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 국내기술로 개발된 3D 애니메이션 <빼꼼의 머그잔 여행>이 개봉을 앞두고 있다. 이미 다수의 국내외 애니메이션페스티발 수상소식을 통해 유명세를 탄 캐릭터 빼꼼은 인터넷과 TV 시리즈를 넘어 커다란 스크린까지 넘볼 태세다. 여기 이 모든 과정을 창조한 인물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빼꼼 아빠’ 임아론 감독이다.
2002년 9월, 난데없이 등장한 백곰 한 마리가 인터넷을 통해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다. 둥글넓적한 엉덩이에 넉넉한 뱃살을 구비한 백곰은 북극 태생이라 했다. 작은 여행 가방에 우산을 찔러 넣고 나들이를 나서거나 헬스클럽의 러닝머신에서 봉변을 당하고 쇼핑마트를 발칵 뒤집어놓는 사건을 일으키는 녀석의 이름이 ‘빼꼼’이라는 것까진 알겠는데 당최 족보를 알 수 없었다. 1분 30초 분량으로 이뤄진 14편의 3D 애니메이션이 인터넷으로 공개됐고 이후 비슷한 내용의 <The Rock> <Oasis> <Gloomy Thunder>가 묶여 빼꼼에게 유명세를 안겨준 4분 분량의 애니메이션 <I Love Picnic>이 완성됐다.
빼꼼은 신비한 석상으로 이름난 이스트 섬부터 야자수가 펼쳐진 오아시스를 거쳐 후지산까지 여행을 나선다. 그런데 이 여행이란 것이 휴식과 낭만과는 거리가 멀다. 이스트 섬의 언덕배기에서는 난데없이 커다란 돌들이 굴러오고, 물가에는 새로운 인력의 법칙이 작용하는지 빼꼼이 물가로 다가가면 바다도 멀찌감치 물러가기 일쑤다. 날씨는 또 왜 그리 변덕스러운지 후지산에 당도한 빼꼼을 기다리는 것은 거센 비바람뿐이다. 그러나 고난은 여기서 끝이 아니니, 힘겹게 우산을 펴는 순간, 비가 그치고 다시 우산을 접으면 비가 쏟아지는 상황이 계속된다. 결국 너덜너덜해진 우산의 마지막 쓰임은 피뢰침이다(이 후 상황은 백곰에서 흑곰으로의 변화 정도라 해두자).
<I Love Picnic>은 2002년과 2003년에 걸쳐 일본 디지털콘텐츠그랑프리에서 신재능상을 비롯, 브라질의 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발인 ANIMAMUNDI 2003, 대한민국영상대전, 광주국제영상축제 등의 수상에 이어 전주국제영화제, 부산아시아단편영화제, 앙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등 국내외 영화제에 초청되며 화제를 불러 모았다. 이때 비로소 빼꼼의 족보가 알려지니 이미 단편 <클락>(1999)과 <앤젤>(2001)로 영화제를 휩쓸고 다니던 '배후의 인물' 임아론의 이름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일단 이름과 관련된 선입견 하나. 3월 22일 개봉을 앞둔 임아론 감독의 3D 장편애니메이션 <빼꼼의 머그잔 여행>은 동글동글 귀여운 캐릭터들이 한 가득 등장한다. 이제 막 옹알이를 시작한 소심한 아기 ‘베베’, 북극의 미녀 펭귄 ‘도도’, 도도를 위해선 위험도 불사하는 신사 펭귄 ‘꽁꽁’, 사막을 스피드한 보폭으로 질주하는 목도리 도마뱀 ‘후다닥’ 그리고 커다란 몸집에 걸맞지 않게 겁 많고 어수룩한 백곰 ‘빼꼼’이 그들이다. 이름도 이름이거니와 각 캐릭터의 생김새는 앙증맞은 단어들이 꼭 들어맞는다. 무한한 소유욕을 일으키는 이들의 생김새는 언제쯤 녀석들의 봉제인형을 손에 쥐게 될까 상상하게 만든다.
