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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시와시학》 신인상 시 등단
•199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문학평론 당선
•시집 『겨울 카프카』, 『그가 잠깨는 순간』, 『그 강변의 발자국』 등 5권
•평론집 『존재의 놀라움』 외 비평문 다수
•대구시인협회상, 금복문화상, 대구문협 올해의 작품상 수상
1. 문을 열며
『에덴의 동쪽』은 미국 작가 존 스타인벡이 지은 소설이다. 이 작품은 엘리아 카잔 감독에 의해 다시 영화로 각색(1957)되어 전 세계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작가가 유년 시절을 보낸 캘리포니아주洲 살리나스를 배경으로 이 작품의 이야기는 펼쳐진다. 특히 구약성서 창세기에 등장하는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를, 영화에서는 쌍둥이 형제인 ‘아론’(형)과 ‘칼’(동생)의 갈등 구조로 재구성해 놓고 있다. 형제간의 반목과 질시, 부모와 자식 간의 불화로 뒤엉킨 트래스크 집안의 3대에 걸친 스토리가 긴장감 있게 전개되고 있다.
그렇다면 ‘에덴의 동쪽’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에덴은 하느님이 인간에게 처음으로 마련해 준 이상향이다. 그곳은 영원한 생명이
본질적 자아를, ‘나’가 삶과 존재의 근원을, 피조물이 조물주의 창조 질서를 잃어버린 이 실낙원失樂園 의식은 심각한 부정 의식을 유발한다. ‘첫 인간’의 순수성은 파괴되어 아담 부부의 원죄가 그 후손에게로 전가된 것이다. 이제 세상에 죄악이 뿌리내리기 시작한다. 아담의 장남 카인이 질투심으로 동생 아벨을 죽이는 사건이 그것이다. 카인은 그 죄에 대한 벌로 에덴의 동쪽인 ‘놋’으로 추방된다. 마침내 세상은 에덴과 에덴의 동쪽, 이 두 세계의 균열과 대립으로 맞서게 된다. 그러므로 이상향, 혹은 본질적 자아를 상실한 인간은 본능적으로 본향 회귀를 위한 그리움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다. 특히 하이데거가 말한 것처럼 시인은 자기동일성 회복을 위한 근원으로의 ‘귀향Heimkunft’을 간절히 갈망한다. 인류의 무의식 속에 노스탤지어nostalgia가 깊이 자리 잡고 있음은 바로 이런 이유들 때문이다.
2. 인류 역사에서 추구되어 온 이상향
인류 역사를 돌이켜보건대 삶이 고단하고 세상이 혼란에 빠질 때마다 지속적으로 이상향이 추구되어 왔다. 일찍이 『시경詩經』의 ‘위풍魏風’ 편에도 곡식을 앗아가는 큰 쥐(탐관오리)를 피해 낙토를 그리워하는 서민들의 염원이 ‘석서碩鼠’1 라는 시를 통해 잘 나타나 있다.
이러한 이상향은 인류 역사에서 다양하게 전개되어 왔다. 이를테면 아미타불이 다스린다는 불가의 서방정토, 중국 후난성湖南省에 위치한 별천지 무릉도원, 성리학의 성지인 무이산武夷山, 봉래산蓬萊山·방장산方丈山·영주산瀛洲山 등의 삼신산, 포세이돈이 지배하는 해저의 초문명국가 아틀란티스, 잉카 제국의 정복자 피사로가 전한 남미의 황금향 엘도라도, 페르시아 왕족들의 낙원인 파라다이스, 평등과 풍요의 세계로 알려진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 등이 그것이다.
삶에 지친 사람들의 이상향 꿈꾸기는 우리 민족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잦은 전란과 사회적 혼란으로 인해 우리 조상들이 꿈꾸어 온 낙원은 동천복지洞天福地의 세계이다. 동천洞天은 깊은 계곡이나 동굴 속에 있는 별천지로서, 재해나 전쟁의 참화가 미치지 않는 복된 땅을 뜻한다. 이 땅은 선택받은 승지勝地이며 그중에서도 『격
1 춘추전국 시대 위(魏)나라의 백성들이 굶주림으로 떠돌며 낙토를 찾는 내용의 시. 당시 백성의 곡식을 수탈하는 탐관오리를 석서(碩鼠) 즉 큰 쥐에 비유한 풍자시임.
