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하 19:1-13
찬송가 543장 ‘어려운 일 당할 때’
남유다 제13대 왕 히스기야는 이방신을 따랐던 부왕 아하스와는 달리 산당들을 제거하고 주상을 깨뜨리며 목상을 찍었고,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이 우상화되는 것을 보고 그 놋뱀까지 부수어버렸습니다. 열왕기서 기자는 히스기야 왕을 평가하기를, ‘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왕하18:5)라고 증거합니다. 이 증거의 말씀처럼 ‘히스기야 왕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함’(왕하18:7中)의 은총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형통의 복을 받은 히스기야는 주변 강대국을 의지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부왕 아하스와는 달리 앗수르 왕을 의지하지 않고 오히려 앗수르와의 외교를 단절하였습니다. 그렇게 되니 앗수르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습니다. 북이스라엘을 멸망시켰던 앗수르는 히스기야 통치 14년에 남유다의 모든 견고한 성읍들을 쳐서 점령하였고, 마침내 예루살렘 성을 위협하였습니다. 이때 히스기야의 마음이 어떠하였겠습니까? 초지일관 하나님을 의지하며 앗수르의 위협에 흔들리지 않았어야 했는데, 앗수르 왕의 성난 마음을 누그러뜨리려고 그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물었습니다. 그때 앗수르 왕은 엄청난 양의 금과 은을 요구했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왕궁 곳간에 있는 것뿐만 아니라 여호와의 성전의 문과 기둥에 있는 금까지 박박 긁어 상납하였습니다. 히스기야 왕의 행적 중 안타까운 한 사건이 되었습니다. 상납의 결과는 히스기야의 뜻대로 끝나지 않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일도 아니었습니다. 범죄자들이 누구를 협박해서 돈을 뜯어낼 때, 한 번으로 그치는 예는 거의 없습니다. 피해자에게 빚을 내어서라도 돈을 더 가져오도록 합니다. 앗수르 왕 역시 엄청난 양의 금과 은을 받고서도 본국으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협박의 강도를 더 높였습니다. 앗수르 왕은 그의 신하를 통해 히스기야에게 애굽도 의지하지 말고 여호와 하나님도 의지하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심지어 자신의 침공이 하나님의 뜻인 것처럼 말했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거주민들에게 히스기야 왕이 하는 말, ‘여호와께서 반드시 우리를 건지시리라’는 말을 믿지 말라고 했습니다. 고도의 심리전을 펼치며 위협하는 앗수르 왕으로 인해 히스기야 왕의 마음이 혼미해졌습니다. 오늘 본문은 혼미한 히스기야 왕의 반응으로 시작합니다.
히스기야 왕이 옷을 찢다(1)
1 히스기야 왕이 듣고 그 옷을 찢고 굵은 베를 두르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히스기야 왕은 침략자에게 협상 또는 상납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깨달은 후 그제야 하나님을 향한 창문을 열고자 옷을 찢고 굵은 베를 두르고 성전에 들어갔습니다. 우리가 옷을 찢어야 할 정도로 큰 위기에 빠졌다면 하나님을 향한 창문을 열어야 할 때입니다. 열왕기서에는 위기 속에 창문을 열지 않았던 왕들이 많았지만, 히스기야는 비록 인간적인 방법을 동원하다가 직면한 위기였지만, 겸비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향한 창문을 열었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기도하는 가운데 이사야 선지자를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이사야 선지자에게 중보기도를 요청하기 위해 사람을 불렀습니다.
