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포와 인천의 유명한 택지개발지구를 둘러보는 오늘의 구간은 등고선 지형도가 아니라
세부 지번이 표기된 지적도가 필요한 구간이다.
큰손, 복부인들과 같이하면 좋아할 구간이다.
김포 끝에서 시작한 한남정맥의 산줄기는 불과 20km를 못 와 대규모 아파트 단지로
탈바꿈되고 산짐승들이 살던 숲은 이제 인간들의 생활의 터전이 되었다.
대곶 4거리에서 인천시 서구 백석동 98번 도로에 이르는 한남정맥은 곳곳에서 산줄기의
원형이 실종되어 버린 대표적인 구간중 하나이다.
탈출 -
그나마 좀 양심은 남아 있어서 주말마다 아빠 없는 시간을 보내는 애들한테 미안해서
연짱 산행은 하지 않는다는 나름의 원칙이 있었는데 지난주가 설이라서 일정이 꼬였다.
어제의 지방 산행으로 물먹은 솜처럼 무거워진 몸을 털고는 행여나 가족들 깰까봐 아침 일찍
살짝 빠져나와 김밥 두줄을 사들고 테크노마트 앞으로 갔다.
다행히 이번 주 산행버스가 우리 집 바로 앞의 강변역을 경유하는게 한결 다행이다.
지난번에는 터덜거리는 버스안에서 한숨도 못 잤는데 이번에는 김밥도 한줄 다 먹고
도착할 때까지 푹 잤다.. 침까지 질질흘리며...
(09:25) 대곶 4거리 출발
1구간때 대곶초등학교(노란색건물) 뒤편으로 내려서지 못하고 옆으로 좀 비켜
내린 바람에 이번에는 고개마루 쪽으로 약간 위치 이동한 후에 출발한다.
구 4거리를 지나 신 4거리로 이동 후 큰 도로를 건넌다.
도로 왼편 표지기가 잔뜩 붙어있는 농로로 접어들어 가다보니 인근 개농장에서
개새끼들의 환영소리가 요란하다.
(09:40) 농로끝에서 오늘 산행에 대한 조회를 마치고 산길을 오르기 시작하는데
종아리가 몹시 땅긴다.
역시 연짱은 내 체질과 안 맞는다니깐..
(10:00) 낑낑대며 올라가니 수안산성 안내문과 산불감시탑이 있는데 이곳이 수안산
정상이다.
안내문을 찍다 카메라가 고장났는데 그러잖아도 오늘 컨디션도 안 좋아서 사진
까지 찍을 마음도 별로 없었는데 잘됐다 싶어서 얼른 배낭에 쑤셔 넣어버렸다.
-저 헬기장 한귀퉁이에 1988년에 재설치한 삼각점이 있다.
(10:18) 안내문에 적힌 수안산성 터는 찾을 수가 없고 내려오는 길에 보니 평택 임씨묘
가 있는데 꽤나 거창한 걸 보니 이 지역 유지 집안이신가 보다.
오늘 산행내내 수백개가 넘는 묘를 봤는데 그중 가장 잘 꾸며진 곳이다.
묘앞 양쪽에는 맨 위가 꽃봉오리 모양의 석주를 세워놓는데 이 돌기둥은 이곳에
묘가 있음을 멀리서도 알 수 있게 하는 표시기 역할을 한다.
이 돌기둥에는 다람쥐 문양을 새겨넣는 경우가 많은데 좌우측에 각각 올라가는
모습과 내려가는 모습을 새긴다.
왕릉에서는 호랑이 문양을 볼 수가 있다. 특이하게 이 동네 산소에서는 산신제를
지내는 상석이 따로 있는 경우가 많았다.
산길 양쪽에는 앙상한 나뭇가지가 도열해있고 푹신한 낙엽이 깔려 있어 밟을 때
마다 사라락 소리를 내는 이 길이 너무도 정감스럽다.
