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원래도 별로 호감은 없던 연기자지만 진짜.....자만함 그 자체네요..-_-;;;
에잇..
암튼 그대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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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과 인천을 오가는 통학생활이 시작됐다. 예쁘고 늘씬한 친구들과 새로 사귀었다. 고3시절 독서실 가서 공부는 안하고 친구들만 만들었을 만큼 사람 사귀기를 즐겼던 나였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 '환경이 인간을 지배한다'고 나 역시 과분위기에 적응해갔다. 좀 야하고 사치스러운 분위기였다.
영어시간에 외국인 교수는 내 얼굴만 쳐다보며 강의했다. 내가 영어를 꽤 잘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만 친구들의 반응은 그게 아니었다.
입들을 삐죽 내밀며 교수와의 '썸씽'운운하며 입방아를 쪄댔다. '맘대로 해라. 이미 중고교때 그런 소리 질리도록 많이 들었으니까."
항공운항과는 2년제였지만 강의 강도는 4년제 학과 못지않았다. 뒤늦게 공부에 발동이 걸려 장학금을 타기도 했다.
어머니는 "고등학교 때 진작 그럴 것이지"라며 대견스러움과 아쉬운 감정을 동시에 드러냈다.
인하공전 항공운항과 시절 장학금을 타기는 했지만, 항상 공부만 파고드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장학금 받았다고 자만하다가 다음 학기엔 F학점을 따내며(?) 간신히 낙제를 면하기도 했다.
어머니가 호되게 야단치고 나면 그다음 학기엔 또 장학금을 타내고... 그렇게 대학 2년은 흘러갔다.
그 흔한 서클활동(요즘엔 동아리라고 하던가)도 전혀 하지 못했다. 어머니가 항공운항과라는 과자체를 못마땅하게 여겼기 때문이었다. '까짓거 서클 안 들면 그만이지...'
대학시절 차츰 '멋'에 신경 쓰게 됐다. 친구들의 옷과 머리모양 그리고 액세서리를 유심히 훔쳐보며 그대로 흉내냈다. 집에서는 날로 세련돼 가는 내 외모를 지켜보며 걱정이 태산이었다. 돌이켜보면 나름대로 세련미라고 여겼던 것이 어른들 눈에 '치기 어린 야함'으로 비쳤던 듯 싶다.
대학입학후 아버지가 수원에 전자제품 공장을 차렸다. 우리집도 안산의 예술인아파트로 옮겼다. 아버지공장과 인하공전의 중간 지점에 있는 우리집 덕에 학교 다니기는 훨씬 수월해졌다.
우리집 앞엔 이른 아침마다 남학생들이 우글거렸다. 나를 학교까지 에스코트하기 위해서였다. 그 중에선 날 바래다주느라 자신의 아침수업을 빼먹기까지 하는 서울의 대학생도 있었다.
어머니는 "쟤들 부모 맘이야 어떨지 모르겠다만 과히 기분 나쁘진 않구나"며 흐뭇한 얼굴이었다.
그러다가 스튜어디스가 되고 미스코리아가 되고 또 연예인으로 정신없이 바빠지면서 그 친구와 조금씩 멀어지게 됐다.
지금 꾸준히 사귀는 남자는 없다. 동트기 전에 나가 별보고 귀가하는 생활이 매일 반복되다보니 솔직히 애인 만들 틈도 없다.
대학시절 내가 살던 안산 예술인아파트에는 남녀대학생들로 이뤄진 청년회 모임이 있었다. 1학년생은 나뿐이었고 멤버들은 고학년이었다.
지금도 그때 그 선배언니들과 가끔씩 연락을 주고받으며 지낸다. 청년회 회원 중엔 스타도 있었다. 몬트리올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던 신혜수 언니가 바로 '우리들의 스타'였다.
당시만 해도 내가 연예계에 발을 들여놓을 거라곤 꿈도 못 꿨던 때라 혜수언니 라는 존재는 부러움 그 자체였다.
항공운항과는 이른바 특수학과였다. 일단 키 크고 튼튼하면 입학이 가능했지만 강의내용과 학사일정은 무척 타이트했다.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비행기가 '교통사고'당한다면?(생각만 해도 끔찍해라) 따라서 일반 대학보다 훨씬 까다로운 커리큘럼을 달게 받아들여야 했다.
고등학생보다 수업이 더 늦게 끝나 축 늘어진 어깨로 버스에 몸을 싣는 나날들이 2년간 이어졌다.
졸업과 동시에 KAL 스튜어디스 자리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아니, 기다리고 있었다기보다 내가 찾아 나섰다는 편이 더 정확한 표현이겠다.
항공사 입사는 교수추천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런면에서 난 행운아였다. 교수님 총애를 한몸에 받았으니까.
KAL 입사시험 과정은 아주 오밀조밀했다. 대학입학할 때도 강당에서 검정미니스커트에 흰색 반팔 블라우스 입고 워킹 하는, 마치 모델선발대회와 같은 관문을 통과해야 했지만, KAL 입사시험은 대입과 비교조차 할 수 없는 피 말리는 순간순간 이었다. 샅샅이 신체검사도 했고 종합검진도 받았다.
일단 예비 스튜어디스가 되고 나서 한숨 돌린 것도 잠깐. 6개월간의 하드트레이닝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서비스와 관련된 모든 것을 배우고 익혔다. 영어와 일어로 하는 기내 안내방송시험을 치러 자격증도 따냈다. 퍼스트 클래스 승객들을 위해 조리법도 배웠다. 일반석과는 달리 1등석에는 기내에서 직접 요리한 음식이 제공됐기 때문이다.
