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리앗 Ⅲ (삼상 17:50-58)
영적적용 : 쓴뿌리론-3
요약
계속하여 쓴뿌리 인격의 처리법이 나타난다. 즉 골리앗의 칼로 그의 목을 친
것은 깊은 회개가 필요함을, 또 사아라임 가는 길은 게으르지 않는 은혜의 생
활을 통하여 치유되고 방비됨을, 골리앗의 머리를 예루살렘으로 가져감은 이제
믿음의 관점으로 살 것을, 갑주는 자기 장막에 둠은 견고한 신앙생활을 할 것
을, 그리고 주의 종 이새의 아들이라는 고백에서 끝까지 자기 위치에서 겸손해
야 함을 보여준다.
설명
본문은 계속하여 쓴뿌리 인격의 처리법을 교훈한다.
5. 쓴뿌리는 회개를 통하여 처리된다.
50-51절 "다윗이 ‥ 블레셋 사람을 밟고 그의 칼을 그 집에서 빼어 내어 그
칼로 그를 죽이고 그 머리를 베니"
1) 밟음 - 그리스도의 승리의 터전에 서라
2) 칼로 머리를 벰 - 말씀 안에서 철저한 회개가 필요하다.
6. 쓴뿌리는 천국적인 삶으로 처리된다.
52-53절에 "블레셋 사람을 쫓아 가이와 에그론 성문까지 이르렀고 블레셋 사
람의 상한 자들은 사아라임 가는 길에서부터 가드와 에그론까지 엎드러졌더라"
1) 사아라임 - 천국의 예표이다.
2) 가는 길 - 게으르지 않는 은혜의 삶이 필요하다.
7. 마음의 뿌리를 믿음에 내려야 한다.
54절 "다윗은 블레셋 사람의 머리를 예루살렘으로 가져가고 갑주는 자기 장막
에 두니라"
1) 머리는 예루살렘으로 - 이제 믿음의 관점으로 살 것
2) 갑주는 자기 장막에 - 견고한 신앙생활을 할 것
8. 겸손은 쓴뿌리의 토양을 파헤친다.
55-58절에 "‥ 사울이 그에게 묻되 소년이여 누구의 아들이뇨 다윗이 대답하
되 나는 주의 종 베들레헴 사람 이새의 아들이니이다" 했습니다.
1) 주의 종 - 그리스도 안의 영광 그러나 끝까지 겸손하라.
2) 이새의 아들 - 우리의 본질을 앎이 겸손에 도움이 된다.
강해
지난 시간에는 골리앗을 쳐부순 다윗 이야기를 쓴뿌리를 이기는 방법의 차원에
서 다루었습니다. 오늘은 그 말씀을 좀 더 보충하고 나머지의 말씀을 마저 드리고
자 합니다. 우리는 그 동안 쓴뿌리를 극복하는데 있어서 약 네 가지의 방법을 배
웠습니다.
먼저 쓴뿌리는 하나님의 자녀의 확신으로 이길 수 있다고 했습니다. 즉 자녀의
생명은 본질상 아버지와 같기 때문에 쓴뿌리가 날 수가 없고, 장성할수록 아버지
를 닮을 뿐 아니라 또 하나님의 영광스런 자녀라는 자부심은 모든 피해의식을 다
이길 수가 있게 됩니다.
그리고 제 2탄으로 삼위일체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서 쓴뿌리를 이길 수 있다고
했습니다. 고후13:13에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
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찌어다" 했습니다. 알고보면 쓴뿌리는 사랑과 은혜
의 결핍증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은혜와 성령의 능력을 받
으면 쓴뿌리는 눈녹듯이 녹게 됩니다.
그리고 제 3탄으로 쓴뿌리를 이기려면 그것을 이기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영육간의 복이 크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제 4탄으로 쓴
뿌리는 알고 보면 우리를 사랑하시고 온전케 하시고 복주시고 귀하게 쓰시려는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의 손길임을 깨달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진리의
물맷돌로서 잘못되고 우둔한 우리의 어리석은 생각을 깨뜨려야 합니다. 이제 오늘
은 그 나머지의 말씀을 마저 드리고자 합니다.
