭포 보트투어) 여행 중 느낌은 각자 다를 수 있다. 생각하는 바나 느낌에 따라 결론이 갈린다. 17일간 중남미 여행 중 4일 차를 맞이하는 지금, 가장 인상 깊은 곳을 꼽으라면 단연 이과수 폭포 보트투어라 하겠다. 나이아가라에선 큰 배로 폭포 아래까지 들어가 스릴과 물보라를 덮어 썼다면 이과수에선 낙수를 직접 맞아 우의 안 속옷까지 흠뻑 젖는다. 미국에 비해 작은 보트여서 속도가 빠르고 폭포 가장 가까이 접근하여 물을 맞는다는 점이 차이 난다. 빠른 유속에다 쾌속으로 뒤집힐 듯한 스릴감과 폭포수를 직접 맞을 때마다 비명이 터져 나온다. 30여 명 타는 배가 이렇게 마구 행패(?) 부려도 온전한 게 이상할 정도다. 하선 후 가이드에게 위험성을 물었더니 지금까지 한 건의 사고도 없었다며 자랑하듯 말한다.
(이과수 성당 미사) 우리가 며칠간 머문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와 이과수 지역의 한인 교포는 몇십 명에 불과할 정도로 극히 적다고 설명한다. 두 명의 가이드도 30여 년 전 이곳에 이민 와서 성실하게 산 유복한 느낌을 준다. 이과수 시내를 지나면서 성당이 나타난다. 가이드가 주교좌 성당이라고 설명하자 바로 신자들의 반응이 나온다. 오늘 이과수 폭포 관광 후 성당에 갈 수 있도록 해달
라는 부탁이다. 완전 패키지 여행이 아니라 참가자들이 방문지를 선택한 후 여행사의 도움을 받는지라 무시하기 어려운 일이다. 지켜보는 입장에서 결론이 궁금해진다. 놀라울 정도이다. 이과수 폭포서 물맞아 옷이 젖은데도 불구하고 5명이 예배에 참석한다. 이들을 안내한 가이드의 말, 생판 보지 못한 동양인 5명이 들에서자 신자들의 눈이 휘둥그레지더라고.
(나라를 따져 무엇하랴) 학교 공부할 때 수도가 어딘지, 어느 나라 도시인지 묻는 문제가 자주 나왔다. 수도를 꿰뚫고 있는 학생도 보았다. 우리는 남북이 대치하고 있어 국경의 개념은 무척 강한 편이다. 하지만 중남미 여행에서는 그럴 필요 없이 관광지 감상에만 열중해도 좋을 성싶다. 이과수 폭포에서 나라 따지다가는 비경을 놓칠 수 있다. 브라질,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등 3국을 끼고 있어 국경 넘나드는 일이 잦다. 브라질 아르헨티나 두 나라를 오고가는 일이 수차례 전개된다. 나중에 가게 되는 칠레, 페루, 볼리비아 등도 비슷하다. 여행 전문가들이 최고의 관광지 중심으로 엮었기 때문에 국경 넘나드는 일이 빈번하다.
