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과 신앙
7. 내 인생길의 등대
(1) 허린(許麟) 선배님과의 만남.
허린 선배님
본적 평북 신의주(중강진?), 행정고시
호(號)는 연재(然(齎). 종교는 카톨릭(알로이시오)
갈멜 수도원 회원. 수사(修士).
온화하면서도 예민하고 정확한 성격?
1935.3.28-2021.1.14. 향년 85세 선종
나는 철도청 산하기관인 교통공무원교육원 (연수원)에서 약 8년 근무
내 나이 40-50대 (1985-1993)
그 사이에 철도공사추진위원회(1991년)에서 1년 정도 근무.... 아마 “철도사업의 공사전환에 대한 고찰”이라는 내 석사논문이 참고가 된 듯싶다. 그리고 다시 교육원 원대 복귀.
교육원 근무가 한직 같아 보이지만 행정주사(6급)들이 행정사무관 5급 승진 고과점수관리를 위해서는 꼭 거쳐야 하는 지름길이다. 눈에 않보이는 경쟁이 치열한 곳이라 오래 근무 하기도 어렵다. 1년에 1-2명 선정하여 승진시험 자격 기회를 주는데 보통 3-5년 정도 기다려야 한다. .
그간 대학원까지 어렵게 졸업했으나 승진시험기회는 않 오고 큰 아들의 장애는 힘들고 아버지는 승진을 반대하고... 정신적으로 매우 피곤했다. 세상이 다 싫어 졌다. 그래서 술집으로 헤 매이며 다닐 때.... 아무도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을 때... 내 손 잡아 준 유일한 분.
그 분이 허린 선배님이다.
내 부서의 과장(서기관)으로 부임. 그 분은 고참 서기관, 나는 고참 주사. 저 마다의 승진을 위해 바쁜 시기였다. 그 후 30년......
지금 생각 해 보니 나를 불쌍히 가엾게 본 것 같다. 같은 이북 따라지라고 하면서...
거의 무조건적으로 사랑 해 주셨다. 그런 한없는 사랑~ 이 세상에 태어나서 나는 처음으로 받아 보았다.
그 당시 나는 퇴근 후 호프집을 자주 가곤 했다.
경인선 전철 같은 방향이라 같이 동승하여 중간에서 하차하여 호프집에서 합석했다. 직원들은 내가 승진을 위해 "아부"하는 것으로 오해했을 것 이다.
처음에는 나도 많이 경계하고 조심스러웠다. 그런데 하루 이틀 매일 합석하여 내 신변과 사정을 꼬치꼬치 캐묻는 것이다. 내 사정과 형편을 거의 알고 있는 듯싶었다. 그러면서 “모든 것을 “받아들이라” “신은 두 가지를 다 않 준다. 하나는 버려야 한다. 포기해야한다”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 왜소한 것도 이렇게 사는 것도 우리는 다 피조물이다.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는 것이라고 하면서......
나는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받아들이기 힘들다. 못 받아들이겠다” 라고 하면서....
내가 다니는 술집 다 다녀 보았다. 내 술 먹는 꼬락서니? 를 유심히 살펴 본 것 같다.
그래도 계속 “받아들여야한다”는 끈질 긴 설득에 어느 날 내가 갑자기 순간적으로 울음이 복받쳐 눈물 흘리며 울었다. 왜 울었는지? 나도 모르겠다. 설음 같은 눈물이 마구 나오는 것이다. 이를 바라 본 선배님은 그러면 “이제는 됐다”라고 하셨다.
그 후 1990년 초 여름 어떤 호프집에서 의형제(義兄弟)를 맺고 호형호제(呼兄呼弟)하며 가족 같이 지냈다. “당신은 그 분 하나 철도생활에서 얻었다”라고 하면서 내 아내도 많이 좋아했다.
사람이 가슴 속에 “응어리”가 있으면 그것이 속 병(病이) 된다. 그 때 그 때 풀어야 한다“
그리고 “술은 즐겁게 먹어야 한다” 라고 하면서 형님의 출생의 비밀, 첫 사랑 얘기...,나도 나의 아픈 마음을 털어놓고 얘기하면서.... 맥주 한 잔에 주로 삶과 믿음에 대한 즐거운 대화가 화제였다. 성서를 바탕으로 하였기에 서로 대화가 된 듯 싶다. 종교에 대한 갈등은 없었다.