5. 상처의 쓴뿌리는 후회를 통하여 철저히 처리해야 합니다.
50-51절에 "다윗이 이같이 물매와 돌로 블레셋 사람을 이기고 그를 쳐 죽였으나
자기 손에는 칼이 없었더라 다윗이 달려가서 블레셋 사람을 밟고 그의 칼을 그
집에서 빼어 내어 그 칼로 그를 죽이고 그 머리를 베니 블레셋 사람들이 자기 용
사의 죽음을 보고 도망하는지라" 했습니다.
이 말씀은 다윗이 자가 칼이 없으므로 골리앗의 칼을 빼서 골리앗의 머리를 베
는 장면입니다. 골리앗은 자기 칼로 자기의 머리가 잘린 셈입니다. 그러자 블레셋
군대는 도망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쓴뿌리를 온전히 제거하는 방법으로 내가
내 목을 치는 것으로 회개를 상징합니다. 이렇게 철저히 뉘우쳐야 합니다. 하나님
의 사랑의 손길을 손길로 보지 못하다니 얼마나 부끄럽고 통탄할 일입니까? 여기
칼은 골리앗이 가졌을 때는 상처를 주는 흉기였지만 우리가 가지면 말씀의 큰 칼
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을 깨닫고 모든 일에 감사해야 합니다.
고린도 교회에도 쓴뿌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의 첫째 편지인 고린도
전서를 받고서 그들은 잘못을 깨닫고 근심하며 회개했습니다. 고후7:11에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명하
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너희가 저 일에 대하여 일절 너희 자신
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 했습니다.
여기에 회개하는 모습들이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즉 '간절하게 하며' 는
그래요 맞아요 옳아요 틀림없어요 하며 회개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또 '변명하게
하며' 는 나 같은 사람이 또 어디 있을까요? 하며 회개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또
'분하게 하며' 는 정말 제가 그랬다니 통탄스럽습니다 하며 회개하는 것을 가리킵
니다. 또 '얼마나 두렵게 하며' 는 제가 죽을 큰 죄를 지었습니다 하며 회개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는 오 주의 뜻대로 살기를 갈망합니다
하며 회개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얼마나 열심있게 하며' 는 내가 이제야 깨닫다니
후회스럽습니다 하며 안타까워 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얼마나 벌하였는가'
는 매를 맞아 마땅합니다 하며 회개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성경에 자기 군대끼리
칼로 쳐서 자멸하는 사건이 많이 나타나는데 신령한 의미에서 대부분 회개를 예
표합니다. 이처럼 진실로 말씀을 깨달을 때 자기를 치며 회개하게 됩니다. 이 쓴
뿌리에 대한 부끄러움과 깊은 후회가 필요합니다. 이것이 쓴뿌리의 확인 사살입니
다.
6. 쓴뿌리는 천국적인 삶으로 처리됩니다.
52-53절에 "블레셋 사람을 쫓아 가이와 에그론 성문까지 이르렀고 블레셋 사람
의 상한 자들은 사아라임 가는 길에서부터 가드와 에그론까지 엎드러졌더라" 했
습니다.
이스라엘이 도망치는 블레셋 군대를 그들의 나라 성읍까지 추격하여 도륙하는
장면입니다. 골리앗을 죽었어도 그의 군대는 아직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데 이스라엘이 그들을 얼마나 쳤든지 블레셋 사람들이 전쟁터인 엘라골짜기의 사
아라임 길에서부터 블레셋 나라 깊숙이에 위치한 가드와 에그론까지 그들의 시체
로 즐비하게 깔았습니다.