히스기야 왕이 이사야 선지자에게 기도를 요청하다(2-3)
2 왕궁의 책임자인 엘리야김과 서기관 셉나와 제사장 중 장로들에게 굵은 베를 둘려서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에게로 보내매
히스기야 왕이 선택한 사람들은 정치 지도자들과 신앙 지도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을 사신으로 이사야 선지자에게 보낼 때 자신처럼 그들에게 굵은 베를 둘려서 보냈습니다. 이 역시 하나님을 향한 겸비한 마음을 갖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3 그들이 이사야에게 이르되 히스기야의 말씀이 오늘은 환난과 징벌과 모욕의 날이라 아이를 낳을 때가 되었으나 해산할 힘이 없도다
히스기야 왕이 말하는 ‘환난과 징벌과 모욕의 날’에서 사용한 세 단어는 성경의 용례를 보면 하나님께 불순종하였을 때 받는 징계와 관련된 단어입니다. 히스기야 왕은 눈에 보이는 것만 보지 않았습니다. 앗수르의 침공이 단지 남쪽의 애굽까지 세력 확장 차원에서 남유다를 교두보로 삼기 위해 일어난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 과거 남유다가 우상을 섬기며 하나님께 불순종한 결과로 보았습니다. 남유다의 위기는 마치 임산부가 아이를 낳을 때가 되었으나 해산할 힘이 없어서, 임산부와 태중의 아이 모두 죽게 될 위기에 처한 것과 같았습니다. 그때 히스기야 왕은 위기 속에 좌절하지 않고 하나님을 향한 창문을 열어 하나님과 소통하고자 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중보 역할을 잘해 줄 것으로 믿었습니다.
4 랍사게가 그의 주 앗수르 왕의 보냄을 받고 와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비방하였으니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혹시 그의 말을 들으셨을지라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들으신 말 때문에 꾸짖으실 듯하니 당신은 이 남아 있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소서 하더이다 하니라
히스기야 왕은 이사야 선지자에게 중보기도를 요청하면서, 예루살렘 성을 포함해 나라를 구해 달라는 직접적인 표현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사야 선지자에게 요청한 중보기도의 핵심은 하나님의 이름이 높임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욕하고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무시하는 사람에 대한 벌을 내려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남아 있는 자들, 즉 앗수르에 의해 패망한 북이스라엘의 열지파 이외에 남아 있는 남유다를 위해 중보기도를 요청한 것입니다. 우리가 중보기도를 요청하거나 하나님께 직접 기도할 때,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의 내용처럼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_히스기야에게 두려워하지 말라(5-7)
5 이와 같이 히스기야 왕의 신복이 이사야에게 나아가니
사신들이 이사야 선지자에게 히스기야 왕의 말을 먼저 구두로 전한 후, 그 내용이 담긴 서신을 이사야 선지자에게 전달하고자 왕 앞으로 나아간 것으로 보입니다.
6 이사야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너희 주에게 이렇게 말하라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앗수르 왕의 신복에게 들은 바 나를 모욕하는 말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
이사야 선지자는 왕의 사신들의 말을 듣자마자, 하나님의 응답을 전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즉시 이사야 선자자의 마음에 응답을 주신 것일 수 있지만, 이사야 선지자는 늘 하나님을 향해 창문을 열고 하나님과 소통하는 사람이었기에 이미 하나님의 응답을 받았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받은 하나님의 응답은 ‘하나님을 모욕하는 말을 두려워하지 말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두려워할 대상이 사람이나 사람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임을 알려주십니다. 다음 구절은 하나님의 응답의 구체적인 내용을 전하고 있습니다.
7 내가 한 영을 그의 속에 두어 그로 소문을 듣고 그의 본국으로 돌아가게 하고 또 그의 본국에서 그에게 칼에 죽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더라
하나님을 모욕하는 말로 상심하거나 두려워할 이유가 없음을 말씀해 주신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모욕한 자를 어떻게 벌하실지를 알려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예측할 수 없는 방법으로 응답해 주십니다. 지금까지 열왕기서에 나타난, 하나님의 도우심의 방법과는 다른 차원입니다. 불병거과 불말을 보이시거나 하루아침에 적군을 송장으로 만들지 않으시고, 침략국 왕에게 한 소문을 듣게 하시어 그의 마음을 흔들어, 스스로 돌아가게 하는 방법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를 누군가의 칼에 맞아 죽도록 하심으로, 하나님을 모욕한 자의 결말이 어떤지를 보여주고자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응답_앗수르 왕이 소문을 듣다(8-9)
8 랍사게가 돌아가다가 앗수르 왕이 이미 라기스에서 떠났다 함을 듣고 립나로 가서 앗수르 왕을 만났으니 왕이 거기서 립나와 싸우는 중이더라
랍사게는 어명을 받고 히스기야에게 할 말을 다한 후 그의 왕을 립나에서 만났습니다. 립나는 당시 앗수르가 점령한 남유다의 성 라기스에서 가까운 곳이었습니다. 앗수르가 립나를 함락하고자 한 이유는 군사적 요충지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때 하나님의 말씀대로 앗수르 왕이 한 소문을 듣게 됩니다.