특히 글쓰기를 권했다. 글을 쓰면 속이 좀 시원해진다나? 그래서 ”파도를 넘어서“라는 자서전도 썼다. 글이라는 것이 좀 묘한 것 같다. 자서전 쓰고 나니 정말 마음이 다소 후련함을 느꼈다. 그리고 이어서 동창들의 미국초청여행.....많이 도움이 되고 위로가 되었다.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않 울어~”라는 “캔디”의 주제곡을 어릴 적에 많이 들었다. 용감하게 살아가는 캔디의 모습을 노래한 것이다.
현실은 않 그렇다. 외롭고 슬프면 표현해야 한다. 표현 않 하고 참으면 병이 된다. 누군가에게 호소해야 하고 관심 있게 귀담아 들어 주는 누군가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게 그렇게 흔치 않다. 저 마다 바쁘다 보니 거의 혼자 속앎이를 하면서 마음을 다스리며 살아야 한다.
말년을 어찌 지낼 것 이냐?고 했더니 관상(觀想}하면서 지내는 거지 뭐.....
실제로 돌아가시는 그 날까지 “묵상일기”를 매일 쓰시고 그 것을 한 달 분 모아서 나에게 보내 주곤 했다. 그 외에도 청헌(靑軒)회지, 잔디밭(수필) 광복군지(광복군발간), 가족지(텃밭) 등도...)
네 인생은 “파도와 같다” .라고 하여 바다 해(海)와 형님의 호(號) 연재(然齎)에서 연(然)과 연결 지어 내 호(號)가 해연(海然)이다. 바다처럼 넓게 푸르게 살라하면서......
돌아가시는 그 날까지... 숨지는 그 시간까지 전화통화 했다. 기백이 당당하신 분이셨다.
삶에 대하여, 믿음에 대하여 많은 가르침을 받았다.
허린(알로이시오)형님의 카톨릭 종신서약식 모습과 카톨릭 신부 수녀 졸업식?서품식(敍品 式)?장면...성스럽고 엄숙해 보였다. 인간적인 정욕, 세상적인 모든 것과 작별하고 하나님과 약속을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 모습을 보고 싶었는데. 아쉽다. 내 인생길의 등대였다.
청헌(靑軒)이라는 월간지도 발간 참여했다.
청헌지(월간) 발행은 1995.2.1.창간. 발기인 허린과 친구인 서동철(시인). 그리고 나는 간사라는 명목으로 참여. “청헌”이란 제호는 서울고등학교 문예지 청우(靑友?)에서 착상이 된 듯싶다. 두 분이 다 서울 고등학교 동창이다
2015.12. 종간하기 까지 20년11개월. 매월 한 번도 결호 없이 발간했다.
국내 동호지同好誌)로 이 정도?는 없는 것 같다. 참여한 훌륭한 분들이 많았다. 또한 광복군(光復軍)이라는 계간지(季刊誌)도 2011.9-2015.6 까지 4년간 편찬에 나도 참여 했다.
이 과정에서 “서당개 3월이면 풍월 읊는다”고 글쓰기도 배웠고..... 그래서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정행룡. 양태근
남강(南江) 정행룡(鄭行龍) 소정(小亭) 양태근(楊泰根) 연재 허린,. 나. 이렇게 아주 가깝게 지냈다. 나는 그냥 묻혀 지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인생의 대 선배들이니까.
남강 정행룡은 연재 허린의 선배.... 남강 정행룡과 소정 양태근은 친한 친구사이.
남강 정행룡(향년 88세)
경남.함양. 서울대인문계 졸업. 교통부, 철도청에서 주로 편찬업무.
열차시각표 책자발행. 장관, 청장 신년사 기념사 작성. 한 번 쓰면 교정 없이 나간다.
아주 달필이시며 서예에도 능하다. 미국 이민(한국 국적 유지)
소정 양태근(향년88세)
함북 흥남 .서울대학교 상대, 일본 와세다 대학교, 게이오 대학교 졸업
6.25전쟁 재일학도의용군참여, 공직에도 조금 근무했다.
서예가(한,중,일 서예회원)이시며 매년 “한,중일‘전시회 그리고 자서전 출간, 부부서예집 출간. 하루5시간 정도 매일 서예 습작. 우리나라 각종 기념탑에 휘호가 남아있다..