(아르헨티나 갈라파테 빙하 국립공원) 중남미 여행하면서 세계지리 공부하는 기분이다. 아르헨티나 국토면적은 세계 8위로 태양이 작열하는 정글을 시작으로 빙하지대까지 넓게 분포되어 있다. 남부 파타고니아 지역은 눈이 내리거나 추위가 심하다. 이 지역 칼라파테 빙하국립공원에는 호수로 이루어진 수많은 빙하가 있다. 국립공원에서 가장 유명한 포리토 모래노 빙하는 높이가 50미터, 길이가 31키로에 이른다. 가까이 갈수록 놀라움이 크다. 남극 지방이라고 하지만 산처럼 큰 빙하가 요즘도 건재하는 게 신기하다. 배를 타고 다가갈수록 더욱 실감이 난다. 뒤에서 밀어오는 또 다른 빙하의 무게로 인해 굉음을 내며 무너지는 모습은 실로 장관이다. (갈라파테 빙하 공원에서)
(최고의 의료진을 대동했지만) 해외여행 때면 다양한 사람을 만난다. 하지만 각자 소개하지 않으면 깊이 알 도리는 없다. 이번 여행은 아내 친구들에 남편이 끼어든 형국이다. 의사 세 명에 약사가 다섯 명. 이런 호화 군단을 대동한 여행은 드물다. 이들의 능력을 시험이라도 하는 것일까. 6일 차 되는 날 밤부터 몸에 이상 징후가 감지된다. 큰일이다. 3-4천 미터의 고산에 적응하지 못해서일까. 몸이 어질하고 진땀이 나면서 토사를 일으킨다. 아침 식당에도 내려가지 못했다. 대신 아내가 의료진이 준비한 약을 가져왔다. 장거리 이동 중에는 버스 뒷자리에 누워 지냈다. 전형적인 고산병 증세다. 의료진이 힘을 모아도 역부족이다. 내게 왜 이런 시련을 주는 것일까.
(마추픽추 가는 길은 구도자의 길) 흔히 중남미 여행은 해외 여행의 정점이라고들 한다. 건강, 비용, 시간, 현지 환경 등이 맞지 않으면 쉽게 풀리기 어렵다. 역사책 또는 티비에서나 보아온 페루 마추픽추는 그런 요소가 가득 담긴 구도자의 길이다. 수도 리마서 1시간 반 비행기를 타면 쿠스코에 도착한다. 거기서 버스 2시간 타고 우루밤바 도착, 다시 기차를 타고 2시간을 달리면 유적지 입구에 도착한다. 여기서 셔틀버스로 굽이굽이 길 40분을 달리면 마추픽추 입구에 도착한다. 여기서부터 도보가 시작된다. 해발 2,280m 높은 산에 건설한 잉카유적이다. 아래서는 보이지 않고 공중에서만 보인다고 ‘사라진 공중도시’라고 불린다. 잉카가 거점으로 삼았던 성채도시로 추정되며 1911년 미국의 젊은 학자 하이럼 빙엄이 처음 발견, 현재 유네스코 세계유산 목록에 수록되어 있다.
(남미는 개의 천국인가?) 남미 5개국을 여행하면서 느낀 점 중 하나는 개의 천국 같아 보인다는 점이다. 브라질, 아르헨티나, 칠레, 페루, 불가리아 등을 차례로 돌아보면서 이토록 많은 개들이 유유자적, 아니면 장소를 가리지 않고 드러누워 잔다는 게 예사로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는 국경을 넘는 검문소 입구를 가로막아 자고있어도 말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개의 행복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는 불문율이라도 있는 것일까. 현지 가이드에게 바로 물어본다. 이곳 사람들은 처음부터 개를 가족처럼 여겼단다. 강아지 적에는 식구들과 함께 생활하다가 성년이 되면 가출을 허용한단다. 큰 개들이 무리를 지어 다니면서 버려진 음식물 찌꺼기를 먹고 생활해도 사람들에게 위협을 준다거나 서로 싸우지 않고 지내는 모습이 너무도 신기해 보인다.
