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벽돌의 여왕
고래 / 천명관 / 문학동네
華曇 정순덕
이 책은 문학동네 10회 소설상을 받고 부커상 후보에 올랐었다. 천명관 작가를 잘 모르지만 돈키호테를 쓴 세르반테스 같다는 신문기사를 읽고, 호기심에 주문했다. 막 장편을 읽은 후라 가벼운 책을 읽으려고 했는데 장편을 또 들었다.
이 책에는 무슨 그렇게 많은 법칙이 많이 나온다.
열거하자면, 세상의 법칙. 이념의 법칙. 거지의 법칙. 흥행업의 법칙. 구라의 법칙. 진화의 법칙. 자연의 법칙. 지식인의 법칙. 사랑의 법칙. 유전의 법칙. 관성의 법칙. 무조건 반사의 법칙. 세상의 법칙. 구호의 법칙. 만용의 법칙. 자본주의의 법칙. 헌금의 법칙. 유전의 법칙. 이념의 법칙. 경영의 법칙. 알코올의 법칙. 플롯의 법칙. 중력의 법칙. 감방의 법칙. 신념의 법칙. 자본의 법칙. 토론의 법칙. 권태의 법칙. 독재의 법칙.등
이 많은 법칙을 인용하며 많은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배경이 된 장소는 평대라는 가상 마을인것 같다. 마을 끝 습지대이며 벽돌 공장 자리는 남발안 이란다. 일색소박은 있어도 박색소박은 없다는 말을 무색게 하며 소박 맞은 국밥집 노인. 시골에서 생선장수의 차를 빌어 대처 남쪽 바닷가로 흘러 들어 온 춘희. 춘희의 딸 벙어리에 통뼈, 장골의 남자 걱정의 딸 금복이가 삼대에 걸쳐 힘겹게 살아낸 이야기다. 일종의 국밥집 노인네 복수극 같은 이야기다.
한국 사회가 겪은 변화. 그로 인한 문제점. 인간 관계의 변화. 가족간의 갈등, 소통의 부재등을 이야기했다. 책은 풍부한 은유와 서정적인 묘사가 많다. 읽으며 상상력을 자극해 주고 생각을 많이 하게 해주었다.
시작 부분은 책에서도 말했듯
p26 매우 외설적이며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납득하지 못할 대담하고 엉뚱한 이야기이다.
p10 인생을 살아간다는 건 끊임없이 쌓이는 먼지를 닦아내는 일이야.
p166 두 사람은 그렇게 뜨겁고 아슬아슬하게, 끈적하고 늘큰하게, 두근두근 숨가쁘게, 달아오른 한여름의 대기 속에 들큼한 날숨을 뒤섞으며 거의 반나절이 족히 걸려 남발일이 내려다보이는 지점에 도착했다.
p188 우리는 우리가 하는 행동에 의해 우리가 된다.
p223 자신은 결코 입이 싼 사람이 아니며, 본시 떠도는 소문을 믿지도 않을뿐더러, 쓸데 없이 이 말 저말 옮기는 것을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며, 그런 짓은 앉아서 오줌누는 계집이라면 모를까 불알 달린 사내로선 차마할 짓이 못 된다고 생각하지만, 과연 못 들은 걸로 하고 끝까지 입을 다물고 있는 게 당사자를 위하는 것이냐, 아니면 들은 대로 정직하게 알려주는 게 올바른 것이냐 하는 문졔로 오랫동안 고민하다, 그래도 혹시 천에 하나 소문이 사실일까 염려되어, 만일 그렇다면 혼자만 모르고 있는 文이 사람들로부터 웃음거리나 되지 않을까 걱정되어, 다시금 얘기하지만 자신은 그저 오로지 文을 생각하는 마음에 털어놓기는 털어놓되, 소문이란 건 어디까지나 믿을 게 못 되는데다 나중에 알고 보면 결국 뜬소문으로 그치는 경우가 많아, 그럴땐 그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는 게 상책이니....
이 장황한 설명을 읽으며 빵! 웃음이 터졌다.
어떻게 그리 남의 말 잘 전하는 사람의 마음을 요리저리 잘 표현했는지...
작가는 정규 문학수업을 거치지 않고 영화 <총잡이> <북경반점>의 각본을 썼다. 곳곳에 민담처럼 변사처럼 내레션을 썼고.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어 450페이지를 읽는 내내 즐거웠다.
시대적 배경은 전쟁 전과 전쟁 후. 급변하는 시대에 사람들도 덩달아 직업, 생각, 환경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국밥집. 엿장수. 부두노역자, 벽돌공장.건설업자 건어물장사, 약장수, 고래극장, 윤락가, 야꾸자, 미장이, 예술가들, 고리대금업자, 교도소, 그시대의 정치가들,
등 직업군과 풍경들이 잘 소개되고 묘사된 소설이다.
이 책에 나오는 여성들은 능력자다. 의지가 강하고 수완이 좋은 반면 남자들을 비명 횡사하고 능력도 없고, 그저 상징적이다. 여성으로서 속상한 장면도 많았다. 재미있고 오래 기억에 남을것 같다.
이 책에 시대적 장군이 등장한다. 내 생각에 쿠테타로 정권을 잡은 사람을 상징하는 것 같다. 남과 북의 중요한 회담 장소로 북쪽의 극장 못지 않은 대극장을 짓기로 한다. 건축가는 장군의 지시, 아니 명령을 받고 대극장을 설계한다.
p394 대극장은 모든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는 장소로서, 그것을 이루고 있는 자재는 대중적인 친근감과 예술적인 무게감을 동시에 갖춘 것이라야 했다.그가 오랜 고민 끝에 선택한 것은 바로 점토벽돌이었다. 단지 흙과 물, 그리고 불로만 이루어진 그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가장 오래된 건축자재였으며 문명과 자연의 가장 이상적인 조합물이었다.
건축가의 안목과 집념으로 찾아 낸 벽돌은, 외로이 벽돌만 찍으며 생애를 마친 춘희의 붉은 벽돌로 대극장을 짓게된다.
-벽돌은 한 외로운 영원의 희원이 담긴 불길이었다.-
춘희는 장애인이고 불행하게 살다갔지만 그녀가 혼신의 힘으로 만든 붉은벽돌은 드디어 대극장의 자재로 쓰인다. 참 감동적이었다.
충격적인 살인장면, 아슬아슬하고 문난한 성 묘사, 기구한 여성의 삶, 가난에서 벗어나려는 인간의 본성, 세상살이의 이모저모, 그 시대의 풍경들이 내가 슬쩍 지나 온 세월이기도 해서 흥미롭기도 했다.
가끔 다시 생각나게 하는 소설이다. 한 때 떠들썩했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라는 tv 연속극 이 연상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