(10:28) 연일 정씨 묘를 지나 산길에서 나왔다가 오성화학 뒤 진행방향 산의 송전탑쪽
으로 들어서니 길가 포도밭에서 가지치기 하던 아저씨가 몹시 궁금한듯 어디로
가느냐고 묻는다.
인근에 변변한 산도 없는데 이상한 산꾼들이 떼거지로, 그것도 주기적으로
지나가니 궁금하실 만도 하다. 복장도 천편일률 새까만 등산복이라니...
참깨밭,포도밭,고추밭에 다시 또 몇 개의 무덤, 그러다 골목길, 폐차장 옆을
지나가니 이건 내가 생각해도 산행이 아니다..
-오성화학...여기가 옥시크린등 세제원료 납품하는곳이라고 함.
(10:35) 숲길로 다시 들어서는데 얼핏 좌측에 엄나무 한그루가 보인다.
엄나무는 두릎나무 비슷하게 생겼으나 가시가 훨씬 크고 나무 자체도 무지하게
크게 자란다.
약용효과가 커서 옻닭하듯 닭백숙에 넣어 요리해 먹고 가시가 있어 잡귀를
물리친다하여 시골 담(울타리)에 꽂아두곤 하는 나무이다.
새순이 나오면 두릎처럼 살짝 데쳐 먹는데 그 맛이 두릎보다 낫다.
내가 자주가는 시골 절 문옆에 엄나무가 몇그루 서 있는데 봄만 되면 몰래 새순을
따먹으려는 신도들과 지키려는 스님들 사이에 신경전이 만만찮다.
(10:48) 먼지가 풀풀날리는 급경사길을 오르는데 해발 100m도 안되는 산이 사람
잡는다. 봉우리에 올라 막초 한잔하고 다시 출발.
(11:02) 군창고가 마주 보이는 5번 지방도로에 도착하여 창고 옆 우측 임도로 올라간다.
10여분 올라가니 레이다 초소가 있고 전망이 꽤 괜찮은 봉우리에 오르는데
이곳이 지도상의 학운산 옆 봉우리다.
실제 우측에 있는 학운산은 이곳보다 더 낮은 봉우리인데 학운산 이름이 그곳에
붙은 이유는 아마도 학운리 쪽에서 보이는 봉우리가 그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11:34) 가현산 봉우리를 향해 방향을 잡고 산길을 가다보니 305번 지방도로 상의
스무네미 고개가 나온다.
예전에 이 근처에 임꺽정의 소굴이 있었다고 하더니 스무명이 (모여서) 넘이하던
(넘어가던) 고개인가 싶다.... 아니면 말고.
좌측으로 가서 구도로와 신도로를 무단횡단하고 건너편 산으로 다시 들어간다.
(11:44) 길 건너 급경사를 타고 봉우리 위로 올라가니 다시 능선길을 만나게되고 이내
산불감시탑이 나타난다.
진행방향으로는 가현산이 빤히 보이고 우측에 평택임씨 묘가 자리잡고 있는데
지금은 상당부분 인천으로 편입되어 있는 김포들녁이 한눈에 보이며 정말 조망
이 괜찮은 곳이라 여기서 주저앉아 1시간여에 걸쳐 점심을 먹었다.
지금까지 지나온 길은 김포에 속해있지만 이 근방부터는 산길 좌우가 모두 인천
땅이다.
예전의 김포는 상당히 큰 지역이었고 인천은 김포와 계양산 일대를 차지했던
부평의 세에 밀려 한적한 바닷가 한쪽에 위치해 있던 작은 포구에 불과했던 곳
인데 고려와 조선시대에 수많은 인천 출신 왕비를 배출하면서 왕의 本鄕
(외가집)이 되어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고 급기야 부평은 완전히 인천으로 흡수
되고 김포의 알짜배기 땅도 모두 인천에 빼앗겼던 것이다.