이런 상황이니 빼꼼 애니메이션을 만든 임아론 감독을 아기자기한 성품을 지닌 여성 감독으로 생각하기 십상인 것이다. 그런데 막상 만난 임아론 감독은 서른을 훌쩍 넘긴, 어딘지 그의 캐릭터인 빼꼼의 이미지가 슬쩍 겹치는 남자가 아닌가. “이름 때문에 종종 오해를 산다”는 말을 건네는 태도가 이전에도 많이 겪어봤다는 투다. 그럼 평소 아기자기한 상상은 많이 하냐는 질문에도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걸 보니 애니메이션을 보고 품었던 감독에 대한 상상이 혼자만의 것이었나 싶다. 사실 애니메이션 감독에 대한 이런 기대는 애니메이션작업을 바라보는 낭만적인 시선에 기인하는지도 모른다. 애니메이션이란 언제나 즐겁게 공상하고 재밌게만 만들어낼 것 같은 생각. 그러나 <빼꼼의 머그잔 여행> 개봉을 앞둔 임아론 감독은 차기 프로젝트로 쉴 틈이 없다 했다. 개봉에 맞춰 진행하는 인터뷰를 위해 시간을 쪼개는 것도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이다. 장장 5년에 걸쳐 제작된 장편을 끝내 놓았으니 잠시 숨을 돌릴 만도 하건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애니메이션이라는 게 들인 돈만큼 수익이 없어요. 그러니 계속 새로운 프로젝트를 굴려서 맞물리게 돌아가야 다음 작품을 할 수 있죠.” 듣고 보니 자금을 구하고 작업을 감독하는 일은 애니메이션의 흥미로운 세계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애니메이션으로 예술을 하길 원했다”
본인을 “충동적으로 산다”고 규정한 임아론 감독은 시각디자인에서 제품디자인으로 다시 자동차디자인을 위한 유학길에서 애니메이션의 길로 들어선 긴 과정을 겪었다. 결정적 순간이 계기가 됐다기보다는 흥미로운 애니메이션을 접하다보니 서서히 관심이 옮겨갔다. “유학 중 ESL과정을 듣는데, 담당 강사가 우리를 모두 끌고 <토이 스토리>를 보러 갔어요. 이후 애니메이션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에 몇 개의 강의를 신청했고 그중에는 포트폴리오 심사를 통해 수강생을 선별하는 ‘픽사 클래스’(Pixar Class) 과정도 있었죠.” 픽사 클래스는 본격적으로 임아론 감독을 애니메이터의 길로 옮겨놓는 계기를 마련했다. 공원에서 혼자 체스를 두는 노인을 다룬 픽사의 3D 단편 애니메이션 <게리스 게임 (Geri’s game)>을 접한 임아론 감독은 “애니메이션의 예술성”에 두 눈이 뜨였다. <게리스 게임>을 보고 “스스로 예술을 원한다”고 생각했고 이후 모든 활동을 접고 애니메이션에 몰두하게 됐다. “무조건 하나만 잘하고 싶었다”는 임 감독은 24시간을 작업해도 피곤하지 않았던 애니메이션의 세계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리곤 “스폰지처럼” 애니메이션을 흡수하던 한 시절을 보냈다.
1999년 졸업 작품인 <클락 (A Clock)>은 임아론 감독의 독창성이 빛나는 작품이다. 나른하게 잠에 빠진 남자는 요란한 알람시계 소리에 화들짝 깨어난다. 귀찮은 듯 시계를 꺼버리지만 그의 발밑에 즐비한 시계들이 일제히 울리자 더 버틸 요량이 없다. 부스스 일어난 남자가 닭 벼슬 모양의 모자를 쓰자 긴급 출동을 알리는 알람이 울리기 시작한다. 서둘러 커다란 의자에 엉덩이를 붙인 남자가 당도한 곳은 오리들이 가득한 선술집. 남자는 정시마다 시간을 알리는 시계 속의 뻐꾸기였다. 다소 어두운 톤의 이미지를 지닌 <클락>은 뻐꾸기시계라는 기계와 인간의 역할이 역전되는 순간을 유쾌하게 표현했다. 쇠락한 병원에 수감돼 있지만 천사가 되기를 원하던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 <엔젤 (Angel)> 또한 우울한 가운데 그만의 위트를 잃지 않는 특징을 보여준다. 이는 빼꼼을 통해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둥글둥글한 모양새를 가진 빼꼼은 애니메이션의 유쾌한 톤과는 달리 시리즈 중 죽음을 맞이하기도 한다. 생각해보면 빼꼼이 처한 고난들은 모두 현실에서는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위험한 순간들이지만 임아론 감독은 예의 ‘다시 살아날 걸 알잖아’ 투의 유쾌한 공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우리는 빼꼼의 고난을 낄낄거리며 지켜보게 된다.