암유록』, 『정감록』을 참조하면 경북 풍기 금계촌, 예천 금당실, 안동 화곡, 두류산 등의 십승지가 유명하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신라인들이 추구한 불국토 사상도 주목된다. 신라인들은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그들은 신라를 부처님의 나라로 생각하여 불국사를 영혼의 고향이라고 보았다. 특히 신라는 페르시아 사람들에게는 이상향으로 인식되던 나라였다. 고대 이란의 구전 서사시 「쿠쉬나메」에는 신라가 이상향으로 설정되어 있는데, 페르시아 왕자 ‘아비틴’과 신라 공주 ‘프라랑’의 사랑과 결혼 이야기도 함께 수록되어 전해진다.
고려인들의 이상향으로는 지리산 청학동이 유명하다. 이 지명은 최치원 선생이 청학을 타고 다녔다는 설화에서 유래되었다. 당시 문명文名을 떨치던 이인로李仁老도 청학동을 찾아 시를 남겼다는 기록이 『파한집』에 전해진다. 청학동은 해발 약 800m의 깊은 산속 청암면 묵계리에 있는데, 전란과 혼란을 피하기 좋은 십승지의 하나이다.
조선인들도 자신들의 이상향을 시조나 가사, 그림 등을 통해 표현하면서 그리워했다. 특히 꿈속에서 본 이상향을 화폭에 담은 안견의 「몽유도원도」, 시인 묵객들이 각종 시가에서 정신적 고향으로 노래한 ‘무릉도원’은 당시 조선인들의 낙토 사상을 엿보게 한다.
3. 한국 고전 시가에 나타난 이상향
우리나라의 고대 서사문학에 나타난 이상향 추구 의식은 우선 단군신화에서 찾을 수 있다. 『삼국유사』 ‘기이紀異’ 편에 보면 환인桓因의 서자 환웅桓雄이 신단수 아래로 강림하여 태백산에 신시를 건설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즈음 곰과 범은 환웅에게 인간이 되게 해 달라고 빌었고, 환웅과 웅녀 사이에서 단군이 태어나 조선을 건국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조선은 아사달, 즉 ‘아침의 땅’을 의미한다. 아사달은 해 뜨는 동쪽에 위치한 에덴과 그 상징적 의미가 일맥상통한다. 그러므로 아사달은 곧 우리 민족이 이 지상에서 구현하려고 한 이상향이다. 또한 경북 상주 지방에 전해지는 오복동五福洞 설화 역시 이상향 추구 의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나무꾼-사슴’과 관련된 이 이야기는 도연명의 『도화원기』에 나오는 무릉도원 설화가 차용된 것으로 보인다.
고전 시가에도 낙토 사상이 두루 목격되는데 그중에서 제주 민요 「영주 가느니 보길도」2가 주목된다. 이 민요에는 보길도의 부용동 골짜기가 무릉도원이라고 표현되어 있다. 제주 민요 「이어도 사나」 역시 이상향 추구 의식을 잘 보여준다. 이 노래에는 이어도가 제주인들의 낙원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어도는 제주의 마라도에서 서남쪽으로 149km에 위치한 수중 암초이며 ‘파랑도’라고도 불린다. 현재는 섬의 실체가 밝혀졌고 해양과학기지도 건설되어 있지만, 근대 이전에는 배들이 그 암초에 좌초된 줄 모르고 어부들이 돌아오지 않는 신비의 섬으로 인식된 것이다.
낙토 사상은 향가를 통해서도 잘 나타난다. 신라인들은 자신들의 나라를 불국토라고 생각한 만큼 이상향에 대한 염원도 아주 강했다.
달님이시여 이제
서방까지 넘어가시려는고
2 1928년 8월 4일자 〈동아일보〉 최용환(崔容煥)의 ‘보길도 여행기’에 처음 소개됨.