현재의 김포 지도를 보면 김포공항 인근서부터 한강변으로 회랑과 같이 길게
뻗어있다가 양촌면을 지나서야 좌측 강화도쪽까지 뭉툭하게 튀어 나와있는
아주 기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이는 현재 서울시 강서구일대는 서울에
뺏기고 검단,마전,불로 택지지구는 인천광역시 서구와 계양구로 편입된 결과
이며 김포 입장에서 볼 때는 아주 비효율적인 행정구역이 되어 버렸다.
한편, 인천에서 수많은 왕비가 나오게된데는 남양 홍씨와 인천 이씨 집안의
역할이 컸다.
인천 이씨의 시조 이허겸은 고려시대에 인천일대 1,500호의 식읍을 받아 오늘날
의 인천이라는 지역을 만든 토착 호족으로서 숱한 고려 왕비를 배출한 외척
권세가였고 급기야 그 후손인 이자겸대에서는 왕권까지 노리다 제거되었는데
이 당시 이자겸을 견제하던 세력이 삼국사기를 쓴 김부식이다.
남양 홍씨는 조선시대에 왕비를 7명이나 배출한 집안이다.
남양은 현재 수원과 화성군일대의 옛 지명이며 신라시대에 당나라에서 선진
문물을 전수하기 위해 온 8학사가 있었는데 그중 한 사람이 남양 홍씨의 시조다.
남양 홍씨 역시 이곳 인천,수원 일대에서 꽤나 빵빵한 역사를 지닌 세도가인데
“당신”의 유래가 당에서 온 8학사를 지칭하는데서 온 것이라는 설도 있다.
(신라 선덕여왕이 신라의 신하와 구분하기 위해 唐(에서 온)臣(하) 라고
불렀다나..)
1시간여의 점심식사를 하다보니 땀도 식고 하늘도 흐려져서 출발을 서둘렀다.
(13:00) 운치있는 소나무 숲길사이를 걷다보니 어느덧 갈림길이 나타난다.
왼쪽은 구래골 약수터, 오른쪽은 묘각사. 묘각사쪽으로 방향을 잡고 한차례
오름길을 오르고 나니 3형제 바위 갈림길이 나오며 정자가 바로 보인다.
갈림길 바로 옆에 작은 바위 3개가 보이는데 저것이 3형제 바위?
뭔가 좀 더 전설적인 것을 생각했는데 산책하는 동네 주민들이 만든 이름인
것 같다.
가현정 정자앞에 이르니 산책나온 인근 주민들과 꼬맹이들도 많이 보이며
이들에 섞여 우측으로 조금 더 진행하니 넓은 진달래 군락지와 함께 360도 조망
이 되는 정상부가 나타났고 歌鉉山守愛壇이라는 제단이 있다.
歌鉉山이라 하면 노래와 가무를 연상케하는데 이 산 이름의 유래는 몇가지가
있다.
첫째, 산에 칡이 번성하여 갈현산(葛峴山) 인데 그것이 가현산이 되었다는 설
둘째, 석양 낙조와 황포돛대의 경관을 배경삼아 거문고타며 노래를 불렀다는 설
셋째, 중국과의 무역이 활발해지자 이 산아래 주막이 번성하여 가무가 그치지
않았다는 설
어찌되었던 가현산의 조망은 볼만했고 특히나 김포평야를 넘어 서해로 떨어지는
낙조는 상상만해도 일품일 것으로 보인다.
(13:18) 가현산 정상에서 다음 산줄기로 이어지는 마루금 능선상에는 군부대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에 정맥길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우측 사면의 묘각사쪽으로 우회할
수 밖에 없다.
작고 아담한 절 묘각사에는 대웅전 옆 불상 아래 용궁약수라는 샘이 하나 있는데
갈수기라 그런지 바닥에 물이 약간 고여 있어서 몸을 깊숙이 숙여 바가지로 물맛
만 조금 보고 산길을 이어간다.
(13:48) 묘각사 입구로 나와 다시 산길로 들어서서 10여분 올라가니 좁은 정상에 벤치
의자가 두어개 놓여져 있는 세자봉이다.
내려오면서 뒤돌아보니 나름대로 오똑하게 서있는 모습이 작지만 매운 고추를
보는 듯하다.