빼꼼, 그 탄생비화
미국 유학을 마친 임아론이 2002년 3월 ‘알지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를 설립해 3D 장편애니메이션 <빼꼼의 머그잔 여행>을 기획할 당시 한국 애니메이션계는 비평에 비해 저조한 흥행성적을 거둔 <마리이야기>(2002)와 100억 원대의 제작비를 들였으나 흥행에 참패한 <원더풀 데이즈>(2003)의 여파로 극장용 애니메이션 제작열기가 사그라지던 때였다. 고부가가치 문화상품으로 잘만 하면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되겠다고 생각한 투자자들이 애니메이션에 대한 척박한 토양을 한계로 깨닫고 보따리를 싸들고 나가던 그때, 임아론 감독은 홀연히 장편애니메이션 기획에 돌입한 것이다. 임 감독은 “분석해보니 모두 돈을 앞에 두고 시작한 것들이었어요. 그에 비해 작품성이 따라와주지 않았죠. 돈을 앞에 두고 시작하면 성공하지 못합니다. 제대로 된 작품으로 승부해보고 싶었고 그 일을 내가 하고 싶었어요.” 임아론 감독은 특히 한국에서는 그 바탕이 미미한 캐릭터 애니메이션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의 초기 ‘빼꼼’ 구상을 접했던 애니메이션계 관계자는 “빼꼼이라는 캐릭터로 TV 시리즈를 만들고 장편까지 만들겠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감독이 한국 사정을 잘 모르는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보통 TV 애니메이션이 2~30분 길이로 제작되는 것에 반해 빼꼼을 4~5분 분량의 짧은 이야기 시리즈로 만들겠다는 계획은 당시로선 위험해 보였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무모한 시도로 보였던 임아론 감독의 ‘빼꼼’은 어쨌든 탄생했다. <I Love Picnic>의 긍정적인 반응 이후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자”는 심정으로 만든 단편이 <I Love Sky>(2004)다. 그 결과 임아론 감독은 프랑스 Mip Junior Licensing Challenge에서 한국 최초로 Best of Best로 선정됐다. 프랑스의 MPLC는 애니메이션 작품의 상업성을 평가하는 대회로, 빼꼼의 수상은 이 캐릭터의 성장 가능성을 타진하는 주요한 계기가 되었다. '빼꼼'은 무엇인가를 살짝 들여다보는 의미의 ‘빠꼼’이 변형된 이름이다. “사실 캐릭터의 이름은 순간적으로 내뱉어서 만들게 된 경우가 많아요. 도도, 꽁꽁, 후다닥 등도 그렇게 탄생했는데, 단순하게 반복되는 음들이 발음도 쉽거든요.” 쉽게 떠올릴 수 있었다는 이름과는 다르게 빼꼼의 탄생과정은 조금 더 치밀하다. 애초 빼꼼은 장편영화의 주인공으로 캐스팅됐다. 캐릭터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만들 경우 캐릭터 개발과 스토리 개발에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판단, 간략한 시나리오만으로 처음부터 장편애니메이션 개발에 승부수를 뒀다. 상업적인 목표도 분명히 했다.
