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마을 -4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
문득 그는 부스스 일어났다. 그의 눈빛이 흐리멍텅했다. 지금 그
는 머리가 터질 듯이 아파 정신이 오락가락하고 있었다. 아직도
내부에서도 불덩이가 마구 좌충우돌하고 있어 그 고통은 이루 말
할 수 없었다.
그는 무엇인가를 발산하지 않으면 온몸이 터져나갈 것만 같았다.
이때였다. 어디선가 음침한 소리가 들렸다.
"빨리 안으로 들어가 봐라!"
그러나 유천기는 그 소리를 듣지 못했다.
잠시 후 동굴 안으로 열두 명의 괴인들이 들어왔다. 그들은 전신
이 마치 한 겹의 동(銅)을 씌운 듯 해보이는 인간들이었다. 전신
이 금동빛으로 빛나고 있었던 것이다.
괴인들은 유천기를 발견했다. 그러자 그들은 다짜고짜로 그를 공
격했다.
위잉!
한 명의 동인이 팔을 휘두르며 공격했다. 아무런 경기도 느껴지지
않은 공격이었다.
사실 그들은 장력을 사용할 줄 몰랐다. 그들은 철혈동마시(鐵血銅
魔屍)로, 내가장공을 쓰지는 못했으나 그들의 몸뚱이는 철동(鐵
銅)이나 다름이 없어 웬만한 내가고수의 장력은 물론, 검에도 상
하지 않는 인간들이었다.
퍽!
동마시의 주먹이 유천기의 가슴을 정통으로 가격했다. 그것은 바
위라도 으깰 위력이었다.
그러나 어찌된 셈인지 유천기는 맞는 순간에 오히려 전신이 상쾌
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뒤로 붕 날아가 쓰러졌으나 떨어지는
즉시 벌떡 일어나며 다른 한 명의 동마시에게로 성큼성큼 걸어갔
다.
동마시는 이상한 듯 눈알을 굴렸다. 그는 당황한 표정이었다. 그
러나 그들은 유천기가 대왕신공의 내단을 복용했다는 사실을 알
리가 없었다.
다시 주먹이 그의 어깨와 가슴, 허리를 쳤다.
퍼퍼퍼퍽!
유천기는 붕, 떠올랐다가 떨어졌다. 이번에도 그는 말할 수 없는
상쾌함을 느끼고 부스스 일어났다.
동마시의 주먹은 비석을 가루로 만드는 위력이 있는 것이었다. 그
런데 유천기는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았을 뿐더러 전신이 날아갈
듯 상쾌한 느낌을 받고 있었다.
그것은 실로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일이 이렇게 되자 동마
시는 그를 둘러싸고 무지막지한 공격을 퍼부었다. 그들은 손과 발
을 날려 유천기를 무섭게 가격했다.
연신 폭음이 울리며 유천기의 몸은 공중으로 떠올랐다 떨어지고,
다시 떠올랐다 떨어지곤 했다.
그에 따라 의복은 가루가 되어 흩어졌으며 그의 몸은 알몸이나 다
름없게 되었다. 그런데 그의 피부는 그토록 얻어 맞았음에도 불구
하고 피멍은커녕 백옥같이 부드럽고 뽀얗게 빛날 뿐이었다.
'으음, 시원하다!'
그는 맞으면 맞을수록 살맛이 났다. 동마시의 주먹이나 발길질이
가해질 때마다 상쾌감이 전신에 번졌으며 힘이 솟아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더욱 정신이 맑아지고 있었다.
동마시는 마침내 점차 그의 몸에서 기이한 반탄력이 솟아나는 것
을 느끼게 되었다. 동마시의 주먹이 그의 몸을 때릴 때면 오히려
주먹이 퉁겨날 때도 있었다.
"크윽!"
마침내 한 명의 동마시가 유천기의 가슴에 주먹을 꽂았다가 비명
을 지르며 뒤로 날아갔다. 그의 주먹은 완전히 골절된 채 뒤로 꺾
여 있었다.
다른 동마시는 유천기의 어깨를 때렸다가 그만 팔이 부러지고 말
았다.
"와하하하하핫!"
