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인조
이유야
파란시선 0115
2022년 11월 9일 발간
정가 10,000원
B6(128×208)
167쪽
ISBN 979-11-91897-40-1 03810
(주)함께하는출판그룹파란 ∣ (10387) 경기도 고양시 일산서구 중앙로 1455 대우시티프라자 B1 202-1호
Tel. 031-919-4288 ∣ Fax. 031-919-4287 ∣ Mobile-Fax. 0504-441-3439 ∣ E-mail bookparan2015@hanmail.net
•― 신간 소개
내가 누운 이야기의 이야기에서 길 잃은 풍경이 무구하게 불어나고 있었다
[일인조]는 이유야 시인의 첫 번째 신작 시집으로, 「프리 서버 1.0」, 「유서─와타시 1년」, 「국가 아방가르드의 유령」 등 45편의 시가 실려 있다. 이유야 시인은 1992년 태어났으며, 시집 [일인조]를 썼다.
보통 ‘인조(人組)’라는 말은 ‘삼인조’나 ‘사인조’처럼 인원수가 복수인 경우에만 사용하기 때문에 ‘일인조’라는 단어는 어색하게 느껴진다. 그 어색한 단어를 곱씹으면 자각몽을 꾸는 사람 말고도 이런저런 인물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가령 여럿이 작당해야만 해낼 수 있는 일을 혼자 하는 도둑. 혹은 세 명 혹은 네 명으로 조를 짜야 하는 체육 활동에서 어느 조에도 속하지 못한 한 명의 중학생. ‘일인조’라는 말의 어색함이 부족하거나 넘치는 수로서 ‘하나’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여러 역할을 떠맡아야 하기에 불완전한 하나. 혹은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나머지로서의 하나.
마찬가지로 이 시집에서 ‘나’는 일인다역을 맡고 있고, 한편으로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외톨이의 자의식을 갖고 있다. “세상은 이야기에 관심이 없네/나의 이야기는 골목에 나랑 홀로였다”와 같은 구절에서는 외톨이의 자의식이 잘 드러난다(「My heart is full」). “나,/왕 와타시야,//너는 일단 살아야겠다”라는 구절에서 ‘와타시’는 ‘나’였다가 금세 ‘너’가 되는데(「유서―와타시 1년」), 이런 식으로 ‘일인조’는 하나 이상의 존재로 분열한다.
즉 [일인조]에서 ‘와타시’는 이야기 속 캐릭터의 이름이면서 어떤 경우에는―와타시(わたし)라는 일본어 뜻 그대로―‘나’를 뜻하기도 한다. ‘와타시’의 이런 변환은 이유야 시의 전개 방식에서 기인한다. 이야기의 안팎을 넘나드는 것이 이유야의 시가 쓰이는 방식인데, ‘와타시’는 이야기 속에 있는 반면 ‘나’는 이야기 안팎을 들락날락한다. ‘와타시’는 ‘내’가 이야기에 접속할 때 빙의하는 아바타로, 둘은 동일시되기도 하고 분리되기도 하는 것이다. ‘일인조’의 이러한 분리/중첩은 자각몽을 꿀 때의 자기 인지와 비슷하다. 즉 [일인조]의 화자는 이야기의 연출가인 동시에 일인칭 등장인물이다. (이상 이희우 문학평론가의 해설 중에서)
•― 추천사
이유야의 시집 [일인조]를 읽으며 시종 이야기에 대해 떠올렸다.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은 많고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더 많다. 그러나 혼자서도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머릿속에서 이야기를 공글리다 피식 웃고 말 뿐이다. 그는 ‘일인조’의 이야기를 한다. 이인조라면 말하는 이와 듣는 이가 구분되겠지만, 그의 이야기에서는 말하는 이가 곧 듣는 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가장 먼바다가 가장 무서운 바다가 되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내가 누운 이야기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설득을 위해서 이야기하는 사람과 달리, 그는 자신의 이야기가 필요해서 이야기를 시작한 사람처럼 보인다. 이유야의 시편은 “그래도 세상에 꼭 붙어 있”는 이야기를 지향한다.(「My heart is full」) 구석진 곳에서 마주한 장면이 상상만으로 거대해지는 이야기다. 탁 트인 대로가 구불구불해지는 이야기다. 이야기는 자기도 모르게 시작되었다가 삽시간에 끝나기도 한다. ‘일인조’의 이야기여서 가능한 일이다.