무량수불전에 / 일러서 사뢰옵소서
다짐 깊으신 아미타불을 우러러
두 손을 모아
왕생을 원하며 왕생을 원하며
그리워하는 사람이 있다 사뢰소서
아아, 이 몸을 남겨 놓고
사십팔 대원大願을 이루실까
—광덕, 「원왕생가」 전문
인용 시가는 10구체 형식의 향가로서 불교적 이상향을 추구하는 신라인들의 꿈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삼국유사』에 전해지는 이 노래에는 짚신을 삼으며 생계를 유지해 가는 ‘광덕’과 화전민인 ‘엄장’의 설화가 얽혀 있다. 두 사람은 친한 벗으로 서로 서방정토에 왕생往生할 것을 약속한 바 있다. 훗날 광덕이 먼저 죽자, 엄장은 광덕의 아내와 함께 장사를 지낸 후, 광덕의 아내와 동침하기를 원했다. 이에 광덕의 아내가 엄장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연목구어緣木求魚의 고사를 통해 어리석음을 깨우치게 하여 엄장도 후에 극락왕생하였다는 설화이다. 시의 화자가 “두 손을 모아 / 왕생을 원하며” 간절히 빌고 있음(사십팔 대원)은 불교적 낙토를 그리워하고 있음을 잘 나타내 준다. 이처럼 신라인들의 삶 속에서도 이상향에 대한 지향성이 깊이 뿌리내리고 있음을 파악할 수 있다.
낙토를 그리워하는 의식은 고려인들에게도 면면히 계승되어 왔다. 고려 시대는 시대적, 사회적 여건으로 보건대 혼란과 전란이 아주 많이 발생했다. 특히 정중부 등이 일으킨 무신란과 몽골의 침입, 그리고 만적과 효심의 난을 위시한 잦은 민란은 인심을 흉흉하게 하고 서민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민중들의 실존적 고뇌가 자연스럽게 시가에 녹아들어 갔고 그 대표적인 노래가 「청산별곡」이다.
살어리 살어리랏다. 청산靑山애 살어리랏다
멀위랑 래랑 먹고 청산靑山애 살어리랏다
얄리얄리 얄랑셩 얄라리 얄라
우러라 우러라 새여 자고 니러 우러러 새여
널라와 시름 한 나도 자고 니러 우니로라
얄리얄리 얄랑셩 얄라리 얄라
—작자 미상, 「청산별곡」 부분
『악장가사』에 전해지는 이 노래에는 고려 민중들의 삶의 애환과 이상향 추구 의식이 잘 스며들어 있다. 당시 서민들은 현실의 혼란과 고단한 삶을 떠나 ‘청산’ 즉 낙토에 가서 안락한 삶을 누리고 싶은 염원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 시에서도 시의 화자는 청산으로 가는 도중 ‘새’를 보고 “널라와 시름 한 나”라고 하면서 자신의 쓰라린 세상살이의 감정을 이입하고 있다. 농사마저 지을 수 없는 피폐해진 환경을 버려두고 화자는 하릴없이 청산으로 향하고 있다. 그는 이 낙토에서 소박하지만 “멀위랑 래랑” 먹으며 근심 없이 살고 싶은 것이다.
특히 고려 시가에는 이상향이 ‘청산’ 이미지로 많이 나타나 있음이 주목된다. 이인로의 한시漢詩 「청학동」3 역시 청산 이미지와 연
3 이인로(1152~1220)의 시화집인 『파한집破閑集』에 수록되어 있음. 청학동을 찾아 지리산으로 온 이인로는 이 시에서 쌍계사 일대에서 청학동을 찾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음. “頭流山逈暮雲低 / 萬壑千岩似會稽 / 策杖欲尋靑鶴洞…”
관되어 있다. 이 같은 청산 지향성은 전란이나 혼란을 피해 산속 깊숙이 숨어서 안심입명安心立命 하고 싶은 서민들의 소망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조선 시대에 이르러서도 이상향에 대한 소망은 시조와 가사를 통해서 지속적으로 드러난다. 이 시대의 시인 묵객들이 추구한 이상향은 서정 시조나 서정 가사에서 주로 자연 심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① 두류산 양단수를 녜 듯고 이졔 보니
도화 뜬 맑은 물에 산영조차 잠겻셰라
아희야 무릉이 어듸오, 나난 옌가 하노라
—조식
② 간밤의 눈 갠 후에 경물景物이 달랃고야
이어라 이어라
압희는 만경유리萬頃琉璃 뒤희는 천텹옥산千疊玉山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션계仙界ㄴ가 불계佛界ㄴ가 인간이 아니로다
—윤선도, 「어부사시사」 부분
이 작품들은 모두 특정한 자연을 배경으로 하여 그것을 이상향과 동일시하고 있다. ①의 화자는 ‘두류산’(지리산)에 은거하여 그곳을 무릉도원이라 생각하고 있다. 또한 “압희는 만경유리萬頃琉璃 뒤희는 천텹옥산千疊玉山”에서 보듯 ②의 화자 역시 보길도의 절경을 보고 “션계仙界ㄴ가 불계佛界ㄴ가 인간이 아니로다”라고 감격해하고 있다. 이 시가들은 모두 ‘자연=이상향’이라는 가치관을 잘 보여준다. 특히 자연 친화의 성격을 지닌 산수시山水詩에서는 이런 경
향이 더욱 뚜렷이 나타난다.