유천기는 갑자기 크게 웃으며 팔과 다리를 움직였다. 그러자 우지
끈 뚝딱하며 순식간에 열두 명의 동마시가 뒤로 날아가 버렸다.
그들은 다시는 일어서지 못했다. 한결같이 전신이 으스러져 즉사
해버린 것이었다.
"으하하하하하......!"
유천기는 문득 앙천광소를 터뜨리며 밖으로 뛰어 나갔다. 지금 그
의 몸 속에는 엄청난 힘이 맴돌고 있었다. 따라서 그것을 발산시
켜야만 했다.
그는 아직도 정신이 오락가락하고 있었다. 다만 본능적으로 체내
에서 넘치고 있는 기운을 해소시켜야 한다는 느낌만 갖고 있었다.
이때, 동굴 입구를 지키고 있던 한 청년이 놀라 부르짖었다.
"네놈은 누구냐......?"
그는 바로 기호세(寄弧世)였다. 그는 동마시를 들여보낸 후 이제
나 저제나 기다리고 있다 웬 사나이가 벌거숭이 몸으로 뛰쳐 나오
는 것을 보고 대경했다.
그는 지금까지 대왕신공의 내단을 취하기 위해 숱한 노력을 기울
여 왔다. 그리고 이제 그것을 취할 단계에 이르렀으므로 몹시 흥
분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런데 전혀 예상치도 않았던 엉뚱한 놈이 동굴 안에서 뛰쳐나온
것이었다.
"으하하하하하......!"
유천기는 대소를 터뜨리며 무작정 앞으로 달려 나왔다. 그의 눈빛
은 여전히 흐릿하기만 했다.
문득 그의 앞을 가로막는 자가 있었다. 바로 기호세의 옆에 서 있
던 황의노인이었다.
"네놈은 누구냐? 바른대로 말하지 않으면 가죽을 벗기고 뼈를 으
깨어 주마!"
황의노인은 과거 사자궁의 내전당주(內殿堂主)였던 통비신마(通臂
神魔) 관가경이란 자였다.
유천기는 히죽 웃었다. 그는 흐릿한 시선에 누군가 뭐라고 말하는
것 같았으나 도무지 알아 들을 수가 없었다. 관가경은 그가 대꾸
조차 않자 노성을 지르며 쌍장을 뻗었다.
우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팔이 두 배나 길어지더니 웅후한
장력이 날아갔다.
유천기는 피하지 않았다. 아니, 상대의 공격이 너무나 신속하여
피할래야 피할 수가 없었다.
꽝!
하는 폭음과 함께 쌍장은 그대로 그의 가슴에 격중되었다. 그는
뒤로 주르르 밀려 나갔다. 그러나 정작 비명을 내지른 것은 관가
경이었다.
"으아아악! 내 팔......!"
관가경은 안색이 허옇게 질린 채 두 팔을 축 늘어 뜨렸다. 이미
그의 두 팔은 관절마다 완전히 으스러지고 말았던 것이다.
그는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유천기를 바라보며 부르짖었
다.
"으으....... 사람도 아니다. 사람도 아니야......!"
유천기는 그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는 여전히 희미하게 웃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통비신마 관가경은 마치 악마를 보는 듯 뒤로
비실비실 물러났다.
그러나 그는 얼마 가지 못했다. 유천기가 그를 향해 손을 가볍게
저었는가 싶었다. 그러자 우지직! 하는 섬뜩한 소리와 함께 그는
한쪽 팔이 당겨지는 것을 느꼈다.
"크아아아악!"
관가경은 처절한 비명을 질렀다. 유천기의 손이 한쪽 팔을 가볍게
잡아 당겼을 뿐이었는데 팔이 통째로 뜯겨나가 버린 것이었다.
통비신마는 한쪽 어깨로 피분수를 뿜으며 그만 혼절하고 말았다.
주위에는 기호세를 비롯하여 많은 인물이 있었다. 그러나 이 가공
할 사태에 모두들 겁을 집어 먹고 사색이 되어 있었다. 다만 안색
이 변하지 않은 것은 기호세와 그의 뒤에 목석인 양 서 있는 열두
명의 인물들이었다.
그들은 허리에 똑같은 모양의 도(刀)를 차고 있었는데, 길이가 넉
자에 달하는 무거운 도였다. 그들은 일신에 청의를 입었으며, 얼
굴 표정이 하나같이 나무처럼 딱딱해 보였다.