작가의 세계에 중점을 두기보다는 많은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겠다는 데 지향점을 잡고, 애니메이션의 주 타깃도 취학 전 아동인 3~6세 어린이들로 설정했다. “장편 애니메이션을 기획하는 데 문제로 나서는 것은 완성도입니다. 그런데 처음부터 모든 연령층을 대상으로 한 작품을 기획하는 건 힘들다고 판단했어요. 성인층까지 아우르려면 그만큼의 자본과 세밀한 시나리오가 필요합니다. 일단 아동용으로 시작해 점차 연령층을 높여갈 계획이었죠." 아이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캐릭터가 곰이라 판단하고 좀 더 순한 이미지의 백곰을 선택했다. 그러나 이미 시중에는 다양한 백곰의 캐릭터가 존재하는 상황. 다른 캐릭터와의 차별화를 위해 조금 더 둥근 모양의 외형을 창조했다. 어리숙한 빽곰의 외모는 양쪽으로 처진 눈과 커다란 코로 형상화했다.
빼꼼의 색다른 ‘몸 개그’
TV 시리즈는 물론 장편애니메이션에서 극의 유머를 책임지고 있는 빼꼼은 흔히 슬랩스틱 코미디에서 볼 수 있는 상황에 직면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1. 우아하게 스카이다이빙을 하는 빼꼼. 그런데 그가 등에 달고 온 것은 낙하산이 아니라 잡동사니로 가득한 배낭이다. 허둥지둥 가방을 뒤지던 빼꼼은 운 좋게 우산을 발견하고 활짝 펼치지만 그도 잠시, 거센 바람에 우산이 뒤집어지며 그대로 땅으로 곤두박질친다. #2. 남극에서 빙하낚시를 하는 빼꼼. 번번이 미끼만 뺏기다가 기어코 큰 물고기 한 마리를 낚는다. 그런데 이 물고기가 가만히 있지 못하고 얼음 위를 이리저리 미끄러지다가 결국 펭귄 꽁꽁의 손에 들어간다. 화가 나 꽁꽁의 뒤를 쫓아 얼음동굴로 들어가지만 마침 얼음동굴 천장의 날카로운 고드름이 비수처럼 박히고 이내 동굴도 무너져버린다. #3.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한 빼꼼. 더위에 지쳐버린 펭귄 도도를 위해 물고기를 낚으러 가지만 사나운 사막의 물고기에게 물리는 봉변만 당한다. “캐릭터 애니메이션의 캐릭터는 퍼스널리티(Personalty)와 물적 성격인 프로퍼티(Property)로 구축되죠. 이렇게 캐릭터가 구축되면 굳이 대사는 필요가 없어져요. 캐릭터가 단순히 걸어가는 모양에서도 스토리는 만들어지는 것이죠.”
처음 애니메이션에 관심을 갖게 해준 픽사의 영향 때문일까. 임 감독은 캐릭터 애니메이션에서 “만국공통의 언어”를 발견했다. 특히나 아직 정체성이 자리 잡지 않은 유아들을 타깃으로 한다면 세계 어느 곳에서도 통할 수 있는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을 봤다. 애니메이션의 배경도 딱히 어디라고 꼬집을 수 없는 국적 불명의 공간을 설정했다. 임아론 감독에게는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는 말보다 애초 그러한 구분이 무의미한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 목표였다. 이 무국적의 공간에서 펼쳐지는 독특한 캐릭터는 동양도 서양도 아닌 그 어디쯤에 위치한 분위기를 띠게 된다. 빼꼼 캐릭터를 접한 서양 애니메이터들이 ‘독특하다’는 평가를 내리는 것도 그 때문이다. TV 애니메이션 ‘빼꼼 시리즈’가 단말마의 비명이나 웅얼거림 외의 대사가 없는 점 또한 이런 면에서는 장점으로 작용한다. 장편인 <빼꼼의 머그잔 여행>도 TV 시리즈로 선보인 단편과 크게 다르지 않다. 모든 이야기는 우연적인 사건에 의해 진행되며 해설자의 간략한 진행 외에 어떤 인물도 의사 전달을 위한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일종의 무성영화시대의 코미디를 연상시키는 <빼꼼의 머그잔 여행>은 21세기 화려한 기술이 집약된 총천연색의 ‘새로운 무성영화’라 할 만하다.