그런데 이 시대에는 서정 시조뿐만이 아니라 서정 가사나 잡가에서도 이상향 추구 의식이 여러 곳에서 목격된다.
① 명사明沙 조흔 믈에 잔 시어 부어 들고 / 청류淸流를 굽어보니 떠오나니 도화桃花ㅣ로다 / 무릉이 갓갑도다 져 이 긘 거인고
—정극인, 「상춘곡」 부분
② 저 건너 병풍석으로 으르렁 콸콸
흐르는 물결이 은옥銀玉같이 흩어지니
소부巢父 허유許由가 문답하던 기산 영수箕山潁水가 이 아니냐
—작자 미상, 「유산가遊山歌」 부분
①은 자연 속에서 풍류와 멋, 안분지족安分知足을 누리고자 하는 양반들의 서정 가사이고 ②는 조선 후기 봄 경치를 즐기는 내용을 담은 서민 계층의 잡가이다. 이 작품들은 모두 자연 속에서 유유자적하며 즐기는 모습이 낭만적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시의 화자가 몸담은 자연이 바로 낙토 또는 선계仙界임을 밝히고 있다.
인용 시가를 보면 ①의 화자는 맑은 물이 흘러오는 것을 통해 ‘도화桃花’를 상상하면서 “무릉이 갓갑도다, 져 이 긘 거인고”라고 읊조리고 있다. 화자가 노니는 ‘’(들판)와 무릉도원이 동일시되고 있는 것이다. ②의 화자 역시 봄산의 폭포수를 완상하면서 “소부巢父 허유許由가 문답하던 기산 영수箕山潁水4가 이 아니냐”라고 하면서
4 중국 하남성에 위치한 산과 시내의 이름. 요(堯) 임금 때 세속의 임금 자리마저 싫다던 소부(巢父)와 허유(許由)가 세상을 피해 들어가 은거했다는 자연으로 후대 시인들에게는 주로 이상향 또는 별천지로 인식됨.
자신이 즐기는 자연과 기산 영수를 동일한 이상 세계로 여기고 있다. 이 시대에는 이런 시가들 이외에 「홍길동전」, 「허생전」, 「몽유도원도」 등에서도 이 같은 이상향 지향 의식이 잘 나타나 있다. 도탄에 빠진 백성들이 삶의 질곡에서 벗어나 유토피아에서 행복한 삶을 향유하고 싶은 소망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다.
4. 현대시에 나타난 이상향
현대시에 이르러서도 이상향 추구 의식은 면면이 그 맥을 이어오고 있다. 비록 시의 유파나 경향은 다르지만, 낙토에 대한 염원은 어느 부류의 시에서나 여러 곳에서 확인된다. 이것을 몇 가지 영역으로 나누어 살펴볼 때, 우선 불교적 세계관을 바탕에 둔 이상향 추구 의식을 주목할 수 있다.
향단아 그넷줄을 밀어라
머언 바다로 / 배를 내어 밀 듯이, / 향단아
…(중략)…
서西으로 가는 달같이는
나는 아무래도 갈 수가 없다
바람이 파도를 밀어 올리듯이
그렇게 나를 밀어 올려 다오 / 향단아
—서정주, 「추천사」 부분
인용 시에서는 시의 화자가 불교적 낙토를 간절히 염원하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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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시의 화자는 속계의 온갖 집착에서 벗어나 ‘머언 바다’로 표현된 이상 세계로 가기를 갈망한다. 이 낙토는 “서西으로 가는 달”에서 보듯 서쪽에 위치하고 있다. 서쪽은 곧 불교적 서방정토를 의미한다. 서방 지향성의 이상향 추구 의식은 이 시인이 지은 다른 시, “진달래 꽃비 오는 서역西域 삼만리”(「귀촉도」)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그는 “바람이 파도를 밀어 올리듯이” 끝까지 이상향으로 가고 싶은 현실 초월 의지를 포기하지 않는다. 이 밖에 불교적 이상향을 지향하는 시는 「나룻배와 행인」(한용운), 「바라춤」(신석초), 「자수紫繡」(허영자) 등에서도 잘 엿보인다.