한편 기호세는 내심 경악하여 부르짖고 있었다.
'대체 저 놈은 누구란 말인가? 세상에 저렇게 놀라운 신력을 가진
놈이 있었다니......!'
문득 그는 무엇을 생각했는지 안색이 무섭게 일그러지고 말았다.
'그...... 그렇다! 이곳에 내려온 우가묘의 놈들은 애초에 열 명
이었다. 그런데 죽어 있는 시체는 아홉 구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저 자가 그중 하나란 말인가?'
거기까지 생각하자 연상되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실로 생각하고
싶지도 않는 일이었다.
'혹시 저 놈이 대왕신공의 내단을 복용했단 말인가?'
기호세는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그렇다면 그야말로 도로아미
타불이 아닌가?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런 신력이 나올 리가 없다. 으
으......! 다 된 밥에 재를 뿌리다니.......'
그는 이를 부드득 갈았다. 내단을 얻기 위해 그 얼마나 노력했던
가? 이제 내단만 복용하면 그는 천하를 내려다 볼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주인이 번다더니 이건 너무나 어
이없게 일이 망쳐진 게 아닌가. 문득 기호세는 머리를 굴렸다.
'아직 늦지는 않았다. 저 놈의 뱃속에 든 내단은 아직 다 녹지 않
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놈을 죽여 배를 가른 다음 취해도 된다!'
기호세는 악독한 눈으로 유천기를 노려 보더니 즉각 명령을 내렸
다.
"저 놈을 잡아라!"
그 말에 뒤에서 머뭇거리고 있던 이십여 명의 수하들이 마지못한
듯이 앞으로 나섰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겁을 잔뜩 먹고 있었다.
더욱이 동굴 안으로 들어갔던 철혈동마시마저 소식이 없었으니 눈
앞의 저 괴물같은 자의 짓이 아니고 무엇이랴? 비록 명에 따라 어
쩔 수 없이 앞으로 나서긴 했으나 아무도 감히 선공을 하는 자가
없었다.
"무엇하는 거냐? 항명하겠다는 거냐?"
기호세의 호통이 떨어지자 그들은 와아! 하며 허장성세로 고함을
지르며 한꺼번에 공격했다.
그들은 전력으로 장력을 날리고 무기를 휘둘렀다. 기왕 죽을 바에
야 전력을 다하고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그런데 어찌 알았으랴? 상대는 반격을 하기는커녕 고스란히 공격
을 맞고 날아가는 것이 아닌가? 이 의외의 현상에 잠시 멍해진 그
들은 별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재차 공격했다.
펑! 퍼퍼펑!
유천기는 그들에게 포위되어 무수한 장풍을 맞았다. 때로는 도검
이 그의 몸에 떨어졌다. 그러나 그는 조금도 아프지 않았을 뿐더
러 검을 맞아도 몸에는 아무런 상처도 나지 않았다.
오히려 맞으면 맞을수록 더욱 상쾌했고 힘이 솟았다. 그런 현상을
알 리가 없는 자들은 연신 고함을 지르며 공격했다.
한편, 기호세는 어딘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는 영민한
두뇌를 지닌 인물이었다. 마침내 그는 괴인이 죽지 않고 버티는
이유를 알고 말았다.
'빌어먹을! 놈은 맞을수록 내단의 효력을 몸으로 흡수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어이없는 일이 있나? 결국 놈을 도와주는 꼴이
되고 있는 게 아닌가?"
그는 즉시 명령을 내렸다.
"물러나라! 모두 물러나라!"
수하들은 이상하다고 생각했으나 명을 거역할 수 없어 즉시 뒤로
물러났다. 유천기는 여전히 꿋꿋하게 서 있었다. 그런데 그의 흐
리멍텅하던 눈은 많이 맑아져 있었다.
"지옥도진(地獄刀陣)을 펼쳐라!"
기호세의 명이 떨어졌다. 그러자 그의 뒤에 장승처럼 서 있던 열
두 명의 인물이 즉시 도를 뽑아들며 유천기를 포진했다.
유천기는 도진 한가운데 갇히게 되었다. 그는 어렴풋이 지옥도진
이란 소리를 들었다. 그 말은 그의 마음을 흔들었다.