(소금 사막이 있다고?) TV에서만 본 적이 있는 소금 사막을 반신반의하였다. 소금 사막이 있는 볼리비아는 해발 6천m급 고봉이 14좌나 되고, 주요 도시의 절반이 2천-4천m 고원의 나라다, 우유니(Uyuni) 소금 사막은 우기에는 물이 고여 소금호수라고도 불린다. 지각 변동으로 인해 솟아올랐던 바다가 빙하기를 거쳐 2만 년 전 녹기 시작하면서 이 지역에 거대한 호수가 만들어진다. 이에 비가 적고 날씨도 건조해서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물은 모두 증발하고 소금 결정만 남은 거대한 소금 사막으로 변했다. 경기도 면적과 비슷하며 사막에는 최대 10m에 이르는 선인장이 숲을 이루는 섬과 소금 사막 한가운데 소금으로 만든 소금 호텔도 있다. (우유니 사막 소금 호텔에서)
(사람인지 조각품인지?) 잉카의 나라 페루는 볼거리가 많다. 한국의 13배 크기로 에콰도르, 콜롬비아, 브라질, 볼리비아, 칠레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해발 3천m 공중도시라 불리는 잉카유적, 안데스산맥 중앙에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의 티티카카 호수 등이 있다. 여행 마지막 날 들린 곳은 페루 이카이다. 팬 아메리카 고속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황량한 사막이 이어지는데 그 가운데 오아시스가 있는 도시가 이카이다. 이곳에서 투숙한 호텔이 Las Dunas Hotel로 규모와 시설 면에서 최고라고 한다. 입구에 들어서니 남녀 조각상 네 개가 반긴다. 사람인지 마네킹인지 구분이 어려울 정도로 정교하다. 호기심에 팔을 살짝 눌렀더니 물컹 들어가는 바람에 깜짝 놀랐다. 미안하고 민망하다.
(가이더 14명을 만나다) 여행에서 가이더의 중요성은 어디에 비할 수 없을 만치 크다. 국내 여행에서도 해설사가 있으면 얻을 수 있는 게 훨씬 많을 것이다. 남미여행에서 만난 가이더는 총 14명이다. 대구에서 함께 간 여행사 대표, 우리 말을 전혀 모르는 현지 토착민 1명을 제외하면 모두 재외 이주자들이다. 그러니 호기심이 이는 건 당연한지도 모른다. 머나먼 남미까지, 그것도 생활 수준이 열악하고, 마약과 범죄가 판치는 나라에까지 갔을까. 프라이버시이기에 물어볼 수는 없어도 간간이 비치는 언어의 행간 속에 결코 평탄함만 있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박식한 식견으로 고산과 사막을 가리지 않는 열정들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비행기 탑승도 여행인가?) 평소 비행기만 보면 답승 욕망이 이번에 충족되는 것 같다. 탑승 횟수를 세어보니 무려 19회에 이른다. 대구 출발 비행기를 시작으로 인천, LA, 휴스턴을 거지면서 3회, 그곳에서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로 가는 동안 24시간을 기내에서 보낸다. 여행 8일 차에는 칠레 푼타 아레나스에서 산티아고 가면서 3시간 반, 산티아고서 페루 리마까지 4시간 타면서 하루를 꼬박 보낸다. 10일 차도 마찬가지다. 돌아오는 길은 더욱 가관이다. 페루 리마서 LA까지 9시간, LA서 인천까지 13시간 20분을 비행기에서 보낸다. 이 글은 태평양 상공 귀국 비행기에서 몸부림치며 쓰고 있다. 비행기 탑승도 여행 범주에 드는가. 질려버렸다?
(중남미 여행, 권장할만한가?) 17일간 중남미 여행하면서 내 생각을 정리하지 않을 수 없다. 어디까지나 사견임을 이해 바란다. 결론을 먼저 말한다면 동년배 친구들에게 권장하기가 어려워 보인다. 해외여행의 최정점을 남미여행이라고 들었다. 거리가 멀고, 세계적 명소, 고산병, 후진국의 나쁜 환경을 든다. 아내 권유로 용기를 냈다만 난관은 계속되었다. 비행기 19회 탑승과 까다로운 입출국, 그러니 아무리 좋은 곳인들 몸이 온전하기는 힘들 터이다. 호텔에서 눈 붙이기 바쁘게 비행기 타러 부산떨고, 공항에서 장시간 기다리고, 볼리비아에서는 고산병으로 고생까지 했으니 세계의 명소들이라지만 어찌 후한 점수를 줄 수 있겠는가. 60대는 몰라도 70대는 무리라는 게 중평이었다. 경비도 인당 1,600만 원으로 적은 게 아니다.
중남미 여행(2024. 4. 17-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