기독교적 세계관에 바탕을 둔 이상향 추구 의식도 주목된다.
해야 고운 해야, 늬가 오면, 늬가사 오면, 나는 나는 청산이 좋아라. 훨훨훨 깃을 치는 청산이 좋아라. 청산이 있으면 홀로래도 좋아라.
사슴을 따라 사슴을 따라, 양지로 양지로 사슴을 따라, 사슴을 만나면 사슴과 놀고.
칡범을 따라 칡범을 따라, 칡범을 만나면 칡범과 놀고…….
—박두진, 「해」 부분
이 시는 8·15 광복의 벅찬 감격과 더불어 사랑과 평화, 대화합으로 실현될 우리 민족의 미래를 기독교적 낙원 사상에 근거하여 형상화하고 있다. 시적 화자는 ‘해’와 ‘청산’이라는 상징적 이미지를 통해 광명과 새로운 평화의 낙토를 꿈꾸고 있다.
이 낙토는 약육강식의 투쟁이 없는 상생과 조화의 세계이다. 이 세계를 화자는 “사슴을 만나면 사슴과 놀”거나, “칡범을 만나면 칡
범과 놀” 수 있는 화평한 곳으로 표현하고 있다. 모든 것이 차별받지 않는 이 꿈의 세계에서 화자는 야생의 동물들과 혼융일체가 되어 낙원의 삶을 누려 보고자 한다. 기독교적 이상향을 꿈꾸는 시는 이 밖에 「귀천」(천상병), 「눈」(김남조), 「꽃잎 한 장처럼」(이해인), 「마지막 지상에서」(김현승) 등에서도 산견散見된다.
한편, 특정한 종교적 성격을 드러내지는 않지만 자연을 배경으로 한 이상향 추구 의식의 시도 놓칠 수 없다.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깊은 삼림지대를 끼고 돌면
고요한 호수에 흰 물새 날고
좁은 들길에 들장미 열매 붉어,
멀리 노루 새끼 마음놓고 뛰어다니는
아무도 살지 않는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신석정,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부분
이 시는 현대 문명의 번잡함을 피해 고요한 전원에서 살고 싶은 시적 화자의 꿈을 반영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에 비록 현실에 적극 대응하진 못했지만, 시인은 그 억압의 세계를 정신적으로 극복하기 위해 ‘먼 나라’라는 이상향을 설정하여 그곳으로 가기를 간절히 꿈꾼다.
그 이상향은 “멀리 노루 새끼 마음놓고 뛰어다니는” 목가적인 세계이다. 뿐만 아니라 현실의 온갖 모순과 폭력, 오염에 노출된 세계
가 아니라, “아무도 살지 않는” 순백의 원초적인 고요의 땅이다. 이 시인이 평소 노장 철학과 도연명의 「귀거래사」, 미국의 전원시인 소로우H. D. Thoreau의 시를 좋아했다는 것으로 보아 이 시 역시 반속적反俗的, 탈속脫俗的 성향을 강하게 띠고 있다. 자연을 배경으로 하는 이 같은 이상향 추구 의식은 「거산호 2」(김관식), 「산이 날 에워싸고」(박목월) 등에서도 이어진다.
실존적 육성을 바탕에 둔 이상향 추구의 시도 관심을 끈다.
