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는 디지털 이주민 두 명과 디지털 원주민 두 명이 함께 살고 있다.
그 중 ‘디지털 이주민’인 나는 중학교 3학년 겨울방학 기간에 천리안, 나우누리, 유니텔 등에 접속해 여기저기 채팅방을 전전하면서 본격적으로 디지털 기기와 만났다. 데스크톱 컴퓨터에서 노트북으로, 삐삐에서 핸드폰을 거쳐 스마트폰으로 변화하는 스마트 기기들과 접촉하는 동안 20여 년의 시간이 흘렀다.
‘디지털 원주민’인 우리 집 미취학 아동들은 나보다 훨씬 많은 스마트 기기들을 접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 기기들과 더 가까워질지언정 멀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이렇게 두 종류의 디지털 종족이 함께 사는 우리 집의 디지털 환경에 대해서 스케치해 보고자 한다. 나와 아이들의 생활방식에서 최대한 아날로그 방식을 고수하고, 자연스러움을 추구하지만,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디지털 기기를 가정 내에서 활용하고 있다. 그 기준은, 한 마디로 ‘목적성’과 ‘수단성’이다. 디지털 기기 사용의 목적의 정당성과 수단으로서의 적합성이 있다면 그 기기의 사용은 허용되지만, 그 반대의 경우라면 허용되지 않는 것이다.
먼저, 허용되지 않는 것은 아이들 손에 스마트폰을 쥐여 주고 동영상을 보게 하는 일이다. 아이들 어릴 때는 외식을 하거나, 밥을 먹게 하기 위해서 스마트폰을 눈 앞에 놓아주는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하다 보니, 밥 먹는 시간이 고역인 때가 많았다. 하지만 ‘식사를 하는 행위’와 ‘영상을 시청하는 행위’는 구분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꾸역 꾸역 그 원칙을 지켜 왔다. 그리고 유튜브의 짤막한 영상들을 아이 손으로 스킵하면서 유튜브의 바다를 유랑하게 하는 것은 ‘영상 시청’으로서의 의미도 없다고 생각해서 더욱 이 원칙을 고수했다.
그렇다면, 아이들에게 허용된 디지털 기기 사용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첫 번째는 ‘AI 스피커’다. 첫째가 돌을 지나자 남편은 집에 AI 스피커를 하나씩 종류별로 사들이기 시작했다. 본인의 필요에 의해서이기도 했지만, 아이들도 이런 스피커를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면서 구비하더니 이제 우리 집에서는 “오케이, 구글~”, “헤이, 클로버~”, “아리야~”하며 누군가를 부르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우리 집에서 이런 AI스피커들은 아침 알람을 시작으로, 그 날의 날씨 정보 제공, 일정 알림, ,아침에 듣기 좋은 음악 재생, 아이들 영어 동화 재생 등을 수행하고, 때때로 무료함을 달래줄 영상 상영, 궁금증 해소시켜 주기, 말장난 상대 되어주기를 불평 한마디 없이 해내고 있다.
두 번째는 ‘패드’다. 남편이 아이들 각자에게 작년 성탄절 선물로 보급형 패드를 선물해 주었고, 그 패드에는 아이들이 활용할 만한 어플들과 시청할 만한 영상들을 깔아 주었다. 예를 들어, 포켓몬의 세계에 진입한 5살 아들과 7살 딸은 매일 양치질을 할 때 ‘포켓몬 스마일’이라는 게임 앱을 실행시킨다. 이 앱은 패드의 카메라를 통해 양치질 하는 아이들이 게임 화면에 비쳐지고 양치질하는 손동작으로 매번 다른 포켓몬을 한 마리씩 잡으면서 도감을 채워나가는 게임 앱이다. 포켓몬스터와 관련된 도감 책이 집에 몇 권 있는데, 포켓몬 빵 속의 스티커나 포켓몬 카드를 모으는 대신, 아이들은 이 도감 책을 통해서 포켓몬스터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고 있고, 게임 앱에서 잡는 포켓몬에 대해서는 다시 이 도감에서 찾아 확인하고 있다. ‘포켓몬 카페’라는 게임 앱은 포켓몬들이 등장해서 퍼즐로 음식과 음료를 만들고, 손님을 대접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카드를 사느라, 포켓몬 빵을 사느라 돈을 많이 들이지 않아도 이렇게 무료 어플을 통해 일상생활 속에서 아이들이 포켓몬을 즐길 수 있다. 이 밖에도, 미취학 아이들이 활용하기에 좋은 어플로 쥬니버 스쿨, 각종 컬러링, 매칭 게임 앱 등이 있어서 일주일에 한 두 차례 시간을 정하고 ‘패드 놀이’하는 시간을 갖고 있다.
