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황선유
배우 윤정희가 떠났다. 먼 나라에서 기별만 왔다. 아름답던 사람이 그만 가버렸다. 가까이 살갗 닿아본 적도 없는 정인을 잃은 듯 허전하다.
배우를 처음 만난 곳은 유년 시절 시골집 아래채의 신문지로 초벌만 도배한 방 벽에서였다. 일 년 내내 싫은 내색 하나 없이 웃는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다가 해가 바뀌면 정갈하게 새 옷으로 갈아입고 머리단장을 다시 하고 그 자리에서 또 꼬빡 일 년을 웃어 주었다.
갓 시집온 동서의 여행 사진첩에서도 본 적이 있다. 파리에 있는 배우의 집이라고 했다. 아무리 시가媤家와 인연이 있기로 여행 중의 처음 보는 대학생을 선뜻 집으로 초대하더란다.
마지막으로는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詩》에서였다.
“윤정희가 나온다고 보러 왔는데 와 이리 재미가 없노?”
나와 그리 멀지 않은 자리에서 배우와 엇비슷하게 세월을 보낸 듯한 너덧 명이 한바탕 군담을 쏟으며 일어선다. 그제라서야 영화 관람객은 그녀들 너덧과 나뿐이란 걸 알았다. 인터넷으로 상영관을 검색하고 상영 시간을 맞추기 위해 할 일을 미루고 왔건만. 너덧뿐인 관객이 재미없다 혹평한 영화를 보고 나서 한동안 나는 좀 아팠다.
청명한 날 물비늘이 은빛으로 흐르는 강물에 한 소녀가 얼굴을 묻은 채 떠내려온다. 소녀의 죽음은 주인공 ‘미자’가 알지 못하는 동안 그녀의 삶을 위태하게 흔들었다. 막다른 곳으로 몰아붙였다. 가해자도 피해자도 아닌 그녀에게 깊은 슬픔과 풀 수 없는 응어리를 안겼다. 혹독한 세상 앞에서 중심을 잡아 다시 제자리를 디뎌 서기에는 너무 순수하여 여리기만 한 그녀이다. 이런 미자를 두고 건반 위의 구도자라 불리는 남편 백건우는 “미자가 어쩌면 윤정희와 꼭 닮았느냐.”고 했단다. 들리는 말로는 주인공 미자 역으로 성형하지 않은 맨얼굴의 윤정희를 캐스팅했다고도 한다.
그런 미자가 떠난다. 자신 앞에 내맡겨진 생을 감당치 못해 기어이 가고 만다. 소녀를 실어 갔던 강물이 미자의 詩를 안고 흘러간다. 미자가, 어쩌면 배우 윤정희가 윤슬 눈부신 강을 따라 떠나간다.
이제 작별을 할 시간 머물고 가는 바람처럼
그림자처럼 오지 않던 약속도 끝내 비밀이었던 사랑도
서러운 내 발목에 입 맞추는 풀잎 하나
나를 따라온 작은 발자국에게도
작별을 할 시간
- 이창동 시「아네스의 노래」, 영화에서 주인공 미자가 쓴 詩 부분
내 친구 박구경 시인이 자신의 부음을 카톡으로 전해왔다. 아름답던 또 한 사람이 가고 없다. 연전에 여학교 동문 문인 모임인 ‘일신문학회’를 계기로 다시 만났건만 예순의…, 이제부터는 참 좋을 나이에 서둘러 떠났다. 자자한 자신의 시에 대해 들어 볼 시간도 주지 않고 깍쟁이도 아니면서 깍쟁이처럼 야속하게 가버렸다. 지은 시보다 웃음이 많고 펴낸 시집만큼이나 사람을 사랑했던 시인이었는데.
기차가 들어왔으면 좋겠다
어둠 속을 달려온 시커먼 그 쇳덩이가
쉭쉭, 숨을 몰아쉬는 동안
큼직한 보따리와 흰옷의 사람들이
시끌벅적 이 바닷가에 펼쳐졌으면 좋겠다
- 박구경 시「기차가 들어왔으면 좋겠다」부분
사람들은 종종 ‘한 편의 시와 같다’는 말을 한다. 노을이 붉게 타는 박명의 하늘을 보거나 이른 봄날에 튼싹 천지인 야트막한 산길을 걷다가도, 귓속 깊숙이 자리하는 음률과 코끝 시큰해지는 음식과 발을 멈춘 그림 앞에서도, 예사롭지 않은 뉘 삶을 들을 때, 아무튼 돌올한 감동을 드러낼 때는 다 그런다. 시를 안다거나 시와 가깝다거나 더하여서 시를 사랑한다는 것이리라.
‘젊어서 시인 아닌 사람은 없다.’ 릴케의 말이 아니라도 가만 둘러보면 누구든 시 한 편쯤 지어보지 않은 남자가 없고 한 번쯤 시인을 꿈꿔보지 않은 여자도 드물다. 어디 한국 사람만큼 시를 사랑할까. 지금은 그 이름도 낯설어 버린 공무도하가, 황조가, 구지가 등을 외워야만 점심 도시락을 먹었고 오직 시험 성적을 위하여 이백의 절구와 두보의 율시를 따라 읊었으며 단테의 신곡이 너무 무거워 들었다 놨다 했다. 아무나 붙들고 물어도 김영랑 윤동주의 시 한 편쯤은 능히 암송하고 있으리라. 어쩌면야 우리는 다 저마다의 시를 저마다의 가슴에 품고 사는지도 모를 일이다.
한 의학 서적에서 ‘성병이 인간의 역사와 함께했다’라는 걸 읽었다마는 과연 시도 인류의 역사와 함께했다 하지 않을까. 인류 최초의 시가 기원전의 『길가메시』라는 것도 인류 최초의 여성 시인이 ‘사포’라는 것도 익히 들었다.
과연 시가 무엇인지. 오래전부터 오늘까지도 무수한 시인이나 문학자들은 시의 정의를 두고 논의했을 것이나 지금 나에게는 “시는 인생의 비평이다.” 매슈 아널드(Matthew Arnold 영국의 시인·평론가)의 이 말만이 와닿는다.
배우 윤정희와 시인 박구경은 시를 남겼다. 그녀들 인생에 아름다운 비평을 남기고 처연하게 떠났다. 조심조심 자그맣던 여배우의 몸짓과 늘상 아릿한 시인의 눈가가 오늘따라 참 알알하다.
-《부산수필과비평》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