"지옥도진...... 지옥도진......"
그는 많은 양의 대왕신공의 피를 복용한데다 내단마저 삼켰다. 그
두 가지를 한꺼번에 복용하였으므로 엄청난 힘이 그의 내부에 치
닫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일시적으로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그러므로 지옥도
진이란 말을 들었으나 그게 무엇인지 떠오르지 않았다. 다만 어디
선가 들어보았다는 느낌이 들 뿐이었다.
"발진(發陣)! 놈을 죽여도 좋다!"
그는 악몽을 꾸고 있었다. 거대한 괴물이 그를 덮쳐 누른 채 쇠갈
고리같이 발톱으로 그의 가슴을 내려찍은 것이었다.
"허억!"
그는 비명을 지르며 꿈에서 깨어났다.
그는 시야가 캄캄한 데 우선 놀랐다. 미처 안력(眼力)이 돌아오지
않아 일시지간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
다.
이때 그는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것이 손바닥에 닿아 있다는 것을
느꼈다. 누군가가 자신과 손바닥을 마주대고 있는 것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등을 벽에 기댄 채 손바닥만이 아니라
두 발바닥도 상대방과 마주 닿아 있는 괴상한 자세였다.
"......!"
문득 손바닥의 노궁혈(勞宮穴)과 발바닥의 용천혈(湧泉穴)을 통해
기이한 진기가 체내로 흘러 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 기운은
이제껏 한 번도 접해 본 적이 없는 특이한 기운이었다.
두 가닥 으스스한 느낌을 주는 기운이 노궁혈과 용천혈로 동시에
흘러들어와 그의 전신을 반대방향으로 돌았다. 그 두 갈래의 기운
이 만난 곳은 가슴의 단중혈(亶中穴)이었다.
"으윽!"
유천기는 신음을 발했다. 가슴이 갈라질 듯한 고통이 느껴졌던 것
이다. 그는 상대방이 손바닥과 발바닥을 붙인 채 두 가닥의 진기
를 흘려 넣으며 단중혈을 관통하려는 것을 알았다.
두 줄기의 진기는 세어졌다 약해졌다 하며 끈질기게 유입되고 있
었다. 그때마다 유천기는 지옥과 같은 고통을 느껴야만 했다.
갑자기 두 가닥 기운이 무섭게 단중혈로 한꺼번에 몰려 들었다.
쾅!
하는 폭음이 일어나는 것 같았다. 유천기는 앉은 자세에서 펄쩍
위로 퉁겨올랐다. 이어 그는 아득한 느낌과 함께 벌렁 뒤로 쓰러
지고 말았다.
"으음......."
유천기는 신음을 발하며 눈을 떴다. 정신이 그지없이 맑아지는 느
낌이었다. 뿐만 아니라 눈 앞이 대낮같이 환해졌다.
바로 코 앞에 한 여인이 그를 마주보며 앉아 있었다. 그녀는 전신
에 흑색의 장포를 입고 있었는데 얼굴에는 검은 면사를 드리우고
있었다. 또한 긴 장발이 허리까지 치렁치렁하게 늘어져 있었다.
"다, 당신은......?"
유천기는 깜짝 놀라 부르짖었다.
그는 흑의장발여인을 알고 있었다. 그녀야말로 신비하기 그지없는
소수마녀(素手魔女)가 아니던가!
소수마녀는 흑색 장포 사이로 희디 흰 손을 감추었다. 이어 한 쌍
의 발도 장포 안으로 거두어 들였다. 그녀의 발은 너무도 작아 앙
증스러울 정도였다.
"......!"
유천기는 아연한 기분이었다. 소수마녀는 그와 목숨을 걸고 싸웠
던 공포의 마녀가 아니던가. 그런데 그녀가 어째서 자신을 위해
여인의 순결이나 다름없는 맨발까지 보이며 치료해 준단 말인가?
그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는 암중으로 공력을 운기해
보았다. 순간 그는 기쁨을 금치 못했다. 체내의 진기가 마치 대하
(大河)처럼 도도하게 일어나 순식간에 일주천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온몸이 깃털처럼 가벼워져 마음만 먹으면 허공으로
훨훨 날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