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을 살아내며, 9월의 일기, 밥을 한 번 살까
밥을 한번 살까
얼굴 한번 볼까
오늘 밤에 우리 한번 만나보자
어찌 사냐 친구들아 보고 싶구나
바쁘게들 살아가고 있겠지
사랑도 좋고 성공도 좋지만
그 옛날의 너희들이 그립구나
첫사랑이 깨졌다고 울고 있을 때
술 한 잔에 같이 울던 친구야
보고싶다 영자야
살아있냐 동수야
오늘 밤에 우리 한번 만나보자
보고싶다 영자야
살아있냐 동수야
오늘 밤에 우리 한번 만나보자
오늘 밤에 내가 쏜다 친구야
밥을 한번 살까♪
우리 고향땅 문경출신의 신예 트로트 가수 ‘선경’이 부른 ‘밥을 한 번 살까’ 그 노랫말 전문이다.
푸근한 인간미가 묻어나는 노래다.
어쩌다 가까운 이웃이 된 그 인연이 참 고맙다.
상배가 왔다.
여섯 살 나이 차이가 있어 나와 호형호제 하는 사이다.
엊그저께인 지난 주말의 일로, 온 김에 우리 집에서 하룻밤 묵기까지 했다.
상배라면 역시 우리 고향땅 문경 산북 출신의 세계적 명성을 떨친 알피니스트고, 세계 최고봉인 해발 8,848m의 히말라야 에베레스트를 삼수 끝에 오르고야만 집념의 사나이다.
그리고 나와 아내를 이끌어, 검은 돌무더기인 해발 5,545m의 에베레스트 칼라파타르 봉우리에 세워준, 그래서 내게 있어서는 인생의 멘토 같은 존재다.
천리 길 멀리 경남 양산에서 일부러 내 사는 문경까지 온 상배였다.
“밥 한 번 사드릴라꼬요.”
그게 핑계였다.
나 사주는 줄 알았다.
아니었다.
“형수님 밥 사드릴라꼬 온 기라니까요.”
굳이 그렇게 내 아내를 들먹거리고 있었다.
상배 저 딴에는 괜히 내 심기를 건드려보려고 하는 말이었겠지만, 산전수전 다 겪으면서 살아온 나로서는 누구든 그 옆에 붙어 공밥 얻어먹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하는 사람이니, 그걸로 건드려질 심기가 아니었다.
어쨌거나 그러는 상배와 문경새재 옛 과것길에 백두대간 이화령 너머 괴산까지 다녀왔다.
나와는 국민학교 중학교 동기동창으로 인천에서 살다가 20여 년 전에 일찌감치 고향땅으로 귀향해서 아내와 둘이서 ‘만촌’(晩村)이라는 농원을 일구어 오고 있는 안휘덕 내 친구가, 고맙게도 부부동반으로 동행이 되어주었다.
상배가 찾아온 첫날에는 아내가 반갑다고 읍내 단골집인 ‘진미 숯불갈비’에서 저녁을 샀고, 다음날 아침은 아내가 아예 집에서 아침밥상을 차려내는 바람에, 밥 살 작정으로 먼 길을 달려온 상배가 밥 살 틈이 없었다.
이제 상배가 밥 살 수 있는 것은 이틀째인 일요일 점심뿐이었다.
점심 뒤에는 상배 저 사는 곳인 양산에서의 볼일로, 서둘러 양산으로 다시 내려가야 한다 했기 때문이다.
“괴산에 칠성마을이란 곳이 있는데요, 거기에 버섯전골을 기똥차게 하는 집이 있어요. 오늘 점심은 거기서 제가 쏩니다.”
상배가 그렇게 깃발을 들고 나섰다.
말만 그랬지, 결국은 그 점심도 덮어쓰지 않았다.
나와 검찰에서 같이 근무한 인연에, 지금은 페이스북 친구의 인연까지 엮이어져 있는 한국중고등부 아이스하키연맹의 이상중 회장이,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가던 중에 나를 찾아 그곳 칠성마을의 ‘향촌식당’으로 달려오게 됐고, 그렇게 달려온 이 회장이 같이 점심을 먹다말고 슬그머니 일어나서 그 점심 밥값을 미리 계산해버렸기 때문이다.
그 눈치를 챈 상배가 후딱 자리에서 일어나 카운트로 달려가 자기가 계산하겠다고 나섰지만. 이 회장의 계산이 이미 끝난 뒤였다.
이래저래 내 돈 안 쓰고 그저 공밥 얻어먹어 행복한 날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