그럼 사아라임 길은 무엇일까요? 이 길은 한 마디로 천국 길의 상징입니다. 사
아라임은 예루살렘 서남쪽의 평지에 있는 성읍으로 엘라골짜기를 뜻합니다. 이곳
은 물이 풍부하고 또 길을 따라 시냇가가 있어 함께 흐르는 곳이며 오곡백과가
무르익는 평야에 있습니다. 계시록 22장에 천국길의 예표가 되기에 충분합니다.
그러므로 사아라임의 평야는 천국의 형통함의 상징이고 시내가 흐름은 성령의 은
혜를 가리키며 따라서 즐겁고 행복한 길을 가리킵니다. 이것이 바로 사막에 위치
한 낙원과 같은 평야지대 사아라임입니다. 사막에 위치한 평야는 지상에 임한 하
나님 나라의 상징입니다.
그리고 남은 블레셋 사람은 남아 있는 의식의 잔재들을 가리킵니다. 대개 백성은
사람의 생각을 상징합니다. 즉 이제는 어느 정도 치유가 아니라 아주 밝고 건강한
영적인 삶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천국의 삶이 필요합니다. 감사
한 것은 지상을 사는 동안에도 성령 안에서 이 천국을 누릴 수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이 천국의 삶을 살아갈 때 비로소 죄악의 쓴뿌리의 인격은 찾아 볼 수 없
게 됩니다.
거기다 사아라임은 '두 대문'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 둘은 증거의 수
요 문은 입술의 상징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상을 살아가는 동안 천국의 기쁨
과 감사와 찬양으로 가득하게 해야 합니다. 우리가 영구하지 않는 지상을 바라보
면 더구나 늙고 추해 가는 우리 얼굴을 바라보면 찬미가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므
로 천국을 바라보며 영원한 약속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히13:14에 "우리가
여기는 영구한 도성이 없고 오직 장차 올 것을 찾나니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했습니다. 그리고 가는 길을 원수의 시체로 융단삼아 밟고 간 것처럼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선하시고 인자하심을 믿고 감사와 찬송을 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쓴뿌리가 서식할 기회를 주지 말아야 합니다. 이를 위하여 감
사의 훈련이 필요합니다.
살전5:15절 이하에도 쓴뿌리를 이기는 비결이 나타납니다. "삼가 누가 누구에게
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오직 피차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
상 선을 좇으라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
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우리는 이 말씀을 중 뒷부분
만 많이 애독해 왔습니다. 그러나 앞의 문맥과 함께 생각할 때 어떤 환경 속에서
도 예수 안에 주신 하나님의 복을 생각하면서 감사하라는 즉 쓴뿌리를 밟고 나아
가는 사아라임의 길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또한 하나님의 예비하신 평탄
함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도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
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함이라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벧전04:12-14) 교훈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기뻐하고 감사하고 찬송하는 생활이 될 때 마음에 남아있던 어두움이나 염려 불
안 불평 불만 낙심 초조 의심 저주 등 사단이 가져다 주는 그 어떤 블레셋의 잔
재도 사라지게 됩니다. 이렇게 성도들의 삶이 주와 같이 길 가는 사아라임의 천국
길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7. 죄악의 쓴뿌리 대신 마음의 뿌리를 천국에 내려야 하겠습니다.
54절에 "다윗은 블레셋 사람의 머리를 예루살렘으로 가져가고 갑주는 자기 장막
에 두니라" 했습니다.
다윗이 골리앗의 머리를 예루살렘으로 가져갔습니다. 이것은 당시 보편화된 승리
의 표식입니다. 그런데 그 머리는 돌이 박힌 머리입니다. 돌이 박힌 머리를 거룩
한 도성인 예루살렘으로 가져갔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머리에도 진리가 박혀져서
세상 것에 얽메이던 그 마음을 이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에 바쳐야 함을 보여
줍니다.
골2:6에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
치게 하라" 했습니다. 이제는 예수님께 뿌리를 박으시기 바랍니다. 그 이유가 나
타납니다. 골3:1-3에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
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라고 한 말씀대로 입니다. 왜 쓸데 없는 곳에
신경을 써서 뿌리를 박습니까? 이제는 신앙생활에 뿌리를 깊이 박으시기 바랍니
다.
