藥局 秘話 (약국 비화)
ks. Kim.
약국 창가 너머로 한줄기 비라도 시원스레 내리면 마음까지 시원해질까, 백의의 천사로서 이른 아침부터 잘 접어둔 하얀 가운을 입으면서 창가로 다가가 창에 입김을 불어본다. 회색 빛 안개가 자그마하게 퍼진다. 손가락으로 회색 빛 안개 위에 무언가를 적고 싶다. 이러한 충동은 아직도 젊음이 있음을 깨우치려 하려는 것인가? 학창 시절 교복만을 줄기차게 입어온 세월에는 성인이 되면 멋진 색깔의 화려한 투피스를 입고 뽐내야지 생각했었다. 어느새 장래 희망 백의 천사라는 문구가 직업이 된 것이다. 학창시절 제복의 굴래를 벗고자 했으나 현실은 그렇게 녹녹치 않았다. 그렇다고 법관복을 꿈꾼 것은 아니다. 누군가를 벌한다는 것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안았다. 법 앞에 모두 평등하다고하나 그 저울은 기울어져야만 제 값을 하는 것 같다. 누군가에게 죄를 벌하기 보다는 사람을 치유 처방하는 행위가 더 마음에 다가온 것이다.
누군가의 방문으로 시작되는 하루에서 세상 사람들을 들여다 보는 것이, 마치 점술가처럼 또는 마법사처럼 신이 나기도한다. 약국을 들어오는 분들의 표정에서 저분은 어디가 아픈 것인지, 어째서 아픈 것인지, 어떤 처방이면 도움이 되는지, 아니면 마음의 처방을 찾는 것인지 30초 안에 알아 보기도한다. 플라시보 효과로 아픈 마음까지 쾌유된다면 이 또한 좋은 처방일 것이다.
간혹 진상 내원객을 맞이하기도하면, 약사의 인내심을 무기로 그때마다 맞서야하는 것이다. “왜 여기는 가격이 비싸냐, 약을 먹어도 낫지 않고 심해지네요”, “제대로 조제한게 맞아요”, “다른 좋은 약 있는데 내가 원하는 처방 왜 안해주냐, 혹 바가지 씨우는거 아니냐” 등등이다. 의사가 처방한 약을 받으로 온 것이 아니라, 간혹 병원에서 터진 불만을 약사에게라도 하소연하는데 그 정도가 넘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맞장구를 쳐주다 보면, 어떤 양복 입은 아저씨는 몸에서 열이 난다며 여약사 손을 잡아당겨 가슴팍에 넣어 증명하려는 행위를 하는 것이다. 여기가 매상 올리는 선술집도 아닌데, 약사는 동네 북인가? 옛날 복덕방인가? 어떤 아주머니는 여름철이면 그것도 박카스 한병 공짜로 얻어 먹고는 냉방 잘된 시원한 약국에서 잡담하며 30분 이상 죽치는 경우도 허다한 것이다.
동네 근처에 커피숍 다음으로 많은 것이 약국이고 동네 장사이다 보니, 내원객을 골라서 받을 수도 없는 것이며, 방문객마다 서서 친절히 대하다보니 다리도 아프지만, 어떤 때는 마음이 더 아픈 것 같다. 근처 동네 병원에서 또는 간호사들이 야외 행사라도하면 모른척 할 수도 없어서, 금전 지원은 어렵더라도 박카스 몇 상자 보내기도한다. 힘이 난다는 뽀빠이 시금치로 대체하면 안될까 생각해 본다. 큰 제조사 약국에서도 증정용이라고 박카스나, 쌍화차를 박스로 가끔 주기는하나 일상화 되어 받는 고객분들도 덤덤한 맛으로 이미 약발이 약해진 것 같다.
이른 아침부터 저녁 늦은 시간까지 작은 약국은 약사 혼자서 운영하다보니, 닭장 속의 닭은 아닌가로 착각이 들기도한다. 처방 알약이 경우에 따라 분쇠기로 갈아내는 조제일때는 알약 갈아내는 소리가 약사 인생까지 함께 갈아내는 것은 아닌가 착각을 느낀다.