기내 요리강습 기간만 해도 10개월이었으나 단 6개월만에 그 과정을 끝낼 수 있었다. "넌 빨리 비행기 타야지 여기서 이러고 있을 필요가 없다"는 '차별대우' 덕이었다.
입사 6개월만에 국제선 스튜어디스가 됐다. 비행초기엔 다리가 팅팅 붓고 시차적응에 애를 먹기도 했다.
기압관계로 쉽게 만취해버린 승객들로 곤욕을 치르기도 했고 답답한데 비행기 창문 안열어준다고 노발대발하는 할머니를 진정시키는 일도 있었다.
그와 같은 돌발상황에 부딪힐 때마다 난 배운 대로 행동했다. 예의를 갖추되 단호하게 그리고 언제나 미소를 잃지 않으며.
그 덕에 난 1천 5백명의 경쟁자를 제치고 KAL의 '스마일 퀸'으로 뽑힐 수 있었다.
난 집에서 '마리아'라고 불린다. 천주교 신자이기 때문이다. 유아세례를 받았었다. 철들기 전부터 혜화동 성당, 잠원 성당등 교구성당에 꼬박꼬박 다녔다. 하지만 스튜어디스가 되고부터 이른바 '나이롱 크리스천'이 되고 말았다. 일요일날 국내에 있을 수 있다는 보장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번 외국에 나가면, 거리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보통 현지에서 5일정도 머무르곤 했다. 하와이 가서는 와이키키 해변을 거닐고 스위스에서는 스키 타가며 이국의 정취에 푸욱 젖었다. 외국에서는 개인행동이 금지됐다. 동료들은 "혼자 나다니면 북한으로 납치된다"며 꼭꼭 떼지어(?) 움직였다.
남들 못 가본 데도 많이 가봤다. 옛 소련 상공도 날았고 중국의 거대한 평야를 내려다보기도 했다. 서울올림픽 이후 국제관계가 해빙분위기 일변도였기에 겁나거나 위험하다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부모와 동생에게 선물도 자주 사다줬다. 부모 선물이라야 마땅한 것도 없었고 값도 부담스러웠기에 기념품 정도로 생략하고 동생에게는 롤러스케이트, 스케이트보드, 라켓등을 한아름씩 안기곤 했다.
내것은? 물론 챙겼다. 동료들은 50만~60만원씩 줘가며 손바닥만한 유명상표 핸드백을 거침없이 골랐지만, 난 돈도 아까웠고 그런 것 살 마음조차 생기지 않았다. '이태원 가면 똑같은것 9천원만 주면 사는데 뭘~'. 그렇게 아낀 돈으로 개구리 인형만 줄기차게 사 모았다. 울음주머니 부풀린 개구리, 왕관 쓴 개구리, 발랑 누워 배에 바람 잔뜩 넣은 개구리, 개구리 모양의 컵, 끝에 개구리 달린 연필... 개구리, 개구리 하다보니 개골개골 소리가 들려오는 듯 하다.
스튜어디스라는 직업의 특수성은 완벽한 신체조건을 요구했다. 언젠가 사랑니 하나 뽑았다가 1주일간 집에서 여유만만하게 뒹굴뒹굴한적이 있다. 상처 아물기전에 비행기를 타면 피가 멎지를 않는다나? 힘들다 싶으면 어디 몸 한구석에 이상이라도 생기기를 바라기도 했다. 2년여의 스튜어디스 생활은 미스코리아 선발대회 참가를 계기로 종지부를 찍게 됐다. 92년초였다.
KAL에서는 무척 아쉬워했다. "떨어지면 다시 와라." 얼핏 악담처럼 들리는 그 말 한마디를 난 지금도 너무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스스로 사표 내고 떠난 직원을 맘 바뀌면 다시 오라고 하는 직장이 어디 있겠는가. 특혜도 이만저만한 특혜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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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딴 것보다
요리강습?? 이런것 받은것도 신기하지만 혼자 6개월만에 한다는게 가능한지..
궁금하군요..쩝.
첫댓글 거의 다 자기자랑인듯.;
승무원이었다면,,좀 더 겸손한 마음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네요,,
-_-; 잘.난.척, 다신,,님 말씀대로 겸손함 마음이 필요한것 같아요-0-
이승연 너므 시러엿!!!승뭔이미지좀 그만 망치고 다니지.
이승연음...정말 할말없음...-_-;;
이승연 안그래도 싫었지만 참... 더 싫어지네 ㅡ.ㅡ
거저 승무원이 됐고 자신만 원하면 언제든 돌아올수 있단말에 정말 힘이 빠지기도 하고...
이거 이승연씨가 직접 쓴 글이 아닐 수도 있어요 안티 팬들이 썼을 가능성도 있답니다.
이글 조금 이상해여.. 듣던 것과 많이 차이가 있는듯.. 이승연 학교다닐때 더 이쁜 사람들 훨씬 많았다던데..
전 부럽기만 하네여~ 넘넘 ㅠ ㅠ
제가 들은거랑 비슷하네요 좀더 축소한거 같은데,,ㅋ 서문여고에서 알아줬다는데요?(자만심으로ㅡ.ㅡ) 이런거 들음 기운좀 빠지지만 다들 힘내자구요^^
이승연이 쓴거 맞아요..이승연 팬페이지에 올라와있는 글이에요
전직승무원분들 다 존경하는데 이글은 왜이렇게 기분이나쁘죠잉..