그런데 갑주는 왜 자기의 장막에 두었을까요? 이 골리앗의 갑주는 철갑주로서
골리앗이 입었을 때는 부정적인 의미이지만 우리가 소유할 때는 긍정적인 의미가
됩니다. 초대교인들이 이 견고한 의지를 가졌기에 온갖 시련과 박해도 견길 수 있
었습니다. 이러한 견고한 의지를 본 로마인들의 시각은 달랐습니다. 즉 타협조차
도 불가능한 사람이란 잘 잘못을 떠나서 세상에 남겨둘 가치가 없는 극악한 것으
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들의 시각이 잘못된 것이고 성도는 이러한 견고
한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쓴뿌리의 어리석은 생각이 다시는 침투하지 않
도록 방비해야 합니다.
사단은 먼저 생각을 통하여 침투합니다. 그러나 그 생각이 우리를 지배하지 않도
록 해야 합니다. 루터가 이런 말을 했지요. 독수리가 머리 위로 날아오는 것은 막
을 수 없어도 독수리가 머리 이에 집을 짓도록 해서는 안된다고 말입니다. 어떤
사람은 잡념이 있다고 안수해 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잡념은 누구나 있을 수 있습
니다. 심하면 헛소리가 들리거나 나오기도 합니다. 물론 정상적이라는 뜻은 아닙
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것을 이기는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맞장구치거나 당
황하지 말고 의지로서 이기고 물리쳐야 합니다. 이것이 골리앗이 남긴 철갑옷입니
다.
마지막. 겸손으로 쓴뿌리의 토양까지도 파헤쳐야 하겠습니다.
55-58절에 "‥ 사울이 그에게 묻되 소년이여 누구의 아들이뇨 다윗이 대답하되
나는 주의 종 베들레헴 사람 이새의 아들이니이다" 했습니다.
골리앗을 죽인 다윗은 이제 사울의 놀라운 관심속에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다
윗의 대답은 여전히 변함없이 "나는 주의 종 베들레헴 사람 이새의 아들" 이었습
니다. 그는 골리앗을 죽인 민족의 영웅이었어도 어디까지나 왕의 신하요 이새의
아들이었습니다. 군장 아브넬이 맹세하면서까지 모른다고 한 것을 보면 사울의 관
심이 얼마나 크고 급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래도 다윗이 대답은 변함이 없았
습니다. 즉 자신의 위치를 잘 지켰습니다.
영적인 의미에서 본다면 타락치 않은 것을 가리킵니다. 죄란 히브리어로 '하타'로
서 표적을 빗나가다, 실패하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타락이란 사단의 타락이 그랬
듯 자기 지위를 지키지 못한 것을 가리킵니다. 쓴뿌리를 원천적으로 막으려면 끝
까지 겸손한 마음이어야 합니다. 겸손한 자에게 압도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
나 견고한 마음으로 붙잡아 줍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위치를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합니다. 우리의 영적인 위치는 그리스도 안이요, 마음의 위치는 십자가이며, 육신
은 구체적인 현실 속에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철저히 십자가 아래 낮아질 때 하
나님께서 우리를 온전히 높여주시고 모든 상처의 쓴뿌리를 온전히 싸매어 주실
것입니다. 이것이 쓴뿌리론의 마지막 탄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 자녀의 자부심을 가지십시다. 성삼위의 은총을 받
고 삽시다. 이기는 자에게 상이 큽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알고 감사합시다. 쓴뿌
리를 후회합시다. 예수 안에서 천국을 주심을 믿고 찬송하십시다. 이제는 하나님
께 마음의 뿌리를 박읍시다. 그리고 쓴뿌리의 토양인 죄의 길에서 돌아서서 예수
안에서 살아갑시다. 그래서 천국백성으로서의 완전한 행복을 온전히 누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