9 앗수르 왕은 구스 왕 디르하가가 당신과 싸우고자 나왔다 함을 듣고 다시 히스기야에게 사자를 보내며 이르되
구스 왕이란 ‘에디오피아를 뜻하는 구스’ 출신의 왕이라는 의미로, 당시 애굽 왕을 가리킵니다. 애굽의 역사를 보면, 주전 8~7세기 경에 구스가 애굽을 통치하였습니다. 이 당시 애굽의 왕조는 제25대 왕조, 누비아 왕조였는데, 본 구절의 ‘디르하가’가 누비아 왕조의 사람으로 주전 699년경 애굽 왕에 올랐던 인물입니다. 군사력이 강한 애굽이 남유다에 주둔한 앗수르 군대를 공격하러 온다면, 앗수르는 남쪽의 애굽과 북쪽의 남유다의 협공을 받아 위기에 빠질 수 있었기에 작전상 후퇴하는 것이 맞다고 판단했습니다. 앗수르 왕은 본국으로 돌아가면서도 히스기야를 협박하며 괴롭혔습니다.
앗수르 왕이 히스기야 왕을 협박하고 하나님을 모욕하다(10-13)
10 너희는 유다의 왕 히스기야에게 이같이 말하여 이르기를 네가 믿는 네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앗수르 왕의 손에 넘기지 아니하겠다 하는 말에 속지 말라 11 앗수르의 여러 왕이 여러 나라에 행한 바 진멸한 일을 네가 들었나니 네가 어찌 구원을 얻겠느냐
앗수르 왕의 협박은 이전처럼 하나님을 모욕하는 말이었습니다. 하나님에게 속지 말라고 하니 선을 넘어도 한창 넘었습니다. 앗수르가 여러 나라를 진멸한 것은 맞지만, 앗수르는 만국을 통치하시고 움직이시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앗수르 왕은 각 나라 각 지역의 신들이 앗수르를 막지 못하여 멸망하였음을 말하며 히스기야에게 협박을 이어갔습니다.
12 내 조상들이 멸하신 여러 민족 곧 고산과 하란과 레셉과 들라살에 있는 에덴 족속을 그 나라들의 신들이 건졌느냐 13 하맛 왕과 아르밧 왕과 스발와임 성의 왕과 헤나와 아와의 왕들이 다 어디 있느냐 하라 하니라
앗수르 왕 산헤립이 자기 나라의 승리 역사만 생각했을 뿐, 그때까지 인류 역사 가운데 있던 나라들의 흥망성쇠를 제대로 알았다면, 앗수르가 천년만년 왕성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승리만 맛본 사람이 과연 겸손해질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창조주로 인정하며 하나님 앞에 머리를 숙일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앗수르의 승리와 같은 오늘날 인생의 성공과 부와 명예는 독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라와 개인의 역사’의 주권자이심을 인정하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다고 믿는다면, 성공과 부와 명예를 얻고도 겸손하게 살아갈 것입니다.
오늘날에 앗수르의 산헤립과 랍사게와 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말에 낙담할 이유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며, 하나님을 모욕하는 자들을 멸하시기 때문입니다. 앗수르의 산헤립과 랍사게와 같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면, 히스기야 왕처럼 겸비해질 때이고 하나님을 향한 창문을 열 때임을 기억하시고, 하나님과 소통하여 응답받음으로 하나님 역사하심의 통로가 되시길 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만국을 통치하시는 하나님께서 저희 아버지가 되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삶을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혹여나 산헤립과 랍사게와 같은 사람을 만나 어려운 일을 당할지라도, 흔들림 없이 하나님을 향해 창문을 열고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시옵소서. 그리하여 하나님의 역사의 통로가 되게 하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히스기야 왕이 자신의 옷을 찢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2. 히스기야 왕이 이사야 선지자에게 사람을 보낸 이유가 무엇입니까?
3. 히스기야가 받은 하나님의 응답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한 후 받은 응답이 예상과 달랐던 것을 생각해 봅시다.
4. 지금 나에게 산헤립과 랍사게와 같은 사람이 있다면, 해야 할 일은 무엇이겠습니까?
(작성: 김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