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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도깨비 캐릭터(출처: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주)네오그라프) | |
불기둥들은 같은 속도, 같은 거리를 유지할 뿐만 아니라 같은 빛깔, 같은 모양으로 일사불란하게 내달리더니 느닷없이 산이며 들에 불을 붙이더래요. 마을 일대는 온통 불바다가 되어버렸고, 정월대보름에 쥐불을 놓은 듯이 주변이 환해졌대요. 불덩이는 한참이나 사방으로 뿔들이 뻗어나가 갈라지고 또 갈라지기를 반복하면서 하나의 불덩이가 사오백 개의 불기둥을 이루었답니다.
자세히 볼 요량으로 사람들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자 이 불덩이는 갑자기 불기둥을 걷어 들이기 시작하는데, 그 움직임이 마치 군인들의 절도 있는 제식훈련을 하는 듯이 보였답니다. 갈라졌던 불기둥은 원래의 가지로, 또 그 가지들은 모여서 처음의 불덩이로 하나가 되더래대요. 처음의 모양대로 되돌아온 불덩이는 도로를 따라 가는 듯하더니 사람들이 가는 길에 앞장을 서더랍니다.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불덩이를 앞에 두고 길을 걸었대요.
마을에 도착하니 그 불덩이는 초롱불만큼 작아져서 도랑 위의 뗏장을 입힌 나무다리에서 떡 버티고 있었답니다. 물론 초롱불을 든 사람의 형체는 보이지 않았대요. 마침내 사람들과 불덩이는 불과 칠팔 미터로 가까워졌고 악! 하는 순간, 불덩이는 번개 같은 속도로 다리 밑으로 쑥 들어가버렸대요. 사람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일에 머리칼이 쭈뼛 하였답니다.
'도깨비불을 본 사람은 죽는다'는 말이 있지만 함께 본 사람들 중에는 아직 세 사람이 생존해 있답니다. 이 이야기는 '한국구전설화집'에 나와 있는데 약 50년 전의 일이래요.
도깨비불 본 이야기는 수도 없이 많아요. 때로는 왁자한 웃음소리와 달리는 말발굽 소리와 함께 나타났답니다. 밤길에서 사람을 인도해주는 도깨비불은 큰일 할 사람임을 미리 알아보고 보호해주는 예언자적인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과학적으로 따져보면 도깨비불이라고 하는 것은 동물 뼈나 사람 뼈, 또는 오래된 나무가 썩으면서 발생하는 '인'이 공기 중에 떠다니다가 물과 작용하여 스스로 불이 붙는 거랍니다. 도깨비불이 주로 공동묘지가 있는 산이나 비오기 전 습기 찬 날 밤에 많이 나타났다는 이야기를 보면 수긍이 가기는 하지만, 그것이 정말로 인불이 맞는지 명확한 입증은 없습니다.
어촌에서는 도깨비불이 많이 나타나는 곳에 고기가 잘 잡힌다는 속설이 있답니다. 대개 섣달 그믐날 밤이나 정월 초사흗날에 도깨비제사를 지낸 다음, 산에 올라가서 어디에 도깨비불이 많이 보이나 살펴본다고 하는데 그것을 산망(山望)이라고 합니다. 육지에서도 마찬가지로 도깨비불로 풍흉을 점쳤다고 합니다. 도깨비불이 나타난 산 쪽에 있는 마을에 풍년이 든대요.
김승찬의 '부산 지방의 세시풍속'에 보면 부산 금정구와 남구에서도 산망을 해서 풍흉을 점쳤다고 합니다.
예전에 도깨비불을 직접 본 어르신들의 말씀이 6·25전쟁 때 총과 대포 소리에 놀란 도깨비들이 다 사라져버려서 요즘 도깨비불이 보이지 않는답니다. 휘황찬란한 불빛 때문에 사라진 별을 찾아 어두운 하늘을 애타게 바라보듯 달무리 고운 밤, 뒷산을 바라보며 도깨비불을 기다려야겠습니다. 도깨비불은 희망의 등불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