(13:59) 영진지도에는 서낭당고개로 표기되어 있는 서낭당고개를 지나 건너편 둔덕에
올라 일단의 천주교 묘지군을 지나서 왼쪽에는 마전 택지지구, 오른쪽에는 검단
택지지구의 아파트촌을 보면서 산길을 가는데 산책나온 이 일대 주민들의 모습
이 많이 눈에 띈다.
(14:11) 우측에 군부대 철조망을 끼고 좌측 봉우리를 올랐다 내려가는데 MTB 자전거
행렬을 만났다. 타는 저들과 걷는 우리 중 누가 더 힘들까?
산길을 내려서니 좌측에 국궁장이 있고 눈앞에는 온통 아파트만 보인다.
마전지구, 그 너머로 불로지구, 검단,저 멀리 바닷가에는 청라지구까지 보이는데
청라지구는 500만평이 넘어 분당(300만평)과 일산(200만평)을 합친 정도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게 조성되는 신도시이다
국궁장 옆의 1995년에 세워진 인천광역시 편입 기념비 옆을 지나 동남아파트 뒤
의 얕으막한 동산위로 올라서니 인라인스케이트장이 있고 도로에 내려서서 영진
아파트쪽 앞길을 지나 4거리를 건너 검단고교와 I'Park 아파트 사잇길로 들어
섰다.
입주가 한창인 I'Park 아파트를 좌측에 끼고 우측 길을 따라가니 힐스테이트
아파트(좌)와 공사장(우)이 나오고 이 공사장을 그대로 가로질러 내려서니
웬 공장 마당이다.
공장 경비원 아저씨의 핀잔 소리를 듣고는 얼른 빠져나와 가만 보니 신촌사료
라는 이 공장이 아파트촌 한 가운데 서 있는 꼴이다.
공장 돌아가는 느낌은 안나는데 공장 땅값이 장난이 아닐 것이니 이 회사 사장님
은 밥 안먹어도 배부를 것 같다.
(14:45) 공장 건너는 제일모직 하티스트 매장. 이곳이 바로 문고개이다.
하티스트 매장 뒤에는 산이 하나있고 교통호가 좌우로 갈라지는데 우측 교통호를
따라 올라가면 정상에 기막힌 비박지로 쓸만한 뚜껑달린 화생방용 벙커가 있고
이곳에서 왼쪽으로 조금만 진행하면 대규모 천주교 공원묘지 맨 윗부분에 서게
된다.
(14:50) 천주교공원묘지는 인근 아파트촌과 같이 딱 붙어 있는데 산자의 집(陽宅)과
죽은 자의 집(陰宅)이 함께 공존하고 있는 모습이 참 이상스레 다가온다.
하긴 삶과 죽음이 간발의 차이이긴 하지만 예전 같으면 이런 곳에 아파트 단지
세울 것은 꿈도 꾸지 못 했을텐데 간뎅이 큰 건설업자가 마케팅을 잘했는지
여하튼 공동묘지 옆집을 용케도 잘 팔아치운 것 같다.
조망이 터진 천주교 공원묘지위에서 계양산,할매산등 가야할 진행방향을 조망
해보고 아파트를 향해 내려서는데 얼핏 느낌이 이상해서 둘러보니 능선의 흐름
이 지금 내려서는 곳의 좌우측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15:07) 천주교 공원묘지 아래 금호아파트 앞길에 서서 가만보니 우측이 고개마루인 것
같고 능선의 흐름도 그쪽으로 이어지는 것 같아 도로를 좀더 거슬러 올라가 고개
마루에서 다시 산길로 들어섰다.
뭔가 선답자의 리본이 있을 것으로 생각되었지만 찾을 수가 없었고 목측으로
마루금을 가늠해보니 대략 희미하나마 산길이 보이긴 한다.
