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가 또 내리네요. 글쎄...
일요일, 팔당 쪽으로 신나게 달려보려 했지만 봄비가 온다니 계획이 무산되었어요.
이럴 땐 부추부침개보다 봄비에 관한 시를 읽어보는 게 나을 지도 모릅니다.
며칠 전 타계한 신경림 시인의
'봄비를 맞으며'를 읊조려봅니다.
'그 여자가 하는 소리는 늘 같다.
내 아들을 살려내라 내 아들을 살려내라.
움막집이 헐리고 아파트가 들어서고
구멍가게 자리에 대형 마트가 들어섰는데도
그 여자는 목소리도 옷매무새도 같다.
공중전화 부스 앞에 줄을 서는 대신
모두들 제 스마트폰에 분주하고
힘들게 비탈길을 엉금엉금 기는 대신
지하철로 땅속을 달리는데도
장바닥을 누비는 걸음걸이도 같다.
용서하지 않을 거야 용서하지 않을 거야.
세상이 달라졌어요 할머니 세상이.
이렇게 하려던 내 말은 그러나 늘 목에서 걸린다.
어쩌면 지금 저 소리는 바로
내가 내고 있는 소리가 아닐까.
세상이 두렵고 내가 두려워
속으로만 내고 있는 소리가 아닐까.
아무도 듣지 않는, 아무도 들으려 하지 않는,
올해도 죽지 않고 또 온 그 여자의
각설이 타령을 들으며 걷는
달라진 옛날의 그 길에 시적시적 봄비가 내린다.'
이 시를 읽다보니 오늘 풍류와 간
해방촌 골목이 금방 떠 오릅니다.
어쨋든 풍류와 만나, 풍류가 좋아하는 그 길,
남산을 오릅니다.
오늘처럼 일정이 펑크가 나거나 갑자기 한나절 시간이 날 때나 남산코스는 강추 코스입니다.
의례껏 타워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해방촌으로 내려와
에스프레소를 홀짝입니다.
사장님은 단골이라고 위스키까지 덤으로 줍니다. 어찌알고, 내가 좋아하는 두 종을 탁자위에서 보니 감격스럽습니다.
창문엔 젊은 연인이 이미 차지하고 있고
그 낭만을 이해하며 나도 풍류에 빠집니다.
해방촌 골목은 그 지리적 명사에 맞게 해방을 맞은 음식점이 도처에 숨어있습니다.
다음에 또 오고싶은 동네입니다.
시에 나온 그 할머니가 불쑥 튀어나올 것만 같은 골목입니다.
이어 간 곳은 동부이촌동 돈가스집.
짜장면과 더불어 돈가스는 추억의 음식.
없는 집은 짜장면, 있는 집은 돈가스로
졸업을 축하했죠.
나이 먹어도 돈가스는 그래서 어렸을 적
아쉬움을 보상하는 음식입니다.
다시 잠수교 근처로 와서
돈가스집에서 못 먹은 맥주 한 잔으로
느끼한 뱃속을 달래봅니다.
꾸물거리던 하늘이 결국 비를 내립니다.
뱃속도 시원하고 가슴도 시원합니다.
내 이럴 줄 알았다니까요.
* 후기 : 본문 끝에 덧붙여 기록함. 또는 그런 글.
* 기록 : 주로 후일에 남길 목적으로 어떤 사실을 적음. 또는 그런 글.
첫댓글 어쩜..이리도 잘 표현하시지
감탄에..감동을
덕분에 저도 즐거웠어요..감사합니다
두분 ᆢ
그야말로 벙벙 하셨내요
싯귀같은 멋진 후기
즐 읽고 갑니다
표현이 삭막한 이 시대에 이렇게 한 분이라도 고마운 공감의 감상평은 백만 대군의 성원이라 여깁니다.
휴일 알차게 보내셨군요.
즐감했습니다. ^^
전기로 바꾸시고
활동범위가 넓어지셨네요,
응원합니다 ~^^
예. 이젠 산에도 올라가야해서 더욱 그렇습니다. 고맙습니다
엄청 체격이 좋아
상남자 인줄 알았는데
점점 알 수록 소년같은
감성에 다시 보게 됩니다.
이렇게 잘 정리해 주셔
하루의 느낌을 공감
남정네 다정한 모습이 좀~ㅎ
나무 팰 일이 없네요.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