대게 약국이 건물에 월세로 입주하여 조물주보다 높다는 건물주 눈치보며 운영하고 있다. 나름대로 임대차보호법이 강화되어 보호받는다 하지만 임차인으로서 조심하는게 상책이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쉴새 없이 돌아가는 생활이 맞벌이 셀러리맨들이 격는 삶들과 똑 같은 것이다. 누군가는 그래도 직장상사, 동료 눈치 안보고 사는 것이 행복한 것이고, 자영업 사장이지 않냐고 오히려 부럽다고한다. 사장은 사장인데 그 누구도 그렇게 아니 부르고 약사님, 또는 약사로만 호칭한다. 대다수 주부층 호칭은 밖에서 허울 좋은 의미의 사모님, 약간 하향 의미의 아줌마, 갑자기 족보 꼬인 이모, 그것도 싫으면 여기요로 불려지는 것보다는 낫다고 위로한다.
아침은 개점 시간에 늦지않게 먹는둥 마는등 허겁지겁 먹고는 불나게 출근하고, 점심은 온종일 서 있어 밥맛도 없으니 김밥 한줄이나 라면으로 대충 때우고, 늦게 귀가후 야참겸 저녁 식사 하자니 생선 굽는 것도 귀찮아 냉장고에 있는 묵은 반찬 대충 꺼내놓고 밥 한술 뜨는 것이다. 그날도 서방은 “내가 식물인간인가?, 식물만 내리 먹이니 변까지 푸른 색깔이야”라며 투털댄다. “아따 이양반아, 내가 신선놀음하고 온 것 같아”, “죽을 힘도 없이 온 마누라한테 따스한 차라도 대접 못하면서”, 언성이 커지자 자식 놈도 한마디 거든다. “엄마 우리 반에서 내가 제일 키가 작고 힘도 약하다고해”, “키가 작은 것은 네 아빠 빼 닮은 탓이고, 힘이 약한 것은 네가 게을러 운동을 안해 그런거야”라고 그 자리에서 약사 처방전이 내려진다. “이 엄마는 이래뵈도 나가면 아직은 쭈쭈빵빵 사장이야”라며 집에서라도 주름 잡아본다. 운명의 장난이였던가? 학창 시절 꿈은 오래 전에 사라지고 집에서는 땡땡이 무늬의 헐렁한 바지가 편하고, 양푼에 죄다 놓고 비벼 먹는 비빔밥 식사가 편해진 것이다. 아직까지는 그래도 잘 때 코안고는 것이 다행인가? 남편은 멀찌감치 떨어져서 자는 것이 더 좋고. 어느새 뽀글 파마 머리에 펑퍼짐한 아줌마가 되었는가?
같은 업종인 길 건너 키다리 약국 아저씨는 내원객이 뜸한 시간이면 문 앞에 서서 흘러가는 구름을 떠 먹는 것처럼 하늘을 응시하곤한다. 이마도 많이 벗어졌고 몇가닥 밖에 없는 머리카락은 항시 부시시하고 하얀까운은 언제보아도 베이지 색처럼 누래졌는데도 바꿀 생각이 없는 것 같다. 약사의 연륜을 은연중 나타낼려는 것인가? 또한 동네 아주머니 내원객이 들어가면 30분은 족히 있다 나오는 것이 허다한 것인다. 한번은 궁금하여 다른 아주머니를 통해 알게 되었는데, 동네 복덕방 아저씨처럼 뉘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 정도까지 알 정도로 수다쟁이라는 것이다. 젊음을 지정된 공간에서만 하루종일 있는 것이 오죽 스트레스일 것이다. 수다로서도 풀린다면 그 또한 멋진 처방일 것이다. 아니면 그분 니름대로 영업전략인가? 일석이조 (一石二鳥)라는 말이 생각난다.
그러다보면 여름이가고 눈이 소복히 싸이는 겨울이 문 앞에 와 있는 것이다.
여자분 약사 경우 퇴근후에도 가사의 업무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일부 경우 이로인해 부부 불화가 있기도하며, 이혼해 홀로 생활하는 약사분도 있다. 참을 인자를 안고, 또는 자식때문에 사는 세대는 이미 지난 것이다. 이혼이나 사별이 경력도 결점도 아니니 또 다른 가능성 앞에 당당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도 다행인게 최근 추세는 가사 일에 있어 업무 분담의 사회 분위기가 조성된 것이 다행인 것이다.
모처럼 일요일 업무 훌훌 내려 놓고 친구들이랑 그린을 밟아볼까, “사장님 아니 약사님 나이스이예요”라는 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아니면 저 꾸러미들과 북한강변 캠핑장에서 모처럼 고기라도 구워 먹을까? 그러면 푸른 변 타령은 안듣겠지 생각하니 웃음이난다. 오늘의 약사 처방전은 잘 된 것 같다.
내일도 창가에 입김을 불어 회색빛 안개를 만들어 보고 싶다. 그 위에 백의 천사라 적고 싶다.
2024.0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