그는 이야기 안에서 이야기 너머를 상상한다. 이야기 안에는 ‘벌꿀오소리의 마음’이나, 소용 있음을 바라는 ‘웨인’의 결정, 마을의 날씨 등 우리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것들이 한가득하다. 이야기 너머를 상상하는 일은 없는 것투성이의 삶에서 쓰는 존재가 할 수 있는 기지개다. 포옹이다. 발버둥이다. 그래서 이유야는 자발적으로 벽을 세우고 그 벽을 타 넘는다. 슬픔을 상상하고 그것을 통과한다. 마침내 이야기의 힘을 목도하기 위해서. ‘나’를 뜻하는 일본어 단어 ‘와타시’는 시 속에서 ‘나’에게서 ‘너’로 변모하고 이는 ‘나’와 ‘너’를 포함한 ‘우리’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아무도 와타시를 듣지 않고 보지 않고 사랑하지 않”아도 ‘나’이기도 하고 ‘너’이기도 한 존재는 쓰기를 멈추지 않는다(「유서―와타시 1년」). ‘나’이기도 ‘너’이기도 해서 3인칭처럼 낯설어진 장면이 페이지마다 꿈틀거린다.
이유야에게 자신의 방이 있는 한, 그곳에서 이야기는 언제든지 뭉게뭉게 피어오를 것이다. 올가을 기억해야 할 이름이, 새겨 둘 이야기가 또 하나 늘었다.
―오은(시인)
•― 시인의 말
도루묵이죠
숭어와 망둥이죠
장전한
•― 저자 소개
이유야
1992년 태어났다.
시집 [일인조]를 썼다.
•― 차례
시인의 말
제1부
시 없는 삶 – 11
아크로바트 – 14
고스트 스토리—벌꿀오소리 편 – 17
웨인은 꼭 옛날 사람 같다 1 – 21
웨인은 꼭 옛날 사람 같다 2 – 25
웨인은 꼭 옛날 사람 같다 3 – 28
Wayne’s so sad – 32
엑소시즘 – 35
프리 서버 1.0 – 39
제2부
터 – 43
언젠가 본 너의 이야기 – 47
언젠가 본 너의 이야기 – 49
환절기—와타시 1년 – 52
유서—와타시 1년 – 54
카타콤 소년 – 58
텅 빈 마을 – 59
베이스캠프 키드 – 62
제3부
미술관에서 살아남기—와타시 8년 – 67
My heart is full – 69
텅 빈 마을 – 72
내 방에서 살아남기: Google maps—와타시 11년 – 74
세상의 심장 – 76
난민 일기—와타시 111년 – 79
불량배 – 83
언에듀케이티드 – 86
제4부
늦여름의 와타시 – 91
소년열전 – 93
출가 일기 – 95
고스트 스토리—워킹 홀리데이 편 – 97
카우카소스산에 놀러 간 와타시—와타시 203년 – 99
태초 마을—와타시 207년 – 101
지하철 문에 기대서 쓴 일기 – 103
언젠가 본 너의 이야기 – 105
제5부
에듀케이티드 – 111
순수 여름 – 117
뒤에서—민경환에게 – 119
바그다드 카페 – 122
국가 아방가르드의 유령 – 126
언젠가 본 너의 이야기 – 129
제6부
자생 – 133
바그다드 카페 – 134
대릉원 르포 – 137
바그다드 카페 – 139
언젠가 본 너의 이야기 – 142
일치하는 역사 – 146
해설 이희우 NPC의 자각몽 – 147
•― 시집 속의 시 세 편
프리 서버 1.0
마을은
누가 마을을 드나들며 누가 마을을 공격하고 또 방어하는지
추호의 관심도 없다
시민들 중 어느 누구도 밖에서 온 상인들을 환영하지 않지만
뒷돈을 주고 그들의 물건을 사들이며
날씨는 마을의 중요한 변수이지만 그것은
그것이 중요한 만큼이나 제멋대로다
광장은 자라나는 아이들로 붐비고 그 바로 옆에는
교회보다 튼튼한 교수대가 서 있으며
시민들 중 어느 누구도 판결에 관여하거나 판결을 내리는 자의 얼굴을 본 적 없다
마을에는 가짜 돈이 유통되고 있지만
밥을 짓고 사랑을 할 수 있으면 그만이라고 너 역시 생각하고 있잖아
금주법이 시행되면 술 냄새는 거리에서 방 안으로 옮겨 가고
맨정신인 사람은 성공적으로 마을을 떠났다는 소식을 전해 올 뿐이다
집 나간 아버지들은 저희끼리 몰려다니고 마을의 지리를 자주 헷갈려 하지만
자식을 만나는 날에는 불쌍한 척을 하고 자식들은 아버지를 개자식이라고 부르지만
자신들 역시 자식을 낳길 속으로 원하며
재난이 닥치면 골목은 복잡해지고 쥐 떼는 불어나지만
시민들 중 어느 누구도 사람이 죽었다는 얘기는 들은 적 없다
인망이 두터운 자는 높은 확률로 스파이거나 소시오패스이며 옆집 사람은 자주 사라지고
마을을 떠나지 못한 사람을 우리는 왜 생존자라고 부를까?