이것은 소리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海原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의 푯대 끝에
애수哀愁는 백로白鷺처럼 날개를 펴다
아, 누구인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
—유치환, 「깃발」 전문
인용 시에서 보듯 시의 화자는 바다의 포구에 정박한 배에 세워진 깃대에서 펄럭이는 ‘깃발’을 통해 이상향을 꿈꾸고 있다. 화자가 추구하는 낙토는 “푸른 해원海原”이다. 그것은 단순한 바다가 아니라, 바다의 근원 또는 바다의 본체를 이루는 원초적 세계이다. 그 바다는 이 시인의 다른 시(「생명의 서」)에 나타난 “영겁永劫의 허적虛寂”과도 같은 관념적인 이상 세계이다. 이 세계는 실존적 한계상황에 처한 시인으로서는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처럼 도달할 수 없는 곳
이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수도 없는 미지의 낙원이다. 그래서 화자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에서 보듯 끝없이 그 낙원을 동경하고 있다.
끝으로 리얼리즘에 바탕을 둔 민중시, 그리고 모더니즘을 표방하는 주지시에서도 이상향 추구 의식은 예외가 아니다.
① 갈대숲을 이륙하는 흰 새떼들이
자기들끼리 끼룩거리면서
자기들끼리 낄낄대면서
일렬 이열 삼렬 횡대로 자기들의 세상을
이 세상에서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간다
—황지우,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부분
② 아무도 그에게 수심水深을 일러준 일이 없기에
흰 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청靑무우밭인가 해서 내려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
공주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삼월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글픈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승달이 시리다
—김기림, 「바다와 나비」 전문
①의 시는 1980년대 군부독재 시절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억압의 시대를 시의 화자는 “자기들끼리 낄낄대면서” 날아가는 새들에 비유하여 야유하거나 조롱한다. 특히 화자는 새들마저 “일렬 이열 삼렬 횡대로” 날아가는 모습을 보며 군부독재 시대의 획일성을 고발하고 있다. 이 부자유의 시대에서 벗어나기 위해 시인은 자유롭고 정의로운 “이 세상 밖 어디론가”라는 이상 세계로 훨훨 날아갈 수 있기를 염원한다. 풍자와 비판을 통한 현실 일탈의 이상향 찾기는 그 시대의 민중적 꿈으로 읽혀진다.
주지적 경향을 표방하는 ②의 시에서도 이상향 추구 의식은 상징적 기법을 통해 잘 나타나 있다. 이 시는 현대 문명의 냉혹함 속에서 이상 세계에 대한 동경을 그 주제로 하고 있다. 특히 “수심水深” 또는 “바다”로 상징된 냉혹한 현실과 “흰 나비”로 상징된 순수한 존재와의 대비가 인상 깊다. 현대 문명은 그 편리함의 이면에 인간 소외라는 문제를 파생시켰다. 이로 인해 세상은 “삼월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글픈” 것처럼 사랑이 결핍되어 불모지대가 되어 버렸다. 이 삭막한 세상에서 흰나비는 이상향으로 생각한 ‘청靑무우밭’으로 내려가 안착하고자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하지 않다. 낙원에 대한 귀향 의지도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 / 공주처럼 지쳐서 돌아”와야 하듯 절망감에 꺾여 버린다. 이상향은 그만큼 인간이 쉽게 도달하기 어려운 미지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5. 문을 닫으며
이상향에 대한 그리움과 염원은 인류 역사의 시원始原에서부터 비롯되었다. 첫 인간인 ‘아담’의 원죄와 실낙원 이후, 이 낙토는 카이로스적 시간 속에서 끝없는 동경의 대상으로 인류 사회에서 지속적으로 추구되어 왔다. 전쟁과 민란, 기아와 역병 등 사회가 극심
한 혼란에 빠질수록 이상향에 대한 그 시대 민중들의 염원은 더욱 간절할 수밖에 없다. 복락과 풍요, 평화와 안식 등의 지고한 가치를 지닌 이 꿈의 세계는 인류 역사 속에서 다양한 양상으로 문학 작품 속에 전개되어 왔다.
우리나라 역시 신라 향가에서부터 조선 시대의 시조와 가사, 잡가 등에 이르기까지 이상향 추구 의식이 면면히 이어져 왔다. 현대시에 이르러서도 이 낙원 지향성은 불교적, 기독교적, 목가적, 실존적, 민중적, 주지적 경향 등 다양한 성격의 시에서 관찰된다. 이처럼 이상향 추구 의식은 그 다채로운 양상에도 불구하고 궁극적으로 현세적 삶의 고통과 비애를 초월하여 영생의 세계에서 안심입명安心立命하고자 하는 인류 공통의 염원과 존재론적 귀향 의지를 비춰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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