정행룡 ,양태근 허린. 종교는 모두 카톨릭 .
세상적인 출세나 성공은 못했다. 욕심 없이 여유롭게 삶을 즐기며 사신 분들이다.
내 자서전 제자(題字), 가훈(家訓) 모두 이 분들의 작품이다.
함께 어울려 3박4일 여행도 하면서...
막걸리 한 잔에 노래 가락으로 여흥을 즐겼다.
연재 허린은 “선구자”
소정 양태근은 패티 페이지의 “ I went your wedding"
"가거라 삼팔선“ 북에 두고 온 아내를 그리며...
나는 “삼팔선의 봄”
남강 정행룡은 모나코 왕비 배우 “그레이스 켈리”를 좋아하여 마지막 유럽 여행 시 그 녀의 묘를 갔다 왔다고 하면서 좋아 하셨다..
모두 다 글을 잘 쓰고 좋아하셨지만 “글쟁이”가 되어서는 않된다. 그러면서 좋은 글들을 많이 남기셨다.
청진동 막걸리 골목, 종로 빈대 떡....
내 삶이 설한(雪寒)에 피어나는 매화 같다고 하면서...
젊은 날의 각종 로맨스. 풍류적인 얘기,....
교교한 달빛아래에서 낙동강 변을 바라보며 장어구이에 야경을 감상하기도 했다.
여자 없이 어떻게 사느냐? 자기는 아직도 여자 없이는 잠을 못 잔다고 하면서 내 중매를 위해 적극적인 응원과 권유를 해 주시기도 하셨다.
내 인생의 훌륭하신 대 선배님들. 삼가 곡배(哭拜)를 하며 지금도 그 시절이 매우 그립다.
하늘나라에서 다시 보고 싶다.
(2) 친구(벗)들과의 만남
부부는 인생의 동반자
친구는 인생의 동행자.
내 주변에는 술을 즐기는 친구
믿음으로 성실하게 사는 친구
그래도 거의 다 믿음에 바탕을 가지고 있는 친구들이다.
개신교 카톨릭...
다행스럽다.
“네 아들이 내 아들이지”하면서 음양으로 응원 해 주는 부랄 친구
고맙고 자랑스럽다.
미국초청방문 시 환대 해 준 동창 친구들.
숙식 호텔까지... 친구부부들의 환대의 고마움
지금도 잊지 않고 있다. 그 때 김길동, 이명홍 수고 많았다. 고맙다.
어떤 친구는 자기는 술도 않 먹으면서 나를 위해서 술 한 잔 나누어 주기도 했다.
그는 이웃의 아픔, 고통을 들어주며 선교도 하고 믿음을 몸소 실천하며 사는 친구이다.
모두 내 삶을 반성하게 하는 친구들이다.
또한 사람이 살면서 남에게 “감동”을 준다는 것은 쉽지 않다.
친구생일을 기억하고 매년 카-드나 엽서를 보내 주는 친구
요즘에는 카톡으로 퍼 올리면 되지만 과거에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카-드 구입, 간단한 축하인사의 글, 우편발송...
나도 몇 번 흉내를 내 보려 했지만 쉽지 않더라고....
그리고
나의 형편과 처지를 이해하고
재홍이 학교(주바라기해피홈)를 후원해 주고 있는 친구들.
그 외에
믿음으로 기도 해 주는 수많은 친구들
특히
항상 내 곁에서
노년을 함께 동행 해 주고 있는 “요나단”과 같은 친구.
내 어찌 잊으리........
모두 모두 고맙다.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이 있기를 기도 한다.
(3) 하나님과의 만남
인생관, 가치관, 역사관, 종교관(사생관) 등
관(觀) 이란 바라 볼 관(觀)이다.
모두 개인의 신념과 소신, 믿음에 바탕을 두고 있는
“삶과 죽음”에 관한 중요한 물음들이다.
인생의 궁극적이고 중요한 관심사이다.
삶을 어떻게 보느냐?
어떤 확신을 갖고 있는냐? 에 따라서
생각과 행동이 달라지고 각 개인의 “삶과 죽음”이 결정된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도(道)를 통하여 도인(道人)이 되는 경우도 있고
근심, 걱정을 벗어나서 달관(達觀)해 보려는 사람도 있다..
그 외에도 많을 것이다.
나는 종교관(사생관)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종교도 많지만 신(神)의 존재여부가 핵심이다.