나는 언제든지 대체될 수 있는 시민이며 마을을 온 마음으로 사랑하지만
누구도 내 마음을 증명할 수 없어서 또
아침 해가 뜨고 마을은 출렁거리고 나는 낯설어지고
마을은 움직이지 않았지만 조금 더 멀어져 있다 ■
유서─와타시 1년
나의 힘은 산을 옮길 만하고
나의 기개는 하늘을 덮을 만하네
그러나 죽여야 할 왕은 이미 다 묻혀 있으니
세상아, 너는 더할 나위 없이 평화롭구나
─[와타시의 일기] 중 발췌
사랑하는 백성들아 잘 새겨듣거라
누구도 짐을 그리워하지 말 것 짐을 위해
한 방울의 눈물도 흘리지 말 것
온 힘을 다해 풀썩,
와타시는 유언을 내뱉으며 쓰러졌다
그러나 세상은 미동도 없고
부러진 젓가락 하나 종묘에 꽂히니
그 많던 인파는 어디에 있느냐
위 증즐가 대평성대
위 증즐가 대평성대
와타시가 흙 아래 누워 주위를 슬쩍 돌아보니
아비들은 죽어서도 교훈이 많네 그러나
죽어서 무슨 놀이를 더 할 수 있을까?
나,
왕 와타시야,
너는 일단 살아야겠다
위 증즐가 대평성대
위 증즐가 대평성대
와타시는 부활을 결정하고는 허공에
연신 주먹을 내지르기 시작하네
쉬익 쉭
그건 입에서 나는 소리일 뿐이고
세상일이 도통 뜻대로 되질 않고
와타시에겐 더 이상
뜻이란 게 없어서
위 증즐가 대평성대
위 증즐가 대평성대
흙에서 걸어 나온 와타시가 홀로 유해를 수습하니
그 모습은 마치 무리 떠난 짐승과 같구나
아무도 와타시를 듣지 않고 보지 않고 사랑하지 않고
와타시는 기분이 좀 그랬다 기분이
좀 그래서
와타시는 죽지 않아!
크게 소리치니
슬피 울던 두견새 한 마리
모골이 송연해져 혼비백산하네
위 증즐가 대평성대
위 증즐가 대평성대 ■
국가 아방가르드의 유령
나는 성벽 밖에 있었다
그것은 예정에 없던 일로
죽은 건 나였는데 너무 많은 유령들이 괴로워했다
나는 무대에서 떨어질 것만 같은 자세
한쪽 어깨는 땅에 다른 한쪽은 성벽에 기댄 채 비스듬히 엎어져 있었지 조명은 성벽 위의 궁수
코어에 힘을 주고 무대 끝을 버티는 동안
성벽 위에서 백 미터 간격으로 궁수가 배치되고 있었다 아, 기립근이 쑤셨어
뚫린 주머니에서 주먹을 꽉 쥐었어 그것은 보이지 않는 일 그러므로 세상은 반응이 없고
따라서 귀뚜라미 소리만이 밤을 전부 누렸다
다음 근무자로 보이는 궁수가 옷깃을 여미며 성벽 초소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두 차례의
세계 전쟁이 있었네 사위는 순식간에 암전
웅성거리는 암흑 속에서
쓰러트려지는 동상과 재건이, 파렴치와 요란한 구호 활동이, 베이비붐과 강을 따라 흐르는 기적이, 귀뚜라미 소리 뒤에서 성 밖을 정신없이 쏘다녔지 유령 친구들이 쓸데없이 불어나고 있었지 마침내 조명이 들어오고 새로 온 궁수가 특이 사항을 인계받는 동안 성 밖은 세계적으로 외로워지고 있었지 궁수는
활시위를 당기는 애드리브로 극을 이어 나갔다
나는 유령들을 끌어안고 무대 밑으로 몸을 던졌네
전격적인 박수 소리
그것이 우렁찼으므로 곧이어 화살이 발사되었다
나쁜 뜻 없이,
종이를 북 찢듯,
슬쩍 꿈틀거리며,
다 쓴 복숭아나무를 향해 텅 빈 우리들을 향해
채 익지 않은 복숭아가 화살촉에 스쳤네
한 겹씩 살을 풀어내며 허공에서 떨어졌네
마침내 그것이 내 머리를 딱, 하고 때렸을 때
그것은 무수하게 갈라진 단 하나의 씨였다
That is an absolutely devastating exterminating attack
그저 모든 것이 너무나 휙 하고 일어났을 뿐이다
*국가 아방가르드의 유령: 2018년 베니스 비엔날레 제16회 국제건축전 한국관 전시명.
*That is an absolutely devastating exterminating attack: W. G. 제발트, [공중전과 문학].
*그저 모든 것이 너무나 휙 하고 일어났을 뿐이다: W. G. 제발트, 같은 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