(15:20) 할매산 정상에 올라서 보니 산불감시탑이 있고 이곳에서 금호아파트옆 철계단쪽
으로 올라온 분들과 자료를 맞춰보는데 GPS 데이터에도 금호아파트쪽이 맞다고
나오지만 영 수긍이 안간다.
분명히 고개마루는 아파트 우측에 있었고 토목공사를 하면서 고개를 옮겼으면
모르되 비용을 훨씬 더 들여가면서 좌측에 있던 고개를 100여m나 우측으로
옮기는 바보짓을 할 사람이 있을까?
좌우간 쪽수에 밀려 할 말 못하고 있으니 열라 씹히고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중얼거리던 갈릴레오의 심정이 이해가 간다.
(15:44) 좌측의 골프연습장을 보면서 출발했는데 가다보니 정면에 또 하나의 골프 연습
장이 가로막아 우회하여 내려서 보니 백석 스포렉스이다.
왼편에는 자동차 운전연습장이 있다.
백석 스포렉스 바로 아래 길이 종말고개이고 이 길을 건너서 산(이라고 하기는
뭐하지만..) 쪽으로 다시 붙어 올라가니 산불감시탑으로 보이는 시멘트구조물이
보이고 좌측으로 꺽인 길로 들어선다.
갈림길에서 다시한번 좌측으로 크게 꺽인 길로 들어서니 빌라처럼 보이는 주황색
벽돌 건물의 바로 뒤편이고 작은 골목길로 이어지며 이 골목길 끝이 98번 도로
이다.
(16:04) 98번 도로를 건너 길가에서 아이스크림 하나씩 입에 물고 쉬고 있자니 지나가던
차에서도 신기한 듯 쳐다본다.
예비군복과 등산복의 공통점은 입으면 쪽팔린 것 하나도 없고 개김성만 늘어
난다는 것이다. 바로 앞에는 이마트와 태평 아파트가 보인다.
(16:26) 휴식후에 뒷산으로 다시 들어가니 산 곳곳이 수색교장,매복교장등 훈련지시문이
붙어있는 군 훈련장이고 왼편에 군부대 철조망을 두고 우측길을 따라 가다
군부대 정문앞을 건너서 다시 군부대 철조망을 따라 간다.
즉, 군부대가 마루금을 그대로 차지하고 있어서 철조망을 따라 우회하고 있는
중이다.
우측에는 공원묘지가 보이고 그너머로는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
또 그 너머 2시방향에 계양산과 4시 방향에 검암지구의 아파트 단지가 보인다.
(16:41) 둘레석까지 갖춘 산신제 상석 있는 곳을 지나서 군부대 철조망을 버리고
우측으로 철탑을 따라 진행하면서도 계속 군 훈련장이 나오는데 많은 인근 주민
들이 산책하러 돌아다니고 있어서 마치 서바이벌 게임장 같은 느낌이다.
(16:51) 산책하듯 휘적거리고 걷다 보니 숲길을 벗어나게 되고 저 앞 간판을 보니
이곳이 오늘의 종착역인 뚝실마을 입구이다.
오늘의 총 산행시간 7시간 반.
어제 산행의 피로에 감기까지 겹처 몸은 피곤하기 짝이 없었지만 대략 하루
일당은 채운 것 같다.
시작이 반이라고 이제 2구간 겨우 마쳤지만 마음은 벌써 한남의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1대간 9정맥이라지만 한남금북과 호남금남은 독립된 정맥으로 보기 어렵기에
실제로는 1대간 7정맥이다.
이왕 시작한 한남정맥의 길은 칠장산이 아니라 속리산에서 맺음을 해야하고
나중에 칠장산부터 금북을 이어가는 것이 맞을 것 같다.
귀경길에 또다시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다가 얼핏 눈을 떠보니 반포대교 근처.
잠실에서 오늘 같이 한 분들과 술 한잔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몸이 따라주질 않아 꾹 참고 집을 향해 돌아선다.
산보다 아름다운 것이 사람임을 알지만 오늘 하루 살고 말 것도 아니기에
다음 산행의 뒷풀이를 기약해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