신이 없는 종교는 종교라기보다 “깨우침”“가르침”정도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신(神)이나 영혼(靈魂)이 있느나? 없느냐? 하는 신의 존재여부....
이것은 마음이나 생각, 정신과 같이 실제 존재하지만 이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도 신의 존재여부를 젊은 날 한 때는 고민도 회의도 해 보았다.
신을 않 믿고, 못 믿고 내 의지대로 살 것이냐?
신의 존재를 인정하고 신에 의지해 살 것이냐?
전적으로 개인의 자유의지(自由意志)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히브리서11:1)
믿음으로 믿고 받아들여야 한다.
나는 기독교문화 속에서 살아 와서인가?
형식적이건 습관적이건 모태신앙으로 기독교인.... 그 길을 걸어 왔다.
다행이다. 하나님의 은혜라고 믿으며
지금은 성경말씀을 다 받아들이고 구원의 확신도 갖고 있다.
그러나 확신도 지나치면 광신
고민 없는 믿음은 맹신.
사랑과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
모두 조심스럽다
인생은 만남의 과정
그리고
만남은"'맛남"이어야 한다
하나님과의 만남
내 인생의 가장 큰 “맛남”을
만났다고 생각한다.
다행이고 감사한다.
지금까지 지 내 온 것
기적이고 은혜이고 감사라고 믿는다.
지금도 내 삶 속에 깊이 개입하셔서
역사하고 섭리하고 계신다고 확신한다.
당낭제거수술로 죽음의 사선을 넘은 지 벌써 1년
그 이후 발생된 극심한 소화불량, 기력저하의 고통 1년
산다는 것이“감사”가 아니고 “고역”이라는 생각을 여러 번 한다.
주여. 용서하소서.
내 극심한 소화불량.
현재 뇌와 관련된 “기능성 소화불량”이라고 연구 중인데
내 경험으로 내가 생각하기에는 신경을 많이 쓰며 살아 온 사람들에게 노화와 함께 찾아오는 증상인 것 같다. 뇌신경도 피로해 지고 위장기능도 무기력해 지고... 그런 것이 아닌가 싶다. 일종의 속앓이가 늙어서 나타나는 현상인 것 같다. 암이 아닌 것이 다행?.
대범해야 하는 데 위장기능은 약한 체질에 성격은 예민하고 속알딱지는 좁고....
모두가 내 탓인걸....
얼마 전
“생존율 2%는 0%로가 아니다”
생존율 2%의 벼랑 끝에서 “It is okay. (괜찮아)”라는 희망의 노래를 부른 미국의 여자 가수 "제인 마르크제프스키"가 31세로 결국 하늘나라로 갔다.
매우 감동적인 노래였는데... 너무 애석하다.
얼마나 오래 사느냐?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어떻게 살다 죽느냐? 가 중요하다.
나는 지금 험한 파도를 넘고 있다.
지평선으로 평화롭게 사라져야 하는데....
생의 마지막이 아름다워야 하는데...
삶과 죽음은 내 소관이 아니다. 전적으로 하나님 소관이다.
내 이 고통? 힘들어도 참으면 언젠가 그 날이 오겠지...
그 날이 삶인지? 죽음인지? 알 수는 없으나 반드시 올 것이다.
현재는 퇴원이 능사가 아니다.
여기가 생각하기에 따라 공동묘지와 같은 곳이지만
이 만큼 나를 보호해 줄 곳.
나를 돌보아 줄 사람.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인명(人命)은 재천(在天)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
이 세상에는 기적(奇蹟)도 많고 많다.
여하튼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다.
힘들지만
매 순간 순간 하루하루 살아 있음에 감사하면서
담담한 마음으로 기도하며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모든 것을 참으며
기다리련다.
입춘 우수 경칩까지 지났으니 누가 뭐라 해도 봄이다.
몸무게 46키로에서 50키로
다시 48키로... 곡선을 그리는 듯
밥 먹기가 너무 힘들고 답답.
진땀이 좀 나고 입이 자주 마른다.
소화불량은 정도의 차이는 조금 있어도 여전하다.
海然
요양병원에서
2022.3.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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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분들과 친분을 가지고
사회생활을 하셨네요
만남이 보람있고 즐거웠겠네요.
아름다운 추억입니다. 감사 !
의정이
댓글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