빼꼼, 아직 할 일이 많다
단돈 20억 원의 예산으로 75분 분량의 장편 3D 애니메이션을 만들어내는 일은 산비탈 돌밭에서 농사를 짓는 일과 같았다. 임아론 감독의 애니메이션작업은 울퉁불퉁한 산비탈 땅에서 돌을 골라내 듯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는 과정을 거쳤다. 동시에 거름을 뿌려 씨앗이 자랄 건강한 토양을 만들기 위해 그와 함께할 애니메이터들을 양성해왔다. 실제로 임 감독이 설립한 알지 에니메이션 스튜디오 산하 애니메이션 스쿨에서는 현재 13기 애니메이터들이 구슬땀을 흘리는 중이다. “한국의 애니메이션이 주로 해온 OEM방식의 작업 탓에 창의력을 가진 애니메이터가 부족하다”는 판단은 그에게 애니메이터 양성을 시작하게 했다. 사실 더 큰 문제는 돈이었다. 다행히 TV 시리즈를 통한 해외투자와 수출로 숨통이 트였지만 그 과정이 순탄치 않았음은 자명한 일이다. 투자금액을 자체 충당하기로 마음먹은 임아론 감독은 “돈이 없는 것도 내성이 생기는지 나중에는 투자자의 입김이 흔들리지 않고 작업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더 느긋해졌다”고 말했다. 경기디지털콘텐츠진흥원의 박규환 마케팅 차장은 임아론 감독을 “한 마디로 독불장군”이라 했다. 박 차장은 “그러나 이것은 좋은 의미의 독불장군을 말한다. 임아론 감독의 극장용 애니메이션과 TV 시리즈 작업이 상업적인 것으로만 보이지만 그 작업방식은 철저한 독립군”이라고 말한다.
빼꼼의 기획초기만 해도 그는 “국내 블록버스터영화의 시작을 알린 <쉬리> 같은 애니메이션 작품을 만들겠다”고 호언장담하던, 자신 만만한 젊은 애니메이터였다. 5년의 산고 끝에 완성된 장편 <빼꼼의 머그잔 여행>을 완성한 지금은? 대답은 “아직도 갈 길이 멀다”이다. “3D 애니메이션으로 극장용 장편을 시도한 것은 <빼꼼의 머그잔 여행>이 처음 아닌가 싶어요. 그만큼 애니메이션을 문화적 콘텐츠로 대하는 관객층이 좁다는 의미이기도 하죠. 향후 10~20년은 지나야 두터운 관객층이 생겨날 것 같아요.” 임아론 감독은 자라나는 아동 세대들이 자신의 애니메이션을 보고 성장할 수 있기를, 그리고 그의 작품들이 대중과의 소통지점을 잃지 않고 나아가기를 바란다. 그에게 대중성이란 단순히 '많이 팔리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어려운 이야기를 쉽게 풀어내는 것이 힘들어요. 작가의 의도뿐 아니라 독자에 대한 연구도 병행돼야 하기 때문이죠.” 현재 임아론 감독은 <빼꼼> TV 시리즈 시즌 2와 장편 <빼꼼> 2편, 그리고 <빼꼼>보다 위의 연령층을 대상으로 한 또 다른 장편 <데블즈 템테이션 (Devil’s Temptation)>을 구상 중이다. 그러나 그의 최종 목표는 언젠가 성인층을 아우르는 3D 애니메이션을 완성하는 것. 이 대목에서 임아론 감독은 빼꼼과 사뭇 다른 로버트 E. 하워드의 소설 <코난 더 바바리안>이나 제럴드 포터튼의 R등급 애니메이션 <헤비 메틀>을 언급했다. 물론 모든 것은 3D로 구현될 것이다. “할 줄 아는 게 3D밖에 없다”는 임아론 감독의 얼굴에 슬며시 웃음이 번졌다. 숨겨둔 보물이라도 있는 걸까? “나도 어떤 캐릭터와 이미지가 나올지 궁금하다”는 그의 표정에 순간 야릇한 흥분이 서렸다.
사진 주성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