세 번째는 ‘오스모’다. 이것도 활용하기에 좋을 거라며 남편이 아이들에게 선물한 것인데, 이것은 구글 엔지니어가 개발한 코딩 교구다. 기본적으로는 패드에 어플을 깔아 활용하는 방식이고, 좋은 점은 일방향이 아닌 양방향 인식이 되도록 반사경을 이용한다는 점이다. 기본 도구를 구비하면 보드게임 형식으로 여러 가지 게임을 할 수 있는데, 아이가 보드에 그림이나 문자 등을 표시하면 반사경을 통해 게임 화면에 그것이 반영되어 게임이 진행된다. 미국에서 개발되었고, 한국에 수입은 되지만 한국어 버전은 아직 없어, 영어로 게임을 하게 된다.
이미 우리는 거부할 수 없는 디지털 환경 속에서 살고 있다. 챗GPT와 AI가 인간의 자리를 대신하기에, 인간이 설 곳을 잃을 수 있다는 공포심만을 갖기보다 그것들을 활용할 ‘인간만의’ 지혜를 갖추어야 하는 시대이다. 그 시대에 적응하는 것은 비단 우리 아이들에게 뿐만 아니라, 부모인 우리 자신에게도 요구된다.
“디지털 기기는 미래교육의 가장 기본적인 도구이면서, 수많은 콘텐츠와 수십 억의 사람이 연결된 하나의 세계이다. 올바른 사용법을 익히고 좋은 습관을 들이는 것은 꼭 필요하다.”(101쪽, 「인공지능 시대, 부모와 교사의 역할(이재포)」)
협동조합 소요의 이재포 이사장께서 “정보기술 강국임을 자랑하는 한국의 교육이 ‘중독’과 ‘금지’만을 외쳤다.”라고 지적하신 것처럼 학교와 가정에서의 디지털 교육이 ‘게임 중독 방지’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본다. 마음먹고 찾아보면, 아이들의 발달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수많은 디지털 기기들과 그 안에 장착할 어플들이 있다. 우리의 디지털 원주민들이 진정한 원주민으로서 디지털 기기들의 ‘주인’이 될 수 있도록 어떻게 그것들을 활용할지에 대해서 함께 이야기하며 배워나가야겠다. 망망대해, 미지의 세계에 발을 내딛는 기분이지만, 그것이 막연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세계가 열린다고 생각하면 설레기도 하니 말이다.
첫댓글 '디지털 원주민'의 삶은 이렇군요! 신기합니다. 되게 미래 모습같고요. (양치앱이라니요;;문화충격;;)
아이를 위해 티비 없앤 집만 봐도 저는 정말 대단하다 싶은데, 샘 댁에서는 더 엄청난 원칙을 세우고 그걸 지키고 계시다니 정말 대단하세요. 우워!!!!
이번 글엔 소제목을 빼셨네요, 동시에 단락 구분이 없어졌어요;;;; (단락 띄기 대신에 줄바꿈을 하신건가요?)
명확하게 구분되는 지점들이 있으니 한 줄씩 띄어서 단락을 구분 지어주는 것도 가독성 측면에서 좋을듯합니다.
우와 신세계 ㅎㄷㄷ;;;
이주민 20년 내공이 놀랍습니댜!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수단과 목적에 적합한 디테일, 양치앱이나 카페를 발굴하시게 된 과정이나 우여곡절이 드러나면 좀더 “일상”속 스토리텔링에 빠져들게 될 거 같아요. 지금은 디지털의 현명한 사용법? 어떤 선언문을 읽는 거 같아 좀 딱딱하게 느껴지거든요. 한편으로는 그게 선생님 글의 개성인 것 같기도 하고요, 음, 고민되네요 🙄
우와~ 완전 신세계네요! 처음 듣는 것들로 가득해요 전 통제만 하고 있는데, 원칙을 세우고 원칙대로 여러가지를 활용하는 점이 너무 훌륭하세요!^^ 글을 읽으면서 많이 배워요~
진짜 신세계네요!!
저도 지호쌤, 영경쌤(글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통제만이 급급한 편인데..
디지털 기기를 적절하게 사용하는 것도 다양한 앱을 '잘' 알아보고 찾아보는 부모의 부지런함, 일상에서 가족이 함께 세운 원칙을 지켜나가는 부단한 노력이 더해져야 함을 명희쌤 글을 읽으며 한번 더 생각하게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